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축구스타열전

#61 프랑스의 축구전설 - 미셸 플라티니

친절한 시북(허지수) 2020. 5. 20. 11:41

 

 12년 전의 글을 갱신하려니 좀 쑥쓰럽지만은... 축구로 방문해주시는 분이 여전히 많으시고, 동영상 갱신도 또한 무척 중요하기 때문에 좀 더 용기를 내봅니다. 이야기 출발합니다. 장군으로 불리던 프랑스의 대스타 미셸 플라티니 이야기 입니다. 부디 여유를 가지고 편안하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프로필

 

 이름 : Michel François Platini
 생년월일 : 1955년 6월 21일
 신장/체중 : 178cm / 74kg
 포지션 : MF
 국적 : 프랑스
 국가대표 : 72시합 41득점
 수상 : 1983~1985년 3년 연속으로 발롱도르 수상 (유럽최우수선수상)

 

 장군 플라티니의 이야기

 

 우선 선수시절의 이야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왜 그의 별명이 장군이었을까요? 일단 플라티니는 플레이메이커 였습니다. 팀의 핵심이었지요. 넓은 시야와 우아한 테크닉을 갖추고 있었으며, 훌륭한 득점 감각에 예술적인 프리킥 실력까지 겸비하던 선수였습니다. 선수 시절에 큰 상을 내리 3번이나 휩쓰는 등 훌륭한 기록도 많이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플레이를 펼치며 지금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선수가 바로 플라티니 입니다.

 

 플라티니는 중원에서 패스로 지휘하는 고전적인 플레이메이커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패스도 잘했지만, 사이드로도 치고 들어갔으며, 과감하게 중앙을 뚫고 페널티에리어 안까지 파고들어서 득점을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현재로 친다면 섀도우 스트라이커가 가질 수 있는 재능(위치선정,골결정력등)을 놀랄만큼 잘 가지고 있는 무서운 미드필더 였습니다. 아예 경기를 만들어 내는 선수였지요.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프리킥을 대단히 잘 찼는데, 중요한 대회 때 마다 천금같은 프리킥 골을 넣어서 80년대 당시만 해도 프리킥 하면 플라티니를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모두에게 인정받던 프리키커 였습니다.

 

 워낙 카리스마와 영향력이 대단했던 선수가 바로 플라티니였습니다. 괜히 장군이겠어요? 1976년 국가대표 데뷔이후에 프랑스 국가대표팀은 플라티니를 중심으로 굴러갔습니다. 그 정도로 영향력이 뛰어났던 선수였기에, 오히려 그가 은퇴 하고 나서 한동안 프랑스 대표팀에 걸출한 선수가 등장하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자 그럼 커리어를 한 번 따라가볼까요.

 

 1972년 AS낭시에서 17살의 나이로 선수생활을 시작합니다. AS낭시는 그 당시 1부리그와 2부리그를 왔다 갔다 할 정도의 약소 클럽이었습니다. 하지만 플라티니가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낭시팀은 눈에 띄게 좋아졌고, 75-76시즌에는 이 젊은 장군이 20골이나 넣으며 1부리그 7위까지 팀을 이끄는 등 무서운 활약을 펼칩니다. 이 때부터 프랑스 대표에도 선출되면서 더욱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1981년, 20대 중반이 되었고 이제 프랑스 축구계에서는 유명한 플라티니는 리그 우승 9회에 빛나는 명문 AS생테티엔으로 이적하게 됩니다. 이적하자마자 플라티니는 좋은 활약을 펼치며 80-81시즌에서 생테티엔은 10번째 리그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무렵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으니, 바로 플라티니가 이제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1981년 스페인월드컵 예선이 되었습니다. 요한 니스켄스 등이 남아서 활약하고 있던 강호 네덜란드 (74,78년 월드컵 연속으로 준우승이었습니다) 와 플라티니 장군님의 프랑스는 같은 조에 편성되었습니다. 예선부터 박터지게 생겼지요. 끝까지 본선진출팀을 알 수 없었고, 결국 막판에 네덜란드 VS 프랑스의 당대 빅매치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플라티니 장군님 프리킥 골을 작렬시키면서 2-0 으로 네덜란드를 제압. 결국 강호 네덜란드는 본선진출에 실패하고 맙니다. 프랑스는 환호했지요.

