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토지제도의 개념이해, 머리가 아파도 들여다보기.

시북(허지수) 2013. 3. 31. 23:30

 솔직히 토지제도에 대한 이해는 쉽지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잠깐 추억을 소개하자면, 제가 십몇년전 그렇게나 좋아하던 신선생님이 유독 토지제도 이야기 할 때만 미워보였습니다. 하하. 그 선생님은 엄청나게 열정을 불사르면서 조세, 역, 공납, 그리고 녹읍 관료전 등등을 이야기 했지만, 제가 눈치를 살피면서 둘러봤을 때, 명확히 이해한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사가 꽤 끔찍하게 보이던 순간 중 하나였네요. 재밌게 써볼 자신은 없지만, 우선 기본적인 개념을 한 번 생각해보는 측면에서, 조금 느리더라도 기초부터 천천히 들여다본다면 좋겠습니다. (역사는 정치외에도, 경제, 사회, 문화 파트도 같이 폭넓게 봐야하는 학문이니까요. 토지제도는 여전히 학자들이 연구중이고, 정확하게 확정내리기는 곤란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교과서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우선 전근대까지 고대 사람들은 왕토사상 이라는 것을 관념적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보자면, "여기는 내 땅이니까 절대 맘대로 할 수 없어" 같이 주장하는 것은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생각들입니다. 고대에는 실제로 내가 관리라서 이 땅의 혜택을 직접 누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관념적으로는 왕의 땅을 내가 하사 받거나, 왕 덕분에 호사를 누린다는 개념이 훨씬 큽니다. (그래서 고대의 토지제도에서는 국유지나 사유지 같은 개념은 거의 없거나, 매우 약합니다.) 아주 쉽게 말하자면, 옛 사람들의 토지개념은 이렇습니다. 10가마를 생산한다고 칩시다. 보통은 1/10 조세가 표준으로 본다면, 세금으로, 1가마를 국가에 내야 하는 공전(公田) 이 있거나, 또는 그 대신에 1가마를 국가 대신에 관리에게 내는 사전(私田) 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공전이 많으면 국가나 왕권의 힘이 세고, 사전이 많으면 관리나 귀족의 힘이 세집니다.

 

 누가 조(세금)를 받아먹을 것인가, 이것을 수조권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금을 걷을 권리는 기본적으로 국가가 가지고 있지만, 고대에는 이 권리를 국가(혹은 왕)이 귀족들에게 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수조권이 엄청난 고급 귀족들은 왕도 부럽지 않을 만큼, 잘 사는 사람들도 있었을 겁니다. 그림과 상상으로 이해해 봅시다. 통일신라를 이끈 일등 공신 김유신의 예를 들어보죠. 그는 국가로부터 식읍 500호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제 그에게는 500호나 되는 사전이 생겼습니다. 막대한 수조권이 생긴 셈입니다. 그 지역에서는 계속 농사지어서 김유신에게 조(세금)를 갖다 바치는겁니다. 이렇듯 고대에는 국가에 충성해서 열심히 일하면, 국가는 이들에게 "수조권"을 주어서, 호사를 누리며 먹고 살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고대 사람들은 이른바 "출세"해서 국가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모자란 것 없이 풍족하고 화려하게 살 수 있었지요.

 

 잠깐 여담 - 저 개인적으로는 이런 특성들로 인해서, 고대의 높은 자리들이 "백성을 생각하며 대민봉사"를 하기보다는, "안락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추구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먹고 사는게 저절로 해결되면 사람은 성인이 되기보다는 탐욕스러운 괴물이 될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요. 농민들이 수탈을 버티지 못하고, 도적이나 노비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자주 볼 수 있는 고대의 장면들입니다. 저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제도들이 인간을 괴물로 만든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일종의 시스템적인 사고로도 볼 수 있고요. 여담은 끝.

 

 고대 여러 토지제도의 핵심은 이겁니다. "국가는 관료들에게 수조권을 준다" 이것이 녹읍, 식읍, 관료전, 전시과, 과전의 공통사항입니다. 즉, 토지는 조선시대 이전까지는 전주전객제라는 형태로 운영되었습니다. 쉽게 말해, 토지의 주인은 국가나 관리이며,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이들에게 조세를 갖다바쳐야 했습니다. 농민들이 힘들었던 것은 당연한 거고, 심지어 유랑하다가 자식이 굶어 죽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꽤 처참합니다.

