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만적의 난 - 해방이란 무엇인가, 이상주의는 가능한가?

시북(허지수) 2013. 4. 23. 23:50

 이번 문서는 금방 넘어갈 수 있는 짧은 내용이지만, 한 번쯤 생각해 본다면 좋겠다 싶어서 고려 후기까지의 각종 난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마련입니다. 성공하면 쿠테타나 혁명이 될 수 있지만, 실패하면 가차없이 "난"이 되고, "역적"이 됩니다. 만적의 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노비 해방운동을 펼친 선구적인 혁명가로도 만적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요? 혁명가 체 게바라의 말처럼,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지니고, 그것을 실천해 나갈 수 있는 거 아닐까요? 어쨌든 하나씩 살펴봅시다.

 

 고대의 난부터 정리해 본다면, 귀족 김흠돌의 난이 있습니다. 신라 중대, 왕권 절정기에 일어난 난이었는데, 김흠돌 세력은 신문왕에 의해서 제압되면서, 오히려 이후 대드는 진골 귀족들을 숙청해버리며, 왕권 강화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신라 하대에는 김헌창의 난이 있습니다. 역시 왕족이었는데, 신라 조정에 맞서며 반란을 일으킵니다. 신라 하대이다 보니 왕권이 강하지 못하였는데, 그러다보니 김헌창 가문은 대를 이어서 왕좌를 노리며 반란을 일으키곤 했지요. 통일신라 말기에는 대표적으로 원종-애노의 난이 있습니다. 조직적으로 국가에 반기를 들었던 중요한 난인데요. 농민들이 세력을 모아서 본격적인 반란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중세, 그러니까 고려시대의 난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지배층의 난으로는 대표적인 것이 이자겸과 묘청을 들 수 있습니다. 고려사의 중요한 지점이다보니 지난 문서들에서 자세히 살펴보았으니 뭐 넘어가고, 무신정권 때는 서경의 조위총이라는 사람이 난을 일으켜서 거의 2년 동안 무신정권에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훗날 권문세족이 득세하자, 이성계가 들고 일어나 위화도 회군을 하는 것도 엄밀히 말해, 당시 명령불복종 반란행위에 가깝습니다. 물론 위화도 회군은 제대로 성공했고, 조선건국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지만요.

 

 한편 피지배층의 난은, 특히 무신정권 때 많습니다. 칼로서 집권한 하극상의 시대라서 그렇습니다. 밑에 있는 사람이 치고 올라가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한다면 과연 어떨까요? 기존의 질서가 흔들리지 않겠어요. 이것을 보게 된, 더 밑에 있던 사람들 역시, 나도 한 번 구조를 깨볼까 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더욱이 무신정권 권력자 중에는 천민 출신인 이의민 같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극상의 풍조"가 퍼지기 시작했고, 신분제가 동요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무신정권 시기에는 하층민의 봉기가 두드러 질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소민, 농민, 노비들이 대거 들고 일어났습니다.

 

 공주 명학소에서 펼쳐진 망이,망소이의 난이 있었고요. 경상도에서는 김사미,효심의 난이 있었습니다. 신라부흥운동까지 구호로 내거는 등 저마다 주장한 내용도 있었습니다. 특별히 오늘 생각해 볼 것은, 엄청난 사건인 바로 "만적의 난" 입니다. 만적은 누구입니까? 당시 고려 무신기 최고 실세였던 최충헌의 사노비였습니다. 그 당시 기준으로 본다면, 최충헌의 말단 재산에 불과했었지요. 그러나 만적은 생각이 전혀 달랐습니다. 산에가서 공노비와 사노비들을 불러 모아서 연설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읽기 편하게 의역을 조금 넣겠습니다.

 

"자 현실을 보시오. 나라의 공경대부, 높은지위의 인물들은 이제 천민들도 가능해진 세상이잖소.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습니까? 따로 있더냐고요? 때가 오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노비라고 천대받으며 힘든 일에 시달리고, 채찍질 당하며 고생만 하고 지내야 겠소? 이제 모여서 난을 일으켜 최충헌과 당신들의 주인들을 죽입시다, 노비 문서 따위 몽땅 불태워 버리시오. 노비가 없는 세상을 만들어서, 우리가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습니다!"

