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마음으로 조선의 행정조직들을 살펴봅시다. 조선의 관료들은, 중앙을 담당하는 경관직과, 지방을 담당하는 외관직으로 나눠서 살펴보는게 편하겠지요. 먼저 중앙의 경관직은 의정부와 6조, 그리고 3사, 그 외 몇가지 기구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의정부에는 3정승이 존재하고요, 이들은 지금의 수상이나 국무총리와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6조는 실무를 담당하는 곳이라 할 수 있으며, 각각 이,호,예,병,형,공조가 있습니다. 지난 문서에서 잠시 살펴보았지만, 의정부 서사제로 가느냐 6조 직계제로 가느냐는 살짝 차이점이 있습니다. 서사제는 신하의 동의를 받고서 일을 처리해 가느냐 이고, 직계제는 곧바로 실무팀에 직접 지시를 내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3사에는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이 있습니다. 이들은 언론기능 이 있기 때문에, 시험에도 자주 나옵니다. 특히 비교를 대비해, 고려의 3사는 언론기능 없이, 회계기능만 있었다는 점도 같이 정리해 둡시다. 사간원은 간쟁하는 곳이고, 사헌부는 검찰과 비슷한 감찰기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홍문관에서는 정책을 논하는 기능을 했고요. 재밌는 조직문화로는, 비판(간쟁)담당인 사간원은 자유로운 분위기가 중시되었다고 합니다. 옷도 비교적 자유스럽게 입고, 무엇이 문제인지 "마음껏 이야기"하는 조직이라서 그랬겠지요. 한편 사헌부는 엄격한 분위기에서 각잡는 꼼꼼함을 보여줍니다. 이게 꼭 오늘날 기자와 검사의 모습과 비슷한 측면도 있습니다. 편안한 청바지로 자유롭게 말하는 기자와, 정장을 차려 입고 진지하게 접근하는 검사의 모습! 하는 일에 따라서, 환경도 영향을 받는 듯 합니다.
경관에는 비서 기관을 맡고 있는 승정원이 있었고요 ("승"자는 비서기능을 의미합니다), 이름 그대로 한성부는 수도업무를 맡았고요. 성균관은 최고 교육기관 입니다. 또한 기록을 담당하는 춘추관이 있었고, 끝으로 반역자들을 다스리는 의금부가 있었습니다. 의금부는 왕권을 강화하는 기능을 하는데 그 이유는 고찰해 볼만 합니다.
사실 역모라는 죄를 뒤집어 씌워서 정적을 제거하는 수법은 예나 지금이나 "정치적 필살기"중에 하나입니다. 진짜 죄인도 있겠지만, 국왕의 명을 통해서 얼마든지 "개인"을 조사하고 털어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뭐라도 하나 딱 걸리면 곧바로 집어넣어 버리고, 유배나 숙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진짜 역모를 생각하지는 않았더라도, 몰이를 당해서 "역적화"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오늘날은 약간 변형된 수법이 유행합니다. 일단 저 사람 뭔가 "이상한 녀석"이라며 이미지를 씌워버림으로서 강력한 정치적 타격을 가할 수 있습니다. 뭔가 잘못이 있는 것처럼 꾸며서 판결을 받게 만들어 버리면, 무죄로 결정나더라도, 그 긴 싸움에서 고생하며, 심지어 재기불능에 빠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현명한 시민이 되어서, 정치 공학에 속지 않는 안목을 길러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진짜 나쁜 놈이 누구이고, "나쁜 이미지"라는 공작기술에 당하는 인물들이 누구인지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가만 보면 개혁과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기존의 힘을 누리는 세력들에 의해서, 모함받기 쉽다는 것을 생각해 봐야겠고요.
어쨌든 경관직을 최종정리하면, 왕권강화와 연관이 있는 기관은, 의금부, 승정원(비서), 6조가 있겠고요. 왕권을 견제하는 기관은 3사(언론기능), 의정부 가 있습니다.
