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영화 신세계 (2012) 리뷰

시북(허지수) 2013. 3. 1. 23:47

 개미 이야기로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개미는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웁니다. 같은 냄새를 갖고 있는 이른바 동족을 위해서, 개미들이 다른 냄새의 개미들과 싸워나가는 전투는 치열하고 잔인합니다. 개미는 다른 개미와 전쟁을 할 때는, 끝까지 밀어붙여서 여왕개미를 죽일 때까지 계속됩니다. 개미가 왜 그렇게 전쟁 때, 지독하게 싸워야만 하는가? 그것은 이 길이 유일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자, 동족을 지켜내는 단 하나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개미들에게 타협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적당한 안일함은 모두를 자멸시키고 맙니다. 영화 신세계는 이와 같이 새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남자들이 끝까지 밀어붙이는 잘 만든 느와르 입니다. 자, 과연 누가 킹이 될 것인가?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굉장한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찰청의 강과장(최민식)은 조폭 조직을 쓸어버리고, 평화로운 세계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측면에서는 거의 뭐 조폭만큼 나쁘게 그려지고 있지만, 여하튼 강과장은 지금 크게 판을 키워서, 판을 싹쓸이 하고자 치밀하게 조감도를 그려내는 영리한 경찰 간부입니다. 그의 계획대로 일이 추진된다면, 그는 범죄 조직을 완전히 짓밟는데 성공하며, 신세계를 살아가겠지요. 그에 반해, 범죄 조직의 정청(황정민)은 지금 조직의 최고자리가 눈앞에 있는, 가장 유력한 핵심인물 입니다. 이야기가 길어지니까, 아래에서 계속 소개하자면,

 

 

 정청 역시 냉철하고 똑똑한 조직 간부로서, 내부 권력 투쟁에서 밀리지 않고 살아남은 강자이자, 싸움꾼으로서도 대단한 실력자 입니다. 거대 범죄 조직의 후계자가 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무서운 내공을 가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한편, 가려져 있는 이자성(이정재)은 핵심 인물 정철의 오른팔을 자처하는 최측근인데, 그는 이 조직 세계에 환멸을 느끼고, 제발 떠나는 게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 소박하게 사는게) 소원인 인물이지요. 이들은 서로 다른 신세계를 꿈꿉니다. 마침내 조직의 보스가 사고로 죽으면서, 영화는 정말 숨가쁘게 흐릅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영화 부당거래를 통해서 뛰어난 각본력을 보여주었던 박훈정 감독은, 이번 영화 신세계에서도 복잡한 전개를 이해하기 편하게 그려내면서도, 너무 쉽게 예측을 하지 못하도록, 긴장감을 잘 표현한게 좋았습니다. 134분에 달하는 영화가, 참 빨리도 끝났구나 싶었던 것을 보면, 지루하지 않게 전개했던 것이 신세계의 좋은 점일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사전에 리뷰를 통해서 정보를 얻고 싶은 분이 있다면, 영화를 그냥 직접 보셔도 충분히 좋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셋 중 가장 슬픈 현실에 처해있는 것은 역시 이자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청이야 따르는 수행원들도 많고, 실력자에, 더 이상 막을 사람도 거의 없는, 사실상 조직 챔피언에 가깝습니다. 경찰 강과장이야 공헌을 인정받아 승진도 했고, 자신의 집단에서는 이미 거의 최정점에 올라와 있습니다. 강과장이 거대 범죄 조직을 자신의 입맛대로 움직일 계획을 세우고, 직접 실행하고 지휘할 정도라면, 그는 엄청난 권한을 맛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별로 이것이 행복하고 유쾌한 경험은 아닙니다만.

 

 (원래 경찰인데 스파이로 조직 생활을 하고 있는) 이자성은 그야말로 바둑판의 돌 하나. 적진에 던져진 특공대원으로 그려집니다. 적의 집 한가운데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위치하며,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려먼서도 이자성은 기묘한 이야기를 꺼내듭니다. 범죄 조직은 나를 믿고 신뢰하며 따라주는데, 정작 나를 이곳에다가 심은 강과장을 비롯한 이 경찰들은 정보도 제대로 주지 않고, 이용만 하려는 행태에 분노하며 이자성은 계속해서 지쳐갑니다. 강과장은 잠깐씩 낚싯대를 쥐고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말하자면 이자성은 그 낚싯대 끝에 걸려 있는 미끼일 뿐이지요. 이자성을 이용해서, 대어(조직보스)를 낚아서, 이 녀석들을 쓸어버리겠다!

 

 한낱 미끼에 불과하고, 까라면 까야하고, 시키면 따르기만 하는, 처량한 신세, 그러면서 마음대로 나오지도 못하는 슬픈 현실의 이자성. 그런데 의외로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자성 역시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위협적인 순간에서는 앞장서서 형님격인 정청을 보호하는 굉장한 의리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그는 상황파악이 빠르고, 싸움 실력까지 갖추고 있는, 또 한 명의 숨은 별과 같은 모습이 서서히 드러납니다. 그도 역시, 서열은 한참 낮지만 충분히 보스에 어울릴 남자였던 셈입니다. 그래서 였을까요, 정청은 이자성을 매우 아껴하며 형제처럼 살갑게 대합니다. 잊지 않고 선물까지 챙겨다주는 정청과 그의 브라더 이자성의 우정도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두 사람은 비밀도 공유하며, 일정도 같이 챙겨나갑니다.

