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고려의 지방조직 및 군사조직 고찰

시북(허지수) 2013. 4. 11. 00:07

 이어서 고려의 지방 행정 조직은 5도 양계 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5도와 양계로 이원화 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5도는 서해도, 교주도, 양광도, 전라도, 경상도로 나누었는데, 지금의 지명도 들어가 있네요! 양계는 군사 행정 구역으로서 북계와 동계 가 있었습니다. 쉽게 이해하자면 국가 북쪽 지역을 북계로 조직해서, 거란과 여진을 막고자 했습니다. 천리장성까지 설치하였고요. 국가 동쪽 지역은 마찬가지로 동계로 조직해서, 왜를 막고 동해를 지켜내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고려의 현실이지요. 잦은 침입으로부터 튼튼히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북계, 동계, 즉 양계에다가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리하자면 5도는 행정 구역이고, 양계는 군사적 특징이 강하다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중앙에서는 5도에다가 안찰사를 파견했는데, 확고한 자리가 아니라는게 중요합니다. 짧은 임기 동안 그 지역을 널리 돌아보는 성격에 가깝습니다. 5도 아래에 있는 군,현에는 수령들이 파견되었는데, 중요한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구석구석까지 모두 파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더 하위의 지역단위, 가령 속군, 속현, 향, 부곡, 소 같은 지역은 중앙에서 직접 관리하고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속군, 속현 등은 지방의 실질적 지배세력인 향리가 통제하게 되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향리의 영향력이 서서히 커져갑니다. 군, 현 보다는 속군, 속현이 2~3배 많았다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 입니다. 지방구석까지 통제되는 것은 조선 시대쯤 되어야 가능해 집니다. 시험에서 자주 묻는 포인트니까, 꼭 염두합시다.

 

 여담을 잠깐 하자면, 역사를 생각할 때, 지배층의 논리를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양반과 천민에 대한 것도 그렇습니다. 과연 나의 조상이 양반이고, 높은 귀족이었던게 중요할까요? 조상이 천민인걸 부끄럽게 여겨야 할까요? 우리는 얼마든지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습니다. 너는 어디 출신이고, 어떤 배경을 갖고 있는 지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야 말로 창피한 일 아닐까요? 우리가 물어봐야 할 것은, 너는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실력을 갖추었는지가 중요합니다. 아직도 시덥잖게 "우리가 남이가" 를 말하고 있다면, 과거를 흡혈하면서 살고 있는 셈입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자유로운 사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저마다 아주 특별한" 사람인 것입니다.

 

 지방 이야기로 돌아와서, 5도와 양계 외에도, 3경이라는 특별 행정구역 이 있다는 점도 중요포인트 입니다. 3경은 서경, 개경, 동경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요즘 지명으로는, 서경은 평양, 개경은 개성, 동경은 경주 입니다. 오래 전부터 수도급의 규모가 있던 도시들은 특별히 다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 후기에는 동경 대신 남경(=한양)을 세우게 됩니다. 남경이 풍수 지리가 좋다네요. 그리고 이 남경이 훗날 한반도 최고의 수도로 꽃피는데... 아, 아직 고려시대 많이 남았습니다! 하하.

 

 군사조직은 중앙군으로 2군6위 가 있었습니다. 2군은 국왕친위부대, 6위는 수도경비입니다. 거의 친위대 느낌이 딱 나지 않나요! 아무나 할 수 없는 느낌이 물씬 듭니다. 고려 중앙군은 직업군인 대우를 받았는데, 거의 중류층이었고, 군적에 올라가서 기록으로 관리되었습니다. 이들은 (수조권 개념의) 군인전을 받았는데, 국가에서 이처럼 보상도 어느 정도 해주었습니다. 지방에도 군사조직이 있었겠지요. 특별한 지역 양계에는 진을 구축하는 의미의 주진군(정예)이 튼튼히 지키고 있었고, 5도에는 주현군이 있었습니다.

 

 고려행정조직만 무려 문서 2개. 후덜덜 ㅜ.ㅜ... 끝으로 관리 등용 제도를 살펴봅시다. 크게 두 가지 제도가 있는데, 과거제와 음서제 가 있습니다. 우선 과거제도를 볼까요. 3가지 시험이 있습니다. 논술하고 정책을 이야기 하는 제술과 가 있었고, 유교 경전을 외우고 이해하는 명경과 가 있었고요.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분야의 (법률이나 천문 등등) 관료를 뽑는 잡과 가 있었습니다. 과거의 응시자격은 양인 이상이라면 모두가 가능하다지만, 실질적으로는 좀 나뉘어져 있던 편입니다. 폼나는 제술과와 명경과는 주로 귀족들이 응시했고요, 전문직인 잡과는 백정들이 응시했습니다. (아! 절대 주의사항! 고려시대의 백정은 일반 백성입니다! 조선과는 다릅니다!)