이어서 외관직을 살펴봅시다. 외관이라 함은 지방에 파견되는 관리를 말합니다. 조선은 전국이 8도로 나눠져 있고, 그 밑으로 부,목,군,현이 있습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지방관이 전국에 파견되며, 이들이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이해하는게 중요합니다. 8도에 파견되는 지방관을 "관찰사"라고 하는데, 감영에서 활약합니다. 부,목,군,현에 파견되는 지방관을 "수령"이라고 하며, 구체적으로는 부사,목사,군수,현령의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흔히 사또라고 부르는 것도 수령을 의미합니다. 즉 지방의 사또들은, 힘이 강했고요. 왜냐하면 지방에 파견된 이들은 많은 권한, 그러니까 행정권, 군사권, 사법권까지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왕의 오른팔과 같았습니다. 왕과 연결되어 있는 지방관들이었고, 그러므로 어지간한 억울한 일들은 수령이 해결해 버립니다.
지방관이 가진 사법권이 분리가 되는 것은, 거의 조선 말기인 1895년 갑오개혁이 되어야 재판소가 설치되니까요. 다시 말해, 오랜 세월 수령들은 행정을 책임지며 서민 생활과 직접적 연관이 되는 중책을 담당했던 셈입니다. 당연히 관찰사도 권한이 무척 쎘는데, 이들은 상설행정기구도 있었고, 수령을 감시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에 자주 나오는데, 고려시대와 비교해 본다면, 고려시대는 5도 양계 라는 이원화 구조였잖아요. 그에 비해, 조선은 8도로 일원화 되어있고, 지방관들이 전국적으로 파견되어 있으며, 힘이 셉니다. 고려의 안찰사는 5도를 순회하며 상설행정기구도 없었는데, 조선의 관찰사나 수령은 그야말로 지방의 갑(甲)인 존재라 하겠습니다.
또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는 향리의 역할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고려시대에는 외역전시까지 지급되며 향리가 큰 역할을 했지만, 조선시대에서는 대폭 역할이 축소됩니다. 조선의 향리라고 한다면, 수령 밑에서 6방을 맡고 있는 수령보좌관이라 볼 수 있는데, 지위가 한참 낮고, 심지어 무보수라고 합니다. 에? 무보수로 일한다는게 이상하잖아요. 맞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조선 후기로 가면 이 향리들이, 서민들을 마구 쥐어짜면서 많은 문제점들이 발생하게 되고요. 다시 말해, 고려의 지방 행정을 향리가 담당했었다면, 조선시대에는 지방 행정을 수령이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할 것은, 고려시대에 있던 향, 부곡, 소는 이제 소멸되었고요. 조선시대에는 부,목,군,현 밑에도 세부적으로 면, 리, 통이 있었습니다. 면임, 리정, 통주라는 담당자들은 지방관은 아니었고요.
오늘의 영감 - 솔직히 행정 조직에 관해서는 별로 재밌게 이야기 할 역량이 되지 못합니다. 오늘날로 치면, 국회의 기능을 어떻게 재밌게 설명하란 말인가요 ㅠ_ㅠ... 패싸움 하는 곳? 농담입니다. 뭐 어쨌든 고려를 귀족의 나라로도 볼 수 있다면, 이제 조선은 관료의 나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후대 사람들이 지금의 한국을 설명할 때, 재벌의 나라라고 쓰는건 아닌지 걱정(?) 할 때가 가끔 있습니다. 경제력을 앞세워서, 하나하나 장악해 나가는 모습이 엄청나니까요.
구조적으로도 그렇고, 의식적으로도 그렇고, 그저 일상생활을 살아가면서 지출을 했을 뿐인데도, 누군가는 저절로 그 구조 속에서 계속해서 부자가 된다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재벌이 귀족화 되어서, 관료와 손잡고, 서민들에게 빨대를 꽂는다면, 또 정치적 로비 속에서 기득권에게 유리하도록 제도들이 정비되어 간다면, 그래서 서민들에게 우리는 정말 괜찮은 국가라고 나팔을 불고 있다면, 후대 역사가들은 지금의 한국사회를 뭐라고 쓸까요? 우리는 창의적이고, 생산적이며, 또한 정의로우면서도, 공동체적인 문화를 살려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파편화된 개인은 약할지 모르나, 힘을 모으고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고자 노력한다면, 희망은 거기서부터 이미 출발하고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