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교회 홍종일 목사님 설교 2012년 11월 18일 주일 예배
오늘은 기독교회에서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날입니다. 사실상 이 추수감사절은 성경상의 절기는 아닙니다. 물론 성경에도 추수감사절이라고 할 수 있는 초막절이나 초실절, 수장절같은게 있기는 합니다만 이는 유대인들의 월력에 맞추어져 있어서 우리와는 좀 거리가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세계의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추수감사절이 있거나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추석이라는 추수감사절을 가집니다. 그러나 추석이 너무 지나치게 조상숭배의 의미를 띄고 음력8월15일은 추수가 되기에는 조금 이른 감을 주는 바람에 추수감사절로서의 의미는 많이 퇴색되어 버렸습니다.
솔직히 따지면 우리가 미국의 추수감사절을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지키는 추수감사절은 미국에서 시작한 추수감사절 말고는 없고 또 기존의 추석이 조상에 대한 제례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선교사들이 전해준 추수감사절을 따르고 있습니다.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만든게 아니라 그냥 선교사들이 지키는 추수감사절을 지키다 보니 한국교회에서도 나름 오래된 전통이 된 것입니다.
선교사들이 자기들끼리 이날 모여서 음식도 하고 즐기는 걸 보고는 한국교인들이 도대체 뭔가하고 주시하다가 그 모임에 초대받아 추수감사절에 함께 참여해서 즐기다가 전교회적으로 확대되면서 하나의 전통이 된 것입니다. 지금도 교회들마다 추수감사절이라고 호박이나 과일같은 걸로 강단아래를 장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연히 칠면조는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없습니다.
물론 몇몇 뜻있는 목사님들이 미국의 추수감사절이 아니라 우리의 독자적인 추수감사절을 가지자는 의미에서 추석때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모르겠습니다. 먼 훗날 우리 독자의 추수감사절이 생길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그냥 미국의 추수감사절과 비슷한 시기에 감사절기를 지킵니다.
원래 추수감사절은 아메리카대륙에 처음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이 모진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병마와 싸워 살아남은 것을 기념해서 지내기 시작한 절기입니다. 청교도들은 영국의 왕가와는 양립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청교도는 칼빈주의를 바탕으로 성직자의 권위를 배제하고 철저한 금욕과 청빈을 강조하는 종파입니다. 유명한 올리버 크롬웰이 바로 청교도입니다. 그런데 그는 영국 역사상 유일하게 왕을 죽이고 공화정을 실시한 사람입니다.
많은 이들이 크롬웰에게 왕위에 오를 것을 종용했을 때 그는 “영국의 국왕은 하나님이다. 나는 그분의 종이다” 그리하여 그는 ‘호국경’의 지위에 오릅니다. 그가 죽고 그의 아들대에 와서 왕정복고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청교도와 영국왕과는 양립하지 못합니다.
정치적 박해를 피해서 그리고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영국을 떠난 청교도들은 구대륙에서 정착할 수 없자 마침내 ‘메이 플라워’호를 타고 1620년11월9일 미국 ‘메사추세츠’주의 ‘케이프 카드’에 도착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이전 영국의 메리 여왕시대에 이미 800여명이 신대륙으로 건너간 것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보다 시피 이때는 미국의 동북부는 겨울로 접어듭니다. 이 사람들은 총101명이 건너왔는데 그해 겨울 44명이 질병과 굶주림, 그리고 추위로 죽어 버렸습니다. 게다가 질병으로 계속해서 몇 명씩 죽어 나갑니다.
왜냐면 영양실조로 면역력이 극히 저하된 상태에서 병이 걸리면 이겨 낼 수가 없는 것이죠.
정착 초기에는 인디언들과 분쟁도 있었는데 곧 인디언들과 청교도들은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고 인디언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농사짓는 법과 곡식의 종자를 얻습니다. 특히 옥수수와 밀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이게 수확될 때까지 먹을게 없어서 굶고 있자 인디언들은 짐승을 잡아서 가져다 주기도 해서 겨우 겨우 먹고 살게 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가을이 되어서 추수를 하게 되자 이들이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그래서 이들은 친구 인디언들을 초청한 겁니다. 이때 청교도들은 인디언들을 대접하기 위해 새사냥을 했는데 이게 칠면조랍니다. 인디언들은 사슴을 잡아 왔고요. 그래서 이후부터 추수감사절에는 칠면조를 먹는 풍습이 생기게 된 겁니다.