 

 이윽코 1982년 월드컵 본선무대, 플라티니를 중심으로 테크니션들이 많았던 프랑스 축구는 속도보다는 정확성과 깔끔함을 무기로 승승장구 합니다. 물론 첫 경기부터 잉글랜드에게 3골을 허용하는 등 조별리그에서는 고전했습니다만, 결국 준결승전까지 진출했습니다. 서독과의 경기. 3-3 까지 가는 격렬한 사투 끝에, 승부차기에서 패하면서 아쉽게 프랑스는 4강 진출에 만족해야만 했습니다. 파올로 로시라는 스타가 등장한 이탈리아가 우승을 차지했지만, 프랑스의 주장인 장군 플라티니의 포스도 굉장했습니다. 명문팀들이 이제 그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1982년, 미셸 플라티니는 세리에A로 무대를 옮기게 됩니다. 바로 명문 유벤투스로의 이적입니다. 당시 유벤투스는 월드컵 우승멤버들을 대거 보유하고 있었으며 뛰어난 선수가 많았던 강팀이었고 호화군단이었습니다. 이러한 실력 있는 쟁쟁한 멤버들 가운데서도 플라티니는 전혀 기죽지 않고, 오히려 팀의 중심선수로 우뚝 서게 됩니다. 1983-84시즌, 1985-86시즌 유벤투스의 세리에 A 리그우승을 이끄는 인물이 바로 플라티니 였습니다.

 

 이 때의 활약은 눈부신데 이제까지 플라티니는 프리킥을 잘 차는 테크니션이자 공격적 미드필더 였다면, 이 맘때 부터는 골을 넣는 감각까지도 월등히 좋아져서 공격수 수준으로 골을 몰아넣기 시작합니다. 첫 3시즌 동안 88시합에 출장해 무려 54골이나 넣었습니다. 유벤투스에서 은퇴할때 까지 세리에 A 에서 147시합 68골을 넣었는데, 이는 단순히 수치로만 본다면 2경기마다 한 번씩은 플라티니의 골이 터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때의 플라티니는 뛰어난 미드필더 이면서 무서운 공격수이기도 했습니다. 3년 연속으로 세리에 A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과연 장군님의 포스가 느껴지는가요?

 

 자, 그럼 이번에는 큰 무대에서 한층 더 빛을 내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바로 1984년 유럽선수권 (유로84) 의 이야기입니다. 프랑스에서 개최했던 유로84는 현지에서도 대표팀에게 뜨거운 관심과 응원을 보냈습니다. 조별리그를 3연승으로 돌파하는 프랑스는 준결승전에서 포르투갈을 만납니다. 연장 대접전 끝에 플라티니의 역전 결승골로 3-2 로 통쾌한 역전승을 거두며 프랑스는 결승전까지 진출합니다. 스페인과의 결승전에서 2-0 으로 승리하는 프랑스. 유럽선수권 우승은 프랑스에게 돌아갔으며 이것은 프랑스 사상 첫 메이저 타이틀이었습니다. 플라티니는 놀랍게도 매 시합 골을 넣으며 9 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올랐습니다. 중원을 압도하는 이 때의 프랑스 축구 스타일을 보면서 샴페인 축구 같다는 찬사도 이어졌습니다. 플라티니는 웃음을 가득 안고서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지요.

 

 이어서 1984-85년 챔피언스리그 이야기도 해야겠습니다. 당시 잘나가던 막강 유벤투스는 결승까지 오르면서 첫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결승상대는 83-84년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이기도 했던 80년대 잉글랜드의 최강자 리버풀이었습니다. 이 경기는 고전 축구팬이라면 어쩌면 한 번 쯤 들어봤을지도 모르는데, 바로 1985년 5월 벨기에 브뤼셀 헤이젤 스타디움이었습니다. 열기는 뜨거웠습니다. 그리고 서포터들끼리 대단한 패싸움이 발생하고 맙니다. 이것이 바로 축구사에 비극으로 남은 헤이젤참사 입니다. 39명 사망, 중경상자만 600명에 이르는 참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잉글랜드팀은 국제대회 5년간 출장금지(리버풀은7년)의 중징계를 받게 되었지요. (이후 맨유가 1999년에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설 때까지, 오랜기간 챔피언스리그에서 잉글랜드 팀들을 잘 볼 수 없게 되었지요.)

