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타운 (The Town, 2010) 리뷰

시북(허지수) 2013. 2. 17. 10:04

 은행 강도단, 범죄 액션, 도시에 전쟁을 선포.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어딘지 총들고 경찰과 한바탕 싸움을 벌이는 이야기로 생각되겠지요. 벤 애플렉 감독의 영화 타운은 갱단을 주인공으로 그리고 있는 스릴 있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키워드가 "슬픔"이라는 아주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영화 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인간의 불행은 선택권이 박탈당했을 때임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도 있고요.

 

 우선 서론은 가볍게 들어가자면, 제작비는 3천7백만 달러 정도 들었고, 도시를 질주해 나가는 추격씬은 정말 잘 찍었습니다. 흥행 성적은 약 1억 5천만 달러. 충분히 성공적인 작품이 되었지요. 평론가들도 상당히 후한 점수를 주었습니다. 아무래도 범죄영화를 뻔하게 만들지 않았고, 거기에 드라마와 영감적인 요소까지 잘 녹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범죄영화에서 무슨 영감을 얻을 수 있냐고요? 글쎄, 한 번 타운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영화는 속도감을 잘 유지해 나갑니다. 시작부터 화끈하게(?) 은행을 털면서 화려한 막을 여니까요. 보스턴의 찰스타운을 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 젊은 갱단은 지금까지 큰 건을 하고도 거의 잡히지 않는 놀라운 성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은행을 털었으니 각자가 가져가는 돈도 엄청납니다. 거의 뭐 1억씩. 재밌는 것은 이들은 큰 돈을 가지고 있어도, 별로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배경 설명이 조금 필요할 것 같습니다. 찰스타운은 미국 보스턴시의 북동부로서, 실제로도 대부분 아일랜드계 주민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 찰스타운에서 불우한 시절을 보냈던 친구들이지요. 리더격인 더그를 살펴봐도 그렇습니다. 그의 아버지 역시 범죄를 저질러서 지금 감옥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고 있고, 어머니는 집나가서 어디서 뭐하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더그는 절친한 동료 코글린과 함께 10대 시절을 보냈고, 함께 어울리면서 거의 자연스럽게 범죄를 가까이하고, 거기에 동참하게 됩니다. 여기까지만으로도 슬픈 일이지요.

 

 둘은 절친하지만 성격은 꽤 많이 다릅니다. 코글린은 전형적인 악역으로 나오는데, 살인도 마다하지 않으며, 동료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버리는 꽤 무서운 인물입니다. 그에 반해서 더그는 나쁜 짓에는 동참하지만, 쓸데없는 폭력은 피하고 싶어하며, 심지어 술 대신에 주스를 마시는 독특한 사람입니다. 더그는 이런 갱단의 삶을 계속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마침내 결단을 합니다. 그의 사무치는 대사를 들어볼까요. "사람들은 인생을 바꾸고 싶어하지. 그러나 말뿐이지. 나는 정말로 인생을 바꾸겠어."

 

 아, 이 대사 정말 좋지 않나요.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봐도 후회가 없습니다 :) 보통은 말만 하고, 현실에 안주하면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음을, 이 갱단 친구는 날카롭게 꼬집고 있습니다. 그럼 더그는 어떻게 인생을 바꿀 수 있나요. 그는 대가를 치르기로 결심합니다. 갱단의 절친 코글린과 절교에 가까운 선언을 하고, 평소 범죄를 함께 하던 갱단의 대부격에게 찾아가서 돈을 던지며 손털겠다고 말합니다. 돈이고, 우정이고, 뭐고, 나는 내 행복한 인생을 찾아서 떠나겠다는 이 이야기. 참 근사합니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쉽지가 않네요.

 

 갱단의 리더가 떠나는 일이, 쉽게 된다는 게 더 이상하겠지요. 나름대로 더그는 인정받는 실력자이기 때문에, 조직에서는 (돈을 만들어 주는) 그를 절대 보낼 수 없었고, 그리하여 더그는 더욱 큰 범죄에 가담하기에 이릅니다. 무려 수십억이 걸려 있는 장소를 터는 것이지요.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는 이 슬픔은, 겪어본 사람들은 알 수 있겠지요. 그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밝혀지는 진실은 더욱 놀랍습니다. 집나간 어머니는 실은 마약중독으로 일찍 생을 떠났고, 아버지는 갱단에 의해서 화학적 거세까지 당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FBI의 추적도 더욱 거세졌습니다. 더그는 마지막 한 줄기 빛과 같던 사랑하는 사람과도 잘 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출생부터, 성장, 그리고 지금의 인연까지 모든 것을 불행으로 연결할 수 밖에 없는, 슬픈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더그가 조금만 옆 동네에서 좀 더 좋은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그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을테지요. 비극은 그런 종류의 일들은 선택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점이고요.

 

 그럼에도 더그는 자신의 인생을 부질없이 탓하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불행의 원인들을 정확하게 직시합니다. 그 시선이 정말 감탄스러운 것이지요. 그는 부모님의 복수를 해내고, 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생존을 선택하며, 사랑했던 연인에게 마지막 선물까지 안겨주면서, 저 먼 곳으로 떠나며, 정말로 살아온 인생을 바꾸게 됩니다.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그는 대가를 치르겠노라고 말하면서요.

 

 영화는 이렇게 빠르게 흘러가지만, 이 타고난 슬픔(!)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답을 찾을 수 없을 때는, 다른 측면에서 생각할 수 밖에 없겠지요. 영화 타운은 스릴러 보다는, "인생을 바꾸고 싶어했던 남자의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리고, 인생을 바꾼다는 일이 생각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전부를 내던져 버릴 수 있는 엄청난 에너지와 용기가 필요한 일임을 깊게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즉 적당히 대충대충 내 인생을 바꿔보겠어 라는 말만 으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음을 사실적으로 보여줍니다. 변화에는 고통이 따르며, 바깥을 향해가는 것이, 실제로는 대단한 선택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본다면 감독이 젊은 날 20대 때, 공동 각본을 했던 굿 윌 헌팅의 마지막 대목과도 겹쳐지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요. 바깥 세상을 향해서 나아가기 위한 여정으로 이 영화를 접근한다면, 타운은 "지금의 살고 있는 삶을 벗어 던지기 위해서" 모든 것을 대가로 바쳐야 했던 한 인생의 모험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범죄가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선택의 힘"이라는 것을 평소 대단히 강조하는 편입니다. 선택하지 못하고, 낭비했던 시간들에 대한, 철저한 후회와 반성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타운을 통해서 작은 교훈을 얻는다면, 부모님의 인생이 엉망처럼 느껴지고, 절친의 인생도 참 부질없이 느껴지고, 희망적인 일들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자신의 인생은 반드시 개척해 나갈 수 있음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힘든 인생에서도, 우리가 절망 대신에 앞으로 전진하는 선택을 하기를, 오늘 하루도 또 다시 힘껏 응원하며 리뷰를 마칩니다. / 2013. 0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