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 (The Hunger Games, 2012) 리뷰

시북(허지수) 2013. 3. 25. 11:47

 미국에서만 무려 4억달러, 세계적으로 6억8천만 달러의 흥행을 기록한, 판타지 대작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 이야기 입니다. 지인의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개봉초 미국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관람할 정도로 호응이 뜨거웠다고 하는데요. 제니퍼 로렌스 팬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추천에, 늦게나마 헝거게임을 즐겁게 볼 수 있었습니다. 뭐랄까요, 3가지가 겹쳐보이더군요. 이미 평론가분들이 잘 지적한대로, 오디션프로그램, 배틀로얄, 그리고 스포츠세계. 대담한 상상력이 일품인 헝거게임의 세계로 들어가 볼까 합니다.

 

 저야 원작소설을 읽지 않은 상태로 보았고, 영화에서의 배경 설명을 조금 살펴보자면, 사람들은 구역을 나누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1구역, 2구역...12구역까지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1구역이 잘 나가고, 12구역이 낙후되어 있음을 은연 중에 묘사하고 있고요. 각 구역에서 10대 남자와 여자 각각 한 명씩 선출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거의 "아이돌"이 되어서, 해피 헝거 게임에 참여하게 됩니다. 24명의 참가자 중, 오직 1명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모두 사망. 실제로 있다면, 그야말로 매우 끔찍한 이야기 입니다만, 판타지적인 관점에서 무엇을 의미하느냐로 살펴본다면 재밌지 않겠어요.

 

 

 헐리우드의 떠오르는 샛별 제니퍼 로렌스의 연기, 이번에도 좋습니다. 아, 이제 상도 받았으니 떠오르는 별이 아니라, 이미 반짝반짝 빛나는 별인가요. 어서 헝거 게임 후속작도 멋지게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미국 영화임에도, 시작부터 매우 신비한 대사가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희망 없는 세계, 바뀌지 않는 세계에 절망한 여주인공 캣니스는 이렇게 독백합니다. "나는 아기를 가지지 않을꺼야" 자신의 삶이 행복하지 않은데, 아이의 삶은 행복이 가득할 것이라는 것은 환상이지요. 영화 헝거게임은 판타지 세계지만, 어쩐지 그 내용들은 세련되게 현실을 풍자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헝거게임의 멤버로 선택되면 살아남을 가능성은 산술적으로 불과 1/24 아니겠어요. 당연히 그 누구도 참가를 원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꿈은 어서 자라서 20대가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룰을 만든 권력에 대항하자니, 각 개인은 참으로 무력합니다. 이미 승자들은 호화롭게 살고 있고, 12구역의 아이들은 빵 한 조각에 기뻐하는 것이 제법 지독하게 그려집니다. 어느새 또 다가온 "해피"헝거게임의 시간, 그리고 확률의 신은 비극처럼 캣니스의 가족을 덮칩니다. 캣니스의 예쁜 여동생이 이번 대회의 멤버로 선택된 것입니다. 여동생을 떠나보낼 수 없어서, 캣니스는 놀랍게도 자원하며 헝거 게임에 대신 참가합니다. 캣니스의 무심하면서도, 강인한 표정이 섬세합니다.

 

 영화는 진행될수록 이런 말도 안 되는 룰이 있는 까닭을 다소 무서운 각도에서 설명합니다. 사람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 누군가는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위해서, 라는 이야기는 놀랍습니다. 언제나 사람들은 이벤트나 행사에 목말라 있습니다. 이제 봄날을 맞이하고 있는데, 지역마다 이름난 축제에는 주말마다 인파로 북적입니다. 흥미로운 스포츠 앞에서는 삼삼오오 모여서 뜨겁게 일체감을 느끼고 싶어하며, 오디션 프로그램은 불타는 금요일에 이어서, 주말까지도 자리 잡아서, 참여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손짓합니다. 모 가요프로그램도 얼마 전부터 순위를 정하고, SNS 참여를 유도하고 있지요.

 

 환호할만한 이벤트가 없으면, 사람들은 저마다 "생각과 고민"을 하게 될테고, 이 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저마다 모여서 의견을 교류하게 될 것입니다. 이쯤가면, 기득권층은 당황스럽지 않겠어요.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주말에 카페에 모여서 철학 토론을 하는 등의 고전적(?)인 행사를 펼치는데, 이런 나라에서는 기득권이 제멋대로 행동했다간 욕먹고 좇겨나기 십상입니다. 그러다보니 기득권층은 가장 자극적이면서도, 인생역전의 기회를 줄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는데, 이것이 최첨단의 헝거 게임입니다. 가진 자들에게는 입맛에 맞고, 가난한 자들에게는 말 안 들으면 혹은 약하면 죽는다는 것을 계속해서 주입시킬 수 있는 제도. 심하게 말하면, 약육강식의 정글을 정당화 시켜주는 장치로도 볼 수 있습니다.