처음 청교도들이 정착한 코네티컷이나 메사추세추 같은 주에서 추수감사절이 지켜지다가 점점 퍼지면서 마침내 링컨대통령이 처음으로 전국적인 추수감사절을 선포하게 된 것이지요. 그게 11월 넷째주 목요일입니다. 금년에는 11월22일 이랍니다. 이런 전통은 지금도 내려옵니다. 목요일로 정한건 특별한 의미가 없고 그저 목요일에 강연하기가 좋은 그런 날이랍니다. 그래서 목요일이 된 겁니다.
저희들이 미국에 있을 때는 추수감사절에 기숙사 식구들이 모두 모여서 주차장에 자리를 마련하고 칠면조 잔치를 벌이기도 했고 또는 기숙사의 어떤 집에 모여서 칠면조 파티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추수감사절이 끝나면 블랙 프라이데이라고 해서 금요일, 바로 다음날 미국 전국의 모든 상점에서 물건을 엄청나게 싸게 파는 행사를 합니다.
저도 메이시스 백화점에 가서 폴로셔츠를 하나 샀습니다. 엄청 싼 가격으로요. 옷뿐만 아니라 컴퓨터니 티비니 하는 것도 싸게 팝니다. 이때는 사람들이 가게의 문을 열때까지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문이 열리면 자기가 갖고 싶은 물건을 가지려고 막 뛰어가고 난리가 납니다.
미혼남녀들은 추수감사절을 가족과 함께 보내려고 엄청나게 먼 곳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도 많이 보았습니다. 보통 미국은 이렇게 추수감사절부터 시작해서 성탄절을 거쳐서 신년까지 각종 축제와 파티가 이어 집니다. 그러니까 추수감사절은 추수를 감사하면서 가족을 그리워하고 만나는 그런 날이 되는 겁니다.
이에 편승해서 물건도 무지 싸게 팔고 이러다 보니까 추수감사절은 점점 더 기다려지는 날이 된 겁니다 추수감사절의 전통 중에서 물건 싸게파는이런 좋은거는 우리나라 상점들도 좀 도입하면 좋을 것 같은데..............상점들이 이전까지는 적자를 기록하다가 이때 물건을 너무 많이 팔아서 흑자로 전환된다고 해서 블랙 프라이데이, 검은 금요일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우리나라도 벌써 추수감사절의 전통이 백년이 넘어 갑니다. 제가 어릴 때는 추수감사절을 맞이해서 연극도 하고 추수감사절 찬양도 하고 나름대로 뭔가 행사가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사회가 건조해 진건지 교회의 열심이 식어 진건지 아니면 너무 장삿속으로 변했는지 요즘은 추수감사절이라고 해도 그냥 절기 헌금을 내고 집에 갈 때 떡한덩이 정도 받아 가는게 전부입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그 떡한덩이도 안줘가지고 교인들의 원성을 사기도 하고.
저는 오늘 우리 교회가 설립되고 처음으로 추수감사절을 맞이해서 너무 기쁩니다. 더구나 교회하고 전혀 상관없는 젊은 친구들이 와줘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 추수감사절은 처음에는 전혀 종교적인 색채가 없었습니다. 다만 친구 인디언들의 도움에 대한 감사와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잔치를 벌인 겁니다.
우리 교회는 절기 헌금이 없습니다. 반대로 그동안 수고한 교인들을 위해서 교회에서 대접하는 잔치 자리로 마련했습니다. 또 이웃들을 초청해서 함께 잔치를 즐기는 날로 잡았습니다. 앞으로도 성탄절, 부활절에도 역시 이런 잔치 자리를 마련하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분들이 예수믿어야 된다는 부담감없이 와서 그냥 같이 축하해주는 모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옛날 인디언들이 추수감사절에 초대된 것처럼 청교도들만의 잔치가 아니라 지역공동체의 즐거운 잔치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냥 기쁘게 많이 드시고 가시면 그게 바로 추수감사절을 빛나게 하고 축하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농사짓는 분은 안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라는 알곡을 추수합니다. 게다가 올해는 유난히 우리나라의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우리가 먹고 살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이게 바로 알곡을 추수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제까지 우리에게 많은 알곡을 허락하셨는데 이걸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잔치를 계기로 우리교회가 더 즐겁고 멋진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요즘도 수많은 교회들이 세워집니다. 그리고 많은 교회들이 문을 닫습니다. 지금 이 정관에도 많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또 한 개의 그저그런 교회를 더한다면 우리의 개척 노력이 헛된 것이 될 겁니다.
