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쩨쩨한 로맨스 (Petty Romance, 2010) 리뷰

시북(허지수) 2013. 2. 22. 13:59

 오늘은 리뷰에 앞서서 제 가치관을 조금 돌아봅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을 펴놓고서 한 단어가 주는 의미에서 영감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단어는 "유치하다" 라는 단어입니다. 미숙하다라는 말도 어울리겠고요. 여기서 멀리 떨어진 지점에는 "성숙하다"라는 상당히 영글어 있는 느낌의 단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제 가치관은 어디까지나 피터팬을 사랑하는 "유치함" 근처에 있을 것입니다. 성숙미가 흠칫 느껴지는 깊은 연애이야기도 물론 매력적이지만, 저는 그야말로 유치찬란해 보이는 달콤한 연애 이야기도 참 좋아합니다.

 

 가령 영화의 영어제목으로 이야기를 좀 더 끌고가면, Petty 라는 단어는 하찮은 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찮은형 하면 역시 박명수가 떠오릅니다. 솔직히 저는 유느님 만큼이나 명수형님을 좋아합니다. 유치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하고 자상한 그 모습들이 좋습니다. 영화 쩨쩨한 로맨스도 거의 그런 느낌의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가볍고 유치하고 붕붕 떠다니는 판타지 처럼 보이면서도, 영화에서 보여주는 따뜻한 배려심의 장면들을 참 좋아합니다. 오늘은 즐거운 로맨스 이야기로 떠나봅니다 :)

 

 

 이 영화에 대해서 무척 호의적인 두 번째 이유는 뭐 당연히 이선균과 최강희를 좋아하니까요 (너무 대놓고 이러면 곤란한 것 같긴 한데... 쿨럭-_-;) 사실, 리뷰가 언제나 객관성과 중립성을 유지하면서, 또한 좀 쿨하고 있는 척하면서 쓴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리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끔은 사심도 좀 담겨 있고, 그럴 수도 있는거지요! 아 어서 영화 속에서, 생각할 주제들을 찾아봅시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우선 한없이 사랑스러운 다림부터 살펴봅시다. 그녀는 작가로 살아가는데, 영 밥벌이가 시원찮습니다. 번역도 해보고, 성칼럼도 써보고, 이래저래 노력은 해보는데, 실제로는 돈을 벌지 못해서, 영 우울한 일상입니다. 최근 지인분께 제가 듣기로는, 예술가 중에서도 글 쓰는 일이야말로 양극화도 심하고 밥 굶기 좋은 일이라고 합니다. 다림은 지금 편의점 삼김과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꽤 힘겨운 청춘입니다. 그녀는 이력서를 꺼내들고 만화가 사무실로 찾아갑니다.

 

 만화가 정배는 그럼 잘나가는 사람인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습니다. 정배 역시 공들여서 만화를 그려보고, 여기저기 제출도 해보지만, 물먹는 일이 많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답도 안 나오겠다 싶어서, 급기야 스토리 작가를 구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만나게 된 사람이 배고픈 여작가 다림이지요. 이렇게 하여, 두 사람의 공동 작업이 시작되는데... 솔직히 여기까지의 여정을 돌아보고, 글로 흐름을 파악해 본다면, 이거 정말 우중충한 그림입니다. 이 시도도 안 되면, 다 때려치고, 꿈따위는 포기해야지 라는 극한의 상황으로 봐도 좋겠네요.

 

 그런데 이런 환경과는 정반대로, 영화는 놀랍도록 밝은 분위기를 쭈~욱 밀고 갑니다. 그러면서 서로의 재능에 끌림을 느끼게 되지요. 뭐 선남선녀가 좋아하는건 당연한데, 일단 그 "재능의 끌림"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한 인간이 어떤 특정한 분야를 굉장히 능숙하게 다루고 있으면" 그 매력이 실제로는 거의 치명적일 만큼 매혹적입니다. 아 좀 쉽게 쓰자면, 운전 실력이 있는 사람이 능숙하게 한 손으로 후진주차를 하면, 절로 이 사람 꽤 멋진데 라는 생각이 듭니다 (...)

 

 스포츠 좋아하는 저는 다른 상황 두 개를 더 묘사하면, 강속구 마무리투수 오승환이 돌직구 하나 던지고, 다음 투구를 위해 야구공을 만지작 거리면서 준비할 때, 그 장면이 가끔 한 폭의 예술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또 축구경기에서, 수비수들 여럿이 압박하는 숨막히는 위기에서, 그 순간 속에서 번뜩이는 침착함과 실력으로 드리블 돌파를 해나갈 때, 반 페르시나 메시 같은 선수들이 보여주는 거의 신의 경지에 이른 여유로움이 예술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손흥민이 구석에서 빈 공간으로 찬 슈팅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골대를 맞추면서 쏙 들어갈 때, 그 장면은 희열이 되는 것이고요.

 

 그렇게 보자면, 다림이 재치있게 쓴 시나리오가 다른 사람에게 재밌다고 인정받을 때, 그 순간부터 만화가 정배는 다림이 완전히 소중한 그녀, 이른바 완소녀가 되고, 더 이상 자장면을 고속흡입하는 아가씨가 아닌 것이지요. 또한, 다림의 경우에서 생각해 볼 때, 정배의 매력이란, 자신의 생각(혹은 글)을 구체적인 그림으로 표현해 주기 때문에, 그 자체로 참 즐겁고도 신나는 경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누군가가 더 선명한 태도로 하고 있을 때, 우리는 공감과 함께 속시원함을 느낍니다.

