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책

삶을 바꾸는 책 읽기 리뷰

시북(허지수) 2013. 1. 18. 23:54

 글쓰기는 과연 다른 사람들에게도 어려운 일일까? 직업을 가지고서도 글쓰기를 하는 사람은 정말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늘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이유는 이러합니다. 일단, 저는 글을 하나 다 쓰고 나면 이상하리만큼 피곤이 막 몰려옵니다. 바둑기사 이창호9단이 바둑 한 판을 두고 나면, 곧바로 쓰러질 것만 같다 라고 표현한 그런 기분이지요. 실제로 쓰고난 뒤 졸음이 몰려와서, 곧바로 수면을 취한 적도 상당합니다. 저는 축구선수 이야기를 약 300편 정도 번역+재가공 형태로 썼었는데, 가만히 살펴보면 하루에 2개 이상 쓴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실제로 상당히 피곤한 일이었던 셈이지요.

 

 물론, 무엇인가를 쓴다는 일은 참 즐거운 일입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깊은 만족감이 확실히 있습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최고의 기쁨 중 하나인 "홀가분함"과 연관이 있다고 적어두면 좋겠네요. 글만 쓰면서 살고 싶어요! 라고 은사님에게 말했다가, "그러다가 굶어 죽으면 곤란하니, 글은 취미로 쓰라"고 현실적인 조언을 받곤 합니다. 이제 벌써 일년도 더 지난 일인데, 여하튼 이때부터 고민은 시작되었지요. 과연 취미로 열심히 글을 쓴다는게 의미가 있을까? 두 가지의 질문 모두, 이 책에 답이 있던 겁니다. 생각해보니, 참 놀랍기도 하네요.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저자 : 정혜윤 / 출판사 : 민음사

 출간 : 2012년 06월 25일 / 가격 : 13,000원 / 페이지 : 258쪽

 

 

 첫째, 정혜윤 선생님이 말합니다. "손가락이 후들거릴 정도로 힘든 글쓰기" 더욱이 친절하게 덧붙이는 설명은 가히 압권입니다. "서평을 쓴다거나 하면,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확률은 99.9999% 입니다." 그럼에도 이것을 해나가는 이유는 서평에는 아마추어만의 힘이 있기 때문이며, 글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전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글이 가지는 힘이라 하면 이렇습니다. 카프카식의 표현으로 쓴다면,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인 것입니다. 루쉰식으로 쓴다면, 책은 우리가 숨쉴 수 있는, 그리하여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공기구멍인 것입니다. 저야 감히 도끼나 공기구멍 같은 상징적이고 고급스러운 표현은 못 쓰니, 글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강력한 도구다 정도로만 써두지요.

 

 그렇습니다. 요즘 저는 "생각의 힘"을 자주 고민합니다. 현대 사회가 정말로 편리해졌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면, 저는 이번 주말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새로운 주소를 치면 그 위치가 정확하게 어딘지 지도에 표시됩니다. 근처의 교통편까지도 친절하게 나옵니다. 불과 5분도 안 되어서, 생각을 멈추고, 인터넷 창을 닫아버립니다. TV를 켜놓고서 멍하게 보고 있거나,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가만히 누워 멍하게 시간을 보냅니다.

 

 결국 글은 이 모든 것을 그만두게 합니다. 글을 읽거나, 또는 글을 쓴다는 것은 일단 기억을 끄집어 내야 하고, 인간을 고민하게 만듭니다. 가령 인재근 선생님의 "정치를 혐오의 대상으로 여기면 안 돼요. 좋은 사람들이 바른 생각을 가지고 정치에 참여해야 정치도 좋게 바뀌어요." 라는 글을 읽기만 해도, 머리가 복잡해 지기 시작합니다. 정치를 혐오하는 주변의 2030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참여만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어떻게 함께 공유할 수 있을 것인가.

 

 흔히들 드라마는 자본의 강력한 영향권 아래에 있다고 말하는데, 이상호 기자가 "이제는 드라마를 처음 기획할 때부터 시놉시스 들고 대기업을 찾아가서 돈을 당겨 와야 해요" 라고 말했을 때, 이것이 자본이 문화를 지배하고, 의식을 지배하는 과정으로 본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런 식으로 답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문제까지도 생각 속으로 자꾸만 파고들어 옵니다. 뭐,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이거겠지요. 그래서,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다. 무슨 말을 해도 좋은 사회는 그토록 건강한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둘째, 직업을 가지고 글을 쓴 사람. 카프가가 그랬다고 하네요. 평생 직장을 다녀서, 시간에 좇기면서, 밤늦게까지 추운 집에서 다리에 이불을 감아가면서까지 글을 쓰고, 편지를 쓰고, 그러다가 결국 아파서 불과 마흔 무렵에 세상을 떠났던 위대한 작가. 아주 당연한 이야기지만, 편안하게 최고의 환경에서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하지만, 착각에 가깝습니다. 사마천이 궁형의 수모를 감수하면서까지 사기를 완성시킨 것만 보아도 분명합니다. 언제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살아가는, 그리고 내보내는 용기" 이며, "끝까지 해내는 것" 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버스 기사님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담백한 이야기지만 강렬한 영감을 건네줍니다. "제일 어려운 것은 배운 대로 살기입니다. 알게 된 걸 지키며 사는 겁니다." 솔직히 하나 고백하자면, 저는 종교적인 이유로 자주 "자신과 이웃을 사랑하라" 라는 피드백을 받는 세계관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거대로 사는 건 지독하게 어렵습니다. 저는 매번 누군가를 도와줄 때마다 어쩐지 아까운 마음이 자주 찾아옵니다. 잘해줘봐야 어차피 기억에서 잊혀지고 물거품이 될텐데, 이런 바보스러운 행동을 계속 해야 하나 라고 회의할 때도 가끔 있습니다.

 

 자신의 가치관대로 살아간다는 건, 역시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살다보면, 그는 그저 행동하는대로 생각하게 됩니다. 밥먹고 노는 것부터 몸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는 이미 노는 사람이 되어서, 머릿 속에는 내일은 또 무엇을 하고 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밥먹고 무엇을 할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밥먹고 하는 행동, 그것이 결국 우리를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

 

 정혜윤 선생님 특유의 멋진 통찰들이 가득한 귀중한 책 이야기를 마치면서, 초반부에 있던 한 농부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돌멩이를 보고 영감을 얻어서 33년간의 노동을 더해서 자신만의 궁전을 만든 사람 페르디낭 슈발. 이것이 암시하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다시 말해 능력에 대해서 자꾸만 생각하게끔 만듭니다. 능력이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대단한 스킬 같은 것이 아니라, 어쩌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을 잊지 않고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가지게 되는 그 무엇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무엇입니까?

 

 책을 읽는다고 해서 삶이 당장에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당연히 그렇겠지요. 하지만, 책을 읽고, 고민을 시작하고, 책을 읽고, 다른 가능성을 찾아보고, 책을 읽고, 마음을 사로잡는 것을 계속해나갈 때, 우리의 인생은 우리 자신만의 독특한 향기가 느껴질테고, 자신만의 독특한 빛깔로 빛나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오리지널 인생만이 가질 수 있는 인생의 매력적인 특권이겠지요. / 2013. 01.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