우리는 지난주의 말씀처럼 교회의 사명을 실천하려고 합니다. “가르치고 전파하고 고치고” 우리는 교회의 궁극적인 사명이 단순히 전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건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도는 그러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제대로 살지 않고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고 그냥 습관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나가서는 기독교인 인지 아닌지도 모르게, 성도로서의 삶의 자세가 전혀 아닌 그러한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시민으로서의 자세가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이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있다 저기있다 못하리니 너희의 마음에 있느니라’는 말씀대로 우리 각자가 하나님이 뜻대로 살기위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대강이 뭡니까? 사랑이지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그래서 우리는 교인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 예배당 건물을 가지지 않습니다. 가정교회로 시작한 이유가 그것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들이 수가 너무 많아서 큰 장소가 필요하다면 여러분들이 고심하지 않아도 하나님아버지께서 다 해결해 주실 겁니다. 이미 서울에서 그러한 태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십일조의 삼분의 일은 교회에 내지 않고 개인이 주위에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전합니다. 나머지 삼분의 이를 가지고도 화려한 건물을 가지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교회를 운영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교인들을 세우는 일을 합니다. 세상에서도 바르게 살며 주위에 영향력을 미치는 그런 삶을 사는 성도들로 만들기를 원합니다. 교회가 우선이 아니라 교회에 속한 한사람 한사람의 삶들이 소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일 오후예배도 없습니다. 주일은 우리에게 하나님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안식하는 날입니다. 하나님이 원래 그렇게 하라고 만드신 날이니까요.
우리는 교인들이 행복해 지기를 바랍니다. 성도 한사람 한사람이 먼저 행복해 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저절로 그들이 모여있는 교회도 행복해 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바르고 행복한 우리로 말미암아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 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물질이 우선이 아니라 정신이 우선이고 돈이 우선이 아니라 사람이 우선인 나라. 정의와 공평으로 다스려 지는 나라. 경쟁과 질시보다 사랑과 희생을 우선하는 나라. 필요없거나 경쟁에 도태된 자를 짓밟고 지나가는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 경쟁에 도태되어 넘어져 있는 자는 일으켜 세워서 함께 가는 나라, 그래서 하나님의 법안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기뻐할 수 있는 나라 그런 나라를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정의와 공평이 하수처럼 넘쳐 흐르는 나라가 우리가 지향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세상은 점점 어렵다고 난립니다. 한편에서는 인성이 메말라 간다고 합니다. 골목길에 아이의 웃음소리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미래는 온통 회색빛입니다.
돈 중심, 학벌 중심의 사회를 뛰어넘어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함께하는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 공동체를 건설하기위해 여기에 교회가 선겁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이땅에 천국이 임하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듯이 죽어서야 갈 수 있는 천국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땅에 천국이 임하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실로 이천년전의 예수님의 그 말씀이후로 아직도 이땅에 완전한 천국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천국을 더 확실하게 세우기위해 이 교회를 개척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로 말미암아 우리나라가 세계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지요.
오늘은 추수감사절 정말 즐거운 날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을 가지고 즐겁게 먹고 즐기며 하나님을 감사합시다. 그리고 서로 사랑합시다. 그러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바라기는 우리의 이 잔치가 점점 더 많은 이들과 함께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서 이렇게 행복한 삶들이 주위로 주위로 전염되기를 바랍니다. 마침내 이 땅의 모든 이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행복하다고 할때까지 퍼져나가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혁명가들입니다. 총칼과 음모로 이루어 내는 혁명이 아니라 사랑의 혁명, 사랑과 기도와 믿음으로 이루어 내는 그리스도 혁명말입니다.
