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발해의 문화와 제도, 계층 고착화에 대하여.

시북(허지수) 2013. 3. 30. 08:11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다라는 점을 문화적인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이해가 빠를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각 나라마다 문화적인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이 비슷한 옷을 입고 있으면 구별하기가 살짝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식당에서 밥을 먹는 장면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지 않을까요? 한국 사람이라면 수저와 젓가락을 나란히 놓고서 밥을 먹을테고, 일본 사람이라면 젓가락만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열을 논할 필요는 굳이 없고, 각 나라마다 고유의 문화가 있다는 의미 입니다. 노래만 해도, 중국풍, 일본풍, 우리나라 전통민요는 그 곡조와 느낌이 상당히 다릅니다.

 

 그렇게 놓고 본다면, 발해의 특징은 온돌문화 를 들 수 있습니다. 당나라의 역사서 구당서와 신당서에도 발해의 풍속이 고구려와 같음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난방 양식인 온돌을 깔고, 뜨뜻한 아랫목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발해가 한민족 역사라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가령 중국에서는 의자 등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는 문화가 있습니다. 확실히 다르지요.

 

 여담 몇 가지 더 언급하면, 마치 고구려인의 피가 흐르는 듯한, 저의 오랜 절친 고씨는 책상식 컴퓨터 받침대 대신에, 좌식용 컴퓨터 받침대를 사용하면서, 방바닥에 앉아서 컴퓨터를 활용합니다. 저 역시도 과거 비디오게임을 한참 즐겨할 때는 방바닥에 앉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그런데 외국 영화를 보면 다른 동네 사람들은 게임을 해도 꼭 의자에 앉아서 하거나, 침대 측면에 걸터앉아서 할 때가 있더라고요. "서 있지 말고, 일단 앉아봐라" 식의 좌식 문화는 오래도록 이어진 한국의 전통인건지도 모르겠습니다 :)

 

 그 외에도 남자의 패기가 느껴지는 돌사자상, 석등 등도 고구려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합니다. 사회 측면에서는 지배층이 고구려인이고 피지배층이 속말말갈인 이라는 것은 지난 번에 언급했던 것 같습니다. 끝으로 정치적으로는 문왕이 외교문서에서 "고구려왕이라고 자칭"했다는 것을 통해서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였다고 알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렇게만 이해하고 있으면 시험에서 간혹 물먹을 수 있습니다 (...) 왜냐하면,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기 때문입니다.

 

 발해의 중앙 제도는 당나라와 비슷한 3성 6부 체제 를 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3성 밑에 독자적인 좌사정, 우사정, 이렇게 2정이 있어서 독자적인 모습도 갖추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중앙 제도가 당나라와 비슷했다는 점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대목을 정리하면 "중앙제도는 당나라의 영향을 받았지만 독자성은 있었다" 정도가 거의 선택지의 단골 코스라 하겠습니다 (...) 그 외에도 발해에는 10위 중앙군이 있었고요. 발해는 수도격인 상경에 주작대로가 있었다는 것도 당나라 영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작대로는 중국 장안성의 구조를 본뜬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중국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보면 됩니다. 중앙에 궁이 있고, 그 아래 거대하고 큰 길이 쭈~욱 장엄하게 펼쳐져 있는 구조 본 적 있지요? 떠오르지 않는다면, 상상이라도 해봅시다. 쿨럭 -_-;;; 여하튼 이런 중국식 구조의 건물이, 발해 상경에는 있었습니다.

 

 발해에는 주요기관이 가끔 문제로 나오는데, 서적 관리를 맡고 있는 문적원이 있었습니다. 교육 기관인 주자감이 있었고요. 감찰 기관인 중정대가 있었습니다. 가만보면 이 3가지가 국가에서 아주 중요하다는 것도 역으로 알 수 있습니다. 교육, 지방 감시, 기록과 문서 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라서 교육을 통해서 새로운 주역들을 잘 키워나가야 하며, 감시를 통해서 권력의 부정부패를 잘 막아야 하며 (물론 고대에는 반역을 막는 측면이 더 컸겠습니다), 각종 기록을 통해서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결국 국가는 인간이 만든 조직이기 때문에, 인간사에 중요한 것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게 재밌지요.

