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소스 코드 (Source Code, 2011) 리뷰

시북(허지수) 2013. 2. 19. 18:23

 이렇게까지 열심히 놀아본 적이 있었을까 싶었을 만큼, 저는 놀 수 있는 시간을 거의 만들어서까지 놀고 있습니다. 태어나서 가장 바쁜 순간을 보내면서도, 한 달 동안 대략 30편이 넘는 영화를 보았고, 손이 가는대로 아무렇게나 리뷰를 써보기도 합니다. 곧 죽을지도 몰라서,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즐겁게 살고 싶다 라고 말합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서른이 넘어서도 이렇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게 신기합니다 :) 어쨌든 주어진 삶은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상상력으로 표현하자면 이렇습니다. 제 마음 속에는 하고 싶은 것들을 쌓아둔 저만의 창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돈벌고 먹고 살아야 하므로, 그 창고에는 점점 먼지가 쌓여가고, 창고 안을 열어본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깨달았지요. 언젠가 이 창고는 펑하고 폭발해 버릴 것임을. 다시 말해서 언젠가 삶은 죽음 앞에 서게 될 것임을. 저는 더 늦기 전에 창고 문을 열어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미친듯이 해보고 있는 셈입니다.

 

 

 원없이 책보는 것이 상당히 높은 순위에 있었는데, 피곤한 나머지 읽다가 자꾸 자게 됩니다. 하하. 원없이 비디오게임을 해보고도 싶은데,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원없이 축구를 보고 싶은데, 이 역시 긴장감이 팽팽하게 흐르지는 않다보니 보다가 잘 때가 많아집니다. 그리하여, 저는 최근 한 달간 영화를 그야말로 원없이 보고 있는 셈입니다. 수 년동안 차분하게 볼 수 있는 많은 양을, 저는 최근 한 달 동안 거의 몰빵하고 있는 셈입니다. 소스 코드 영화 이야기 언제할꺼냐고요? 네, 지금 시작합니다 (웃음)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감히 말하자면, 이 영화 최근에 보았던 SF영화 중에서도 정말 돋보이는 역작입니다. 아이디어도 새롭고, 영화도 긴장감 흐르게 잘 만들었습니다. 약 90분짜리 영화다보니, 금방 엔딩크레딧까지 달릴 수 있습니다. 마치 우리의 빠른 삶과 같습니다. 비슷한 일상을 반복하다가, 헉, 벌써 인생이 끝났어? 라는 느낌이 겹쳐집니다. 중요한 것들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어느 순간 흘러간 세월 앞에 펑하고 터지고 말 것입니다.

 

 영화 초반부는 조금 어렵게 출발합니다. 정말 난데 없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기차의 장면들이 펼쳐집니다. 등장인물을 파악하거나, 상황을 이해하거나, 대충 영화의 느낌을 알 것 같은 순간에... "펑" 하면서 기차가 터집니다. 그러면서, 이 장면이 여러번 반복됩니다. 아, 그렇군요. 이것은 시간여행에 관한 이야기였군요. 평행세계에 관한 이야기군요. 음, 좋습니다.

 

 이야기가 전개되면, 우리는 이 일들이 큰 의미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죽음 직전에 있는 사람의 뇌를 연결하고, 특정한 자극을 입력해서, 거의 죽어 있는 사람을 통해서, 어떤 "단서"를 찾는 것이 이 영화의 큰 줄기가 됩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표현이 있는데, 미래 세계에서는 죽은 자도 아직 완전히 죽은 게 아니다 라고 바꿔쓸 날이 올지 모르겠습니다. 남아 있는 기억의 코드들을 동원해서, "사건의 진짜 단서"를 찾는다는 매력적인 이야기로 펼쳐지는 것입니다. (또한 기억코드는 운영자의 방향에 따라서, 사건을 바탕으로 충분히 조정될 수 있겠지요)

 

 문득 저는 "듀라한"이라는 신화 속 전설이 떠올랐습니다. 목 윗부분이 없고, 머리는 손에 들고 다니면서 움직인다는 괴기스러운 이야기 말이지요. 사람은 한번도 보지 못한 것을 상상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과거에 누군가 목이 잘렸음에도 걸어가는 장면을 보았던 사람들이 만들어낸 신화일 가능성이 높겠지요. 실제로도 사람은 단두대에 목이 날아가도, 몇 걸음씩 걸어갔다는 사실이 존재합니다. 중국의 고대형벌에서는 팔과 다리를 자르고 인간을 몇 년씩이나 살려두는 끔찍한 형벌도 존재합니다. 제가 공포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사람은 그토록 놀랍다는 것이지요. 생명력과 상상력이라는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주인공 콜터 대위는 실제 범인이 누군지 정확히 알아냈고, 현실 속에서 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데 성공합니다. 죽음의 판정을 받은 사람이, 살아 있는 범죄자를 잡아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그려집니다. 영화 속 표현을 빌려오면, 그야말로 "익사이팅!(흥분)" 입니다.