저희 목회자들이 모인 그루터기라는 모임이 있습니다. 격주로 모여서 화합도 다지고 히브리어도 공부하고 성경도 연구하는 모임인데요 저는 여기서 이런말을 합니다. “한국의 모든 교회들이 가진 부동산을 팔아서 이웃에게 흩어보라. 그러면 이 사회가 얼마나 살기 좋아질 것인가, 그렇게 하면 구지 전도할 필요도 없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십일조의 삼분의 일을 이웃을 위해 흩어 보라. 그러면 이 세상이 훨씬 더 살기 좋아질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훨씬 더 빨리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추수감사절에 참여하신 교인들과 믿지 않는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내년에는 더 풍성한 알곡들이 추수되는 더 행복한 잔치가 되기를 바랍니다.
- 영암교회 홍종일 목사님 설교 2012년 11월 18일 주일 예배
――――――――――――――――――――――――――――――――――――――――――――――――――――――――――――――――――――――――――
정관영암교회는 가정교회 운동,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운동, 쉼을 소중히 하는 운동 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 기장군 정관면 백운공원 옆 / 함께 하고 싶으신 분은 strongbell@한메일 / stronghjs@네이버 연락주세요
――――――――――――――――――――――――――――――――――――――――――――――――――――――――――――――――――――――――――
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시북의 이야기)
매우 신기했던 추수감사절 이었습니다. 목사님 내외분은 미국식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고, 칠면조 요리도 있었지요. 사모님 필생의 역작이라는 잡채까지, 그야말로 준비된 것은 정성 가득이었습니다. 저는 한 주 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람들에게 같이 파티를 가자고 권했습니다. 절친과 친동생을 비롯해서, 이제 대학생이 되는 풋풋한 아이들까지 초대를 했고, 실제로 3-4명 정도가 함께 오기로 약속되어 있었지요. 어떻게 되었을까요?
반전이 일어납니다. 당일 이른 아침에 제 친한 친구가 못 갈 것 같다고 연락이 왔고, 잠시 뒤에는 아이들 까지도 못 가겠다고 연락이 옵니다. 그 날, 처음으로 저는 정관의 교회까지 가는 길이 그리도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나홀로 10시 40분경에 도착해 보니, 음식은 풍성한데, 의자는 가득한데, 주변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머릿 속이 엉망진창이었지요. "역시 요즘 기독교의 이미지는 최악인걸까, 아 친구들과 동생들아 못올꺼면 좀 미리 이야기 해주지..." 등등,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가는 우울한 기분을 숨기기 어려웠습니다.
그로부터 조금 시간이 흘렀지요. 발걸음 소리가 들립니다. 사모님의 학교 동료분들이 온 것입니다. 그것도 정말 많이요. 나중에 알고봤더니 원래 예상보다도 3-4명 더 온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많은 의자에 모두가 각각 다 앉을 수 있었고, 작지만 즐거운 잔치 분위기가 확 살아나더군요. 그 날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들이 많았지만, 설교도 재밌었고, 파티도 꽤나 유쾌했습니다. 이상하리만큼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이었지요. 그 짧게 지나가 버린 인상적인 하루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잠깐 생각에 잠겼습니다.
[우리에게 뜻하지 않은 일들은 얼마나 많은가요. 한 사람의 마음도 제대로 움직이기 어려운데, 감히 무엇을 바꾸고, 감히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요. 그래도 괜찮은 것이겠지요. 뜻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겠지요, 가끔은 그 우리의 뜻보다 훨씬 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네요.]
그 때의 감정은 살아가는데 있어서의 "겸손함"을 알려주는 잊지 못할 추억입니다. '목표는 여기야, 내가 이것 저것 다 하겠어' 이게 아니라, 여유과 공백을 두고 그리고 나의 판단을 잠시 접어두고 주어진 시간들을 행복하게 지내는 것 - 다시 말해서, 즐거움은 나의 존재를 자랑하는데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발견되어져 나가는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는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결코 쉽게 주저 앉거나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고 해서, 지나치게 슬퍼하지 않아도 됩니다. 괜찮습니다. 어쩌면, 그러한 경험이 있었기에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볼 수 있게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하하.
우리는 틀을 만들어 놓고, 그 시나리오처럼 진행되기를 바랄 때가 참 많습니다. 그 틀 안에서 사람들이 움직여 주기를 바랄 때도 참 많습니다. 지나고 보면, 욕심일 때가 많지만, 자주 그럽니다. 그 틀 밖에서도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음을 명심하고 산다면, 살아가는 하루들이 조금은 더 풍요로워질 것 같습니다. 여러모로 추수감사절은 마음 한가득 풍성했던 시간이었습니다. / 2012. 11.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