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고려의 생활 모습 - 여성 평등이란 무엇인가?

시북(허지수) 2013. 4. 22. 23:23

 아 제목 장난 아니지요. 조금 자극적인가요. 드디어 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살짝 기쁘고, 들떠 있습니다. 우선 고려의 생활 모습을 천천히 살펴봅시다. 여성 평등에 대해서는 문서 중반부터 집중 조명해 보겠습니다. 고려시대에도 역시 농민들이 중요하잖아요. 농사 짓고, 각종 조세, 공납, 역에 시달리고, 바쁘고, 힘들고, 정신 없고... 그런 농민들에게도 결혼이나, 장례, 마을 제사 등 다양한 생활 모습은 있었겠지요? 그것을 살펴보자는 겁니다.

 

 농민들에게는 "향도"라는 공동체 조직 이 있었습니다. 향리와 농민, 다시 말해 관료와 일반 백성이 모두 참여하게 되는 조직으로서 다양한 역할을 했습니다. 향도의 출발은 불교 신앙 활동을 위한 모임이었는데요. 이들은 모여서 미륵에게 구원받고자 하는 활동 [매향]을 하면서 신앙적 교류를 갖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서, 점점 마을 공동체 조직으로 변화한 것입니다. 향도에서는 주로 상장제례 등 공동체와 관련된 일 을 했고요. 고려 후기부터는 점차 종교색이 빠지면서, 조선시대까지 이 향도는 연결되고 있습니다. (한편 미륵과 관련된 것들을 정리해 놓자면, 화랑도가 있고, 반가사유상이 있습니다. 또한 향도의 출발과 매향 신앙이 있고, 여러가지 민란에도 영향을 줍니다. 참고로 체크해 두세요)

 

 국가도 생활을 지원하기 위해서 몇 가지 혜택들을 줍니다. 농민이 안정되어야, 재정도 확보되고, 국가가 잘 돌아갈테니까요. 구휼책으로서, 곡식을 빌려주는 의창이 있고요. 물가를 조절하는 상평창 이 있습니다. 이로써 경제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비상시에는 사람들이 국가에 곡식을 빌려서 가을에 되갚을 수도 있었습니다. 의료기관인 병원과 약국도 있었는데요. 구체적 이름은 동,서대비원(병원), 혜민국(약국)이 설치되었습니다. 비상 재해도 발생할 수 있으므로, 그 때는 구제도감, 구급도감이 설치되어서 농민을 구제하려고 했습니다. (백성의 질병 치료와 예방은 국가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업무 중 하나겠지요. 농민들이 병으로 자꾸 쓰러지면 곤란하니까요.)

 

 법률은 당나라의 당률을 참고하여 만든 형법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주로 지방관이 재량껏 "관습법"으로 판결 하는 형태를 취했습니다. 많은 소소한 범죄들은 관습법만으로도 충분히 해결될 수 있었다고 보입니다. 형벌은 5종류가 있는데, 태, 장, 도, 유, 사 가 있습니다. 마지막은 사형! 한글로 쓰면, 회초리, 곤장, 징역, 유배, 사형 입니다. 유배라는 게 실제로는 사형 직전의 강력한 판결이었지요. 또한 고려는 정치면에서는 유교라지만, 사회면에서는 불교적 성격이 상당합니다. 상장제례를 살펴봐도 국가는 유교를 권했지만, 실제로 백성들은 불교나 민간신앙의 형태로 진행하곤 했습니다.

 

 마침내 가족제도를 살펴보겠는데요! 시험 단골이기도 하고, 강렬한 영감을 줄 수 있으니, 잘 봅시다! 근친혼이 있었고요. 결정적으로, 고려 사회의 기본은 "일부일처제"였습니다. 원나라의 침입으로 남자가 많이 죽고, 인구가 줄고, 그런 상황에서 "박유"라는 용자(?)가 감히 일부다처제를 건의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고려의 모든 여성들이 들고 일어나서 강력하게 저항합니다. 박유만 지나가면, 이 박유 XXX야, 하면서 맹비난 을 했고요. 조정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부인들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일부다처제가 말이 되느냐고 남자들을 휘어잡습니다. 요즘 여성들과 충분히 대등할 수 있을만큼, 여권이 장난 아니었지요. 박유의 일부다처제 꿈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고려는 성리학 사회가 결코 아닙니다. 여성의 지위는 후대의 조선 시대보다 높으면 높았지요!

