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Brokeback Mountain, 2005) 리뷰

시북(허지수) 2013. 5. 13. 19:42

 엄청난 특수효과도 없으며, 다만 자연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고, 그 속에서 선을 넘어가는 두 남자의 인생이 그려지고 있는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특히, 진한 여운을 남기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 그 질문에 순진한 돌직구를 던져주는 작품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듯 보입니다. "네가 있었기에 인생이 즐겁고 행복할 수 있었어, 고마운 사람, 영원히 잊지 않을 사람... 그대." 자칫 비난 받을 수 있는 주제인 동성애를, 주로 정중한 심리묘사에 쏟았다는 것도 칭찬받는 점이고요. 아, 이 작품은 남자의 인생과 사랑을 깊숙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제도를 따라서 결혼을 하고 생활하는 게 언제나 행복이라 할 수 있는걸까? 왜 사회는 소수자를 차별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걸까? 과연 동성 간의 사랑을 이해해본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완성도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제가 불편하게 느꼈던 것은, 초반의 용기 없는 선택 때문에, 남은 가족들이 사뭇 불편해 했다는 점이 묘하게 저를 괴롭혔습니다. 다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는 매력적인 영화 속으로 떠나봅니다.

 

 

 잭과 에니스는 돈을 벌기 위해 브로크백 산에서 농장 일을 하는데,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출발됩니다. 우연한 계기로 둘은 같은 일을 하게 되었는데, 이윽코 험한 상황에서 곤란한 일들을 겪어나가면서, 조금씩 친밀해져 갑니다. 따뜻한 배려심과 타인을 위하는 마음이 무엇보다 인상적인데, 마음이 잘 통하고, 보기만 해도 즐거웠던 둘은 점차 우정 이상의 관계로 발전해 나갑니다. 여기까지가 기본적인 배경라인이지요.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문제는 농장 일이 끝나면서부터 입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순간부터, 작별인사를 하게 되는 순간까지 두 사람의 마음이 별로 편하지 못합니다. 즐거웠던 순간이 끝나고, 인연이 끈이 사실상 떨어져 나가는 지점인데, 어쩔 수 없다며, 끝내 두 사람은 떨어져 지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조금 더 용기를 내지 못했고, 현재의 사회 시스템에 걸맞게 살아가기 위해서 각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힘들고, 부족한 돈으로 살아가기도 여전히 힘든 현실입니다. 에니스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마음이 무겁습니다.

 

 잭은 아버지 몰래 배웠다는 로데오에 도전하지만, 이런 일을 한다고 해서 허전한 마음이 달래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부잣집 딸 루린과 결혼에 성공하는, "로또 인생"을 맞이하지만, 여전히 행복하지 못합니다. 장인은 잭을 깔보고, 루린과의 일상은 단조롭기만 합니다. 그렇게 현실을 보내면서 두 사람은 깨닫게 되는게 아닐까요. 아...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은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보냈던 그 시절이구나. 함께 시간을 보냈던 그 때가 얼마나 좋았던가!

 

 4년이라는 상당히 긴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잭과 에니스는 만남을 가지게 됩니다. 두 사람 모두, 처자식이 있었고, 좀 더 어깨에 짐들이 많아졌습니다. 한마디로 어른이 되었고, 행동에 제약이 걸려 있다는 거지요. 그럼에도 둘은 여전히 바라만 봐도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같이 여행을 떠나서, 시간을 보내는 그 순간만이 "생의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1년 360일 가까이를 힘들게 살고, 불과 4-5일 남짓을 즐겁게 사는 인생이라면, 사실상 힘겹고 괴로운 삶으로도 볼 수 있겠네요. 게다가 부인 알마는 이 모든 것을 눈치 채면서, 힘들어 하는 모습까지 섬세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자연은 아름답고, 사람은 살아가는데, 이들의 인생은 행복한 날이 없다는 부조리함이 꽤나 묵직하게 느껴집니다.

