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게임을 즐겨한 지도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많은 회사들이 합병을 하였고, 또 어떤 회사는 무너지고, 어떤 회사는 추락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길을 가고 있는 묘한 회사가 있지요. 닌텐도 입니다. 닌텐도는 90년대 초중반 엄청난 강자로서의 지위를 누립니다. 명작들이 줄줄이 닌텐도 슈퍼패미콤으로 발매되었고, 인기 소프트들은 몇백만장씩 팔려나갑니다. 그러나 90년대 중후반 소니가 게임시장에 들어오면서 닌텐도의 지위는 추락하기 시작하지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은 초대박 히트를 칩니다. 어떤 이들은 이제 닌텐도의 시대는 끝났다고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 닌텐도는 기어이 화려하게 부활합니다. 과연 무슨 마인드가 부활을 낳았는가... 그것을 엿볼 수 있는 즐거운 책이라 하겠습니다.
저자 : 이노우에 오사무 / 역자 : 김정환 / 출판사 : 씨실과 날실
출간 : 2010년 3월 3일 / 가격 : 13,000원 / 페이지 : 275쪽
닌텐도가 추구한 세계는 양보다 질이었습니다. 90년대 슈퍼패미콤 시절, 소프트웨어들도 철저하게 통제하고 관리하는 노선을 취했습니다. 무분별한 게임을 막아보자는 취지였지요. 성공적이었습니다. 닌텐도가 마리오 등으로 선방을 치고 나가면, 스퀘어, 에닉스, 캡콤 등 각종 서드파티들이 명작, 이식작들을 연이어 잘 만들어내면서, 세가와의 게임기 전쟁에서 압승을 거두게 됩니다. 저만해도 메가드라이브 유저였지만, 결국 슈퍼패미콤을 안 할 수가 없었지요. 게임시장에서 중요한 것, 다양한 게임들을 즐겁게 즐길 수 있는가? 아주 중요한 핵심입니다. 옷가게에 다양한 옷이 있듯이, 닌텐도는 90년대 매력 넘치는 화려한 무대의상들이 가득했습니다.
90년대 중반부터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은 CD-ROM 앞세워 강력한 그래픽으로 승부를 펼칩니다. 저렴해진 소프트웨어 가격도 매력적이었고, 무엇보다 서드파티들이 쉽게 게임을 만들어서 내다 팔 수 있는 구조를 앞세우며, 이후 PS2 시절까지 거치형게임시장의 절대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습니다. PS1, PS2 시절 발매된 타이틀 수가 9천개가 넘어갔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닌텐도는 슈퍼패미콤 이후 무리수를 둡니다. 닌텐도64(N64) 라는 고급 하드웨어를 선보이는데, 치명적 단점이 있었습니다. 게임기의 성능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고, 전문가들도 완성도 있게 만들어 내기가 어렵다 라는 것이었지요. 소니는 소프트웨어 물량공세로 밀어붙이며, 한 번씩 터져주는 명작들 덕분에 날개돋힌 듯이 팔려나갔지만, 닌텐도64에게는 가혹한 평가가 따라붙습니다. 게임은 재밌는데, 할 만 한게 별로 없다. 닌텐도64, 게임큐브로 고전을 하던 닌텐도는 약 500개에 불과한 타이틀로 승부해야 했습니다. 닌텐도가 타이틀 1개 낼 때, 소니는 18개를 내고 있었던 셈입니다.
예술의 세계에서 우리는 흔히 간과하고 있는 점이 있는데, 그것은 많이 그리고, 많이 만들고, 많이 도전하는 사람들이 거장으로 군림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많이 실패할 수록, 시행착오도 많았고, 고통도 많았기 때문에, 점점 세련되어져 나갑니다. 소니의 PS1, PS2 시절이 그러했습니다. 나날이 그래픽이 발전했고, 심지어 극한까지 PS의 성능을 끌어냈다는 말까지 나오고 했습니다. 닌텐도는 처참한 패배를 경험한 것입니다.