 

 물론 사회적 지위는 낮을 수 있지만, 여성의 가정내 지위는 상당히 막강합니다. 예를 들어보면 호적을 살펴봅시다. 조선시대에는 남자부터 호적이 올라갔지만, 고려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나이순으로 등재 합니다. 연장자가 우선일 뿐입니다. 게다가 재산을 균분상속 합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현대의 민법과 같을 만큼 공평합니다! 조선 시대의 장자 상속과는 다릅니다. 부모가 죽으면 그 유산을 딸, 아들 구분없이 정확하게 나눕니다. 당연히 딸로 태어나서 손해보는 일이 적습니다. 당당하게 주장했고, 합리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특히 윤행봉사를 살펴보면 우리가 오히려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사의 경우는 자식들이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합니다. 순서대로 한 번씩 균등하게 하자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가 설이나 추석 때, 어디부터 가나요? 대부분은 남자집부터 갑니다. (공교롭게도(?) 저는 장손이었는데, 어린 시절에 꼭 남자집부터 가고, 이모네는 설날 저녁이나, 설날 다음 날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씁쓸하게도, 단 한 번도 외가부터 간 적이 없었습니다.) 고려시대라면 완전히 달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올해는 친가부터 갔다면, 다음해는 외가부터 갑니다. 이렇게 서로 좋고, 합리적인 사고를 했다는 이야기 입니다.

 

 남성 위주의 호주 제도는, 조선 후기부터 등장해 - 일제시대까지 이어진 잔재 라고 합니다. 또 조선 시대의 강한 성리학 영향으로 여성의 지위가 억눌리기도 했는데, 우리는 이제 질문을 던져볼 수 있어야 합니다. 왜 우리는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없는가? 내려오는 전통이 사실은 이데올로기로 주입된 것은 아닌가? 라고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대적으로 아주 단순히 바꿔말해, 양쪽 모두 경제력이 비슷하다면, 남자가 식사를 사면, 다음 차례는 여자가 식사를 사는 것이 평등하다는 것이지요. 아니면 남자가 밥을 사면, 여자가 커피를 사고, 아 요즘은 커피가 더 비싸니 불공평하다고요?...... 끙, 하하, 여하튼 서로 합리적인 균형을 찾는게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조상의 기준까지도 고려 시대는 다릅니다. 친가만을 기준으로 삼지 않습니다. 고려는 외가나 사위까지도 음서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가령 외할아버지의 음덕으로 공직에 진출한다거나, 공을 세우면 상을 장인과 장모에게도 챙겨줍니다. 외할아버지와 사위도 절대로 빠뜨릴 수 없는 소중한 한 식구 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대의 사회분위기는 역사적으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남성 위주의 사고방식은 이데올로기로 후대에 갑작스럽게 생겨나서, 널리 펴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 입니다. 자세한 것은 나중에 조선 시대를 살펴보면서 여성억압의 모습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약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온 전통을 따라야 한다고 한다면, 조선 시대 외에, 고려 시대의 더 오래된 전통을 따르겠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왜 반드시 남자집부터 가야할까요? 한 번씩 번갈아서 간다면 그 얼마나 좋아질까요? 고정된 관념에서 벗어나보고,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면, 그런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면, 그 때부터 사회 분위기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이라서 무조건 따라야 한다? 과연 전통이란 무엇인가? 그 전통에는 어떤 의도가 개입된 건 아닐까? 이러한 질문들도 얼마든지 멋진 고민일 수 있습니다. 남자들이 예쁜 여성을 좋아하듯이, 여자들도 든든한 남성을 좋아하면 됩니다. 언제나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한 인간"으로서의 관점이 더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남자라서 겁쟁이고, 여자라서 말못한다면, 반대로도 생각합시다. 남자라서 말못하고, 여자라서 겁쟁이에요. 어때요, 결국 다 사람입니다. 한 쪽의 일방적 희생은 서로가 괴로워지거나, 혹은 병들어갈 뿐입니다 :)

 

 오늘의 영감 - 일반적 기준과 "다르게 생각하는 습관을 가져보자" 입니다. 남자도 얼마든지 요리를 잘 할 수 있고, 피아노를 감수성을 듬뿍 담아 칠 수 있습니다. 여자도 얼마든지 수학에 강하고,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고, 절묘한 센스의 드러머가 되어도 좋습니다. 물론 무엇을 더 좋아하느냐의 성향 차이는 분명히 있습니다. 조금 더 생각을 확장한다면,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느냐" 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적 시선과 분위기가 전부가 아니라는 의미 입니다. 내가 정말로 좋아하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일을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좋은" 것입니다.

 

 우리는 살다보면 분명히, 언젠가는, 혹은 가끔씩은, 남자라서 차별받거나, 여자라서 차별받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특정 성별로 태어난 것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남자도 얼마든지 "행복"이라는 느낌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여자도 얼마든지 "야망"이라는 단어와 친해질 수 있습니다. 역사를 배우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여성지위처럼) 시대가 흐를 수록 차별이 오히려 강화될 수도 있다는 놀라운 진실을 배우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없애버릴 수 있는 차별은 무엇인지, 고민해 본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