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누리교회

2012년9월23일/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마태복음6:19-23)/홍종일목사

시북(허지수) 2012. 10. 4. 13:30

영암교회 홍종일 목사님 설교 2012년 9월 23일 주일 예배

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마태복음6:19-23)

우리는 과연 무엇 때문에 예수를 믿습니까?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서에 보면 인간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단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위해서 예수를 믿는 것입니까? 정말 우리는 그 외에는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까?

제 개인적으로는 예수믿는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믿을 것 같습니다. 잘되기 위해서, 돈도 많이 벌고 취직도 잘되고 건강하고 시험에 합격하고 뭐 그런 종류의 복을 받기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까? 만일 아니라고 하신다면 그분은 굉장히 신앙이 좋거나 아니면 거짓말쟁이일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복은 물질적인 복을 말합니다. 양이 몇 마리, 소가 몇 겨리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신약에서는 복의 범위가 매우 광범위해졌습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일곱가지 복을 말씀하셨죠? 그런데 그 복은 모두 다 천국에 가게 된다는 말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한 고드란트, 즉 두렙돈을 넣은 여인을 보고 가장 헌금을 많이 넣었다고 까지 말합니다. 동전 한개. 이래서는 정말 곤란합니다. 그렇다면 엄청난 돈을 헌금한 사람들은 뭡니까....

우리는 신약시대에 과연 어떻게 해야 정신적인 축복이 아니라 물질적인 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제가 성경을 나름 열심히 살펴보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물질적인 복을 받을 수 있을까?

첫 번째는 십일조네요. 이건 우리가 너무 잘 압니다. 두번째는 효도네요. 효도하면 땅에서 장수한답니다. 장수가 단순히 오래사는 것 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랜세월동안 먹고 살 것도 당연히 포함하겠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오늘 본문처럼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 주님은 너희를 위하여 이땅에 보물을 쌓는 것을 중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원문으로 보면 의미가 더 엄격합니다. 무언고하니 지금 즉시 쌓는 것을 그만두라는 말입니다. 지체하거나 망설이지 말고 내 말을 듣는 지금 즉시 그만두라는 말입니다. 너무 엄격한 명령입니다. 생각할 여지를 전혀 주지 않고 있습니다. 타협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리고는 왜 그래야만 하는지 이유가 나와있습니다.

그런데 무조건 이 땅에 보물쌓기를 그만두라는 말은 아닙니다. 여기 수식어가 붙어있네요. 너희를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저축을 하지 아무렴 남을 위하여 사용하려고 돈을 모은단 말입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주님은 그렇게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다음 구절에는 그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좀과 동록이 보물을 해하고 도둑이 구멍을 뚫어서 재물을 훔쳐가기 때문이랍니다. 글쎄 우리는 보물이라고 하면 다이아몬드같은 돌이나 금은같은 금속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돌멩이나 금은구리에 무슨 좀이 해를 끼치겠습니까? 좀은 솔직히 결코 돌멩이나 금은구리를 갉아 먹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좀 이상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옛날 보물은 빛나는 돌멩이나 금은같은게 아닙니다. 괜히 먹지도 못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은 단지 반짝임으로 안목의 정욕을 충족시킬 뿐입니다. 오히려 보통사람들에게는 곡식, 고기, 옷감 같은 것들이 보물이었습니다. 결국 이걸 벌레가 갉아먹어버린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도둑은 복수로 사용되었습니다. 도둑이 한둘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구멍을 뚫는다는 말에서도 토굴을 뚫는다는 표현이 사용되었습니다. 결국 우리를 위하여 이땅에 보물을 쌓아둔 창고는 돌이나 콘크리트나 쇠가 아니라 단순히 흙담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한번 생각해 보면 이 땅에 쌓아논 재물은 얼마나 없어지기가 쉽습니까? 게다가 훔쳐가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벌레가 다 먹어버린 답니다.

1874년도에 흥인군 이최응이란 사람이 정부의 수반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욕심이 많고 모자라지만 흥선대원군의 친형이기 때문에 흥선군을 견제할 필요로 민씨정권이 추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집권하자 조선팔도에서 뇌물이 들어옵니다. 그 뇌물이 얼마나 많이 들어오는지 쌓아둘데가 없어서 창고를 헐고 마당한켠에 새롭게 거대한 아홉칸의 창고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차례대로 돈, 생선, 고기, 쌀, 비단, 보물, 약재의 식으로 창고에 칸칸이 뇌물을 나누어서 쌓아 두었는데 이 사람의 욕심은 너무 대단해서 고기가 썩어가도 남에게 줄줄을 몰랐답니다. 그래서 이최응이 사는 동네어귀만 가도 고기 썩는 냄세로 코가 빠질 지경이었답니다.