 

 통일 신라 시대에는 흉년이 계속들어서 세금을 못 내겠다며 대규모 농민 항쟁도 볼 수 있습니다. 각 나라별 상황과 느낌들은 추후 더 살펴볼 수 있을 겁니다. 짧게 정리하면, 국가와 관리가 갑(甲)이고, 농민은 을(乙)입니다. 흉년인데도 갑이 조세 내놓으라고 하자, 열받은 을은 차라리 초적(반란군이 되어 갑에 대항)을 하기도 했습니다. 10대, 20대 기준으로 말하자면, 이런거지요. 최저임금은 거의 안 오르고, 때로는 거의 횡포로 그보다 더 낮은 보수로 일하기 까지 하는데, 황당하게도 물가만 꾸준하게 계속해서 올라간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그런 나라를 사랑하기란 어렵지 않을까요. 몇 년전 커뮤니티 갤러리 같은 데서는 "하하하" 라고 웃는 해맑은 천사 같은 여자 아이가, 연이은 말풍선에 "이 거지 같은 세상" 이라고 부조리하게 써 있던게 아직 기억납니다.

 

 자세한 것은 점점 더 알아갈 수 있으니, 공전과 사전, 수조권의 개념과 함께, 끝으로 몇 가지만 더 생각해 봅시다. 근대 이전에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토지적인 "조세" 외에도, 특산물을 바쳐야 했던 "공납', 군대나 공사에 노동력을 제공해야 했던 ""이 있습니다. 고대 경제의 "피곤한 트라이앵글"정도로 기억하면 되겠습니다. 아후~ 농민들 먹고 살기 힘들다니까요. 흉년오면 죽을 맛이라니까요. 어쩌면 그래서 아주 오래전 사람들이 제사를 중시하고, 풍년을 너무도 간절하게 기원했는지도 모릅니다. 흉년 몇 년 오면, 밑에서부터 다 죽어나갈테니까요.

 

 끝으로 생산력과 노동력의 변화를 생각해 봅시다. 생산력은 고대에 어땠을까요? 별로 높지 않았습니다. 농업기술이 꾸준히 발전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생산력은 점점 증가합니다. 나중에는 땅에서 많은 것을 생산해 낼 수 있게 되겠지요. 어쨌든, 초기에는 별로 생산력이 높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합시다. 반대로 고대 사회일수록 노동력은 아주 중요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이 할 일이 점점 감소하면서, 노동력의 가치는 줄어들고 있고요. 현대에도 마찬가지라서 조금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래서 고대의 경제 초기에는 국가가 토지에서 조세를 거두는 것만으로는 자꾸 뭔가가 부족했습니다. 왜냐하면 생산 자체가 많지가 않았으니까요. 뭔가 농민들이 쌀을 많이 만들어 내고 해줘야지 적당히 국가가 가져올텐데, 쥐꼬리만큼 생산해서야 얻을 수 있는 국가 재정이 별볼일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고대에는 국가가 농민에게 철제 농기구도 주고, 소농사도 짓도록 권하면서, 생산력 향상에 상당히 집중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모두가 가난하고 배고픈 상황이라면, 국가가 저절로 굉장한 부자가 되긴 힘드니까요. 고대에는 하도 생산력이 부족하고, 국가재정이 열악하다보니, 인두세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조금 잔인하게 보이지만, 각 사람마다 세금을 내라는 것입니다.

 

 이해를 위해서 이 느낌을 가볍게 한 번 대충 요약해봅시다. 지금 고대에 살고 있어요. 운 좋게 토지가 있어도, 즉 자영농이라 해도, 기본적으로 관념적 땅주인은 내가 아니므로, 수조권을 갖고 있는 갑(국가나 관리)에게 조세를 납부합니다. 과도한 역, 예컨대 국가공사에 5년씩 동원되고, 공납 그러니까 특산물도 꼬박꼬박 내야 합니다. 식구들이 있다보니, 또 인두세 내야 합니다. 흉년이라도 나면, 멘붕 오는겁니다. 아 그냥 냅다 남쪽으로 튀어? 아니면 말어. 그런데 토지 조차 없는 경우라면?

 

 남의 땅에서 품팔이 하면서 (노동력 제공) 그 대가로 하루하루 간신히 입에 풀칠하고 사는데, 이마저도 괴로워서 노비로 추락하는 경우도 비일비재 했다고 합니다. 가령 고구려 미천왕이, 을불로 신분을 속이면서 괴롭게 살던 시절을 생각해 보면 이렇습니다. 을불은 품팔이 하잖아요. 낮에는 하루종일 땔나무를 낑낑대면서 죽어라 합니다. 밤에는 주인집 옆의 연못 있는데 가서, 개구리 울지 못하도록 밤이 깊어가도록 돌맹이 던지면서 야근합니다. 또 일어나면 품팔이 하고, 겨우 곡식 받아서 먹고... 안타깝고 비참합니다.

