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날에 보기 좋은 영화로는 건축학개론이 있겠지요.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을 생각하면 항상 봄부터 시작됩니다. 봄날의 햇살은 새출발을 할 수 있는 힘과 위로를 주는 듯 합니다. 건축학개론은 새출발과 첫사랑에 관한 묘사 입니다. 아름답고 설레였던 추억, 손잡고 거리를 걸었던 소박하고 벅찬 행복, 나중에 회상하게 되면, 꼭 "추억 보정"이 들어가서 더 좋아보이는 그 시절. 스무살 풋풋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수지와 이제훈을 생각하면서 보겠지요.
아쉽지만 저는 이미 한가인과 동갑인 나이. 어쩐지 한가인과 엄태웅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게 됩니다. 그렇게 볼 때, 30대 중반의 승민의 피곤한 인생이 가장 먼저 들어옵니다. 위에서 까라면 까야하고, 업무가 많아지면, 욕먹기 전에 밤새워서라도 끝마쳐야 합니다. 안정적인 무엇인가를 얻었지만, 순수하고 맑았던 무엇인가를 잃어버렸기도 합니다.
저는 30대 중반에 가까워져 갈수록, 일단 몸부터 변화를 느낍니다. 매번 밤새워서 놀 수 있고, 별일 아닌데도 한없이 웃을 수 있었던, 그야말로 청춘이 꽃피던 그 시절에 비한다면, 이제는 몇 번 밤새면 피로가 누적되서, 아침에 일어나는게 고역이 됩니다. 축구를 아무리 좋아해도 밤늦은 경기는 최대한 피합니다. 가끔은 도대체 사람이 언제 해맑게 웃을 수 있지? 라는 심각한 의문까지 불쑥 듭니다 :) 어쩌면, 아이들이나 TV 아니면 웃을 일도 없네 라는 중년 아주머니들의 말이 조금씩 와닿는 무서운 나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하.
서른 다섯이 된, 승민과 서연의 모습에서도 마찬가지로 행복을 좀처럼 읽을 수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인생임에도, 이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조금 더 얼굴이 두꺼워졌다는 슬픈 사실일 뿐입니다. 마음을 숨기는데 점점 능숙해져서, 다른 사람이 쉽게 자신의 사생활과 마음을 읽어내지 못합니다. 아니, 냉정하게 본다면, 아예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이 없어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해야할 건 끝없이 많은데다가, 먹고 살기가 급하고 힘드니까요.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이제 결혼을 앞둔 30대의 승민이 의외로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을 먼저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직장 좋고, 차 있고, 애인 예쁘고, 해외로 곧 떠나는, 좋은 남자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위너 중 위너이지만. 정작 승민은 하고 싶은 것을 자꾸만 포기해야 합니다. 어머니와의 함께 하는 삶은 포기되어야 했고, 애인에게 맞춰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맞춰주도록 해야 합니다. 트러블은 계속해서 쌓이고, 마음 편하기 어려운, 엄친아 인생이라 하겠네요. 사회적인 성공을 했음에도, 피곤함은 더 증가했지요. 행복의 가능성 측면에서 본다면, 아마 30대의 서연의 인생이 더 행복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습니다. 자신의 결정이 많이 들어간 삶이 더 건강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서연은 행복하지 못했던 결혼 생활을 자신의 의지로 청산했고, 제주도에 새롭게 지을 자신의 집도, 세심하고 꼼꼼하게 선택하려고 노력합니다. 마지막까지도 새집에는 피아노를 놓아야 겠다며, 자신의 의견을 밀어붙이는 모습은, 얼마나 서연이 적극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스스로는 자신의 인생을 특징 없고 개성 없는 매운탕 같은 인생이라 자책하지만, 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든 쟁취하려는 서연의 인생을 보고 있으면, 적어도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남에게 맡기기 보다는, 고민하고 직접 선택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소중함을 느끼게 됩니다.
가령, 서연이 승민을 만나서, 재건축할테니, 알아서 잘해줘, 라고 말했다면? 자신의 추억이 묻어 있는 공간은 사라졌을테고, 피아노를 어디다 둘지 모르는, 어쩌면 피아노 자체가 새집에서는 완전히 없어져 버리는, 건물만 깨끗한 비참한 상황이 되었을테지요. 쉽게 말하자면, 결론은 이렇습니다. 삶에 대해 리셋을 하고 싶더라도,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던 것은 반드시 기억하고, 질문하라. 입니다. 언제라도 기억될 수 있는 소중한 것들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니까요. 따라서 새출발을 한다며, 지나온 모든 삶을 부정해 버리는 방식에 대해서, 저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건축학개론이 참 좋았던 점은, 추억은 그 자체로 얼마나 멋진 것인가, 라고 조용히 되묻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좀 풋풋한 시절의 서연과 승민을 만나봅시다.
