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조선 체제 안정 과정 - 유교적 법치 국가를 향하여

시북(허지수) 2013. 4. 30. 19:01

 새로운 나라가 세워졌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법과 제도가 완성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안정화 되는 과정을 살펴볼 시간입니다. 조선은 태조 이성계에 의해서 건국되었다지만, 어디까지나 태조는 무인 출신이고, 칼잡이 아니겠어요. 조선의 밑그림은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정도전이 다 그려놓습니다. 대체 무슨 일들을 했을까요? 정도전이 꿈꾸던 조선의 스케치를 따라가 봅시다.

 

 조선경국전(법전), 경제문갑을 통해서 통치질서를 정해나갑니다. 또한 불씨잡변을 주장하면서, 강력하게 불교를 비판합니다. 정도전은 어디까지나 재상중심의 정치질서를 지향했으며, 민본적 통치 규범을 꿈꾸던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잠깐 장문 여담으로, 정도전은 취중에 이런말까지 했다고 합니다. 중국 한나라 건국에 빗대어 "한고조가 장자방 장량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장량이 한고조를 이용한 것이다!" 아무나 일등공신, 최고권력을 휘두르는게 아닙니다. 야망이 있었던 정도전이지요. 조선은 성리학을 바탕으로 하는 정도전에 의해서 거대한 흐름이 설계될 수 있었습니다. 성패와 영욕은 하늘이 정한다는 정도전의 모습은, 국가의 중심부에서 혼신으로 이상을 실현시켜보고 싶었던 모습으로 비춰집니다.)

 

 그런데 뒤이어 태종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면서, 많은 것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한 가지를 확실하게 파악해 둡시다. "태종은 미친듯이 왕권을 강화해 나갔다!" 피바다 조선이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거역하려는 도전자들은 무자비하게 숙청 되었고, 라이벌 정도전도 이 과정에서 제거됩니다. 권력을 누릴 수 있다는 이유로, 심지어 왕비의 남동생들까지도 숙청되었습니다. 조선은 일반적으로 왕 → 의정부(재상) → 6조로 흘러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태종은 이것도 못마땅 했습니다. 재상의 나라는 무슨! 왕의 나라를 만들테다! 태종은 6조 직계제를 전격 시행합니다. 이거 시험에 단골코스니, 꼭 체크합시다. 말그대로 왕이 곧바로 6조에게 보고 받고, 지시 내리는 구조라고 보면 됩니다.

 

 뿐만 아닙니다. 사간원을 독립시켜서, 신하들을 견제하는 도구로 활용합니다. 신하들의 설 곳과 입김을 하나 하나 부숴버린다고 볼 수 있는데, 거의 고려 광종과 유사합니다. 공신들이 갖고 있던 사병제도를 혁파해 버리고, 노비를 해방시켜 줍니다. 양전 사업을 통해서 권력이 몰리는 것을 막고, 토지를 뺏어옵니다. 호패법을 실시해, 국가에서 사람들을 관리할 수 있도록 힘씁니다. 이 모든 것이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입니다. 어떤 악업도 마다하지 않았고, 손에 피를 묻힌 태종은 자신의 역할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옛날 유행한 드라마에서는, 냉철하기 짝이 없는 비범한 태종이, 눈물을 흘리며 장남 양녕에게 말하길, "내가 이렇게 잔인한 역할을 해내야, 너의 세상에서 비로소 빛나는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리라" 라는 유명한 장면이 있지요. 물론 왕위는 셋째 아들 세종이 이어받습니다만. 어쨌든 세종이 눈부신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바탕에는, 아버지 태종의 잔인하고 과감한 역사적 행동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태종이 왕권을 강력하게 끌어올려 놓았기 때문에, 세종이 제대로 일들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지요. 누군가 왕권을 강화시켜서, 조선의 안정을 만들어 놓는다면, 그 역할은 내가 온힘을 다해 하리라! 태종이 한평생 추구했던 모습입니다.

 

 그렇게 하여, 세종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 때만큼, 조선이 어마어마한 번영을 누렸을 때가 있었을까요? 너무 많은 일을 했기 때문에, 문서를 한가득 쓸 수 있겠지만, 정치면에서 중요한 것 몇 개를 살펴보고 정리해둡시다. 세종은 스스로가 공부를 많이 한 것으로 유명한데, 신권과 왕권이 조화를 이루어 가는 왕도 정치를 추구했습니다. 6조 직계제 대신에, 의정부 서사제를 시행합니다. 재상을 거쳐간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당시에는 맹사성이나 황희 같은 뛰어난 재상들도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태평성대라고 합니다. 훌륭한 왕과, 명석한 신하. 이들이 더 좋은 나라를 꿈꾸며 손과 발을 맞추어 가며 일들을 해나갈 때, 우리는 감탄하게 되는 것입니다.

