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그 시대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르게 말해, 문화는 그 시대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어떤 특정한 모습들을 놀랍도록 정확하게 보여준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문벌 귀족은 불교 교종을 선호하고, 무신 정권은 불교 선종을 선호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보수적이고 안정화된 사회에서는 글과 학문 (교종) 이 장려되지만, 혼란기나 갈등기가 되고 누구나 왕(=혹은 부처)이 될 수 있게 된다면, 그런 분위기 속에서는 깨달음과 수행이 장려됩니다. 문화사를 접근할 때는, 방대한 양을 괴롭게 암기하기보다는, 왜 그랬을까? 라고 한 번만 더 생각해보는 연습이 중요할 수 있습니다. 오늘 문서로 어서 출발해 봅니다.
고려의 불교라면 그 출발이 괜찮았습니다. 태조 왕건은 훈요10조를 통해서, 연등회, 팔관회 같은 행사들을 장려하였고, 국가적으로 불교를 미는 모습도 있었고요. 고려 초에는 국사, 왕사 같은 제도를 두어서 승려를 국가의 고문(어른)으로 대우하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물론 앞서 살펴봤듯이, 고려 성종 때, 유학자 최승로가 건의를 올리면서 국가적 불교행사를 비판하기도 했다지만, 어쨌든 고려는 여전히 불교의 영향력이 상당히 강했습니다. 지방에서는 불교적 성격이 짙은 공동체 조직 향도가 조직되기도 했습니다. (향도는 조선시대까지 이어지는데, 고려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종교색이 빠진다는 것도 같이 체크해 둡시다)
통일신라 말기에 유행했던 두 가지 종교 생각납니까? 바로 풍수지리와 선종인데요. 선종의 분위기는 고려 건국 후에도 잠깐동안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제 고려라고 딱 하니 새로운 국가가 자리 잡게 되고, 국가의 틀이 잡히기 시작하니까, 경전을 강조하는 교종이 조금씩 다시금 힘을 회복하기 시작합니다. 균여의 화엄종(교종) 같은 경우에서 알 수 있지요. 그리고 놀랍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깨달음을 강조하는 선종은 이후 서서히 힘을 잃어가는데요. 자 대체 왜 그런걸까요?
역사의 대표적인 교훈이라 할 수 있는데, 선종을 통해서 기득권이 되었다고 치면, 막상 지배세력이 되고난 후에는, 자주적, 개혁적 모습들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내가 지금 귀족이 되었는데, 깨달음의 선종이 좋겠어요? 아니면 뭔가 폼도 나고, 있어보이는 듯한 경전의 교종이 좋겠어요? 당연히 지배층 입장에서는, 입맛에 맞는게 교종입니다. 나만, 우리만, 해석할 수 있고, 소수의 지위가 유지될 수 있는 교종은 그야말로 딱 좋습니다. 그렇게 흘러가다보니 이제 호족에서→ 문벌귀족 시대로 접어들면, 교종이 유행하며, 주류를 이루게 됩니다.
이 때 대표적인 승려가 있으니 의천 입니다. 의천은 천태종을 창시하였고, 불교계 개혁에 힘을 씁니다. 특히 교종을 중심으로 하는 교선 통합을 강력하게 밀었는데요. 거의 물리적이었다고 보면 됩니다. 교단을 통합시켜 버리고, 우리는 이제 교종,선종이 아닌, 통합된 불교라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의천이 죽으면서 이 시도는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다시 불교는 귀족과 손을 잡으면서 보수화 되었고, 분파되고 맙니다. 여하튼, 의천은 꼭 기억해 두세요. 천태종 창시, 교선 통합 시도, 시험의 단골 스님입니다. 한편 의천의 천태종은 교관겸수를 주장했는데요, 교와 선을 같이 배우자는 취지 가 인상적입니다. (가르치고, 보는 것을 겸해야 한다는 말인데, 배움에 그치지 말고, 깨달음도 있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물론 교종이니까, 교가 먼저 나오긴 합니다) 끝으로 의천은 교장을 통해서 불교 경전을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모로 명석한 승려 의천이라 하겠습니다. 통합이 정말 쉽지 않은 과제인데, 그걸 해낼 뻔.... 했으니까요.
문벌귀족 사회는, 1170 무신정변을 통해서, 무신기로 넘어가게 됩니다. 무신기에는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어 버립니다. 무신은 문벌 귀족이 누리던 이데올로기인 교종을 깨부술 필요가 있었고, 누구나 정권을 획득해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논리가 필요했습니다. 여기 딱 맞는 게 바로 깨달음을 통해 부처(=왕)가 될 수 있다는 선종이었지요. 무신기에는 역시 선종이 입맛에 딱~ 교종은 탄압 대상으로 추락합니다. 역사가 참 이렇다니까요 :) 지금 잘 나간다고 해서 감히 못할 짓까지 막 하다가는, 정권이 뒤집히면 후폭풍이 장난 아닌 경우가 상당합니다.
