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영화 도가니 (SILENCED, 2011) 리뷰

시북(허지수) 2013. 2. 23. 14:10

 자유, 평등, 정의. 그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누구나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고, 인간은 그 자체로 존엄을 가진 평등한 존재이며, 그러므로 잘못에 대해서 처벌을 받고, 옳은 일에 박수를 받는 것이 정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도가니는 이 세 단어가 얼마나 대한민국에서 삐뚤어져 작동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 입니다. 기득권을 가진 자는 자유롭게 정신나간 행동들을 하고 다니며, 인간을 거지처럼 역겹게 차별하며, 그 모든 잘못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잘 살아간다는 것. 이 이야기를 과감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지금 "정의가 실종된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저는 도가니에서, 그럼에도 희망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작은 돌멩이 하나가 완고한 벽을 깨뜨리지는 못한다. 그러나 깜깜한 어둠 속을 달려가 벽에 부딪치는 ‘작은 소리’를 보내옴으로써 보이지 않는 벽의 존재를 알리기에는 결코 부족하지 않다" 벽을 향해서 부딪칠 줄 아는 용기 있는 사람들에게 한없는 사랑과 존경을 보내며, 이야기 시작합니다.

 

 

 도가니의 내용을, 단지 일부 정신나간 인간들의 끔찍한 행위로만 볼 수 없습니다. 보다 넓은 의미에서 저는 이것을 침묵과 연결해 보고 싶습니다. 누군가 잘못을 저지르고, 그것을 보면서도 침묵하고, 그리고 이런 흐름이 조금씩 퍼져나가서, 마침내 안개처럼 자욱하게 잘못을 뒤덮기 시작할 때,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눈 감고, 귀 닫고, 입 막고 살아가면, 결국 누구에게 좋은 세상이 될까요? 영화 속으로 떠나봅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강인호 교사 (공유 분) 는 이제 막 청각장애인학교에 부임한 젊은 영혼입니다. 시작부터 그는 법에도 걸리지 않는다는(!) 발전기금을 암암리에 요구받습니다. 할인해서 5장이라는 이야기가 시작부터 우리를 불편하게 합니다. 왜 이것이 불편합니까? 오늘날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이처럼 취직을 미끼로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으니까요. 많은 이들이 공무원이나 경쟁시험에 몰려드는 것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돈 없이는 정상적 경로로는 취직이 어렵다고 생각해서가 아닐까요. 좋은 자리는 자신들만의 집단을 형성해서, 그들끼리 나눠먹는 세계가 되어 갈수록, 사회가 지독하게 병들어 갑니다.

 

 왜일까요? 그들이 폐쇄적인 집단을 이루어 서로 눈감아 주기 시작하면, 견제할 수 있는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물을 한 곳에다가 오래도록 담아두는 것과 같습니다. 자정능력을 상실하는 순간, 물은 썩어가기 시작하며, 가장 가슴 아픈 대목은 거기서 살아가고 있는 작은 고기들이 모조리 질식 당하고 맙니다. 영화 도가니의 아이들이 들려주는 처참한 비명소리는, 질식 직전의 절규입니다. 죽을 만큼 괴로워서, 제발 들어달라는 절규입니다.

 

 마침내 강교사가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영화 내내 강교사의 모습은 너무나 멋있어서, 존경심이 들 정도인데, 가장 좋았던 장면은 들고 있던 화분을 엎는 대목입니다. 강교사는 현실 앞에서, 더러운 인간성의 교장을 찾아가서, 감사의 화분을 건네고자 합니다. 잘 부탁드린다는 의미와 동시에 권력관계를 재확인 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잘 부탁드린다는 선물은, 보통 받는 쪽이 갑인 경우가 많습니다. 교장은 강선생에게 하대하지 않겠노라고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그 화분을 받는 순간부터 자신이 상사이고, 당신이 을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지요.