 

 이걸 조금 떼어놓고 이해하자면, 기초분야라 할 수 있는 철학, 문학, 역사 등 지배층의 학문이 당시 잘 나가는 느낌입니다. 아무래도 기술을 조금 천시하는 문화가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요즘은 완전히 추세가 역전된지 오래입니다. 철학과, 사학과, 문학 쪽을 전공하려 했다간 집안의 격렬한 반대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요즘은 전문직이 최고라는 소리를 듣는 시대입니다. 어쩌면 학문 역시도 먹고 사는 문제 앞에서, 도구화 되어가는지도 모릅니다.

 

 한편, 고려 시대에는 무과가 없다는 것 도 체크해 놓읍시다. 무과는 조선 시대가 되어야 생겨납니다. 그럼 의문이 들 수 있지요? 그럼 소는 누가 키우... 무인은 어떻게 등용되느냐 말이에요? 군인은 누가 키우느냐 말이에요? 조금 슬픈 일일 수 있지만, 고려시대에는 전쟁이 잦았고, 이 때 싸움에서 공을 세우면 무반으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전쟁이 일종의 무인 등용을 담당하는 과거 같은 일을 하고 있었으니 마음 아픕니다. 잘 싸우는 사람은 군인을 시켜서, 국가를 지키도록 해야 했습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차례차례 거란, 여진, 몽고, 홍건적, 왜구...

 

 정정 당당한 제도만 있던게 아닙니다! 말도 안 되는 제도! 황당한 제도! 특권적 제도! 바로 음서 제도가 있습니다. 5품 이상의 고위 관료, 귀족 자제들의 특권이 바로 음서 입니다. 조상의 음덕을 받아서 관직으로 진출하는 제도 입니다. 예를 들면, 아버지가 총명해 고시 패스해서 3급 공무원이었다 칩시다, 그러면 아들은 자동으로 공무원으로 취직됩니다. 으흐흐... 할 말이 없지요? 음서제도 덕분에 고위 귀족들은 먹고사는게 자동적으로 해결되기도 합니다.

 

 고려 시대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는 지금도 진행중이라고 합니다. 관료제의 특징인 과거제도를 갖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귀족제의 특징인 음서제도도 같이 있으니 묘한 느낌이지요. 관료의 나라인가, 귀족의 나라인가, 귀족 중심의 관료제 같은 느낌? 어쨌든 확실한건 이 안정된 사회가 서서히 썩어가기 시작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는 점이지요. 좋은 혜택은 절대로 놓기 싫어하는 지배층의 특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문벌 귀족 사회의 성립"과 오늘날도 찬반논란이 선명한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드디어 다음 문서들에서 만날 수 있네요 :) 재미로 시작한 한국사 정리가 여기까지 오게 되다니, 기쁘기도 하고, 두근두근 합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이라 평하는 서경 천도 운동, 그 역사적 장면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다음 문서에서 계속...

 

 오늘은 영감 대신 재밌는 이야기를 개인적으로 조금 해보면 - 음서제 하면, 저는 가끔 모당의 전직 대표분이 생각납니다. 수년전, 이 분의 처조카가 있었는데, NH공사에 정규직으로 채용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는데, NH공사에서 정규직을 4년간 딱 1명 뽑았는데, 그 합격자가 고위직의 처조카 였다는 것이 어.. 어디선가 있던 제도! 음서제가 생각나더군요. 고위직 동아줄 타고, 저절로 공무원~ (아, 물론 천발 양보해서 엄청난 실력자 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3일만에 심의와 결재까지 일사천리로 후다닥!) 그 전직 대표분이 요즘 신문에 워낙 자주 등장하셔서, 하늘은 무심하지 않구나를 생각나게 해줍니다 :)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왜 가난한 사람은 좋은걸 가질 수 없는 걸까? 왜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면 안 되는 걸까? 권력은 가끔 이성을 잃고 폭주하며 무리수를 연발하는데, 결국 자기 목을 조른다는게 언제봐도 경이롭습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