이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면 창고의 문을 열고 전날 들어온 뇌물들을 바라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답니다. 그러다가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구식군대가 이최응의 집을 습격합니다. 군인들의 폭동 때문에 집에서 도망치려던 이최응은 뒷담을 넘으려고 하다가 창고 생각이 났습니다. 자기가 도망가면 틀림없이 군인들이 창고를 털터인데...그래서 창고로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군인들이 창고문을 깨뜨리고 있습니다.

이때 이최응은 그 군인들앞에서 양팔을 벌리고 막아서면서 “내 죽기 전에는 창고를 털 수 없다”고 외쳤습니다.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는 그날 창고를 막아서다가 성난 군인들에게 밟혀 죽었습니다.

인간이 이 땅에 자기를 위하여 쌓아둔 재물은 이와 같습니다. 결코 천년만년 내려가지가 않습니다. 삼대 거지가 없고 삼대 부자가 없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돌고 도니까 돈이라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훔쳐가거나 아니면 벌레가 먹어치워 버리니까

주님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십니다. 글쎄요, 솔직히 우리는 아직 여유가 없어서 보물을 하늘에 쌓기가 어렵습니다. 당장 하루하루 살기가 벅찬데 무슨 하늘에 까지 보물을 쌓아둔단 말입니까?

그런데 하늘에 보물을 쌓으면 지상에서 보물을 쌓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이 없답니다. 좀과 동록도 해하지 못하고 도둑이 굴을 뚫고 훔쳐가지도 못한답니다. 그러면 과연 어떻게 해야 보물을 하늘에 쌓아둘 수 있습니까?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누가복음 12:33에 방법이 나와 있습니다.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라 그러면 그것이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 형제여 내가 지금 너무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을 좀 주시오” 하는 요청을 받았을 때 형제를 도우라는 말이 아니라 ‘저 형제가 아무래도 힘들구나! ’ 이렇게 생각이 들면 먼저 찾아가서 “형제, 지금 힘이 듭니까? 도움이 필요하지않나요?” 이렇게 묻고 도와주라는 말입니다. 솔직히 요청을 받고 형제를 돕는 일도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남 돌아볼 틈도 없이 힘들게 겨우 겨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명령은 솔직히 불가능에 가까운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이라는 건 항상 이렇게 따르기가 어려운 것들뿐입니다. 마치 백척이나 되는 높은 장대위에 서있는 우리에게 ‘내가 너를 잡아줄 테니까 나를 믿고 허공중으로 한발 앞으로 나와라.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라“는 말과 다름이 없습니다.

허공중에 뜬구름을 잡으려다가는 천길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지리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아니야 , 너는 잡을 수 있어. 보이지 않는 허공중에 내가 서서 너를 잡아줄테니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아닌데 그분은 자꾸 그렇게 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의 명령은 준행하기가 어렵습니다.

사실 하늘에 보물을 쌓아둔다는 말은 천국은행에 예금한다는 말입니다. 창고에 그냥 보물을 쌓은 것이 아니라 계좌에 예금한다는 말입니다. 예금의 특징이 뭡니까?

그것은 우리가 지급을 요구하면 반드시 주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당신이 지금 돈이 별로 필요하지 않으니까 당신보다 다른 사람에게 먼저 돈을 지불해야 되겠다”는 대답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내가 보니 필요한 돈은 겨우 백만원인데 천만원을 요구하니 안되겠다. 백만원만 가져라”는 말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예금 잔고가 있는 한 우리가 지불을 요구한 금액이 반드시 지불이 되도록 되어있는 것이 바로 예금입니다.

더구나 이 은행은 이자율이 무지하게 쎕니다. 삼십배, 육십배, 백배. 그래요, 무려 백배의 이자율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겨우 1%이자를 더 받으려고 보통은행이 아니라 저축은행에 저금했다가 그 은행이 파산해서 지금 부산에서 데모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늘 은행, 천국은행은 정기예금도 아닌데 무려 최저 삼십배 최고 백배의 이율을 보장한답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어떻게 살까하고 자녀들에게 뭘 남겨줘야 될지 전전긍긍하며 자식들이 미래에 잘살도록 뭔가를 남겨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많은 재산을 남겨주면 상속세가 있습니다. 아마 2/3쯤 될겁니다.