 

 공전, 사전, 수조권, 조세, 공납, 역. 뜻만 나열하는 설명을 피하고 싶었는데, 쓸데없이 장황하게 늘려쓴 건 아닌가 걱정도 됩니다. 여하튼, 이 파트는 개념적인 느낌만 이해하면 되므로, 들여다보는 느낌으로 보시고, 다음 문서부터 본격적으로 고대 사람들의 경제와 사회를 생각해 본다면 좀 더 편안해 질겁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은 수영하기 전에, 일종의 준비운동이니까, 너무 심각하게 머리 아파하지 말고, 다음 문서로 출발해 봅시다.

 

 영감의 시간은 뭘로 해볼까요. [아래부터는 개인적 잡문 이므로, 과감히 패스하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

 여전히 세금은 우리에게 중요해서, 직접세 외에도 간접세도 많습니다. 인두세는 주민세와 살짝 비슷한 느낌도 있고요. 역은 남자들 군대와 비슷한 기분을 줍니다. 특산물 바치는 공납은 오늘날 없지만, 간접세는 굉장히 발달되어 있습니다. 가령, 술, 담배, 기름은 세금덩어리 입니다. 지름신 와서 물건 지르면 이렇게 아래에 써 있습니다. 부가가치세 10%. 즉 제대로 소비만 해도, 국가의 재정은 꽤 튼튼해 집니다. 오늘날 두 가지의 큰 문제는 탈세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다수가 피해볼 수 있다는 점이며, 둘째로 토지불평등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을 손꼽을 수 있습니다.

 

 2005년 삼성경제연구소가 발간한 책에 따르면, 2000년대초 우리나라 순저축율은 세계주요국 중 꼴찌였으며, 자산소득과 토지분배의 지니계수는 0.9 정도인데, 한마디로 극소수가 대부분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주택임대료는 당시 세계 3위. 자, 이제 거의 8년 가까이 시간이 지났는데 좀 나아졌을까요? 월세 임대료가 여전히 높아서, 가난한 사람들은 임대료 부담이 적은 전세를 원하는데, 그 전세값도 이제 꾸준히 올라갑니다. 내 집 장만의 꿈도 어렵고, 전세 장만도 어렵고, 월세는 세계 최상위권이고, 이제 국가임대아파트가 답이다 라는 이야기도 현실적으로 들려옵니다. 이도저도 안 되는 일부 가난한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다가오는 1일 혹은 25일을 두려워 하기도 합니다. 낼 곳은 많고, 벌 곳이 적을 때, 그 때부터 삶이 피곤해 진다는 것은 역사가 가르쳐 주는 뼈아픈 진실 중 하나입니다.

 

 급하다고 빌려쓰거나 신용카드 남용, 할부 거래 등을 자제만 해도, 당장 불편해도, 부담은 적게 가지 않나 싶고요. 내가 벌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행복순위가 낮고 경쟁이 극심한 사회가, 암시하는 측면을 주시해보면, 인간은 돈을 아무리 벌어도 하고 싶은 것들에 좀처럼 다가갈 수 없을 때 좌절하는 것이며, 또한 아무리 노력해봐도 이루어지지 않을 때 불행을 느끼는 거 아닐까요. 다시 말해, 팍팍한 삶은 행복과는 멀리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OECD 자살률 1위, 처참한 10대 행복지수를 보면, 가끔 "잔혹 세상"을 살아가는 기분이 듭니다. WHO 발표에 따르면 100개국이 넘는 나라 가운데서도 우리나라 자살률은 치열한 선두권에 서 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이루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 라고 쓴다면 조금 가혹한 표현일까요.

 

 통계에는 잘 잡히지 않지만 실제로 자살률의 선두주자격인 그린란드를 살펴보면 이누이트 족이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보여주는 실업률 50%, 가치관 붕괴, 알콜 등의 중독문화. 이런 것들이 저는 사실상 자살의 주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돈 없고, 희망 없고, 판타지만 의지한다면, 어느날 우울감을 견디지 못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고용이 안정화 되고, 다양한 가치관이 인정받고, 건전한 유희꺼리가 늘어날 때, 사회는 행복해 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이 역시 시스템적인 생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는 "개인이 문제다", "뭐든 하면 된다" 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곤란하게 느껴졌습니다. 고대의 농민들은 과연 하면 뭐든 되었을까요? 구조가 불평등하게 자리잡고 있으면, 사회적 약자부터 휘청대며 죽어나간다는 사실을 함께 생각한다면 좋겠습니다. 자연 재해, 세금 부담, 고리대금이 농민 생활을 망가뜨리는 주요 원인이라면, 그걸 뻔히 알면서도 오늘날까지도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기술과 사회는 계속 발전해도, 어쩌면 사람의 욕망은 여전히 괴물같다는 것을 보여주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