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긴장감"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고려에 비한다면, 조선은 좀 더 안정적인 분위기로 흘러가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요. 때로는 피바람이 불어닥치는 권력투쟁의 참혹한 모습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 중에 하나가, 무려 네 차례나 있었던 "사화"였지요. 간단히 사림 세력들이 화를 당했다 라고 요약할 수 있는데, 대체 이들은 왜 심한 화를 입었는지, 구체적인 장면들을 살펴보면서 오늘은 즐겁게 문서를 정리할까 합니다.
조선시대는 15세기까지 훈구파가 주도세력이었고, 16세기 이후부터는 거의 400년간을 사림에서 주도하게 됩니다. 뭐, 사림도 나중에는 서로 의견이 맞는 사람들끼리 당을 형성하고, 붕당정치를 해나가지만요. 어쨌든 오늘의 주요장면들은 사림의 성장기 입니다. 훈구파를 공격하면서 떠오르기 시작하는 사림이었지만, 정권교체라는 것은 실제로 엄청나게 어려운 일 중에 하나입니다. 4번의 사화를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는데, 그럼에도 사림은 끝없이 명맥이 유지되면서 선조 때가 되어서 완전히 주도세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지요. 비결이 뭘까요?
집권하던 세력인 훈구파는 중앙집권을 추구하고, 대농장을 소유한 기득권 세력이었지요. 그에 비해서 투쟁을 하고 있던 사림파는 상대적으로 가벼웠습니다. 중소지주였고, 향촌자치를 추구했는데, 특히 3사(언론기능)를 장악하면서 부정과 부패를 비판하는 역할을 맡았지요. 일단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계속하면서 정치적 명분까지도 위협하기 시작하자, 훈구도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사화를 일으키며 사림에게 무자비한 역습을 가하지요.
정치적 승리를 위해서는 세 가지가 중요합니다. 첫째 몸집을 유지할 기반이 있어야 합니다. 한 방에 쓰러져서야 이길 수 없잖아요. 둘째 도덕적으로 깨끗해야 합니다. 너도 털어보니 더럽잖아 라고 공격받기 시작하면 할 말이 없어질테니까요. 셋째 변함없는 명분 즉 원칙과 소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불굴의 자세로 기나긴 싸움을 해나갈 때, 마침내 역사적인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작은 일에 좌절할 필요도 없고, 만신창이 몸이라도 일어서면 되고, 올바른 가치를 외칠 수 있다면, 이것이 최후에는 정치적 승리를 안겨줄 수 있지요. 그래서 혹자는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라고 합니다. 도전하는 신세력들에게, 응전할 명분이 없으면 기득권은 바뀌기 마련입니다. 아이구, 너무 길어졌는데, 여하튼 사림들은 유향소에서 여론을 장악했고, 서원에서 끊임없는 인재를 양성하고, 향약을 통해서 농민을 통제합니다. 든든한 배경 이 있었기에, 사화를 겪어도 사라지지 않았지요.
앞선 두 번의 사화는 연산군 때 일어났습니다. 연산군은 흔히 알려진대로 폭정의 아이콘이기도 하지요. 폐위되었기 때문에 실록도 없고, 연산군일기로 남겨진 군주. 물론 당연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에 연산군에 대한 평가는 관점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접근할 수도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는 있습니다. 한 쪽의 시선을 지나치게 맹신하는 것도 위험할테니까요.
첫 번째 사화는, 무오사화 입니다. 시발점은 "김종직의 조의제문"이었지요. 이 글은 항우를 비판하고 있었는데요. 초나라 항우가 조카를 죽이고 왕이 되었기 때문에, 이런 태도는 안 된다는 논지였습니다. 과연 원칙중시 사림의 느낌도 확 나네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비슷한 사건이 어디선가 있었는데, 어??? 쿠데타로 집권한 세조가 딱 그랬잖아요! 자, 여기서 김종직의 제자 김일손(당시 춘추관 역사기록 담당)이 무려 이 이야기를 싣고자 합니다. 보자보자하니, 왕이나 훈구파 입장에서는, 사림들이 하는 행태가 영 거슬리고, 불편하고, 짜증나기 시작합니다. 안그래도 사림들이 자꾸 3사에 진출해서 부정과 비리를 계속 고발하고 있었으니 더욱 그렇지요.