 

 사랑을 추구하는 에니스가 나쁜 사람일까요? 에니스를 바라보면서 눈물 짓는 알마가 나쁜 사람일까요? 먼 길을 달려오는 잭이 나쁜 사람일까요? 저는 굳이 어떤 가치 판단을 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다들 그냥 사람일 뿐인데, 서로가 불행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슬프고 무겁다는 느낌이 계속됩니다. 특히 잭이 장인을 모시고 칠면조를 자르면서 식사하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모인 사람들 모두가 어떤 규율을 따르느라, 불행한 긴장관계에 놓인다는 게 영감을 자극했습니다.

 

 특별히 나쁜 사람도 없다지만, "목에 힘주어서 내 말을 강요할 때", 거기서부터 관계가 엉망이 된다는 기분이 들더군요.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잭과 에니스가 영화 후반부 "살아가는 괴로움"을 말하는 순간에는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나는 너와 함께 있고 싶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고, 너에게 이렇게 하라고 삶을 강요할 수도 없어서, 지금 너무 힘들 뿐이라고... 슬픔을 쏟아내는 모습은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듭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강요하지 않음", "선택을 존중하는 태도"일 것입니다. 여기까지 생각을 파고들면, 결국 에니스는 아내를 별로 사랑하지 않았기에 이혼했고, 아내의 재혼남과도 같이 식사를 하는 여유까지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랬던 그가 "다만 잭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는 것만은 절대로 참을 수 없었다"는 점. 이 사랑의 깊이와 무게감이 정말이지 압권입니다.

 

 바꿔서 생각해보면, 이 질문은 사랑에 대한 척도로 삼아도 되지 않을까요. "그 사람에 대해서 나쁘게 말했을 때, 나는 참을 수 있는가?" 절대로 못 참겠다면, 그 사람을 진짜로 사랑하는거지요. 그렇다면, 어쩌면 우리는 참 많은 것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조금 민망하고 쑥쓰러운 예를 들자면, 저는 오늘도 커피를 사랑하며, 저를 아껴주는 사람들을 깊이 고마워 합니다. 타인을 우습게 아는 사람들을 보면 참을 수 없는 울분이 차오르는데, 그것은 고통 당하는 사람들의 처량하고 아픈 마음을 속상해하기 때문이지요. 제가 유독 극중의 알마에게로 시선이 계속 갔느냐 하면, 어쩐지 버려진듯한 아내 역시도 재혼하기까지 충분히 괴로웠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론을 조금 세게 나가면, 결국 나쁜 사람이 있는게 아니라, 인간을 쥐어짜려는 제도가 문제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자연이 그 자체로 아름답다면, 인간 역시도 그 자체로 아름다울텐데... 그걸 가만히 놔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얻어낼까의 관점으로 대하다 보니, 인간이 물건화, 부품화 되어갑니다. 딸의 결혼식을 가고 싶어도, 농장 일이 바쁘니 마음대로 갔다가는 고용주에게 무슨 철퇴를 얻어맞을지 두렵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에니스는 용기를 내고, 딸의 편에 섭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상징적이기도 합니다. 더 이상 사회가 시키는대로만 하지 않고, 내 삶을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갖추는 것이지요. 잭과의 만남은 아픈 결말로 끝났지만, 에니스는 영원히 그 추억들을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살 것입니다.

 

 다시 말해, "조금 더 용기 내어 사는 태도"를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저 시간이 가는 대로, 여건이 되는 대로, 그렇게만 살아간다면, "중요한 일들을 하지 못하고"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바쁜 일들에 치여서 하루 하루 보내기 급급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럴 때 일수록, 잠깐 멈춰서서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라고 질문하고, 결단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랑 없이 살아가는 인생이란 그야말로 고통 밖에 없을테지요. 그럼에도 인간에게 구원이 있다면, 고통 가득한 인생 속에서도, 나를 감싸안는 사랑이 찾아오는 순간, 그 때의 즐거움으로 살아갈 때, 사람은 건강한 마음을 얻게 되는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쓸데 없이 바쁘고, 쓸데 없이 시간을 낭비한다면, 잭의 말을 들어봄직 합니다. (설명을 넣어 의역하면) "사랑하는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부족했어, 절대로 부족하기만 했다고." 인생은 사랑으로 채워나가기에도 참 짧습니다. 사랑하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는 연습을 지금 당장 해야겠습니다. 이안 감독의 역작 브로크백 마운틴 이었습니다. / 2013. 05.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