 

 영화는 이자성이 결정적인 심경의 변화를 드러내면서, 놀랍게 진행되어 나갑니다. 자신이 스파이 노릇을 잘해내면, 마침내 이 생활을 청산하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경찰 강과장의 대답은 싸늘합니다. "아무것도 변한 건 없어, 넌 관둘 수 없고, 계획은 계속 진행된다." 벗어날 수 없는 이중생활, 조금도 행복하지 못한 자신의 삶, 그리하여 이자성은 자신만의 새로운 신세계를 꿈꾸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복종만 하면서 살아갈 수 없다, 독해져야 한다, 나의 선택을 통해서, 나는 나로서 살아갈 수 있다라고 꿈꾸게 됩니다. 조직이 그렇게나 이용해 먹던, 작은 말 하나가, 용솟음하며 대마가 되어, 판을 지배하는 모습이 그야말로 압권입니다.

 

 재밌게도 강과장은 범죄 조직의 일,이,삼,사인자 까지 차례대로 주무를 수 있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이 직접 발탁해서 심었던 이자성을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당연하겠지요. 자발적 의사가 아닌, 협박을 통해서 일을 시키다 보면, 이것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습니다. 훗날 뒤통수 맞을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입니다. 강과장의 실수라면, 사람의 감정을 섬세하게 몰랐고, 스스로가 믿는 신세계를 완성하기 위해서, 사람을 희생시키는 무리수를 남발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무리수가 결국 그를 위기로 내몬 셈입니다.

 

 자, 과연 사람이 바둑판의 돌들처럼 계산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요? 그런 척은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쉽게 행동 예측이 되지는 않습니다. 바둑 9단이 설명해주는 바둑 잘 두는 법은 이렇습니다. "세 수만 생각하면서 두더라도 실력이 크게 늘 수 있다." 저는 이 말을 거꾸로 분석해보면, 인간은 보통 한 수, 한 수, 당장 눈앞의 것만 생각하는 경향이 아주 심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강과장도 마찬가지였겠지요. 그는 눈앞에 거의 완성된 신세계 그림에 집중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고 맙니다. 어리석다면 어리석지만, 우리 모두가 저지르기 쉬운 교훈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의사소통의 교훈이라면 의외로 심플하지요. 일단 그 사람에게 물어볼 것. 본인의 의사를 확인할 것. 왜 그런지 자신이 섣부르게 판단하기 보다는 귀를 기울여서 들어볼 것. 간단한 것이지만, 우리는 자기가 좀 편하기 위해서, 이렇게 무리수를 두면서,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크게 일이 터지는 것이지요.

 

 정청은 그런 의미에서 훨씬 더 현실적인 사람입니다. 이자성이 살아남는 방법을 정확하게 알려주며, 브라더를 새로운 킹이 될 수 있다고, 눈빛으로 조용히 쓰다듬어 줍니다. 그는 이미 미래를 보고 있던 통찰력 있는 인간이었지요. 같이 영화를 본 친구는 "역시 배신이 없으면 섭섭하지!" 라고 재밌게 표현했습니다. 맞습니다. 조직은 인간을 배신했습니다. 하지만 그 배신당한 인간은, 스스로가 조직이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유쾌한 역설입니까. 한참 개봉중인 영화라, 직접적 표현은 조금 피하면서 둘러쓴 리뷰는, 오늘 이쯤에서 마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믿을 걸 믿어야지.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지요. 이 말은 믿을 놈 하나도 없다 라는 말과 거의 비슷한 용도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적어도 현대사회는 점점 조직과 공동체를 믿지 못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게 아닐까, 개인이 스스로 행복을 찾아나서는 사회가 이미 도래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영화 신세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행복한 순간이란 어디에 있었을까요. 느와르 영화에서 행복을 찾는 다는 것 자체가 좀 무리수 입니다만. 하하. 저도 무리수를 두면서 글을 마치자면, 영화 막바지에 이자성이 장례식 장에서 눈을 돌리면서 다른 세상을 계획했던 그 대목이 떠오릅니다. 새로운 세상과 가능성에 대한 발견. 그것이 실현가능하다는 정확한 현실판단과 확신. 그 순간 이미 그는 신세계를 품에 가진 것이지요.

 

 바둑에서도 죽은 것처럼 보이는 돌이, 절묘하게 살아나면서, 판의 분위기를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을 때, 정말 재밌는 바둑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에서도 우리가 쉽게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굴곡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지금은 비참한 상황처럼 보여도, 기회 속에서 재기하며, 우리가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제대로 걸어나갈 때, 정말로 신세계 앞에 서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 2013.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