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한 명인 필립 클로델이, 이제 영화 감독도 하게 되었습니다. 문학교수로 활동하다가, 영화광이다보니, 꼭 영화를 한 번 제대로 찍어보고 싶었나 봅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영화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솔직히 저는 보기 전부터 조금 걱정이 있었습니다. 한국 감성과, 미국 감성, 그리고 유럽 감성은 상당히 느낌이 다릅니다. 극의 분위기부터, 음악까지, 여러 면에서 이질적인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는 것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포스터만큼이나 강렬합니다. 이렇게 표현하면 좋겠네요. "느리고 섬세하지만, 사랑이라는 압도적 무게감이 영화를 흔든다" 입니다.
사랑하는 아이를 잃었을 때 보여주는 "엄청난 절규"와는 다릅니다. 이 작품은 사랑 없이 살아가야 했던 여자의 침묵을 메인 테마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답답함이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아이의 진실"에 대하여, 질문할 수 없을 듯한 냉담한 분위기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주인공 줄리엣은 감옥에서 무려 15년이나 지냈습니다. 바깥 세상을 드디어 만나게 되었지만, 그녀는 별달리 기뻐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느낌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예쁜 여동생 레아가 마중 나오는 장면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감옥에서 나와 갈 곳도 없는 줄리엣은 어쩔 수 없이, 레아와 뤽네 가정에 얹혀 살면서, 일자리를 구하려고 합니다. 줄리엣은 아들을 죽인 죄로, 15년이라는 죄값을 치루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뭐야? 막장 엄마였어?" 이 영화의 두 번째 테마는, 인간을 이해하는 것의 어려움 입니다. 줄리엣은 사회에 나와서 이런 말을 듣게 됩니다. "당장 나가" 사회의 경멸적인 시선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레아의 남편 뤽 조차도 초반에 "냉담한 그녀" 줄리엣을 의심하면서,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놀랍게도 줄리엣은 나쁜 사람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조금씩 알게 됩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관객은 조금씩 줄리엣에 대해서 알아가게 됩니다. 그녀가 의사였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두뇌 명석하고, 준비성이 철저한 인물이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프랑스 사람이지만, 영어는 물론이고, 스페인어까지 구사합니다. 감옥에서 익혔다는 엑셀 활용 기술은 능숙합니다. 하기야 동생 레아도 박사 과정을 밟다가 남편과 결혼 했을 정도니까, 집안의 학풍이 뛰어납니다. 그렇기에 더욱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대체, 왜 아들을...
그렇습니다. 영화는 눈물의 가족 드라마가 아니었으며, 약간의 미스터리 추리 느낌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레아의 딸래미는 계속해서, 새로 등장한 이모 줄리엣에게 질문 공세를 던지면서,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합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이모라니, 아이의 호기심을 막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 줄리엣이 능숙하게 동생의 딸들을 보살피면서, 조금씩 가까워져 가는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겉은 아무리 봐도 차갑게 느껴지는데, 피아노를 가르쳐주고, 책을 읽어주는 모습은 한없이 따뜻합니다. 기묘하지요.
절제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캐릭터를 완성해 나가는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줄리엣 역)"의 신들린 연기력은 끝까지 환상적으로 펼쳐집니다. 극중의 줄리엣이, 쓰라린 상처를 입은 채, 침묵으로 피흘리는 모습을, 저절로 느낄 수 있습니다. 줄리엣은 환하게 웃지 않습니다. 게다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두려워하고, 슬퍼하기까지 합니다. 그런 장면들을 보다보면, 우리는 드디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아들을 잃었다는데, 아주 비통한 사연이 있는게 확실하구나...
결코, 아들을 살인했다고 볼 수 없는 깊은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한없이 사랑하던 아들은, 치명적 질병에 걸려서 사지가 뒤틀어지는 고통을 겪어야 했고, 아들의 존재 자체가 애증으로 범벅이 되어버린 지독한 시간을 맞이했던 것입니다. 시를 써서 건네주는 착한 아들이 "통증으로 괴로움을 겪는 것"을 매일 봐야 하는 엄마의 마음은 새까맣게 타들어 갔고, 의사로서 아들이 살아갈 가능성이 보이지 않자, 그녀는 사랑하는 아들을 안락사 시키고 말았습니다. 살인혐의로 15년이라는 죄값을 받았고, 그녀는 오직 침묵으로만 일관했습니다. 사건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줄리엣에게는 그 때부터 인생이 부조리한 절망의 세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감옥에서 형기가 끝나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는 그녀의 고백이 그래서 더욱 처절합니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너무나 슬퍼서 눈물이 나는 것은, 그렇게 긴 시간이 흐르고, 1년... 2년... 3년... 5년... 10년... 15년... 흘러갔지만, 아들을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제목 그대로,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입니다. 그 어떤 가치 판단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마음 속에 영원히 묻어버린 아들을, 그녀는 그토록 오랫동안 사랑하면서, 매일 그리워하고, 그 시를 읽어왔다고 생각하면, 인간이 가지는 사랑의 깊이가, 그 어떤 깊은 바다 보다도, 더욱 짙고 깊다는 것에 눈물 짓게 됩니다. 그 슬픔과 애정을 마음 속에 언제나 담고 있었으므로, 줄리엣은 달콤한 관계나, 즐거운 유희에 손을 댈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 비밀을 레아에게 모두 이야기 하면서부터, 이 영화는 치유가 시작됩니다. 활짝 열려서 햇살을 받는 방의 모습처럼, 줄리엣의 삶은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이제는 깨닫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행복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렇게 살아갈 때, 아들에게도 기쁜 일이 될 것임을 말이에요. 또 한 가지 더, 동생 레아의 한결 같은 언니에 대한 애정과 신뢰로 인해서, 줄리엣이 회복되어 간다고 본다면, 그 또한 커다란 의미가 있는 작품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짊어지기 너무나 힘든 괴로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왜 하필 내가..." 라는 심정으로 마음이 타들어가며, 슬픔으로 가득 찰 때도 있습니다. 도저히 밝게 살아갈 여력이 생기지 못하고, 어두운 그림자만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 결국 "사랑"으로서 치유되고, 살아갈 힘을 새롭게 얻게 된다는 느낌이 참 소중했습니다.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주변에서 위로해 줄 사람, 좋은 일을 만났을 때 주변에서 축하해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 영화는 함께 살아감으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조리한 일들까지도 이겨나갈 수 있다고 삶을 응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압도적 슬픔 뒤에 또 찾아오는 새로운 삶, 그리고 조용한 위로. 이러한 관계들이 내뿜는 힘은,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좋은 사람들이 모이면, 괴로운 사람을 살려냅니다. 사랑이 풍선처럼 가볍고 쉽게 터지는 것이 아니라, 그 얼마나 깊고, 무거운 것인지... 사랑한다는 것은 "책임"이다 라는 말이 떠오르던 영화였습니다. 슬픔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힘내시길. 노력하면, 좋은 날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겁니다. / 2013. 04.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