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영화 행복을 찾아서 (The Pursuit Of Happyness, 2006) 리뷰

시북(허지수) 2013. 3. 11. 18:03

 역시 영화는 자신의 상황에 따라서, 와닿는 느낌이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행복을 찾아서를 제가 맨처음 봤을 때는, 조금 불편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물론 실화에다가 감동적인 내용이었지만, 서구물질주의 특유의, 풍족하게 가질 수 있을 때 행복이 찾아온다는 메시지에 조금 거부감이 있었나 봅니다. 그로부터 대략 6년 정도가 지나서, 다시 영화를 보면서 그 때와는 전혀 다른 영감이 찾아와, 저를 마음 깊이 울립니다. 오늘 저는 경제적 자유의 소중함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 싶습니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그 "돈"이라는 녀석 말이지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는 돈이라는 종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만큼은 제법 풍족하게 자란 탓도 있겠고, 돈 때문에 일어나는 온갖 다툼을 많이 봐와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돈이 없어도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저는 20대 시절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 시절의 어느 한 지점이, 아직도 기억나는데, 명문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대안학교에서 박봉으로 일하면서 행복하다고 말하던 그 사람의 인터뷰가 제게 큰 영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반전 한 가지. 서른이 넘어가고, 더 시간이 흐르자, 의문이 들기 시작합니다. 대안학교에서 박봉으로 일하는 걸로, 정말로 그 사람은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었을까? 저는 현실에 오염되거나, 혹은 더 차가워졌습니다. 경제적 자유 없이 행복을 논한다는게 위험한 모순일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령 비교를 거부하고, 충분한 내면의 자부심이 있다면, 명품차를 욕망하기 보다는, 소박한 차를 타는 것으로 만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가난해서 차비조차 아끼기 위해서 걸어 다녀야 한다면, 그 때부터는 어떤 이상적인 행복론 조차도, 현실의 무게감을 버티지 못해서, 조금씩 손상되거나 금이 갈 위험도 있지 않을까요. 정리하자면, 저는 가난해도 진짜 행복하다 라는 이야기를 모순으로 생각했고, 행복에는 반드시 자유로운 선택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그 자유로운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독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순수한 시절의 저는 죽었고, 이제 영화 행복을 찾아서를 보면서, 자꾸만 눈물이 나는 아저씨가 되어갑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자신의 처지를 상상력으로 위장하는 장면, 이 영화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눈부신 장면 중 하나입니다. 자신이 팔러 다니는 의료기기를, 타임머신이라고 설정해놓고, 잠시나마 현실을 잊고서 상상의 힘을 동원해서 웃을 수 있는 모습은 충분히 아름답고, 인간의 마지막 가능성과 힘에 대해서도 느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크리스 가드너의 대사는 사뭇 진지합니다. "아들아, 나는 더 이상 동굴에서 상상하면서 잠들고 싶지 않단다." 남루한 현실을 똑바로 쳐다보고, 오직 그것을 바꾸기 위해서, 지독하게 살아가는 한 아버지 크리스. 그는 당연히 알았을 것입니다. 현실을 위장하는 것도, 한두번은 스스로를 속이며 버틸 수 있겠지만, 영원히 그렇게 살 수는 없음을.

 