 

 한국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신분 해방 운동이 이렇게 발생합니다. 고려 1198년의 일입니다. 수도 개경에 거주하던 수천 명의 노비가 함께 동참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혁명을 꿈꾸었던, 이 가슴뛰는 거사는, 안타깝게도, 내부고발자(노비 순정)의 정보누설에 의해서 비참하게 박살나며, 처참하게 실패 하고 말았습니다. 붙잡힌 노비들은 반란죄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신분제가 사라진 것은, 그로부터 무려 약 700년이나 더 흘러, 조선 후기 갑오개혁 무렵에, 노비제가 폐지되고, 신분 차별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말하자면, 누구나 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직접 실천했던 만적은 700년이나 앞선 생각을 갖고 있던 셈입니다. 이런 예들은 역사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루소가 18세기에 벌써, "앞으로 유럽인만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는데, 20세기 후반부터 유럽이 통합되어 나가는 놀라운 광경을 우리는 목격했습니다. 말하자면 "역사는 더딜지라도, 인간이 소망하는 희망의 등불은 쉽게 꺼지지 않습니다" 링컨이 인종차별에 반대했고, 노예제를 없애버렸는데, 오늘날 미국은 흑인 대통령의 시대를 보내고 있습니다. 과연 그 시대의 영웅이란 무엇인가요? 시대를 뛰어넘을 수 있는 식견이 아닐까요?

 

 체 게바라는 이런 말을 한 바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낭만주의자고 도저히 구제할 길 없는 이상주의자이며 우리는 불가능한 것을 이룩하려 한다고 말한다면",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맞는 말이다.", "우리는 '그렇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 놀랍게도,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이룩하고자 합니다. 그 시대에 당연하게 퍼져 있는 가치관에 의문을 제기하고, 도전장을 던집니다. 잘못된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 움직이고 싸웁니다.

 

 자, 우리는 과연 공기와도 같은 "질서와 당연함"에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차별받는 구조를 직시하며, 핵심적인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까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불합리한 시스템을 예리하고 정확하게 간파해 내는 시선을 가져볼 수 있을까요? 에이, 한 사람이 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라고 실망한다면, 전혀 그렇지도 않습니다.

 

"작은 돌멩이 하나가 완고한 벽을 깨뜨리지는 못한다. 그러나 깜깜한 어둠 속을 달려가 벽에 부딪치는 ‘작은 소리’를 보내옴으로써 보이지 않는 벽의 존재를 알리기에는 결코 부족하지 않다" 라고 신영복 선생님은 일갈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돌멩이라도 던져볼 수 있는거 아닐까요? 잘못된 시스템에 "NO"라고 돌을 던질 수 있을 때, 사회는 좀 더 진보해 나갈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현실은 전혀 만만하지 않으며, 시간은 그 누구도 봐주지 않습니다. 오늘도 흘러갈 것이며, 내일도 또 찾아오겠지요. 적당히 타협하고, 현실에 안주하며, 이만하면 되었겠지 하면서 자기 위안에 취해 있다면, 마지막까지 조금 더 열심히. 할 수 있는데까지 더 가본다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는 이 시대의 문제점을 꿰뚫어보면서, 새로운 주장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정도로 실력있고, 당당한 모습이 될 수 있기를 저는 한없이 응원합니다.

 

 이상주의는 피곤하고 실현불가능 하다고 여긴다면, 헬렌 켈러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어떤 비관론자도 별의 비밀을 발견하거나, 미지의 섬으로 항해하거나, 인간 정신의 새로운 낙원을 연 적이 없다." 더 이상 비관하지 말고, 따뜻한 감성으로 즐겁게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랍니다. 제 자신에게도 늘 하는 이야기들을 오늘은 참 많이 썼네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기에, 우리는 현실에 실망하지 않습니다. 꿈에 미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살아가는 반짝이는 모습들, 그 자체가 혁명적인 태도라고 확신합니다. 만약 어제와 오늘이 똑같고 고통스러운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면,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지금 시작해 보세요. 꿈꾸던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는 지금 하는 행동에 달려있을 뿐이니까요.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