20살의 승민은 때묻지 않은, 외모에도 별로 관심 없는, 동네 평범한 대학생 입니다. 35살의 승민과는 다르게, 힘든 순간마다 담배 대신 또래 친구를 찾아갈 수 있는, 참 좋은 시절이기도 합니다. 하하. 우연히 알게 된, 서연에 대해서 "너무 예쁘다며" 짝사랑 가깝게 흠모하는 모습은 너무 귀엽기만 합니다. 한편, 서연은 별로 즐겁지 못한 대학 초년생이네요. 시골 출신이라며 과에서 놀림받고, 얹혀사는 집에서 나오고 싶어하는 등 우울한 일도 많지만, 그래도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고, 또 함께 밥 먹어주는 승민이 있어서 작은 위안이 됩니다. 게다가! 승민의 마음을 눈치챈 이후로는, 좀 더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어합니다. 저마다 간직한 달콤한 첫사랑의 시작이지요.
많은 첫사랑이 그렇듯이, 안타깝게도 너무 서투릅니다. 승민은 지나칠 정도로 용기가 부족하고, 서연은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기 힘들어 합니다. 게다가 작은(?) 혹은 커다란, 오해와 질투를 참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은, 열렬한 사랑의 어두운 그림자를 잘 보여줍니다. 보통 첫사랑은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니만큼, 상당히 마음 한가득 무겁고 중요한 느낌 아니겠어요. 그래서 부풀어 오른 기대만큼이나, 상처 역시도 그만큼 클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사랑의 시절을 부러워 합니다. 별다른 감정도 없이 그냥 만나서, 무감각하게 비슷한 하루를 보내는 것에 익숙해져 가다보면, 누구나 처음 만났을 때의 즐거움과 감정을 그리워하지요. 뭐 뇌과학적으로는, 만나면 머리 속이 하얗게 변하는 뜨거운 묘약의 감정은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이 현실이지만요 (웃음)
모를 때가 좋은 것이 몇 가지 있긴 합니다. 영화는 때때로 사전 정보가 완전히 없는 상태로 보는 것이 더 즐거울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가 친구를 더 사귀기 쉬운 것도, 인간을 계산적이게 만드는 쓸데없는 정보가 대부분 차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 아니 초등학교 때에는 그 아이가 무슨 옷을 입고, 직업이 뭔지, 돈이 얼마나 많고, 이런 게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마음만 맞고, 같이 놀러다녀서 즐거우면, 그 때부터 바로 친구가 됩니다. 10대의 사랑과 20대 초반의 사랑이 상대적으로 맑은 것도, "같이 있어서 그냥 좋다"는 이유로 사랑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머리가 커져갈수록, 바라는 것도 많아지고, 요구사항도 복잡해져서, 사람을 통해서 상처 받는 일이 늘어갈 때가 많습니다. 얇은 지갑이 걱정되기 시작하고, 사랑에 대해서 두려운 감정이 들기도 합니다. "나도 한 번 사랑해 보고 싶어" 라는 풋풋한 감정은 시간이 흘러서, "나도 이제 누군가와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라는 복잡한 감정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이제 마무리를 해야 겠네요. 서론처럼 저는 30대의 승민과 서연의 시선에서 영화를 보게 됩니다. 그렇기에 한없는 응원의 시선으로 리뷰를 마치고 싶습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다시 사랑에 빠질 수 있습니다. 첫사랑과는 다른 모습이 되겠지만, 여전히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와 행복한 시간,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에피쿠로스식으로 말한다면, (불가능에 가까운) 긴 삶과 영원한 사랑을 꿈꾸기 보다는, 이제는, 지금 즐거운 삶과 지금 순간에 충실한 사랑을 꿈꿀 수 있습니다. 만날 때마다 가슴이 터질듯이 뛰지 않더라도, 뭐 괜찮습니다. 만날 때마다 당신이 있어 내 삶이 기쁠 수 있는 그런 충실한 사랑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추억은, 소중하게 간직하되, 매일이 즐거운 새출발이 될 수 있기를 힘껏 응원합니다. / 2013.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