무신정권기에도 대표적인 승려가 있는데, 지눌 입니다. 지눌은 조계종 이고요. 선종 중심의 선교 통합을 추구합니다. 다만 이 때는 화합적이고 부드러운 결합을 추구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교리를 통합하려고 노력했고, 이 시도는 성공으로 이어집니다. 이로써 조계종은 고려 후기의 대표적 종파가 될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한국 최대 종파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 출발점의 핵심 인물이 지눌입니다. 당연히 중요하고, 시험 단골 스님이니, 잘 기억해둡시다. 여기까지 간단히 정리하면, 고려 불교하면 교선통합 의천과 선교통합 지눌!
지눌의 조계종이 주장한 것은 정혜쌍수가 있습니다. 사실 의천의 교관겸수와 거의 비슷한 말인데요, 선(禪)과 지혜를 같이 닦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 정혜쌍수는 지눌이다보니 선(깨달음)이 먼저 나오네요. 더 나아가 아주 중요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돈오점수" 입니다. 이 사상이 거의 이후 수백년간 불교계의 중요한 교리로 내려오기도 했습니다. 돈오점수를 살펴봐야겠지요. 문득 불교의 참뜻을 깨달았더라도, 이후에도 점진적인 수행을 계속 해야한다는 주장입니다. 참뜻을 깨달았느냐? 계속 수행해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도록 노력하라! 입니다. 스스로의 행동을 삼간다는 측면에서는 상당히 멋져 보이기도 합니다. 그죠? 여하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종파들인 조계종(선종)과 천태종(교종)은 고려 시대로부터 그 맥이 연결되고 있습니다.
(한편 현대 불교에서 성철 스님은 돈오점수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깨달음으로 끝난다" 라고 말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깨달으면 그걸로 된거지, 무슨 또 완전함이냐 라는 것이지요. 과연 무엇이 더 나은 길인지는 한 번 고민해 볼만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혜와 깨달음을 얻고나서는, 과연 이걸로 끝인가? 계속 더 수행해야 하는가? 저 개인적으로는 불자는 아니지만, 감히 나름의 결론을 내린다면, 깨달았다면 그대로 행동이 되는지 돌아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말만 유창하게 잘하는 종교라면, 불교건, 예수교건, 무속신앙이건, 욕밖에 더 먹겠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고려 불교에서 중요한 지점은, 신앙 결사 운동을 살펴봐야 합니다. 앞서 살펴본 거두 지눌 스님은 불교계의 타락과 세속화를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신앙 결사를 펼쳐나갑니다. 불교 이러면 안 된다고 혁신을 외치는 것이지요. 이것이 지눌의 수선사 결사 운동입니다. 또 이 때 백련사 결사 운동도 있었는데, 이 쪽에서는 교종 승려 요세가 주도하는데, 참회를 강조합니다. 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는 의미지요. 이처럼, 불교 내부의 잘못들을 혁신하기 위한 고려 무신기의 결사 운동들 은 반드시 체크해 둬야 합니다. (거꾸로 접근하자면, 그만큼 불교가 점점 세속화 되고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커져갔다고도 볼 수 있겠고요.)
이제 마지막으로 살펴볼 인물은 지눌의 제자인 혜심 입니다. 혜심은 유불일치설을 내놓았는데요, 유학과 불교에는 일치하는 모습들이 있다 고 본 것입니다. 말하자면 불교의 문화 영역에서도, 얼마든지 유학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기반이 될 수 있는 지점입니다.
안타깝게도 고려의 불교는 몽골침입 이후, 원간섭기에 이르게 되면, 점차 타락해 갑니다. 장사를 통해 돈을 추구하고, 넓은 땅을 가지고 있고, 보기 안 좋은 모습들을 줄줄이 보여줍니다. 불교의 개혁을 주장하는 보우 같은 스님도 있었지만, 역부족이었지요. 불교는 스스로의 입장을 돌아보지 못하면서 기울어 갑니다, 이후 고려 후기 등장하는 떠오르는 신흥강자 신진사대부 세력들은 가차 없이 불교를 대놓고 집중 비판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종교가 돈과 권력을 추구하고, 거대한 공간을 점유하고 있으면, 그 때부터 기울고, 욕먹는 건 역사의 당연한 교훈입니다.)
