축구선수 많기로 소문난 독일에서도, 어린 나이부터 주목받던 뛰어난 수비수가 있었지요. 옌스 노보트니 입니다. 90년대 초, 장래가 가장 기대되던 수비수 중 하나였고, 22살에 레버쿠젠의 캡틴 완장을 달고 그라운드를 누볐던 선수, 노보트니. 현역 말기에는 지독한 무릎부상과 사투를 벌여가면서도, 월드컵 무대에 설 수 있었던 남자. 오늘은 그 노보트니에 대한 이야기로 출발해 볼까 합니다 ^^
프로필
이름 : Jens Nowotny
생년월일 : 1974년 1월 11일
신장/체중 : 187cm / 87kg
포지션 : DF
국적 : 독일
국가대표 : 48시합 1득점
최고의 리베로로 평가받던 레버쿠젠의 레전드 - 옌스 노보트니 이야기
어린 시절부터 재능을 인정받았던 수비수 노보트니, 그는 1992년 분데스리가의 카를스루에SC에서 축구생활을 시작합니다. 당시 올리버 칸이 수문장으로 뛰던 그 팀이었고, 약팀이었던 카를스루에SC도 분데스리가 중위권을 차지하면서 꽤나 안정감 있는 경기들을 보여주었습니다. 1992-93시즌 최연소 리베로로 활약하던 노보트니는 어렸지만 당당한 핵심멤버였고, 인상적인 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U21 대표멤버로도 활약했고, 독일의 수비를 이끌 장래가 기대되는 선수로 평가받았습니다.
1996년 옌스 노보트니는 더 발전하기 위해서, 레버쿠젠으로 이적하게 됩니다. 그리고 감독은 아직 22살 밖에 되지 않은 그를 주장으로 임명하지요. 서포터들은 우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적한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애한테 무슨 주장이냐 라며... 그러나 금세 그 소리는 잠잠해집니다. 노보트니는 주장답게 팀을 이끌어 나갔고, 동료나 팬들에게 환영받는 선수로 자리매김합니다. 현역시절 최고클래스의 리베로로 평가받았던 노보트니였으며, 전방으로 날리는 정확한 롱패스와 착실하고 영리한 수비능력, 팀을 이끄는 모습들은 명불허전이었습니다.
한편으로 그는 부상과 자주 싸워야만 했던 불굴의 남자이기도 했지요. 1994년 월드컵 당시(만19세)부터 대표선수로 뽑힐 만한 실력이 있었지만, 대회 직전에 부상을 당해 장기간 고생한 경력이 있었고, 국가대표 데뷔전은 한참이 흐른 1997년에 독일대표팀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98월드컵에서는 당대 독일을 대표하는 로타어 마테우스나 위르겐 콜러 같은 명수비수가 있었기에, 노보트니는 98월드컵 멤버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유로2000이 되자, 드디어 노보트니 수비진 시대가 왔습니다. 그러나 팀은 부진하면서 독일은 욕도 많이 먹었지요.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독일이 아니었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2001년 당시 유럽예선부터, 잉글랜드와 같은 조였던 독일은 출발부터 혈전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노보트니의 소속팀 레버쿠젠 역시 한창 잘 나가면서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한 상황이었고, 이제 노보트니는 핵심 수비수로서 이 모든 것을 잘 해내야 했습니다.
한일월드컵 유럽예선에서 노보트니는 독일팀 선수 중에는 유일하게 10시합 전경기 풀출장 하면서 팀을 월드컵 본선으로 이끄는데 성공합니다. 대회를 앞두고 크게 신뢰를 받고 있었으며, 세계에서 손꼽히는 리베로로 주목받은 것도 당연했습니다. 또한 레버쿠젠 역시 챔피언스리그 4강에 입성하면서 잘 나갔습니다. 발락, 베르바토프, 제 호베르투, 올리버 뇌빌 등 탄탄한 멤버를 앞세워서 분데스리가에서도 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던 강호였으니까요.