 

 이야기로 돌아와서 경기는 페널티 골을 넣은 유벤투스의 1-0 승리로 끝납니다. 유벤투스의 사상 첫 챔피언스리그 우승이었지요. 이 시절의 플라티니는 세계가 인정하는 명선수였으며, 유럽최우수선수상인 발롱도르도 1983,84,85년 3년 연속으로 수상하는 등 빛나는 절정기를 달립니다. 하지만, 플라티니는 경기가 끝나고 이 헤이젤참사 비극의 개요를 알게 된 이후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1987년 4월, 30대 초반인데도 불구하고 은퇴하지요.

 

 은퇴 후, 1989년부터 1992년까지는 프랑스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했습니다. 젊은 칸토나 등을 등용하면서 유로92에서는 전승으로 예선을 돌파하는 등 강력한 우승후보로 프랑스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본선에서 돌풍의 핵이자 우승팀이 되었던 덴마크에게 1-2 로 패하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고 맙니다. 플라티니는 미련 없이 책임을 지고 은퇴 했으며, 이후 더 이상 축구감독을 맡지 않았습니다.

 

 (*UEFA회장 시절의 개혁안 이야기는 제법 자세히 썼었지만, 선수로써의 조명을 비추기 위해서 이번 업데이트 때, 과감히 삭제하겠습니다.)

 

 끝으로, 덧붙이면서 장군님은 파스타를 좋아하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은퇴 후에는 선수 시절에 비해서 살을 좀 찌우시고 말았습니다 (웃음) 그리고 유명한 어록도 많은데, 몇 개 꼽자면,

 "축구에 인종은 없다. 서투른 백인이 흑인을 차별한다."라고 발언하면서 인종차별자 들에 대해서 인간이 덜 되었다며 일격을 날려주셨습니다. 또한 축구는 실수의 스포츠라면서 실수 없이 완벽한 플레이만 있다면 스코어가 0-0 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유명한 발언도 있습니다.

 

 플라티니는 프랑스 축구계의 첫 메이저 타이틀을 이끈 선수이자, 지금의 프랑스 축구가 있게끔 프랑스 축구의 지위를 한층 드높인 선수이기도 합니다. 여기까지 입니다. 긴 미셸 플라티니의 이야기를 마칩니다. 부족한 점도 있는 블로그지만, 쓰다가 욕 좀 먹으면 어떻습니까, 그래도 계속 가겠습니다! 아 참, 유튜브 동영상 드디어 첨부합니다. 아 세월 좋다!

 

 2008. 03. 06. 초안작성.

 2020. 05. 20. 가독성 보완 (내용 대폭 편집) 및 동영상 업데이트 - 축구가 너무 좋은 축구팬 시북

 