 

 뭐 이정도만 짚어둔다면, 이제 발해 이야기는 끝내도 될 것 같습니다. -끝, 나머지는 여담- 오늘은 소수가 다수를 지배할 때, 왜 약할 수 밖에 없는가? 라는 영감을 좀 더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위기가 발생하면, 다수는 소수를 위해서 몸바쳐 싸울 수 있는 명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내가 싸워야 하는데? 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면, 소수는 위기 때 결국 무너지고 맙니다.

 

 그렇기에 일본 같은 나라에서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가미카제 같은 국가를 위한 "자살행위"를 예찬하는 것이 대표적이라 하겠지요. 내 목숨 던져가면서, 국가를 위해 싸우면, 국가는 당신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주겠다고 유혹하는 것이지요. 이런 이데올로기는 대단히 강력해서, 많은 비판을 받으면서도, 실제로 "조국을 위해" 자원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후대에도 순수한 정신으로서 칭찬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 희생되는 것은 누구입니까. 전투 지휘관이 자살특공을 할 리는 없을테니까요. 조직에서 언제나 먼저 고통을 짊어지는 것은 밑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슬픈지 모릅니다.

 

 오늘날은 다수를 움직이기 위해서, 유혹적인 방법들을 동원합니다. 이것만 해준다면, 네 앞길을 보장해주겠다는 유혹 앞에서, 무릎 꿇기 시작하면 결국 내가 아닌 "소수의 지배층"을 위해서 봉사하기가 쉽습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면서 강하게 주장하던 사람들 조차도, 자꾸만 유혹을 받다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동해서, 다수의 공공성 대신에 소수의 사익을 위해서 몸바쳐 일하게 되기도 합니다.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유혹이 필요하다는 점을, 오늘날 지배층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내 편을 많이 만들어 놓아야만, 위기에도 침몰하지 않을테니까요. "자, 출동, 내 대신에 훌륭하게 실드 쳐줘!"

 

 물론 어디까지나 이 모든 것 역시도, 조직이나 집단보다 "자유를 중시하는" 제 편향적인 사고일 수 있습니다. 저는 강요하는 행위를 거의 혐오하며, 사람의 한 목숨은 세상 무엇보다 귀중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한 사람의 인생만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적어도 그 한 사람은 살아가는 세계 전체가 바뀐 것과 같다고도 생각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함이 저의 세계관에서 뿌리 깊게 내리고 있기 때문에, 저는 생명을 가볍게 생각하는 행동을 도무지 좋게 볼 수가 없습니다. 특정 집단이, 사람이 죽었는데도 "어쩌라고, 배째" 하고 있는다면, 이보다 더 슬픈 일이 거의 없습니다.

 

 자, 이제 여기까지 길게 생각을 이어온다면, 발해는 결국 말갈인들에게도 기회를 더 줬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조금 피곤한 선택이었겠지만, 그럼에도 양보와 타협을 통해서, 우리 모두 이 나라를 지켜야 하는 명분을 만들었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명분과 함께 모두에게 적절한 혜택과 기회가 주어졌다면, 발해 역시도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조금 걱정인 것은, 정의와 기회균등이 서서히 사라져가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발해처럼 이원화 되는 구조로 고착화 되는건 아닌지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부자와 빈자의 완벽한 분리, 소수는 "캐슬"에 살고, 다수는 "가계대출"을 의지하면서 산다면, 그런 국가로 계속 가면, 종국에는 외부적 위기 앞에서 순식간에 몰락해 갈 수 있다고, 발해 역사는 냉정하게 말해주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발해는 전성기에서 급추락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세계의 1등, 2등을 하는 것에만 눈을 집중하기 보다는, 그와 동시에, 사회 안전망 구축과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에도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어려운 과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만, 대한민국은 더 아름답고 존경받는 선진국이 되지 않을까요. 저는 그런 나라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