 

 리더십의 종말이라는 책에서는, 이제 리더 보다는, 팔로어들의 힘이 막강해진 시대가 왔다고 말합니다. 헝거게임에 참여하는 24명의 인물들도, 이 점을 잘 보여줍니다. 잘 보여야 할 대상으로, 리더 몇 명이 아니라, 대중의 사랑을 받아야 함이 강조됩니다. 다수가 사랑하는 사람이 되면, 스폰서가 붙을 것이고, 필요할 때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주 놀랍습니다. 얼굴 못생기고, 매력 없으면, 일단 탈락후보 0순위가 되는 셈입니다.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으면 스타가 될 수 없다 라는 불편한 진실은, 심지어 얼굴만으로도 선거에서 이길 사람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는 심리학 보고서가 있을 만큼, 강력합니다. 호감, 비호감의 감정적 결정은 생각보다 대단히 힘이 센 모양입니다.

 

 스포츠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다름 아닌 "관중"이듯, 헝거게임에서도 계속해서 비중있게 다뤄지는 것이 "관중"입니다. 영화에서는 잠깐 스쳐 지나가는데 전광판에 배당율이 나오고, 승자를 맞추는 일종의 마켓이 보입니다. 막대한 돈이 오고 갈만큼, 베팅시장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일단 판이 커야 하고, 결정적으로 참여하는 관중도 많아야 합니다. 또한 판이 깨지지 않도록, 엄청난 주의집중이 요구되겠지요.

 

 그래서, 영화에서는 헝거게임의 지배자들이 판이 깨지지 않도록, 참가자들을 계속해서 유도하고, 각종 장치를 동원해서 결과물을 만드는데 주력합니다. 쉽게 말해 계속해서 링 안으로 밀어 넣는 것이지요. 상당히 가혹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세계에서 도망칠 수 없다. 이 세계에서 협력할 수 없다. 이 세계에서 이기면 다 가질 수 있다. 이런 가치관을 효과적으로 방송하는 TV쇼 해피헝거게임은,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끝까지 전개되지는 않아, 그나마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캣니스는 굉장히 총명하니까요. 그녀는 이 룰을 잘 알고 있었고, 이 법칙을 깨뜨릴 수 있는 방법들을 계속해서 탐색해 나갑니다. 대회장 밖으로 나가는 탈출시도는 불가능하다고 깨달았고, 그녀는 마지막에 과감한 선택을 통해서, "룰 브레이커"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그녀는 단호하게 보여줍니다. 그녀의 행동을 제가 거칠게 표현하자면, 이렇습니다. 혼자 살라고? 닥쳐! 뭉쳐서 얼마든지 함께 살 수 있어. 바로 이 변화 때문에, 지금 지배층은 난리 났습니다. 혹시라도 사람들이 함께 모이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요. 혹시라도 10구역, 11구역, 12구역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죽음을 각오하고 혁명이라도 일으킨다면, 균열이 발생하고, 피보는거 아니겠어요. 영화는 대통령의 분노와 함께 장엄하게 막을 내립니다. 더 치열한 2부를 상상해 보라는 듯이 말이에요.

 

 리뷰를 마치며 이 한마디를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now or never" 지금이 아니라면 절대 못한다는 이야기 입니다. 선택의 순간에서 캣니스는 영민함을 보여줍니다. 여동생 대신에 자신이 참여했고, 필요하다면 배짱 넘치는 행동을 보여주었고, 마지막에는 시스템 보다 위에 서 있는 인간의 모습을 멋지게 선보입니다. 이 모든 것이, 그 때 하지 않았더라면, 다시는 할 수 없었던 결정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끝이 있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지금 하지 않는다면, 과연 언젠가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는 것들은, 반드시 지금 해야 합니다. 당장에 아주 괴롭더라도, 지금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삶의 변화, 룰의 변화를 일으킬 것입니다. 지금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지금 대담하게 해보는 것. 봄날은 1월 1일만큼이나, 새로운 결단을 하기 좋은 날입니다 :) / 13.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