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허트 로커 (The Hurt Locker, 2008) 리뷰

시북(허지수) 2013. 2. 8. 21:35

 섬뜩한 문장과 함께 시작되는 전쟁 영화 허트 로커. "전투의 격렬함은 마약과 같아서 종종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중독된다" 허트 로커는 전쟁 한복판에서 폭발물을 제거하는 EOD의 이야기 입니다. 폭발물을 제거하는 일은 우리가 상상하던 그 느낌 그대로 입니다. 목숨을 걸고, 신중하게 처리됩니다. 한순간의 방심이나, 실수는 그대로 생명을 앗아갑니다. 영화는 덤덤하고 현실감 있게 이들을 보여주고 있지만, 타들어가는 긴장감이 가득합니다. 무엇보다 이들을 쉽게 "영웅화" 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인상적입니다.

 

 3명이서 팀을 이루어서 폭발물에 맞서고 있지만, 누구 하나 완벽한 사람이 없습니다. 허트 로커는 일관되게 인간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갈등은 그대로 드러나며, 심지어 오판의 가능성까지도 열어두고 있습니다. 전쟁에 관련해서 제가 알고 있는 부분은 극히 일부지만, 몇 가지 선명하게 알고 있는 점은 있습니다. 언제나 상황은 계획했던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전쟁은 그토록 위험합니다. 수 많은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으며,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어떤 도박보다도 금기시 되어야 하는 것이며, 마약과 같이 엄격하게 다루어야 하는것 입니다. "전쟁쳐서 다 쓸어버려!" 같은 말은, 그 무엇보다 위험한 말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 좀 더 영화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솔직히 말하자면, 많은 찬사를 받은 이 영화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웃음) 그래서, 그나마 제가 편안하게 써내려갈 수 있는 인물 중심의 관찰법으로 살펴본다면 좋겠네요. 이 영화에서는 세 명의 주요인물이 등장합니다. 제임스 (제레미 러너), 샌 본 (안소니 마키), 엘드리지 (브라이언 게라그티) 입니다. 팀장은 전문가인 제임스고, 샌 본은 백전노장이고, 엘드리지는 신참입니다. 우선 제임스부터 살펴볼까요.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제임스는 진정한 폭탄 해체 분야의 스페셜리스트 입니다. 수백개의 폭탄을 해체했으며, 전문가의 포스가 남다릅니다. 장치되어있는 폭탄을 보면서, 어디를 해결하면 좋을지,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폭발 반경까지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냉혹한 폭탄 해체 전문가 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영화가 진행될 수록 느낄 수 있습니다. 집에서는 가정적인 남자이며, 아이와 다정하게 놀아줍니다. 부인을 바보 같다고 놀리자, 불같이 화를 내며, 착한 부인을 감싸줍니다. 게다가 위급한 순간에 동료를 세심하게 챙겨주는 모습까지 보여줍니다. 한마디로 인간미가 넘치는, 제임스 팀장이지요. 전장 한복판에서 만난, 타국의 꼬마와 축구를 하고 노는 장면은, 가슴이 뭉클합니다.

 

 제임스가 가진 비극이 있다면, 그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흥미를 잃어간다는 점에 있습니다. 놀라운 통찰이지요. 사실 우리 모두가 나이가 들면 호기심을 잃어갑니다, 어린 시절에는 아무거나 가지고 놀 수 있을 만큼 해맑았다면, 어른이 되고, 나이가 들어가면, 어떤 것을 가지더라도 만족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제임스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한 것이지요. "폭탄 해체"에 재능이 있다는 것도 어쩌면 비극이겠지요.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재능과 인생을 전혀 탓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일을 해나갑니다. 옆에서 보면 마치 죽음도 초월한 것처럼 말이지요.

 