 

 그런데 이 기본 스토리를 바탕으로, 그 뒷이야기들이 너무나 섬세하게 잘 그려지고 있습니다. 평론가들의 많은 찬사도, 이 정중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8분의 기억재생을 반복하는데, 그렇다면 그 8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며,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라는 다소 철학적인 접근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에게 8분이 주어져 있다면, 그 후의 세계가 없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사과나무를 심어볼까요. 하하.

 

 영화가 조금 섬뜩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우리는 미래를 볼 수 없기 때문이며, 당장 8분 뒤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8분뒤에 카톡이 올지, 갑작스러운 위급전화가 걸려올지, 현실 세계는 정말 복잡하기 때문에 누구라도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 합니다. 슈퍼 컴퓨터를 동원해도, 어디에 비가 얼만큼 내릴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저 대략적인 확률적 통계를 바탕으로, 미래를 그려나갑니다. 그렇기에 보통 좀 더 높은 확률의 선택에 대해서, 우리는 좋은 선택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가령, 로또를 사는 것보다, 그 돈만큼 저축하는게 더 좋은 선택이라고 부르는 것 처럼요)

 

 현실 속의 콜터는 더 이상 살 가능성이 없고, 어렵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임무를 충성스럽게 해내며 범인을 파악해 냅니다. 그 후,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속해 있는 가상 세계를 바꿔보려고 합니다. 당연히 어처구니 없는 일이며, 의미도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그가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게 주어진 이 짧은 순간이 마지막이고 전부라면,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살겠다고 그는 오직 몸으로 보여줍니다. 거침없이 다른 사람의 삶을 응원하고, 거침없이 사랑을 표현하는 이 장면이, 가슴에 오래도록 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그 가상 시간이 끝나며, 그의 모든 순간은 행복과 함께 멈춰버립니다.

 

 제가 편집자는 아니지만, 솔직히 이대로 끝났어도 그 나름대로 좋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웃음) 놀랍게도 영화는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마지막까지 놀래키지요. 달콤씁쓸한 묘한 진실과 함께 영화는 마무리 됩니다. (영화에서는 소스 코드 시스템을 운영하는 주체로 그려지는) 권력이 인간을 도구로 취급할 때, 얼마나 무서운지 상당히 날카롭게 그려냅니다. 결말은 제가 논하기 보다는, 관심 있는 분이라면 직접 확인하는게 좋겠습니다. 재밌는 영화니까, SF팬이라면 꼭 한 번 보세요! 제 경우 논란의 열린 결말에 대해서는, 평소 각자의 해석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니까요.

 

 다만 제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인생에서 "용기의 중요성" 입니다. 콜터 대위가 마지막에 용기를 내어 아버지께 못다한 사랑을 전하는 대목, 그 콜터 대위의 모습을 응원하는 용기 있는 굿윈의 대담한 모습 (그녀는 처벌을 각오하고 독자적으로 행동합니다) 이 선명합니다. 그리고, 이 용기를 통해서 마침내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었다는 대목에 이르게 되면, 묘하게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오늘도 저는 영화를 마치며, 용기 없는 스스로를 탓합니다. 용기 있게 살지 못했음을 후회도 합니다. 용기를 가지고, 마음을 전한다는 것, 그 눈부신 소중함이 잔상처럼 남아 있습니다.

 

 제게 1분이라는 시간이 주어져 마지막 대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지금은 이렇게 말하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하세요. 고마움에 대해서, 미안함에 대해서, 전달하세요. 내 인생은 그대로 끝나겠지만, 그 사람의 인생은 바뀔지도 모르니까요. 바로, 그 눈부신 순간에 관한 멋진 영화 소스 코드 였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따뜻한 한마디가 그 사람의 가슴을 평생 뛰게 만들수도 있다는 시인 마야 안젤루의 말은 진실일 것입니다. / 2013. 0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