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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Review]/영화

영화 반창꼬 (2012) 리뷰

친절한 시북(허지수) 2013.02.19 14:36

 마음이 아플 때가 있습니다. 사랑했던 무엇인가와 이별할 때, 우리는 마음이 아픕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 앞에서 괴롭게 살아가야만 할 때, 우리는 마음이 아픕니다. 자신이 꿈꿔왔던 순간을 마침내 포기해야 할 때, 우리는 마음이 아픕니다. 영화 반창꼬를 보면서 우리가 조용히 위로를 얻거나, 치유되는 이유는, 그 모든 아픔 속에서도 반창꼬를 붙여가면서 견뎌가다보면, 가끔 좋은 날을 만나리라는 소망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끔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보다 더 행복해 질 수 있을까? 라고 질문할 때가 있습니다. 우선 경제적 곤란으로 함부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일들은 조금 줄어들 것 같습니다. 또한, 하고 싶은 것들을 누릴 수 있으므로, 좀 더 편리하고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의 두 주인공 강일과 미수는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사람은 소방관이고, 또 한사람은 의사입니다. 그럼에도 어쩐지 두 사람은 행복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행복과 치유에 대한 고찰, 반창꼬 이야기로 떠나봅니다.

 

 

 강일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선명합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일찍 떠나보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강일이 소방관 일에 대해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이 잘 그려집니다. 출근도 성실하고, 쉬는 날에도 소방서를 기웃거리기도 합니다. 그가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물론 그렇기도 하겠지만, 더 정확히는 집에 있으면 그 공허한 느낌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랑하는 아내를 병으로 일찍 잃었던 한 분을 알고 있습니다. 그 분은 너무 현실이 견디기 어려워서, 밤마다 집안에서 온라인게임에 접속해 담배를 연일 뿜어대면서, 현실을 잊기를 원했습니다. 명문대를 나온 똑똑한 분이었음에도, 밤의 고독감을 어떻게든 달래고 싶어했습니다. 그만큼 아내를 그리워했기 때문에, 이 현실을 보고 있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강일은 (존경심이 들만큼) 정말 선량한 소방관입니다. 그는 사람을 구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작은 가능성에도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처음에 저는 강일이 불나방 처럼, 현실을 떠나서 죽음을 원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기도 했는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강일의 모습이 더 빛나기 시작합니다. 그는 비겁한 결정으로 가슴에 후회를 남기며 살 바에, 지금 힘들더라도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결정을 하길 원했던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여기서 우리는 딜레마에 부딪힙니다. 최선의 결정을 했더라도, 그 결과가 나쁘다면, 더욱 감당하기 힘들지 않나요? 맞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꿈을 좇는다면서, 좋은 제안을 뿌리치고, 몇 번이고 도전했는데, 결과가 나쁘다면, 그 때 몰려오는 후회감은 견디기가 상당히 어려울만큼 가혹합니다. 강일 역시, 자신의 가치관을 지켜가면서 맡은 일에 헌신적으로 달려들었지만, 정작 자신의 아내 곁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음을 사무치게 후회했을 것 입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우리 모두는 완벽한 결정을 할 수가 없겠지요. 좀 더 나은 결정은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이른바 "신의 한 수"처럼 멋진 결정이 되려면, 노력을 계속 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혹시 결정이 잘못되었더라도, 그래서 결과가 나쁘더라도, 그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최대한 해나간다면, 잘못 앞에서도 또 다른 방향을 찾을 수 있겠지요.

 

 그렇게 본다면 미수는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적극적이며, 명랑하며, 거침없고, 저돌적이고, 상큼발랄 아가씨인 미수는 자신감이 꽉 차있는데다가 앞길이 환하게 펼쳐져 있는 의사입니다. 그녀가 치명적인 실수를 하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그녀는 너무 똑똑하고 상황 판단이 빠르다보니, 원칙 대신에 좀 더 쉬운 선택을 하다가 그만 치명적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흔히 표준대로만 일을 처리하면 적어도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데, 그 표준이라는 것이 보통은 느리고 답답하고 재확인 하는 업무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미수는 자신 나름대로의 결정을 빠르게 내려버립니다.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이 되었지요.

 

 미수가 대단한 이유는, 보기 드물게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끝내 반성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자신의 앞길을 버리며, 좀 더 올바르게 살아보려는 모습은 미묘한 울림을 줍니다. 그녀는 두 번 다시 똑같은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녀는 그 순간부터 두 번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잘못으로 범벅이 된 자신을 죽이고, 새로운 삶을 추구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다른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미수는 조용한 곳으로 강일을 데리고 와서, 자신의 자존심과 모든 것을 내던지고, 조용히 자신의 마음을 고백합니다. 평소의 당돌했던 미수라면 할 수 없던 일을, 지금은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저는 반창꼬를 보고 난 후, 후회 없는 인생을 살겠다는, 이 모든 순간을 만끽하겠다는, 비현실적인 마음들은 미련없이 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혹여 훗날 후회하더라도, 지금 좀 더 나은 선택을 하고, 때로는 어려운 순간들 마저 기꺼이 견뎌야 한다는 현실적인 선택을 할 용기를 조금 얻을 수 있었습니다. 고마운 순간이었지요.

 

 강일과 미수는 마침내 서로의 진심을 받아들이며, 두 번째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강일은 길었던 불면의 밤을 끝내며 미수와 함께 하는 아침을 누릴 수 있게 되었고, 미수는 행복으로 향하는 다른 길을 열어젖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앞길은 여전히 힘들테지만, 사람구하기 좋은 날들이 될 것입니다. / 2013. 02. 리뷰어 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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