 그럼에도 자꾸만 제임스를 보고 있으면, 그가 누구보다도 사람을 사랑하는 인물이 아니었나 하고 어렴풋이 느껴집니다. 전쟁 한복판에서도, 그는 사람을 결코 함부로 "처치"하라고 명령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을 도구로서 이용하는 행위에 대해서 누구보다 격렬히 저항합니다. 이 모습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강인한 샌 본을 살펴봅시다. 상황 판단이 빠르고, 침착함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내놓는 뛰어난 군인입니다. 팀장이 독단적으로 행동하자, 임무가 끝나고 바로 따지고 들어가는, 올곧은 인물이지요. 정작 놀라운 것은 샌 본이 영화 후반부에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그는 지칠대로 지쳐갔고, 극한의 긴장감 속에서,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그저, 일상에서 소박하게 살아가고 싶음을 이야기 하는 그의 애처로운 모습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거운 감정이 가슴을 눌러옵니다. 이게 맞겠지요. 계속해서 사람이 죽어가는 이런 전쟁을 좋아한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광인(미친X)"일지도 모릅니다. 마약이 인간을 망가뜨리는 것과 정확히 마찬가지로 전쟁도 인간을 망가뜨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움베르트 에코의 말을 덧붙이면 좋겠네요. "옛날에는 근친상간이 금기였듯이, 오늘날에는 전쟁이 금기가 되어야 합니다"

 

 신참 엘드리지가 보고 있는 전쟁의 한복판은, 가혹함 그 자체 입니다.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들고, 멘탈이 붕괴된지 오래입니다. 그에게는 이 곳이 그냥 불지옥, 헬파이어 입니다. 이 경험의 좋은 점도, 참전의 의미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어쩐지 저는 그가 나중에 고국으로 돌아가서 한동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 를 겪을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전쟁이란 값진 고귀한 경험이 아니라, 지독한 상처 자국이 된 셈입니다.

 

 이제 세 명의 인물 이야기를 여기까지 하고, 긴박함 속에서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영화의 마지막 대목으로 가면, 제임스 팀장이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와, 마트에 서 있는 장면이 짧게 나옵니다. 그는 폭발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정확하게 해결방법을 알고 있지만, 정작 시리얼 고르기는 그에게 버거운 일이라는 점이 사뭇 인상적이지요. 그리고, 마침내 다시금 목숨을 걸고, 폭발물을 제거하고자 새로운 전장으로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저는 이 대목을 해석해 보고 싶었습니다. 아래에는 전적으로 저의 해석이니 동의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각자의 느낌이라는 것이, 언제나 가장 중요합니다.

 

 1. "그가 전쟁에 중독되었다?" 음, 일반적으로 느껴지는 이 해석이 어쩐지 제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아내를 설득하면서, 그는 죽은 사람의 숫자를 정확히 말합니다. 그는 폭발물 해체 숫자까지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전쟁이 나를 부르고 있어가 아니라, 59명이 나를 부르고 있어 라고 느껴졌습니다. 혹여라도 그가 중독된 것이 있다면, 사람을 살려보고 싶어하는 것에 중독된 것이 아닐까요. 사람은 운동이나, 독서 처럼 좋은 일에도 중독되기도 하니까요.

 

 2. "재밌는게 이것 뿐이다?" 어쩐지 이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재미를 의미로 바꿔쓴다면 딱 맞을 수 있겠지요. "의미있는게 이것 뿐이다" 라고 느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족과의 행복은 물론 아주 중요한, 그리고 어쩌면 최고의 가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판단했던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공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의 숙명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가 폭탄 해체 하는 것을 재밌어 하는 것 같았나요? 저는 별로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매사에 치열하게 임무를 하는 그는 F로 시작하는 욕설도 거침없이 내뱉으며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끔찍한 폭탄을 제거할 때, 그는 흡사 지옥에 있는 듯한 씁쓸한 표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3. 그러므로 저의 해석은 이것입니다. "그는 전쟁에 의해서 죽어가는 사람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입니다. 그래서 그는 단지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전적으로 저의 해석이므로, 정답이란 없겠지요. 죽어가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이 가치에 그는 또 다시 발걸음을 돌린 게 아닐까요. 보람이라는 가치는 상상이상으로 커다란 동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압도적인 현장감 때문에, 영화를 보고나서도 한참이나 멍하게 누운 채로 골똘히 생각에 잠겼습니다. 나는 목숨을 걸고, 부딪혀 보았던 일이 있었는가 라는 생각에, 안일하게만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계속해서 질문은 이어집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었던 인생이었는가 라는 생각에, 설레설레 좌우로 고개를 흔들어 보기도 합니다. 전쟁 영화지만, 제임스 팀장이 보여주고 있는 "선택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가슴 깊이 남았던 영화, 허트 로커 였습니다. 조금 독특한 리뷰가 되었지만, 부디 이런 시각도 있구나 정도로 봐주신다면 좋겠네요 :) 뭐, 마이너한 의견의 리뷰도 있는게 가끔은 즐거울테니까요. / 2013. 0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