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나라 브라질에서도 국가대표 100경기를 넘게 소화한 선수는 손에 꼽힐 정도로 많지 않습니다. (영문위키 기준 4명 - 카푸, R카를로스, 루시우, 타파렐) 그 중에서는 90년대 브라질의 명골키퍼 클라우디오 타파렐의 이름도 있지요. 브라질의 명골키퍼 계보를 이야기 할 때마다 꼭 등장하는 그 이름 타파렐! 오늘은 이 전설적 골키퍼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해 봤습니다. 꽤나 인상적인 선수였어요. 통념을 깨고, 브라질 골키퍼로서 유럽진출한 선두 주자이기도 했고 말입니다. 어서 출발해 봅시다.
프로필
이름 : Cláudio André Mergen Taffarel
생년월일 : 1966년 5월 8일
신장/체중 : 183cm / 80kg
포지션 : GK
국적 : 브라질
국가대표 : 101시합
월드컵만 18경기를 소화한 브라질의 레전드 - 타파렐 이야기
1988년 브라질 국가대표로 발탁된 타파렐 골키퍼는, 1990년 월드컵에 참가하면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비록 브라질은 아쉽게도 16강 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타파렐은 앞길이 창창한 20대 중반의 브라질 국가대표 골키퍼 였으니까요. 세리에의 파르마가 타파렐을 영입하게 됩니다. 정말 특이한 경우였지요. 그 이전까지 브라질 골키퍼가 이탈리아에서 뛴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당시 남미 골키퍼가 유럽에서 활동하는 일 자체가 드물었던 시대였습니다. 유럽에서 무슨 브라질 골키퍼가 활약하겠냐? 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타파렐은 유럽 무대에서 빠른 적응을 했고, 굉장히 잘했습니다.
타파렐은 파르마에서 수준 높은 퍼포먼스를 발휘했고, 당대 세리에 최고의 골키퍼인 월터 젠가등과 함께 1991년 IFFHS 최고골키퍼 순위 상위권에 랭크되었습니다. 뛰어난 존재감 덕분에, 1994년 월드컵 무대가 기대되었습니다. 적어도 브라질 뒷문은 걱정이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보란듯이 타파렐은 결정적 순간마다 브라질 국민들에게 기쁨을 안겨주는 승리의 사나이가 됩니다. 1994년 월드컵 결승전 이탈리아와의 경기, 치열한 결승전은 결국 승부차기까지 흘러갑니다. 국민영웅 타파렐은 이탈리아 선수의 PK를 선방해 버렸고, 이후 이태리 전설 R바조의 실축까지 더해지면서, 브라질은 월드컵 감격의 우승을 거머쥡니다. 타파렐이야 말로 뒷문의 숨은 공로자 였지요.
이후에도 최고의 페널티킥 승부사 골키퍼로 명성을 날립니다. 움직임을 읽는 능력이 탁월했고, 반사신경도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몇 번이나 브라질 국민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지요. 이듬해 1995년 코파 아메리카 숙명의 라이벌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도 타파렐이 버티는 브라질이 승부차기 끝에 승리합니다. 이 승부차기 = 승리공식은 계속되는데, 1998년 프랑스 월드컵 4강전 네덜란드와의 경기는 유명합니다. 이번에도 타파렐이 훌륭한 승부차기 선방을 선보이면서 브라질을 결승까지 이끌었습니다. (결승전은 프랑스가 우승) 여하튼, 네덜란드는 저 타파렐만 없었으면... 이라고 탄식하면서 4강에서 우승의 꿈을 접어야 했지요.
90년대 타파렐이 보여준 큰 무대에서의 대단한 명성들은, 오늘날의 부폰이나 카시야스가 부럽지 않았을 것입니다. 긴장감 넘치는 경기에서 타파렐의 신들린 선방은 공격축구 브라질 뒤에 숨어있던 강력한 보호막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제 그의 이름은 월드컵에서만 통산 18경기를 뛴 브라질 전설의 골키퍼가 되었지요.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경기를 뛴 골키퍼는? 예 바로 타파렐 선수입니다.
클럽팀에서는 브라질의 미네이루, 터키의 갈라타사라이, 세리에 파르마 등 세계적인 빅클럽이 아닌 곳에서 주로 묵묵하게 활약한 편입니다. 98년 월드컵을 끝으로, 국가대표에서 물러났고, 2003년 현역에서 은퇴선언을 합니다. 현재에는 골키퍼 코치로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브라질 명예의 전당에도 올라가 있는 전설 타파렐, 끝으로 현역시절의 멋진 선방 장면 하나 덧붙이면서 오늘 이야기는 여기에서 마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