 

 강선생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 거지 같은 현실 앞에서, 인간을 함부로 걷어차는 현실 앞에서, 화분을 던지며 판을 엎기로 작심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순간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앞으로 강선생은 힘든 싸움을 해야 할 것임을. 우리 모두는 강선생을 응원할 것임을 말이지요.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너도 이 안개 속 현실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항복하라"고, 세계가 유혹할 때, 그는 몸으로 단호하게 말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그는 행동으로 말합니다. 그 가장 중요한 것은 "안개 속의 진실" 이며, "인간과 인간과의 소통과 공감" 이며, 잘못된 것에 대해서 "그 길을 좇아가지 않는 것" 입니다.

 

 밝혀지는 진실들은 차마 직시하기 어려우리 만큼, 처참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우리가 분명히 생각해 볼 것은 괴롭힘을 당한 아이들이 하나 같이, 사회적으로 가장 약한 위치에 있는 아이들이라는 점입니다. 부모가 없거나, 장애인 경우를 골라서 이 짐승들은 아이들을 괴롭혔습니다. 약점을 끝없이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괴롭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인간이 어디까지 추악해 질 수 있는지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봐도, 봐도 눈물이 납니다. 강한 자는 정확히 그 사람의 가장 약한 부분을 파고들며 다가옵니다. 세상에 악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면, 그 악은 인간의 약점부터 괴롭히고, 흔들기 시작하겠지요.

 

 강선생도 약점이 있습니다. 지금 가난하고, 딸은 아프고, 어머니도 불행해 졌습니다. 그리고, 기득권은 정확히 이 약점을 유혹합니다. 그것도 너무나 좋은 조건으로 말입니다. 우리가 강선생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이것들을 누릴 수 있음에도, 기꺼이 포기하고, 온몸으로 돌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그는 작가 루쉰의 한마디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기꺼이 아이들의 소가 되리라 " 그는 소가 되어서 아이들이 살 수 있도록 밭을 갈고, 다음 세대가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아빠가 되지 않기 위해서, 움직입니다.

 

 그는 확실히 시대를 거스르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사회는 끝없이 아이들을 괴롭히고, 병주고, 약주고를 반복해 갑니다. 사회가 젊은 영혼들을 키워서 잡아먹는게 아닌가 싶을 만큼, 탐욕스럽게 인간을 괴롭히고, 기회를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소가 되어서 밭을 갈기는 커녕, 자랄 수 있는 밭을 깔아뭉개고 있는건 아닌가 싶습니다. 물가는 계속해서 올라가면서, 임금은 제자리 걸음 입니다. 일을 하면 가난해지고, 일을 안 하면 죽기 직전으로 몰리는 것이 이 시대 많은 젊은 영혼들의 현주소가 되었습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사회의 룰을 만들 수 있는 기득권은 우리를 이러한 세계에서 살게 하였고, 그 기득권을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모두가 뽑았습니다. 엄격히 말하자면, 도가니의 아이들은 침묵하고 있는 우리 모두의 책임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소관이 아니라는 교육청 직원도 이 사태의 공범일 수 있다는 조금 가혹한 저의 해석입니다.

 

 눈부신 연두양의 활약으로, 결국 법은 그들을 처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지막까지도 영화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데, 징역보다는 집행유예라는 점이 더 그렇습니다. 뉴스에서 자주 볼 수 있지요. 누구는 징역살이를 거의 하지 않은채 특별사면으로 풀려나고, 누구는 징역을 받았지만 사회적 공헌을 감안해서 집행유예를 받고... 영화는 그렇게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마지막을 향해서 움직여 나갑니다. 자, 이제 리뷰를 정리해야 겠네요.

 

 작가 공지영은 이렇게 썼습니다. "안다는 것과 깨달음의 차이는 그것이 아픔을 동반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이다. 만일 당신이 어떤 사실을 아는 데 있어서 아픔을 느낀다면 그건 당신이 깨달은 것이다" 우리는 현실이 어떤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안개 속에서 침묵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요. 우리는 이 현실에 대해서 아픔을 느끼고, 슬픔을 느끼고,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현실을 깨닫고, 이 현실에 대해서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고, 작은 소리를 보낼 수 있을 때, 우리 사회는 조금씩 치유되어 가며, 잿빛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는 맑은 영혼을 오늘도 응원합니다. / 2013. 0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