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면서도 절제되어 있는 느낌이 일품인 영화 이스턴 프라미스를 보았습니다. 주연 비고 모텐슨의 차가운 연기는 압도적으로 비춰지는데, 극의 주인공 니콜라이는 과거도, 실력도, 정체도,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관객은 그의 모습들을 따라가며, 저절로 호기심이 발동하게 됩니다. 영화는 느린 템포로, 차분하면서도 긴장감 있게 그려집니다. 보통 사람에 속하지만 용기 있는 안나의 호기심은, 이윽코 관객의 호기심이 되고, "저 남자는 누구인가?", "이 일기장에 담긴 진실은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해서 영화가 현실적으로 전개되어 나갑니다.
이 작품은 특히 초반과 후반이 굉장히 강렬한 편인데, 불과 14살 아이가 겪어야만 했던 고통을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어서, 일기장을 읽어내려가는 순간마다, 강한 감정적 동요를 하게 됩니다. 단지 더 좋은 삶을 살고 싶어서, 부푼 기대를 안고 이른바 잘 사는 국가로 건너왔지만, 소녀가 마주해야 했던 현실은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생각되는 "생지옥"이었지요. 탈출구도 없이, 도움을 받지도 못한채, 끝내 쓰러지고 마는 소녀의 죽음 앞에서, 발견하게 되는 사실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슬픔입니다.
영화가 진행되면 이 일기장의 참혹한 내용들을 여러 사람이 알게 됩니다. 안나의 경우, 진실을 알게 될수록 더욱 용감한 태도로 파고들며, 보통 사람이 가진 거의 최대치의 강인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니콜라이의 경우 슬픔에 대하여 최대한의 절제심을 통해, "14세 소녀가 만나야 했던 지옥같은 현실에" 단지 침묵으로 묵념하는 듯 느껴집니다. 서서히 알게 되는 니콜라이의 모습은 강인하고 차가우면서도, 속깊은 배려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면,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이스턴 프라미스는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앞부분과 뒷부분은 싹둑 잘라내고, 그야말로 핵심적인 내용들만을 중심으로 해서 무겁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관객은 생략된 부분들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각자의 미래는 어떻게 변해갈지 자신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의도적인 공백 처리지요. 보여줄 것만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방식을 통하여, 이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게 무엇인지, 어떤 느낌을 전해주었는지 속기로 남겨볼까 합니다.
니콜라이는 조직에 몸담게 되면서, 원하지 않는 일들도 마주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시체를 처리하는 방법은 이제 능숙해져서 누구보다 일을 잘하게 되었지만, 키릴의 강압적인 명령 앞에 - 원치 않는 일을 해야할 때는 상당히 갈등하고 고통스러워 합니다. 일인자를 원하지만, 거기까지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괴로운 고생을 더 해야하는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의 후반 조직이 냉정하게 니콜라이를 폐기부품으로 처리해 버리는 모습은 처참한 현실의 속살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어두운 모습만을 이처럼 극적으로 잘 보여주는 영화는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가진 게 없던 소녀는 희망이 이용당하며 나락으로 추락해 들어가고... 실력을 가지고 있던 니콜라이는 훌륭하게 일을 해나가다가, 어느 시점에 "느닷없이 해고" 되어 버립니다. 한편, 조직의 킹 세미온의 "아들 키릴"은 단지 왕자라는 이유로 특별한 대우를 계속해서 받아누립니다. 탐욕스럽고 무서운 인간이 어디까지 "악마화" 되어갈 수 있는지 보스 세미온은 섬뜩하리만큼 잘 보여줍니다. 인간의 탈을 벗어버린 채, 그는 소녀의 영혼을 죽이고, 어린 아이의 생명까지 던져버리게 만듭니다.
그런 조직이었기에, 키릴도, 니콜라이도, 살아가는게 도무지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폭압적인 지배자가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순간, 한 명의 제왕과 명령에 복종하는 1급 노예, 자유를 말살당한 2급 노예들만 있음을 보여줍니다. 노예였기 때문에, 그의 아이도 역시 노예일 뿐이라고 차갑게 쏘아붙이는 영화의 대사는 급소를 찌르는 아픔이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나중에 긴장관계가 있던 키릴과 니콜라이가 서로 보듬어 주는 모습은 진한 여운을 줍니다. 키릴은 태어날 때부터 별을 박아넣은 (자랑스러운 조직원이 아닌) 선택을 박탈당한 삶을 살아왔기에, 포옹을 통해 짧은 순간이지만,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해주는 니콜라이가 너무나 고마웠지 않았을까요.
강인한 니콜라이가 저는 정말이지 좋았는데, 그가 싸움을 잘해서 그랬던 것만은 아닙니다. 계속해서 일기장을 읽어내려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냉혹한 현실을 반드시 기억하기 위해서", "처참한 슬픔을 더 이상 만들지 않기 위해서" 차오르는 분노와 슬픔을 꾹꾹 눌러가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았습니다.
현실을 움직이려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니콜라의 정도의 강인한 의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약한 자에게는 배려심을 잊지 않고, 할 수 있는데까지 노력하고, 강한 자에게는 최대한의 의지로 맞서나가는 태도. 저는 니콜라이가 만들고 싶어했던 것이, 새로운 세계 였다고 생각합니다. 긴 세월 동안 하나씩 문신을 새겨나가며, 언젠가 다가올 그 날을 위해서, 그 많은 엄청난 괴로움들을 견뎌왔을 한 남자의 인내에 감탄을 보냅니다. 조직이란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요, 그러나 그러한 세계를 바라보고 기억하며, 깨부수는 인간도 있다는 것이, 결국 사람 또한 얼마나 놀라운 지 느끼게 됩니다. 악의가 강할 수 있다면, 선의 역시도 충분히 강할 수 있는거지요.
절대적 권력 앞에서도, 언젠가 뒤집어 엎을 그 날을 꿈꾸며, 철저하게 절제하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영화 이스턴 프라미스. 무엇보다, 지옥 같은 현실이 있다고 해도, 그 속에서도 인간 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잔잔하지만 강한 여운"이 묻어있기에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 2013. 05.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