 크리스는 자신이 이런 몰골의 아버지가 될 거라고 상상도 못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른바 황야의 수재 였거든요. 동네에서 제일 똑똑한 녀석이었고, 역사를 비롯해서, 모든 공부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고, 고등학교에서도 1등을 차지하기도 했던, 비범한 사람이었으니까요. 그 때는, 세상을 다 가진듯한 자신감이 있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 믿었건만, 현실의 크리스는 잠잘 곳을 구하기 위해서 뛰어다녀야 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꿈꾸는 것들은 이렇듯 물거품이 될 때가 많습니다. 현실 대신에 환상 속에서 적당히 안주하기가 훨씬 마음 편하니까요. 영화 초반, 판매용 의료기기를 한가득 집안에 쌓아두던 크리스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굉장히 충격을 받는데, 그가 그만큼 "어떤 판타지"를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저런 식의 판타지에 굉장히 약합니다. 부끄럽지만, 정직하게 쓰자면, 20대 때, 저는 수능시험을 여러번 보았습니다. 성적이 나쁘지 않아서, 조금만 더 하면 정말 꿈꾸던 곳에 닿을 듯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시험결과는 조금만 더 하면 되겠지... 라는 안일함으로는 그야말로 턱도 없습니다. 모든 걸 다 버리고, 오직 하나만 생각하면서, 지독하게 공부할 때, 조금씩 꾸준히 올라가는 것이 현실일 뿐입니다. 이런 판타지의 예는 더 있습니다. 일단 책을 구입하고, 학원을 다니면, 영어실력이 좀 나아지겠지. 일단 헬스장에 등록하고 돈을 내면 건강해지겠지. 저 신제품들을 많이 팔기만 하면 성공하겠지. 애들을 계속 죽어라 공부시키면 성적이 오르겠지 등등. 단언컨대, 현실적으로 바라보고, 제대로 노력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바뀌지 않습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 덕분에(?) 우울감에 물들어서 다시금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어느 날, 크리스는 알게 되었습니다. 이대로는 답이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무보수의 인턴십 과정을 찾아가고, 자신이 가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며, 올인합니다. 버스 안에서는 졸고,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그의 모습은 이 영화가 보여주는 힘있는 명장면 입니다. 버스 안에서는 스마트폰으로 놀고, 밤늦은 시간에는 또 스마트폰으로 노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동기부여가 완전히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그토록 지독하게 성공을 추구했는가요. 처음에 언급한, "경제적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 입니다. 아주 쉽게 표현하자면, 크리스는 아들과 함께 마음껏 미식축구를 보러가고, 문화생활을 누리고,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 주어진 기회를 이를 악물어가며 잡으려고 했습니다.

 

 꼬마 크리스토퍼가 들려주는 배와 구조 이야기는 이 영화를 요약한 셈입니다.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난 바다에서 가라앉기 직전이에요" 라고 외치고 기도하면서, 정작 큰 배가 지나갈 때는, 그것을 타려고 하지 않는 사람. 이 우스꽝스러운 개그는 중요한 통찰 하나를 줍니다. 기회는 반드시 있다. 애써 외면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진지하게 검토하고 뛰어들어라 입니다. 그러면 기회 속으로 뛰어들었다고 칩시다. 어떤 기분일까요?

 

 영화의 표현을 빌려오면, 그 기회 속은, 죽을 만큼 힘든 곳입니다. 결코 쉽지 않습니다. 노력해봐도 좀처럼 앞으로 가지 않는 절망적 기분이 자주 찾아오는 곳. 성공보다는 실패확률이 몇 배는 높은 곳. 그러나, 결국 누군가는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대학도 나오지 않았고, 옷차림도 고급스럽지 못했지만, 끝내 크리스는 해냅니다. 그에게는 자유를 향한 특별한 동기부여가 있었고,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기 위한 저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30대 중반의 저는, 이 영화를 다시보며, 어쩌면 성공과 행복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와 사랑을 위한 영화라고 해석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한 큰 조건은, "경제적으로 바로 서는 것" 입니다.

 

 리뷰를 마치며 단 한가지의 영감이 계속해서 잔상처럼 남아 있습니다. "더 노력하면서 사는 태도" 입니다. 제 식으로 해석하자면, "자유와 사랑을 위해서, 오늘을 위해서, 더 노력하면서 사는 태도" 입니다. 내면이 자유로운 영혼은 강인합니다. 휘둘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농구연습을 하는 소박한 장면에서의 명대사를 되새기며 이제 마치고자 합니다. "넌 안돼 라는 말을 어느 누가 하더라도 듣지 말아라." 삶을 바꾸기 위해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첫째, 사람들의 비난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꿈을 지킬 것. 둘째, 스스로를 비난하는 자신과 싸워서 이겨낼 것. 그렇게 자유를 쟁취해서 전진해 나간다면, 우리는 놀라운 일들도 해나가지 않을까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을 힘껏 응원합니다. / 2013.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