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책

나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의사입니다 리뷰

시북(허지수) 2013. 4. 11. 20:56

 법정 변호사로 활동하던 링컨은 핵심을 이야기 하는데 능숙했던 것 같습니다. 검사가 2시간을 거쳐서 사건을 요약하면서 배심원들에게 이야기 했을 때, 변호사 링컨은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요? 링컨은 단 한 가지 핵심문제만을 거론하면서, 1분도 채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2시간의 검사와 60초의 링컨, 승소한 것은 링컨이었습니다. 핵심을 생각하는 기술은 그런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쓸데없는 말이 많았던 저는, 괜히 머쓱해 지는 이야기인데, 어쨌든 서론으로 꺼내들어봤습니다. 질문을 던져보기 위해서 입니다. 오늘은 잠깐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면 어떨까요?

 

 부정적인 반응이 먼저 나올 것 같습니다. 거부감, 불쾌감, 두려움, 혹은 피하려는 마음. 죽음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어렵습니다. "죽으면 다 무슨 소용인가" 같은 논리도, 생각해보면 살아 있을 때, 최대한 더 잘 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내가 암이 걸린다면,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물론 제가 보험을 판다거나 공포 조성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죽음을 생각하고, 대비하는 자세에 대해서 생각해 볼까 합니다. 이번 리뷰의 핵심문제는 "죽음"에 대한 집중입니다.

 

 저자 : 윤영호 / 출판사 : 컬처그라퍼

 출간 : 2012년 11월 21일 / 가격 : 13,500원 / 페이지 : 268쪽

 

 

 어릴 때 병원과 가깝게 지낸 탓에, 저는 별로 병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일드 1리터의 눈물에 나오는 남학생의 대사를 빌려오면, "왜 사람만 저렇게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욕심을 부리는 걸까?" 같은 대사에도 공감하는 편입니다. 어쨌든 진실은 간단명료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자 윤영호 선생님은, 우리의 마지막에 대해서 이렇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의미 있는 삶을 생각하고, 아름다운 마무리가 되도록 하자,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노력하자 입니다. 유언을 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는 모습이라면, 그것이 웰다잉이 아닐까 하고 질문합니다. 다시 말해, 이런 태도는 미리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대비했을 때 가능합니다. 차분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때, 웃으면서 떠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제시하는 대안은 호스피스, 완화의료 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삶의 질을 높여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죽음 직전까지 배려하자는 의미 입니다. 어쩐지 저는 과거에 읽었던, 독일의 호스피스에서 일하던 요리사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 요리사는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들어서, 임종 직전의 사람들에게 요리를 제공해주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헛된 희망에 매달리기 보다는, 다가올 죽음을 인정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을 생각하는 태도가 너무나 강한 인상을 주었지요. 어떤 사람은 죽음을 앞두고서도, 건강할 때 가장 좋아하던 음식을 먹고 싶어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 생명의 마지막 바람들을 이루어 주는 것, 그 모습이 참 좋아보였습니다.

 

 명문대(서울의대)를 다니고, 학생운동에 동참하기도 했던 선생님이, 삶의 무의미함과 자살 충동을 느꼈다는 대목은 상당히 놀라웠습니다. 섬세한 마음일수록 현실에 부딪혀서 길을 잃고 방황하기 쉽다고도 볼 수 있는데, 솔직히 저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유연한 관용과 약간의 자기 합리화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순수한 마음만으로는 세상 살기가 너무 괴롭지 않겠어요. 책에 나오는 고대 현인의 한 문구를 소개해 보면, "이렇게 많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나의 고령과 내 영혼의 위대성은 나로 하여금 모든 것이 좋다고 판단하게 한다"

 