댓글
  • 프로필사진 바셋 어! 이미 올리셨단 말이셨군요. 그럼 일단 읽어 보고...여유있게...낭시 요새 잘하는데, 5등안에 들걸요...우승후보 킬러 독일...나사가 빠져야 우승하는 이태리...그래서 은퇴했군요...UEFA 챔스리그 출전권이겠지요...헉! 또 내이름이 나오네,감솨!...잘 보고갑니다. 이상 실시간 댓글이었습니다. 2008.03.06 14:32
  • 프로필사진 친절한 시북(허지수) 하하.. 빠른 조언 감사드립니다 ^^ 즉각 낭시 부분과 챔스리그 출전권으로 정확히 수정. 그리고 독일은 정말 우승후보 킬러인 듯 합니다 (웃음) 2008.03.06 14:37 신고
  • 프로필사진 패신 플라티니는 전형적인 중앙지향적 플레이메이커였습니다. 프리롤적인 성향처럼 사이드로 빠지는일이 드물었죠. 공격적인성향과는 반대로 대단히 수비도 열심히 하는 다소 중미적인 성향의 선수였죠. 그가 골을 많이 넣을수 있는 이유는 단한번의 기회를 골로 연결시킬수있는 능력과 더불어 공격시 타고난 위치선정이 한몫했던거죠.
    마라도나나 지코와 같은 쉐도우적 공미와는 스타일이 많이 달랐죠. 물론 지고있는 상황처럼 위급시에는 전방에 머물러서 적극적인 득점을 노렸지만말입니다. 그래서 적 플라티니의 타고난 득점력을 대단히 보고있죠. 전형적인 미드필더의 룰을 수행하면서 엄청난 골을 넣었으니깐 말이죠.
    2008.03.08 22:55
  • 프로필사진 친절한 시북(허지수) 곰곰히 읽어보고 댓글을 답니다 ^^ 우선 방문과 관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플라티니는 마라도나와 달리 어디에서나 미드필더로 소개되는 선수입니다. 패신님의 말씀에 상당부분 동의합니다. 미드필더임에도 섀도우스트라이커에게 요구되는 자질들을 완벽하게 보여주었던 위치선정의 기재였습니다. 제 글 실력이 부족해서 다소 오해를 산 듯 합니다. 지적을 참고해 내용을 일부 편집했습니다. 그나저나 정말 플라티니는 대단한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2008.03.09 11:28 신고
  • 프로필사진 패신 저야말로 다소 댓글을 딱딱하게 쓴듯하군요;;제가 아는 플라티니를 말씀드릴려고 한것인데말입니다. 제가 좋아하는선수는 플라티니와 마라도나인데 둘의 플레이는 많이 봤었지만 개인적능력만을 놓고 따지면 비슷합니다. 단지 월드컵우승이라는 큰 성과물이 있었던 마라도나이기에 플라티니가 많이 묻힌것 같아 아쉽습니다..(이것은 지단의 월드컵 우승과도 상통하죠.) 하지만, 유로84 전경기를 본 저에게 86월드컵을 보기전까지 플라티니는 그야말로 '신'이었죠.. 아마 전후무후 확실한 미드필더라는 보직으로 플라티니만한 득점력을 갖춘 괴물은 안나올것같군여... 좋은글 감사합니다.^^ 2008.03.09 13:27
  • 프로필사진 친절한 시북(허지수) 하하 패신님 감사드립니다. 한 때 첼시의 램파드 선수도 미드필더로 골을 좀 넣긴 했었지만, 그래도 역시 플라티니의 놀라운 포스는 정말 다시는 보기 힘들 것 같습니다. 문득 플라티니의 조금 이른 은퇴와 월드컵 우승을 못했던 점이 아쉬워지네요. 어쨌든 이렇게 누군가의 마음 속에는 전설로 남아있으니, 앞으로 열심히 그의 제 2의 인생을 지켜보며 응원해야겠지요. 고맙습니다. 2008.03.10 10:55 신고
  • 프로필사진 바셋 음... 내 댓글은 왜이리 수준이 떨어질까....
    이상 시북님 홈피의 바이러스 바셋이었습니다.
    2008.03.09 17:18
  • 프로필사진 친절한 시북(허지수) 쬐금 과장하자면 - 바셋님 보시라고, 바셋님을 위해 올린 글인데요 (웃음) 매번 고맙습니다. 2008.03.10 10:56 신고
  • 프로필사진 Ale 개인적으로 플라티니는 지단보다 개인 기량에서는 위라고 생각합니다.(지단도 뛰어난 선수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요.^^)

    지단이 주변 선수를 활용하는 능력이 발군이였다면 플라티니는 그 것이 여의치않을 때

    홀로 무언가를 보여줄수 있는 선수였으니까요.