2002년 4월, 챔스리그 4강전 - 맨유와 레버쿠젠은 혈전을 치르게 됩니다. 그리고 이 혈전 중에 노보트니는 무릎 인대에 심각한 부상을 입으면서 그대로 시즌 아웃... 반년 넘게 재활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팬들에게는 참으로 눈물나는 상황이었지요. 소속팀 레버쿠젠은 맨유를 상대로 힘겹게 승리를 따내며, 대망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이후 레버쿠젠에게는 노보트니가 없었습니다. 그의 빈자리는 컸습니다.
현역 최고의 리베로로 불리던 수비의 기둥을 잃은 레버쿠젠은, 이후 2001-02시즌 챔피언스리그, 분데스리가, 컵대회까지 준우승만 세 번 차지합니다. 이른바 "준우승 삼관왕"을 차지하는 안타까움을 맞이합니다. 게다가 몇 달 후, 2002년 월드컵이 열리지만 독일대표팀에 이번에도 노보트니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종종 그가 비운의 명수비수로 불리는 까닭이지요.
여하튼 이 무릎 부상은 꽤나 오랜기간 그를 괴롭힙니다. 2003년 1월 드디어 복귀하는 가 싶더니, 또 다시 부상, 그리고 재활... 힘겨운 시간이었지요. 발락, 제 호베르투 등 주력선수의 타팀 이적과 노보트니의 부상 등이 겹치며, 만신창이가 된 명문 레버쿠젠은 2003-04시즌에 충격적인 시즌을 보낼 수 밖에 없었는데, 하위권으로 쳐지며 강등 위험에도 처하는 등 총체적 부진에 휩싸이며 체면을 구깁니다.
몇 번이나 큰 부상을 당하고, 긴 재활 훈련을 거치곤 했지만, 노보트니는 그라운드를 향한 집념을 포기할 줄 몰랐습니다. 그 불굴의 정신력과, 그라운드에 설 때마다 보여주는 훌륭한 퍼포먼스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지요. 그는 레버쿠젠을 위해서, 또 그라운드에 선 자신을 보기 위하여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납니다. 2005년에는 또 다시 다리를 다치며, 절룩이며 그라운드를 뒤로 하자, 많은 이들이 그의 축구인생도 끝났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그는 또 일어서지요.
마침내 2006년 월드컵을 앞두고, 클린스만 감독은 노보트니를 대표팀 명단에 넣었습니다. 체력테스트에서도 합격점을 받았고요. 일찍부터 독일의 미래를 책임질 만한 젊은이었던 노보트니는 서른이 넘은 나이가 되어서야 꿈의 무대 월드컵, 그것도 단 1경기에 출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큰 울림을 주는 이야기로 남게 되었지요. 다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말하던 남자라고 감히 부를 수 있습니다.
2006-07시즌이 되자, 옌스 노보트니는 이제 해외로 활약하는 곳을 옮겨서 크로아티아의 디나모 자그레브로 3년 계약으로 이적하게 됩니다. 하지만, 더 이상 그의 무릎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반년쯤 지났을까요, 2007년 1월 옌스 노보트니는 끝내 몸과 마음이 버텨주지 못하며, 33살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발표해야 했습니다.
이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아웃라이어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이 말했듯이, 대단한 성공은 행운과 시대적 배경, 세대 등의 환경의 영향을 강하게 받기 마련입니다. 역설적으로 말해서 - 부상없이 잘 뛰는 것, 월드컵 무대에서 주전으로 뛰는 기회, 이런 환경들이 아쉽게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기에 잘 알려지지 않은 명선수들도 충분히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옌스 노보트니는 탁월한 수비수이면서도, 부상과 싸우느라 월드컵에 늦깎이로 데뷔했던 이름이 되었지요. 하지만 우리는 충분히 그를 멋진 수비수이자, 인상적인 명선수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운은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경우가 있지만, 노력과 행동은 우리가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노보트니 같은 선배가 있는 독일팀의 저력은 그래서 앞으로도 강력한 정신력을 보여줄 것이라 생각해 보며, 후기를 마칩니다. 독자님들께 감사드리며, 즐거운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