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써둬야 하는 생각은 있었는데, 정확한 표기법 때문에 조금 망설였습니다. 그래도 일단 출발해 봅니다 ^^ 이름이야 나중에 수정할 수도 있으니까요. 오늘 소개할 스타는 80년대 독일(서독)의 스타수비수 칼 하인츠 푀르스터 (Karlheinz Förster) 이야기 입니다. 종종 칼 하인츠 포스터 라고도 국내표기가 되는데, 여하튼 이름의 정확한 표기법은 잠시 제쳐두고, 본론으로 들어가 푀르스터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프로필
이름 : Karlheinz Helmut Förster
생년월일 : 1958년 7월 25일
신장/체중 : 178cm / 73kg
포지션 : DF
국적 : 독일 (구 서독)
국가대표 : 81경기 2득점
1대 1 수비의 달인, 80년대 최고의 스토퍼로 평가받는 - 칼 하인츠 푀르스터 이야기
90년대 독일은 월드컵도, 유로도 한 번씩 우승한 데다가, 마티아스 잠머나 로타어 마테우스, 위르겐 콜러 같은 그야말로 전설적인 수비수들이 즐비했습니다. 70년대 서독하면 황제 베켄바우어가 누구보다 유명하겠지요. 그렇다면 80년대에는!? 예, 오늘의 주인공 칼 하인츠 푀르스터가 가장 멋진 수비수일 것입니다. 푀르스터는 80년대 서독을 지탱하던 명수비수 였습니다.
중앙수비수로서는 키가 다소 작게 느껴지는 178cm 입니다만, 명수비수 칸나바로나 아얄라 에서 살펴봤던 것처럼, 키는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었지요. 푀르스터는 1대 1에 매우 강했고, 끈질긴 대인마크 기술을 발휘하면서 상대팀의 에이스들을 봉쇄해버리며 훌륭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점프력도 대단히 뛰어나서 덩치가 큰 선수와 맞붙어도 밀리지 않았지요. 언제나 안정감 있는 플레이 덕분에, 80년대 세계에서 손꼽히는 스토퍼라고 보셔도 무방하지 않나 싶습니다. 여담으로 푀르스터는 외모가 워낙 준수한 덕분에, 천사의 얼굴이라고도 불렸지요.
푀르스터의 출발은 서독 2부리그 였습니다. 슈투트가르트에 입단했고, 어린 나이에 뛰어난 수비수로 대활약을 펼치며 팀의 1부리그 승격에 큰 공헌을 합니다. 분데스리가에 와서도 푀르스터는 당차게 수비를 잘했고, 덕분에 19살의 나이로 서독국가대표로 발탁되면서 1978년 국대로 데뷔합니다. 소속팀 역시, 돌풍을 일으키던 슈투트가르트 였고, 중원에 한시 뮐러, 공격진에 히츠펠트 등이 뛰었지요. 1978년에는 파란을 일으키며 1부리그 4위를 기록합니다. 어찌나 인기가 대단하던지, 평균관중 5만 3천을 찍습니다. 이후 오랜기간 깨지지 않던 관중동원 신기록이었지요. 그리고 열광적 응원에 힘입은 슈투트가르트는 1984년 마침내 염원의 첫 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합니다. 분데스리가를 대표하던 명수비수 푀르스터는 1982년에 독일최우수선수상을 받은 바 있습니다.
서독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1980년 유로 우승, 82년 월드컵 준우승, 86년 월드컵 준우승에 공헌하였습니다. 아쉽게 월드컵 우승을 놓쳐서 세계적 인지도는 다소 부족할지 모르지만, 푀르스터의 안정되고 견고한 수비실력은 많은 이들에게 찬사를 받았습니다. 1986년 비교적 이른 나이로 국가대표를 물러난 이후에는, 프랑스로 건너가서 마르세유에 몸담게 됩니다. 그리고 마르세유에서 수비의 중심선수로 또 다시 멋진 퍼포먼스로 팀의 승리에 일조했고, 마르세유는 1989년부터 연속우승 행진을 달리며, 좋은 시절을 누리지요. 푀르스터는 가는 곳 마다 끈끈한 수비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며 두터운 신뢰를 받았으며, 1990년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합니다.
그는 세계적 명문구단에서 뛰지 않았고, 월드컵 우승도 놓쳤습니다. 그러나 푀르스터는 가는 곳마다 귀중한 활약을 펼치며 우승으로 이끌고자 노력하였고, 슈투트가르트의 영원한 전설적 수비수이자, 80년대 서독의 명수비수로 후세에도 평가받을 것입니다. 푀르스터를 추억하는 사진모음영상을 덧붙이며, 오늘 이야기는 여기에서 마칩니다 ^^ 독자님들께 늘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잘 생겨서 더 부러운 스타, 푀르스터 편이었습니다.