    그 어렵다는 세리에 득점왕을 미드필더 출신으로 2번이나 해냈다는 것부터 사기캐죠;

    글고 플라티니 웨파회장의 개혁이 성공으로 끝나기를 바랍니다.^^

    축구계의 르네상스를 불러일으키길 말이죠.^^

    (바셋님 말씀을 빌리자면 '축구계의 노무현'이랄까요?ㅎㅎ)
    2008.12.28 23:56
  • 프로필사진 친절한 시북(허지수) 하하 방대한 댓글에 정말 감탄했습니다 ^^ 저도 개인적인 발언이지만, 펠레 마라도나 플라티니 크루이프 베켄바우어 등은 이미 범접하기 힘든 경지, 그러니까 한 차원 높은 클래스의 선수였다고 생각해요. 다른 표현을 밀리자면, 음... 축구선수로서의 멋진 길을 창조한 혁명가라고 할 수 있겠지요. 현대 축구의 선수가 아무리 훌륭해도 전설의 레전드와 비교하는 것은 힘들 것 같습니다. 저도 외계인 지단 광팬이지만, 플라티니도 감히 함부로 비교할 수 없을만큼의 독특한 포스가 있는 것이니...^^ 아무쪼록 귀중한 댓글 고맙습니다. 2008.12.29 00:51 신고
  • 프로필사진 ,,ㅇㅇ 개인기량이 위라는게 홀로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다는,
    보지도 않았는데 막연하게 득점력 높은면만 말하지말고
    디테일하게 써보세요 슛은어떻고 패스는어떻고등등
    지단은 홀로 무언가를 보여줄 수 없답니까?
    매경기 게임을 지휘하고 득점력이 그리 높은선수가 아닌데도 결정적인 순간에 꼭 공격포인트를 올려서 팀의 승리를 이끄는게 지단인데 평소 득점력이 떨어진다고 개인기량을 구분짓는게 어이가 없습니다
    플라티니가 자기가 득점력이 지단보다 더 뛰어나지만 지단은 다른면으로 믿을수없는 것들을 해낸다고 했는데 많은선수들이 칭찬하는 어려운 볼컨트롤을 쉽게 해낸다거나 이런것들로 압박을 쉽게 떨궈내는등의 플레이 이런것들은 개인기량에 포함이 안되나바요 님한테는? 요즘 좀날린다는 최고의 선수들간의 기량비교도 답이 안나올정도로 차이도없는데 옛 레전드이고 지단이 싫으니까 무조건 기량이 떨어진다고 깍아내리는건 무슨 심보인지 쩝...역대로 따지는 이 레전드들의 기량비교가 그렇게 님은 쉽게 나오나보네요? 득점력하나로?
    아니면 두선수 시대를 살아오면서 지단 보르도시절도 보고 유베시절 거의다보고 플라티니 낭트시절, 유베시절 메이저대회 다보고 그런소리하는건가요? 아마 다봤으면 답이 쉽게 나오진않을텐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2009.09.15 00:44
  • 프로필사진 ,,ㅇㅇ 플라티니가 홀로 무언가를 보여준게 득점력 차이라면 절대 공감 안되는데요
    지단이 득점력이 떨어진다면 득점력 좋은 플레이 메이커들보다 개인 기량이
    떨어진다는 소리인데 말도 안되는 소리죠
    유베시절 리그에서 6골 넣고 세랴 mvp, 최우수 외국인선수 00-01시즌에 수상합니다.
    홀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선수라는 개념은 좀 우스워 보이네요.
    2009.09.15 00:25
  • 프로필사진 친절한 시북(허지수) ㅇㅇ님, 일단 흥분은 좀 가라 앉히시고 ^^ 어디서나 논쟁이란, 늘 비교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플라티니나 지단이나 말 그대로, 전설 중의 전설. 당대 세계 최고의 선수들입니다. 이것은 다시 말하자면, 그 시대를 살았고, 그 플레이를 보았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선수는 누구와도 비교불가한 절대적인 영웅과도 같았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감히 그들의 플레이를 함부로 비교할 수 없고, 조심스럽게 개인의 견해를 밝히는, 그 수준이상에서는 부득이하게 논쟁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Ale님께서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개인적 견해를 밝힌 것이니, 그것이 표준적 견해가 아닐 수 있음을 ㅇㅇ님께서도 잘 아실겁니다. 부디 지단팬으로서 마음 서로 마음 상하는 일 없으면 하고요. 플라티니나 지단이나 당대 최고 기량의 선수들임은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멋모르고 니가낫네 내가낫네 해가며 경솔하게 비교하는 일이 가급적 없었으면... 그런 바람입니다. 2009.09.15 14:12 신고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