그나마 휴대용 게임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며, 게임보이(GB), 게임보이어드밴스(GBA)라는 하드웨어가 계속해서 팔려나갔기 때문에 닌텐도는 망하지 않을 수 있었고, 최소한의 연구개발은 해나갈 수 있었던 것이지요. 매우 인상적인 대목은 여기서부터 입니다. 닌텐도는 패배에서 배울 줄 알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눈이 있었습니다. 점점 게임이 대형화 되고, 그래픽이 뛰어나게 되면, 헤비 게이머만 남게 되고, 개발자들도 부담감으로 제대로 된 게임을 만들기 어려워 진다. 닌텐도가 냉정하게 바라본 지점이었습니다.
한 템포 느리게 가는 전략을 사용한 것이, 바로 세계적 히트를 펼치면서 약 1억개를 팔아치우고 있는 NDS, Wii 입니다. 게임은 재미있어야 하고, 놀라움을 주어야 하고, 아이디어가 중요하다, 그래픽을 우선하지 않겠다는 철학이 닌텐도에 녹아 있었던 겁니다. Wii는 고해상도 HD를 지원하지 않지만, 감각적인 리모콘 조작과 몸을 움직이면서 플레이 한다, 운동한다, 춤을 춘다, 함께 논다는 것을 추구하면서, 탁월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NDS였지요. 화면을 2개 사용하는 듀얼 스크린과 터치 기능을 이용하면서, 세상에 없던 것들을 만들어 냅니다. 두뇌 트레이닝 등 학습용 소프트웨어들이 수백만장씩 팔려나갔고, 아이디어나 재미로 승부하는 게임들이 많은 히트를 칩니다. 개를 키우는 닌텐독스, 마을에서 일상을 즐기는 동물의 숲 등이 등장하면서 인기를 끌었고, 게임은 그래픽보다 재미있는게 우선이다 라는 것이 시장에서 통한 것입니다. 물론, 기존의 헤비 게이머들은 화려한 소니의 PSP나 PS3을 좋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판매량 그래프에서 세계적 성공을 거둔 것은 NDS와 Wii 였습니다. 멋있는 게임보다 재미있는 게임을 추구하는 이 닌텐도의 노선이 저는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결국 NDS의 후속기종인 3DS도 2011년 연말부터 폭발적인 상승세를 타고 있습니다. 해보니 재밌다면, 누구나 지갑을 열 수 있다 라는 것이 닌텐도의 철학이지요. 게임을 즐겨하는 게이머들의 시선을 의식하기 보다는 일상을 살아가는 모두를 잠재적인 고객으로 의식하고자 하는 이 태도는 크게 배울 점이 있습니다. 또한 게임 외에는 다른 업종에 손을 대지 않는다는 철학도 닌텐도가 강한 사랑을 받는 이유입니다. 생각해보니, 단 하나의 요리만 계속 연구하겠다는 맛집 같습니다. 그 요리는 결코 화려하지도 않고, 자극적이지도 않습니다. 다만 웃음을 주는 맛있는 맛이 난다... 이것이 닌텐도가 아닐까요.
화제를 잠깐 돌려서, 이 책에는 닌텐도를 비판하는 부분이 없다 싶어서, 동호회 지인들과 닌텐도의 삽질을 이야기 해봤습니다. 다소 비판적인 시선으로 들여다 본다면, 90년대 닌텐도가 소프트웨어 카트리지 생산 독점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었기에, 서드파티들이 다 PS 진영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익을 독점하다가, 10년 넘게 고생한 닌텐도, 거의 죽을 뻔한 닌텐도를 생각해보면, 이익을 나누며 함께 풍성한 숲을 만드는 것이 장기적으로 서로를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지요.
