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나 포스터, 혹은 문구 때문에 그 내용이 오해받기 쉬운 영화입니다만, 내겐 너무 아찔한 그녀는 상당히 상쾌하고도, 세련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어쩌면, 소심했던 10대 남학생들의 청춘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또는, 20대의 우울한 인생을 보내는 청춘에 대해서, 여전히 로맨틱한 삶은 가능하다고 응원하는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저돌적인 주인공 매튜의 용기 있는 삶에 감탄하게 되는, 아찔한 영화! 그 속으로 떠나볼까요~
매튜는 평범하지는 않고, 대단히 기특하고 스마트한 학생입니다. 제3세계의 가난한 학생을 후원하고자 성금을 모금하기도 하고, 케네디의 연설문을 인용해서 멋진 발표도 준비할 수 있는, 연애 경험 없는 것 외에는 그야말로 범생이 입니다. 명문대 진학도 확정되었고, 심지어 대통령이 꿈이라는, 패기 넘치는 범생라이프에 이웃집 그녀가 등장합니다. 정말 예쁘게 생긴 그녀, 다니엘양의 등장입니다. 숨막히는 외모를 훔쳐보다가, 매튜는 딱 걸립니다. 이 영화 장르가 로맨틱 코미디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유쾌하고 재밌는 장면이 상당합니다.
이웃집 그녀를 훔쳐보다가 걸렸으니, 너도 된통 당해보라는 다니엘의 당당함 앞에서, 매튜는 밤거리를 누드로 뛰어야 하는 수모를 겪습니다. 하하. 게다가 다니엘양의 과감하고 거침없는 행동들은, 매튜의 인생에 조금씩 변화를 주기 시작합니다. 범생라이프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다니엘은 보여줍니다. 남의 집에 무단으로 들어가질 않나, 일면식도 없는 파티에 아무렇지 않게 참석해서 즐거움을 누리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한 쪽은 선을 긋고 그 울타리 안에서 잘 자란 사람이라면, 한 쪽은 그어놓은 선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활발한 인생이랄까요.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그러나 영화는 중반부터 다소 충격적인 내용으로 전개됩니다. 다니엘이 알고보니 포르노에 출연했던 사람이라니! 매튜의 친구가 알려준 엄청난 진실 앞에서, 매튜는 멘탈이 붕괴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튜는 변함없이 다니엘을 한결같이 사랑한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다니엘이 지금 겪고 있는 우울한 세계에서, 그녀를 탈출시키기 위해서, 방법을 생각해 보는 참으로 대단한 꼬마 천재 입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습니다. 가급적이면 사람이 해서는 안 될 직업 혹은 사회적으로 따가운 시선을 받는 직업을 갖고서, 마냥 행복할 리가 없잖아요.
제법 지난 오래전 일입니다만, 저는 20대 시절 가게에서 일하며 돈을 벌면서, 인근의 술집에서 호객행위로 일하는 어떤 형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제법 있었습니다. 평소 웃음이 별로 없던 그 형은 술집 사람들에게 통칭 "삐끼"로 불렸는데, 손님들이 자신을 거지취급 할 때가 참기 어려웠다고 말하더군요. 저는 다른 일을 생각해 보는게 어떻겠냐고 살짝 조언했는데, 돌아온 답변은 꽤 차가웠습니다. 젊을 때부터 이렇게 돈 버는 것에 익숙해지면, 다른 일은 잘 못하겠더라 라는 형의 대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여하튼 매튜는 다니엘을 좀 더 나은 세계로 데리고 나오고 싶지만, 현실은 굉장히 엄격합니다. 같이 다니는 무서운 남자 캘리가 사업의 명분으로 다니엘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켈리는 상당히 영리하고 교활한 구석까지 있습니다!) 한마디로 풋내기 매튜에게는 역부족인 상대이지요. 그 모든 벽에도 불구하고, 매튜는 코피 터져가면서도 다니엘 곁에 끝까지 등장합니다. 다니엘도 처음에는 뭐 이런 애송이가 있나 싶다가도, 진심어린 표현들에 마음을 빼앗겨서, 마침내 매튜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계획하게 됩니다. 이 모든 과정이 상당히 재치 넘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다니엘 역을 맡은, 주연 여배우 엘리샤 커스버트가 능숙하게 연기를 잘 한 것도 매력포인트 입니다.
한편 영화를 보면서 의외로 "아이디어의 중요성"을 새삼 느껴볼 수도 있습니다. 아이디어는 단지 떠오른 것만으로는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을 실행하고, 현실화 시켜나갈 때, 그 아이디어가 마침내 빛을 보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작은 아이디어로도 많은 것을 얻게 되는 예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가령 얼마전 TV에서 소개된 아이디어로는, 명문대생들의 노트를 그대로 스캔해서 올려서, 이걸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방법도 있더라고요. 예전에 대학생들이 돌려보는 이른바 족보 같은 것도, 자신들끼리 좀 더 쉽게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는 것도 재밌는 방법이 되겠지요. 접근성이나 최적화의 문제로 들어가면, 여전히 좋은 아이디어로 생활의 편리함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는 생중계 사업 아이디어가 등장하기도 하고, 나중에 이게 정말 대박이 나는데 21세기판 성교육 비디오가 등장하는 대목에서는 한바탕 신나게 웃었습니다. 누구나 보면서 아쉽다고 생각했던 대목을, 멋지게 리뉴얼로 재구성하는 그 빛나는 아이디어와 센스가 대단히 멋져 보였습니다. 미국식 세 얼간이들이 만든 명품(!) 교육비디오를 생각할 때마다 자꾸만 웃음이 납니다. 이게 얼마나 날개 돋힌듯 팔렸는지 매튜는 장학금 대신에, 자체적으로 부자가 되어서 비싼 BMW Z4를 몰고서, 명문대 안으로 들어갑니다 :)
저는 역시 실력이 있다는게 중요하구나 라고 느끼게 됩니다. 여대생들이 의외로, 외모 보다는, 야망있거나, 스마트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재밌는 통계도 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야망 있고, 똑똑한 사람이 옆에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행복감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요. 다니엘은 영리한 매튜 덕분에 마침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되는데, 이 깨끗한 마무리가 정말 근사했습니다.
B급 야한 영화를 상상했다면 생각 이상으로 잘 만들었고, 그렇다고 해서 풋풋한 느낌만 있는 것도 전혀 아니고, 한마디로 어떻게 정리한다면 좋을까요? 사랑은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 음, 그것보다는 사랑은 인생을 변화시킨다, 라고 쓴다면 조금 어울릴 것 같습니다. 매튜는 여전히 명문대생으로서 대통령을 꿈꾸는 인생을 살 테지만, 이제 그의 삶은 더욱 용기 있어졌고, 더 많은 일들을 경험해 나갈 자신감이 생겼을 겁니다. 다니엘은 이제 공부도 해보고, 똑똑한 남친과 함께, 자신의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의 삶을 희망적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랑이라면 정말 멋있구나 싶었습니다.
뭐, 원래 로맨틱 영화들이 다소 비현실적인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삶이 바뀌기는 개뿔! 연애 때문에 피로도 증가, 경제적 고통이 가중되었음을 호소하는게 현실에 가깝겠지요. 아무렴 어떻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당신은 어떤 대가를 치를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적어도 매튜처럼 내 한 몸 바쳐서 사랑을 증명하는 모습이 된다면 좋지 않을까요. 해보고 싶었던 그 삶을, 나 대신에 힘껏 열어주는 고마운 사람. 이런 사랑의 모습도 있구나 라고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100분이었습니다. / 2013.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