 저는 적극적 자살 충동까지는 아니더라도, 삶이 괴롭다고 느낄 때가 많았고, 먹고 사는 문제의 가혹함이 피곤하고 힘들다고 느끼는 편인데요. 제 경우, 조금 이상하게도? 10대 시절보다는, 20대 시절이 좀 더 행복하고 좋았고, 그 때보다는 지금 30대 시절이 좀 더 좋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10대 시절에는 아픈 날이 많아서 그랬고, 20대 시절에는 불확실성에 압도당했기 때문에 그랬지요. 지금은 여유가 조금 생겨서, 소박한 삶에도 감사하면서 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할 수 있는 일만, 해나가도 충분히 행복한 인생이다 라고 인정하게 되었나 봅니다. 힘들어도 산다는 건 참 좋은 거 아니겠어요. 치열하게 살다가, 웃으면서 마무리 되는 것. 이게 참 좋은 인생이라 생각합니다. 만약 그 반대라면 우울할 것 같습니다. 즐기고 탐닉하며 살다가, 죽기 싫어 처절하게 발버둥 친다면, 어쩐지 욕심쟁이 스크루지 같은 느낌이랄까요.

 

 혹여 환자 옆에서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다면, 이 이야기를 명심한다면 좋겠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시면 됩니다" 누군가 음식을 넘기지 못해 수액 주사를 맞고 있어도 곁에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미안해 하지 말고, 건강한 모습으로서, 곁에 있어 주면 된다는 것입니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스포츠 경기나, 영화도 볼 수 있다고 말하는 대목이 참 좋았습니다. 그래요 우리는 성자의 사랑이 될 수 없겠지요. 때로는 지겹고, 미워지기도 하겠지요. 그래도 견디는게 필요합니다. 고통 받는 인간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은, 미약한 인간의 미약한 사랑인지도 모릅니다. 그 이상을 바라지 말자고 윤영호 선생님은 말합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노력하고, 2%의 진정성이라도 더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 싶었습니다. 그러므로, 힘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희망고문이 아니라, 곁에 있어 주고, 작은 필요를 채워준다면, 그것만큼 귀중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현실은 각박할지도 모릅니다. 토마스 모어의 말이 맞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혈기왕성할 때에는 혹사하면서도, 노쇠하고 병들어 극도로 빈곤한 상태에 처하게 되면 (중략) 배은망덕하게도 가장 비참한 죽음을 맞게 함으로써 그들이 열심히 일했던 데 대해 보답하는 것입니다." 즉 배은망덕한 사회란, 국가를 지탱하는 민초들의 삶을 돌보지 못하는 사회인지도 모릅니다. 가난하고 아프면, 비참하게 버려두는 사회. 필요할 때 써먹고, 불필요할 때 외면하는 사회. 지옥이 결코 다른게 아니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랑스러운 경제 강국이지만, 과연 삶의 질은 높아지고 있는지, OECD 자살률 1위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질문해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약 눈부신 외적 성장 속에서, 실상은 국민들의 삶의 질이 나날이 하락해서, 힘겨운 삶을 강요받다가, 녹슨 자동차처럼 인간을 폐기시켜 버릴 때, 이를 두고 "모순 사회"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사회 안전망 구축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장애물을 넘어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10년동안 OECD국가들 평균자살률은 16%나 감소하였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어라, 그런데 대한민국은 뭔가 다릅니다. 우리 아이들의 자살률은 10년동안 47% 증가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성인자살률은 10년동안 무려 2배 가까이나 증가하였습니다. 경제는 발전하고 있다지만, 사회는 거꾸로 가고 있는게 아닐까, 마음이 아픕니다. 즐거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일 수록, 자살을 생각하기 쉽다고 하는데, 더 늦기 전에 나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 무엇인지, 내게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몸이 약해 아무 도움을 줄 수 없어도 온유하고 친절한 마음을 잃지 말자"는 어느 독일 노인의 시 중간 부분을 써보며 리뷰를 마칩니다. 아무리 힘들고, 삶이 보잘 것 없어 보일지라도, 결코 좌절하지 말고, 힘내시길 응원합니다. / 2013. 04.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