프로필
이름 : Karlheinz Helmut Förster
생년월일 : 1958년 7월 25일
신장/체중 : 178cm / 73kg
포지션 : DF
국적 : 독일 (구 서독)
국가대표 : 81경기 2득점
1대 1 수비의 달인, 80년대 최고의 스토퍼로 평가받는 - 칼 하인츠 푀르스터 이야기
90년대 독일은 월드컵도, 유로도 한 번씩 우승한 데다가, 마티아스 잠머나 로타어 마테우스, 위르겐 콜러 같은 그야말로 전설적인 수비수들이 즐비했습니다. 70년대 서독하면 황제 베켄바우어가 누구보다 유명하겠지요. 그렇다면 80년대에는!? 예, 오늘의 주인공 칼 하인츠 푀르스터가 가장 멋진 수비수일 것입니다. 푀르스터는 80년대 서독을 지탱하던 명수비수 였습니다.
중앙수비수로서는 키가 다소 작게 느껴지는 178cm 입니다만, 명수비수 칸나바로나 아얄라 에서 살펴봤던 것처럼, 키는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었지요. 푀르스터는 1대 1에 매우 강했고, 끈질긴 대인마크 기술을 발휘하면서 상대팀의 에이스들을 봉쇄해버리며 훌륭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점프력도 대단히 뛰어나서 덩치가 큰 선수와 맞붙어도 밀리지 않았지요. 언제나 안정감 있는 플레이 덕분에, 80년대 세계에서 손꼽히는 스토퍼라고 보셔도 무방하지 않나 싶습니다. 여담으로 푀르스터는 외모가 워낙 준수한 덕분에, 천사의 얼굴이라고도 불렸지요.
푀르스터의 출발은 서독 2부리그 였습니다. 슈투트가르트에 입단했고, 어린 나이에 뛰어난 수비수로 대활약을 펼치며 팀의 1부리그 승격에 큰 공헌을 합니다. 분데스리가에 와서도 푀르스터는 당차게 수비를 잘했고, 덕분에 19살의 나이로 서독국가대표로 발탁되면서 1978년 국대로 데뷔합니다. 소속팀 역시, 돌풍을 일으키던 슈투트가르트 였고, 중원에 한시 뮐러, 공격진에 히츠펠트 등이 뛰었지요. 1978년에는 파란을 일으키며 1부리그 4위를 기록합니다. 어찌나 인기가 대단하던지, 평균관중 5만 3천을 찍습니다. 이후 오랜기간 깨지지 않던 관중동원 신기록이었지요. 그리고 열광적 응원에 힘입은 슈투트가르트는 1984년 마침내 염원의 첫 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합니다. 분데스리가를 대표하던 명수비수 푀르스터는 1982년에 독일최우수선수상을 받은 바 있습니다.
서독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1980년 유로 우승, 82년 월드컵 준우승, 86년 월드컵 준우승에 공헌하였습니다. 아쉽게 월드컵 우승을 놓쳐서 세계적 인지도는 다소 부족할지 모르지만, 푀르스터의 안정되고 견고한 수비실력은 많은 이들에게 찬사를 받았습니다. 1986년 비교적 이른 나이로 국가대표를 물러난 이후에는, 프랑스로 건너가서 마르세유에 몸담게 됩니다. 그리고 마르세유에서 수비의 중심선수로 또 다시 멋진 퍼포먼스로 팀의 승리에 일조했고, 마르세유는 1989년부터 연속우승 행진을 달리며, 좋은 시절을 누리지요. 푀르스터는 가는 곳 마다 끈끈한 수비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며 두터운 신뢰를 받았으며, 1990년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합니다.
그는 세계적 명문구단에서 뛰지 않았고, 월드컵 우승도 놓쳤습니다. 그러나 푀르스터는 가는 곳마다 귀중한 활약을 펼치며 우승으로 이끌고자 노력하였고, 슈투트가르트의 영원한 전설적 수비수이자, 80년대 서독의 명수비수로 후세에도 평가받을 것입니다. 푀르스터를 추억하는 사진모음영상을 덧붙이며, 오늘 이야기는 여기에서 마칩니다 ^^ 독자님들께 늘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잘 생겨서 더 부러운 스타, 푀르스터 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