이제 도교와 풍수지리설도 짧게 살펴봅니다. 도교는 (유교, 불교 보다는 못하지만) 고려시대 유행하면서 국가에서 지원을 받기도 했습니다. 팔관회 같은 경우는 불교, 도교, 민간신앙의 복합적 성격이라 할 수 있고요. 다만 도교의 경우는 교단이 성립되지는 않았습니다. 국가에서 어느 정도 도교를 포용하고, 행사를 지원했었다 정도. 한편 풍수지리는 고려 초기 서경길지설을 비롯해서 3경이 나오는데 논리적 근거가 되어줍니다. 고려에는 개경, 서경, 동경(후에 남경)이 있었고요. 한가지 더, 상대적으로 위쪽에 있는 서경(평양)을 중시한다는 것은 북진적인 성격이 있다는 점도 염두해 둡시다. 문벌귀족 시대가 되고, 안정화, 보수화 단계로 접어들면, 오히려 남경(서울)길지설이 새록새록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 언급했지만 문화는 그 시대의 영향을 받게 된다니까요. 이러다보니 문벌귀족 시대의 커다란 싸움을 또 이야기 해야겠네요. 서경파(북진주장/묘청)와 개경파(금나라사대)가 서로 피보면서 싸웠다는 것도 풍수지리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서경천도를 주장하던 세력은 패배했고, 북진도 점차 시들시들 해지고, 후에 남경이 명당이 되어가는 과정은 풍수지리 단골 문제입니다. (참, 비교삼아, 삼국시대의 수도나 중심지이전은 풍수지리와는 다릅니다.)
여러가지 사상, 이념들은 개별적으로 존재하거나 탄생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시대를 주도하고 있는 세력들에게 영향을 강력하게 받고 있음을, 반드시 고려해 보는 자세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면 이제 이쯤에서 끝내면서, 오늘의 영감 - 현대의 모습들은, 무엇에 의해서 강력하게 영향을 받고 있는지 생각해 볼까 합니다.
저는 무한 경쟁주의를 우려하는 편입니다. (물론 당연히 공정한 경쟁은 필요하고,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중소 통신사까지 넓게 퍼져서 10개쯤 되어 서로 경쟁을 치열하게 했다면, 그리고 강자끼리 암묵적 카르텔(담합)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의 통신비는 더 줄었을 게 분명합니다. 기본요금은 최대한 낮게, 필요한 만큼의 통화량과 데이터량을 충전해서 쓰게 하는 편이 누가봐도 합리적이니까요. 기계값 지원을 미끼로 (회사측) 모두가 비싼 정액제도를 권하고, 그런 분위기를 표준화 시키려는 모습은 상당히 슬픈 대목입니다.)
어쨌든 심각한 문제는 끝없는 경쟁과 승자독식주의 확산입니다. 어지간한 좋은 직장은 이미 경쟁률 100대 1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2013년 기준 9급 공무원도 이제 200대 1에 육박합니다. 괜찮은 사기업에 취직하더라도 임원이 될 가능성은 1% 보다 낮습니다. 105.2명 중에 1명이 임원이 된답니다. 나머지는? 때가 되면 알아서 나오거나, 조정되거나 잘리거나 등등... / 모두가 먹고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대신에, 승자가 아주 많은 것을 누리며, 패자는 죽음 직전 상황에 내몰리는 사회는, 결국 반작용으로 "막나가는 사람"들도 증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차가운 사회불만은 극단적행위, 즉 범죄 정당화나 자살로 이어지는 씁쓸함과 연결되겠고요.
저축 대신 한방을 노리고, 약한 곳을 흠잡기 바쁘고, 서로를 물어뜯으면서 위로(?)하는 구조는 "비참하고 비열한 사회"로 흐르기 쉽습니다. 2011년 기준 한국은 여전히 OECD 노동시간 2위를 기록중입니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까지 일해야만 간신히 먹고 살 수 있는 사회라면, 슬프고도 슬픕니다. 제가 일하지 말고, 놀고 먹자는 이야기를 하는건 전혀 아닙니다. 인간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환경을 만들어 놓으면, 그건 부메랑처럼 돌아와서, 우리와 우리 아이들을 병들게, 미치게 만들 것입니다. 돈이 신과 같은 대우를 받고 있는 세상이 아니라, 인간이 올바른 대우를 받는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 갈지 고민해 본다면 좋겠습니다.
경제적 기반이 붕괴되어갈 때, 사람이 얼마나 슬픈 눈물을 흘리게 될까요. 갑갑한 고통 속에서 얼마나 괴로워 하게 되는지요. 조금 가난해도 얼마든지 존중받으면서 행복하게 어울릴 수 있는 문화, 약자나 실패자를 비난하기 보다는 다시 일으켜 세우는 문화, 우리가 그런 따뜻한 문화강국이 될 수 있는 날을 소망해 봅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