마침내 뚜껑열린 왕과 훈구세력들이 힘을 모으고, 조의제문을 싣는 것을 꼬투리 잡으며 맹공에 나섭니다. 조의제문? 이 개XX들아! 선왕을 능멸했도다!!! 숙청해버려야 한다!!! 이미 작고한 김종직은 시체훼손(부관참시)까지 되었고, 많은 사림파들의 목이 달아났습니다. 왕과 훈구세력이 반대파 사림을 공격하는 전형적인 모습이지요. 이후 한동안 3사 기능이 약화되고 맙니다. 언론까지 입맛대로 장악하는데 성공한 것이지요. 내 사람을 딱 앉히고, 권력을 한껏 즐깁니다. 그리고, 역사는 가차없습니다. 바로 이런식으로 나가기 시작하면, 정치가 망하는 소리가 들리지요. 꼭 보면 정치를 못할 수록, 언론부터 슬그머니 장악하려고 한다니까요 :) 잘하고 있다고 계속 떠들어 줘야, 합리화를 통해, 정당성이 인정받는다고 안심하며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보여지는게 전부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 뒤에 무엇인가 더 깊은 의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몸통을 놔두는 꼬리자르기로 끝나는지, 혹은 종국에 무죄로 끝나버린 정치적 공작이었는지, 다양한 이면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이제 두 번째 사화까지 이번 문서에서 살펴보지요. 갑자사화 입니다. 연산군이 어머니의 죽음을 명분삼아, 분노에 차올라 처참한 복수극을 펼칩니다. 그런데 냉정히 보자면 권력 강화를 위한 꺼리로 지나간 사건을 활용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연산군은 왕권강화를 밀어붙이며, 무자비하게 사림과 훈구파까지도 세트로 맹공격을 하면서 무차별 숙청을 시작합니다. 조정은 피바람이 불었고, 반대파들은 대대적으로 쓸려나갔지요.
"사화"는 엄밀이 살펴보면, 훈구vs사림의 이분법적인 구조뿐만 아니라, 왕과 신하사이의 긴장감으로도 접근할 수 있습니다. 조선은 왕권과 신권의 투쟁이 계속되는데, 왕권은 전반적으로 강한 편이 아니었지요. 결과적이지만, 갑자사화를 통해서 연산군이 반대파를 쓸어버리는 것까지는 정치적 성공일지 모르나, 결국 중종반정에 의해서 연산군은 폐위되고 맙니다. 또한 16세기부터 점차 역사 주도세력은 사림파가 주류가 되고요. 따라서 사림을 쓸어버리려 했던 연산군을 당연히 우호적으로 묘사할 수 없었겠지요. 변태 패륜아에, 폭압정치에, 마치 쓰레기폭군으로 포장되기 쉽습니다.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연산군의 포장을 제거하고 본다면, 성리학으로 경직되고 고착화되어가는 조선 사회를 한 번 바꿔보고, 깨보려는 왕이었을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러한 해석들도 있다라는 것을 소개했습니다. 한 쪽으로만 받아들이는 주입식 역사는 지나친 승자중심의 역사관이니까요. 이제, 나머지 두 건의 사화는 다음 문서에서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아래부터는 여담입니다)
영감 - 재밌는 공통점 하나 소개하자면, 백제 의자왕, 고려 공민왕, 조선 연산군, 같은 인물들은 하나 같이 총명했던 어린 시절을 가지고 있다가, 어느 순간 주색잡기에 빠지면서 정신줄을 놓았다라고 일관되게 주장됩니다. 뒤집어보면, 이들은 주류사회에 불편한 이야기를 했다거나, 이들이 나빴기에, 우리가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라는 명분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인간은, 미운 사람을 좀처럼 칭찬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역사는 얼마나 커다란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갈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이야기를 많이 하고, 올바른 행동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꾸준히 늘어갈 수록, 미래는 밝아질 것이며, 반면에 여론이 왜곡되고, 언론이 장악되며, 통제된 진실이 조금씩, 꾸준히 늘어갈 수록, 미래는 잿빛으로 변해갈 것입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