 

 아, 그런데 이 청춘남녀는 갈등도 분명합니다. 작업이야 즐겁다 치더라도, 현실은 계속해서 압박해 들어오기 때문이지요. 다림은 보장되지 않는 일에 무한정 매달릴 수 없기에, 다른 직장에 면접을 보러 가야 하고, 정배는 지금 큰 돈을 구하지 못하면,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해왔던 유품과도 같은 그림을 잃기 직전입니다. 자, 이쯤에서 (저는 슬프게도 이제 20대 시절이 벌써 몇년전에 끝나고 말았지만) 오늘날 젊은 친구들의 연애필수조건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돈" 입니다. 돈 때문에 싸우는 일이 정말 많고, 돈 때문에 위화감 느끼는 일이 정말 많고, 심지어 돈 때문에 연애를 포기해 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슬프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좋은 직장이 조금씩, 그리고 꾸준히 줄어들고 있기에 이제 주말부부라는 이상한 이야기도 흔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지인 한 명은 장거리연애 하느라 주말마다 교통비와 숙박비로 한달 지출의 많은 부분이 깨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보고 있자니 안타까워서, 차라리 그럴꺼면 어서 결혼해서 같이 지내라고 말했는데, 그 분왈, 이쪽 지방으로 내려오면 벌 수 있는 돈이 왕창 줄어드는데 너라면 쉽게 결정할 수 있겠느냐 라고 되받아쳐서, 저도 쉽게 조언을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하하;) 돈버는 문제는 살면서 우선순위가 아주 높기 때문에, 이처럼 같이 일상을 지내는 것도 포기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영화로 돌아와, 이 두 사람은 경제적 피로감 앞에서, 공동 프로젝트가 파국의 위기를 맞이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좋아해서 몇 번 봤는데, 볼 때마다 가슴 시리고, 특히 마음에 남는 장면은, 다림이 말없이 절망감을 표현하는 대목입니다. (정배가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돈 때문에 유명작가와 함께 먼 곳으로 떠났다는 소식에) 다림은 자신이 그동안 함께 열심히 노력해왔던 작업물들을 갈기갈기 찢어서 달리는 버스에서 던져버립니다. 상처받은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참 인상적이었지요.

 

 "그녀는 마음이 너무 아파 자꾸만 눈물이 났고, 결국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라는 식의 다소 상투적인 문학적 표현을, 영화를 통해서는 대사가 없더라도 충분히 가슴 미어지게 전달할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아, 그리고, 헤어질 때 헤어지고, 끝낼 때 끝내더라도, 무례한 방법은 쓰지 마세요. 그러다가 정말 그 사람의 마음이 벅벅 찢어집니다! 정확한 감정표현과 설명을 해줘야 미련도 남지 않고, 좋은 이별이 될 수 있습니다. 언제나 첫인상 만큼 마무리도 중요합니다 :)

 

 자신에게 가장 중요했던 그림 대신에, 마침내 다림과 함께 있는 시간을 선택한 정배의 결정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지요. 일반인에게도 유품이라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데, 하물며 만화가 입장에서 그림 유품이 가지는 의미는 그야말로 목숨 같은 보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배는 고심 끝에 그것을 포기합니다. 이 대목에서 잘 어울릴 말은. 아마도, "(그림보다) 사람이 먼저다"

 

 저 6글자는 별거 아닌듯 해도, 실천하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돈이 먼저인 결정을 하기가 쉽고, 가진 것에 집착하는 결정을 하기가 쉽고, 꿈이라는 좀 더 의미 있어 보이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기도 쉽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라는 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너무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이며, 옹졸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쳐도, 저는 사람이 먼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영화는 중반부터 웃음을 주는 각종 성인개그코드가 들어 있어서 즐겁습니다. 아는 척, 무슨무슨 척, 척척 박사가 실제로는 영 아니라는 것을 재밌게 그려내기도 하고, 성적 판타지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표현되어서 유쾌하기도 합니다. 음, 그저 솔직히 말하자면, 영화 속 정배의 선택이 부러웠습니다. 성공이 어느 정도 보장된 출세 티켓을 스스로 반납하며, 지옥행 현실 티켓을 선택하는 그 용기가 부러웠습니다. 영화는 극적으로 이 두 사람이 성공을 해서 재회하는 전형적인 해피엔딩으로 그려지지만, 만약 그 정배의 결단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왔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는 것도 좋겠지요.

 

 아마 이런 또 다른 해피엔딩으로 그려지지 않겠어요. "난 너 없으면 살 수가 없어, 우리 또 한 번만 더 시도해보자, 그래서 될 때까지 노력하면서 살아보자, 너만 있으면 돼, 그 무엇보다 네가 중요하다고." 라고 그려지겠지요. 그래서 사랑은 위대하고 특별합니다. 안 되면 때려치울 상황에서도, 사랑이 있으면, 한 번 더 시도하는 엄청난 동기부여가 되어줍니다. 한없는 용기를 주는 그 사랑이라는 마법.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큰 힘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쩨쩨하고 별볼일 없는 하찮은 리뷰, 오늘은 꽤 즐거운 글쓰기였네요 :) 이만 마칩니다. 무엇보다 오늘 이 순간을 사랑합시다! / 2013. 02. 솔로만세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