 

 집현전을 설치 해서, 신하들과 더 좋은 정책을 연구했고, 군사적인 면까지 뛰어났습니다. 북방 여진족에게는 강경한 노선을 밀어붙여서 4군6진을 개척하며, 오늘날과 같은 영역까지 국경을 확장 합니다. 남쪽으로도 쓰시마(대마도) 정벌에 나서면서, 왜구가 침입해 오지 못하도록 단단히 기세를 올려놓습니다. 한글을 창조하고, 수많은 과학 발명품을 만들어 냅니다. (존경받는 군주, 가령 한국의 세종이나, 미국의 링컨 같은 인물들을 보면, 자신의 자리에서 얼마나 지독하게 열정을 다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영화 링컨에서 그는 1년만에 거의 10년만큼의 기력이 쇠한 것으로 묘사되는데, 세종도 무리한 업무와 평소부터 약했던 몸이 결국 훗날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집권 후반기에는 너무나 쇠약해 지고 맙니다. 명군, 성군, 뛰어난 지도자가 되려는 인물은 무엇보다 드높은 비전에 미쳐야 하지 않을까요?)

 

 한편, 세종이 죽고난 뒤로는, 상당히 정치가 문란해 집니다. 신하들이 입김이 점차 세지고, 관료가 귀족화 되는 경향이 생기고, 왕이 허수아비가 되어갑니다. 어쩌면 선대의 태종 이방원이 우려하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지요. 이 때, 세조가 계유정난(쿠데타)을 일으키면서 새로운 왕에 오릅니다. 당연히 정통성이 약했기 때문에, 이들 세력은 왕권을 철저히 강화하면서, 측근 중심 정치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은 훈구파로 불리기 시작했고요. 왕권 강화를 위한 빠른 방법은, 재상이 끼어들 여지를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6조 직계제로 가고, 집현전은 없애버리고, 경국대전(법전)사업을 시작합니다. 도덕적 결함이 있던 왕이 었고, 강압적 통치를 통해서, 왕권을 재차 강화해가고자 합니다. (왕권 강화 측면에서는 태종과 세조는 유사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성종이 되면, 마침내 경국대전이 완성되고, 조선의 법제적인 질서가 이루어집니다. 성종은 의정부서사제를 부활시켰고, 홍문관을 설치해 대화의 장을 만듭니다. 여기에는 경연과 서연이 있었는데, 경연은 왕과 신하가 대화하고 공부하는 것을 의미하고, 서연은 왕자와 신하가 공부해 나갑니다. 이제 조선은 유교적 법치를 이룩한 나라가 되었지요. 체제 안정은 이토록 쉬운 과정이 아니었던 겁니다. 생각보다 길어졌던 문서를 정리하면서, 특별히 중요한 대목은 6조 직계제와 의정부 서사제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직계제 시도는 왕권 강화이며, 반면에 의정부를 거치게 되면 신권(재상)이 비교적 중시되며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추구했다고 파악해 두면 OK.

 

 오늘의 영감은 질문입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악역을 맡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입니다. 좋은 리더의 바탕에는 "쓴소리"가 있을 때가 많습니다. 하기 싫은 일이라도, 반드시 필요하다면 철저하게 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 걸까요? 어떤 역사적 인물들은, 짐승같은 비천함을 감수하면서까지, 평화로운 시대를 열려고 합니다. 고귀하고 폼나는 성인이 되지는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혼란을 종결시키고, 안정화를 이루어서, 올바른 일들을 해나갈 수 있는 기반을 닦으려고 합니다. 오늘 문서의 최고 악역 태종 이방원의 삶이 그러합니다.

 

 역사적 모습을, 개인의 삶에 감히 투영시켜 볼 때, 우리는 위대하고 존경받는 삶을 살아내지 못할지라도, 적어도 "더 나은 삶"을 향해서 걸어갈 용기는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철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스멀스멀 걱정과 두려움, 부정적인 마음이 올라올 때, 단호하게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지금을 보내겠다고 더 철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좋은 미래는 단 한 번도 저절로 오지 않았음을 기억한다면, 오늘을 어떻게 보낼 것이며,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를 고민해 보면 좋겠습니다. 인생은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