그런데 이 천국은행계좌에 넣어두었다가 상속하면 상속세는 한푼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자율이 최대 백배에 달합니다. 게다가 이 은행은 결코 파산하지도 않고 좀과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뚫지도 못합니다. 안전하고 이익이 많이 남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가 놀라운 부자가 되려고 하면 이 천국은행에 예금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공짜가 없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굉장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그가 무언가를 우리에게 주시기 전에 그는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맹자에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

천장여지, 필선고지. “하늘이 사람에게 뭔가를 주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고난을 준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이렇게 불평합니다. 하나님, 왜 저는 성경의 모세나 요셉처럼 다니엘과 엘리야처럼 놀라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거지요? 하나님 왜 저에게는 누구에게 주었던 그런 놀라운 축복을 하시지 않는 거지요?

하나님의 섭리의 장중에 붙들린바 되는 놀라운 주인공이 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먼저 놀라운 일을 하나님에게 해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한 축복을 받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먼저 특별한 것을 드리십시오. 남들이 다 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하지 않는 특별한 것, 그래서 내 아버지께서 그래 네가 특별하게 나를 위해 이 일을 했으니 나도 너에게 특별한 일을 해 줘야 겠구나 라고 인정하실 수 있도록. 주님의 요구는 너무 어렵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이기 때문에 그가 요구하는 것들을 준행해야 하지만 그의 요구는 너무 어렵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마치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체의 눈이 아니라 영안을 가지고 그가 허공중에서 나를 위해 서셔서 나를 붙잡으려고 손내밀고 계심을 봅니다.

우리는 어디에 보물을 쌓아야 합니까?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지금 당장 그의 명령에 호응해서 이 땅에서 나를 위해 재물을 쌓은 일을 즉시 중단할 수 있습니까? 바로 그만둘 수 있을까요? 그리고 즉시 하늘에 보물을 쌓기를 시작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누구나 다 특별할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특별한 하나님의 복을 받기를 원하고 부자가 되기를 원하며 합격하고 건강하고 승진하며 이 지상에서의 삶에서 승리하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먼저 내 아버지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십시오.

그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위하여 이 땅에 보물을 쌓는 일을 지금 즉시 중단하고 하늘에 보물쌓기를 시작하라

내가 어느정도 먹고 살고요, 애들 다키우고 시집장가 보내고요, 아니요. 아니요. 지금 즉시 당장 시작하라고 하십니다. 지금 즉시.

- 영암교회 홍종일 목사님 설교 2012년 9월 23일 주일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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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시북의 이야기)

사람은 저마다의 보물창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귀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물을 가지고 있으면, 얼마나 흐뭇하고, 얼마나 생각이 자주 날까요. 그 사람의 기쁨은 크겠지요. 아, 그런데 문제가 있네요. 이 보물의 가치가 영원하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물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물건들은, 보통 우리네가 살아가는데 없어도 되는 것들입니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보물이 있다보면, 자꾸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결국 초점을 자기 자신에게만 맞추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너무 애지중지 하는게 있으면 조심할 필요도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보다 높은 가치를 두어야 할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말이지요. 유명한 노래도 있잖아요.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보물 쌓기를 즉시 중단하라는 말씀은, 자신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살기를 중단하라 와도 비슷하게 들려옵니다. 한 번 보라는 말입니다. 내 보물 대신에, 지금 당신 옆의 누군가가 얼마나 고민 하며, 얼마나 힘들 게 사는 지를 보라는 말입니다. 하기야 두 눈을 감고, 두 귀를 막은 채, 나의 즐거움을 만족시키며 살고 싶은 게 인간 욕망의 끝이자, 희망사항입니다. 모른 척 하면 편하니까요. 정녕 모르는 게 약이란 말입니까. 하하.

우리는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내 물질적 창고에, 내 마음의 창고에, 눈에 보이는 즐거움을 쌓아올릴 것입니까. 다른 사람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나의 도움을 보태고자 노력할 것입니까. 합리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뭐한다고 남을 돕니, 보상도 없는 거야, 나에게 보탬도 안 되는 말짱 헛짓이라고!" 정확하게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하나님을 위해서 이 헛짓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를 구할 때, 그 분은 우리에게 놀라운 일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는 작은 믿음 입니다. / 2012. 10.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