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머나먼 다리 (A Bridge Too Far, 1977) 리뷰

시북(허지수) 2013. 4. 15. 20:28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전쟁명화 머나먼 다리는 여러가지 생각을 던져줍니다. 연전연승을 올리며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는 연합군, 그리고 군 사령부의 위험한 판단 수준, 전쟁은 승자에게도 비참한 독약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메시지까지, 많은 것이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가령 간단하게 들리는 말, 싸워서 이기면 만사OK 같은 언어에 대하여, 영화는 차갑게 반문합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다" 전쟁에서 이긴다는 명분을 내걸어서, 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다면 좋은 판단으로 부르긴 힘듭니다. 그래서 고대의 현인들은 싸우지 않고 이긴다면 가장 좋은 일이라고 평했겠지요.

 

 어쨌든 영화는 육해공을 넘나들며 굉장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요즘 제작을 한다고 해도, 이 정도 수준까지 만들어 내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아날로그 감성이 듬뿍 들어가서, 모든 것이 실제로 펑펑 터져나가는 느낌이 압권인데, 정말로 전장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고, 중간 중간 보고 있기에 심히 괴로운 장면들도 계속 이어집니다. 최전선에서 사병들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군 수뇌부들은 차를 마시면서 보고를 받는다는 것이 "전쟁의 진짜 현실"이라고 보여줍니다. 요즘이야 총명해진 사람들은 누구나 압니다, 전쟁나면 누구부터 희생되는지 말이에요.

 

 

 영화의 서두에서 인상적이면서도, 충격적인 것은, 스타를 달고 있는 장군들의 위험한 결단입니다. 아니, 뭐 그럴싸한 낙하산 대규모 투입작전이야 생각할 수도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현실적인 위험들이 하나 둘 보고되고 있음에도, 최종결정권을 쥐고 있는 이들은 현실을 애써 외면해 버립니다. 이까짓 독일군 탱크 주둔 사진 몇 장에 주눅들지 않아야 한다고 오히려 적반하장 큰소리를 칩니다. 생각해 보면 사령관의 결단이 이해는 갑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연합군은 연전연승하며 파죽지세로 독일군을 밀어붙여 왔고, 이제 파격적인 낙하산 작전을 성공시키기만 한다면, 크리스마스 전까지 병사들을 귀환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면 칭찬 받고, 존경 받는 몽고메리 원수가 될 수 있을 테고, "달콤한 욕심"은 계속해서 부풀어 오릅니다. 냉정한 현실보다는, 살짝 환상에 기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그리하여 우리는 잘못된 지도자의 판단착오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 주는지, 혹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정말 근사하게 비행기가 날아가고, 웅장한 대열로 적진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서, 낙하산 퍼레이드가 펼쳐지는 것까지는 그야말로 일사천리 입니다. 독일 점령 지역 최전선에, 지금 연합군 공수부대가 공중에서 날아들어와 버티고 있습니다. 이제 육군이 밀고 올라가서, 함께 힘을 합치기만 하면, 독일군은 순식간에 전선 부대가 괴멸될 듯 합니다. 적어도 여기까지는 지도에 그려놓았던대로 보기 좋게 펼쳐집니다.

 

 하지만 전쟁의 실상은 전혀 반갑지 못했습니다. 독일군의 대반격이 시작되었고, 투입된 공수사단은 초토화 되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충격적이게도 스피드가 생명이라던 연합군의 육군은 1마일도 잘 올라가지 못해서, 쩔쩔 맵니다. 길이 좁다보니, 이동 경로가 제한적이었고, 전쟁에서 길이 좁을 때는 언제나 수비하는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하기 마련입니다. 이틀이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는 이 낙하산 프로젝트 (정식 명칭은 마켓 가든 입니다) 는 3일, 4일, 5일... 계속 시간이 흘러도 성공하지 못한채 지옥같은 시간들만 흘러갑니다. 역시나 고생하면서 죽어가는 것은 사병들입니다. 다친 부상병이 제발 내 손을 잡아달라고 마지막을 부탁하는 모습은, 전쟁이란 결국 사람이 고통 속에 쓰러져 죽는 것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영화는 후반부에 지휘관들의 입을 빌어서 이렇게 말해줍니다. "후세의 사람들이 전쟁놀이를 한다면, 모두가 죽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하네" 그렇게나 세계대전을 통해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기 때문에, 세계의 인류는 평화를 추구하게 되었고, 커다란 전쟁을 금기시 하고 있습니다. 미X 라는 국가는 중동 지역에 21세기까지도 전쟁을 펼쳤지만, 계속되는 자군 병사들의 사망으로, 힘들어 하고 있지요. 전쟁이 일어나면, 죽음의 무기판매상들만 신날 것이라는 예측은 그래서 더욱 무섭습니다. 사람들의 생명을 담보로, 극소수만 엄청난 기회를 얻게 되는 잔혹한 행위가 전쟁인 셈입니다. 예컨대 안보를 불안하게 만들어, 군비 경쟁만 서로 하고 있으면, 결국 누구 좋은 일인지는 분명합니다. 사람들에게는 좋은 일이 아닐테고, 더더욱 사병들에게도 기쁜 일은 아닙니다.

 

 영화에서는 강가에 시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계속해서 사람이 죽는 장면이 이어지고, 마지막까지도 무덤 곁을 보여주면서 끝나는데, 이 괴로운 영화가 역사의 한복판에서 펼쳐진 진실이라고 생각하면 마음 한 켠이 서늘할 정도입니다. 사망자 만여명, 9일만에 전격 퇴각 결정. 연합군은 자신감 넘치게 현실을 오판함으로서, 고귀한 젊은이들의 목숨을 그렇게 주검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높은 지위에 오를 수록, 사람의 어깨에는 그만큼의 책임감이 따르는 것입니다. 방심이란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생각하기에도 좋겠고요.

 

 물론 명예욕이 흐르는 사령관만 있는 건 아닙니다. 냉정한 태도로 현실을 바라보던 사령관도 있습니다. 그는 짧게 흐르는 대사를 통해서 핵심을 찌릅니다. "사람이 죽는다면, 편지(위로)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이 말이야말로 인간 존중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에서 죽은 사람에게 물질적 보상을 해주면 그만입니까? 아닙니다. 사람의 목숨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집을 파괴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모두를 불행하게 합니다. 게다가 마음까지도 망가뜨리기 때문에, 금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유럽 최고수준의 군 사령부에서 어떻게 이 정도 수준까지 오판했을까? 그 점을 생각해 보고 싶었습니다. 한 가지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 서너가지가 떠오릅니다. 1. 현재 연전연승중 2.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경향 3. 지금껏 없었던 화려한 작전의 성공유혹 4. 빠른 결과물.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현실 대신에 환상을 보고 결정하도록 만든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슷한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태도를 경계해야 합니다. "이제껏 잘해왔는데, 뭐 대충 빨리 폼나게 마무리 하지."

 

 누적된 성공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가, 머나먼 다리를 보면서, 자꾸만 그 생각이 들어서 상당히 가슴 아팠던 영화였습니다. 몇 번이고 실패를 경험했던 지도자가 더 좋은 결정을 할 수 있고, 연속된 성공에 취해 있는 지도자가 위험한 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 역사에서 배우는 역설적인 교훈 중 하나 입니다. 그렇습니다. 책상 위에서 논하는 100km 걷기란 간단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1km라도 걸으려면, 제대로 준비해야만 가능합니다. 허망한 환상에 속지 않고, 현실을 바로 보고, 열심히 준비할 수 있는 현명한 사람들의 모습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2013. 04.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