둘째로, 동호회 지인들은 (주로 헤비 게이머) 최근 닌텐도가 취하고 있는 국가코드로 보호정책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점들이 많았습니다. 대게 정발 wii를 구입하고 있었지만, 일본에서 판매하고 있는 양질의 소프트웨어들 (제노블레이드, 파이어엠블렘, 슈퍼로봇대전 등) 을 플레이할 수 없기 때문에 잠재적인 불만을 가지고 있지요. 물론 국가코드는 소니에서도 북미판과 아시아판 플레이스테이션2 가 호환이 안 되는 등, 기존에도 있어왔지만, 일본판 wii소프트가 한국에서 안 돌아간다는 것을 참으로 아쉬워했습니다. PS3 진영처럼, 한글화 없더라도 헤비 게이머들을 위한 소프트웨어 발매를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사실 자본의 답은 더 냉정하겠지요. 안 팔리고, 수익이 안 나니까, 발매를 안 하는 것. 그렇다고 한다면, 과거 GB 시절처럼 국가코드 없더라도 누구나 전세계에서 구입해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을 수 있으나, 가격을 일괄적으로 맞추기가 곤란하니까 이 점도 쉽지는 않겠지요. 예, 닌텐도도 모든 정책이 근사한 회사는 아니다 라는 점을 우회적으로 비판해 보았습니다.
닌텐도를 이끌고 있는 이와타 사장과 마리오의 아버지로 존경받는 개발자 미야모토의 제법 많은 이야기가 실려 있던 점도 좋았습니다. 미야모토는 게임과 관계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노력했고,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은 자신이 틀렸다 라고 수정을 해 나갑니다. 이것이 명작을 만드는 비결이 아닌가 싶습니다. 건담으로 유명한 토미노 역시 애니메이션만 봐서는 안 된다며, 다양한 유산들(예컨대 영화, 책, 여행, 일상 등)을 접하는 것이 더 나은 작품을 만드는 데 중요하다는 발언을 했었지요. 분야의 거장들은 어깨 너머로 보는 관찰자의 시선이 있다는 점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독선에 빠지면 망한다. 고작 9글자 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경영원칙도 없을 것이라 생각해 봤습니다.
기존의 게이머들을 계속해서 만족시키기 보다는, 게임에 흥미가 없던 사람을 새로운 게이머로 만들고, 바쁜 일상으로 인해 게임계를 떠나있던 사람들을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독특한 철학. 게임기로 놀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해서 실험하는 닌텐도의 저력이 느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게임기는 기호품이라는 측면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필수품과 달리 기호품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상관 없습니다. 대신에 기호품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로 보는 경향이 크지요. 커피만 해도, 커피샵에 가서 아무거나요 하면서 사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게임샵에서도 마찬가지로 아무거나 주세요 라고 하지 않지요. 생활필수품은 대충 만족하면서 아무거나 삽니다. 심지어 인터넷에서 싸고 평가 좋은 걸로 망설이지 않고 사버리기도 하지요. 역설적으로, 기호품 이라는 것은 가격경쟁이 아니라, 만족도 경쟁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싸게 대충만드는 것이 만사해결이 아니라, 더 쾌적하고, 더 직감적인 것을 추구하겠다는 것이 닌텐도의 철학이지요. 덕분에 닌텐도 하드웨어들은 전반적으로 튼튼한 경향이 있습니다. A/S도 이런 기호품 철학, 만족도의 철학을 바탕으로, 망가져도 안심하고 수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자세는 매우 높이 평가합니다.
소프트웨어로 승부를 하겠다는 닌텐도. 인생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새카만 어둠이니, 운은 하늘에 맡기고 주어진 일에 온 힘을 다한다는 뜻의 닌텐도라는 이름. 믿고 쓰는 닌텐도 게임 이라는 것이 잘 어울리는 회사. 10년 뒤에도 살아남을 것 같은 게임회사 1위. 그 비결은 자만하지 않고,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을 사명감으로 삼고 노력하는 모습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안주하고, 자랑하면 침몰하고, 고민하고, 창조하고, 놀라움을 추구하면, 계속 항해할 수 있으니... / 오늘은 이렇게 마무리 하면서 모처럼만의 리뷰를 마칩니다. 2012. 01.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