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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삼총사 : 레이카르트, 반바스텐, 굴리트.


 오렌지삼총사. 네덜란드와 AC밀란의 전설을 이끌던 명선수 삼인방을 우리는 그렇게 부릅니다. 현재는 감독으로서도 삼인방 모두 열심히 활약중입니다. 2008년 3월 기준으로 반 바스텐은 네덜란드 국대, 레이카르트는 바르샤, 굴리트는 LA갤럭시를 맡고 있습니다. 오늘은 루드 굴리트의 이야기입니다. 오렌지 삼총사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말입니다.

 프로필

 이름 : Ruud Gullit (본명은 Ridi Dil Gullit)
 생년월일 : 1962년 9월 1일
 신장/체중 : 186cm / 83kg
 포지션 : FW, MF, DF
 국적 : 네덜란드
 국가대표 : 64시합 17득점
 수상 : 1987년 유럽최우수선수상 수상 (발롱도르)

 검은 튤립, 만능선수 루드 굴리트의 이야기

 루드 굴리트는 스트라이커부터 리베로까지 못하는 게 없는 만능선수 였습니다. 기존의 축구 상식을 뒤집는 플레이를 보여주던 굴리트는 축구계의 혁명아 라고 불리었지요. 축구장 전체를 누비고 다녔으니까 말입니다. 게다가 독특한 헤어 스타일 덕분에 검은 튤립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 번 보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외모였다고 전해집니다 (웃음) 또한 네덜란드의 레게 뮤지션이기도 합니다. 네덜란드의 어느 인기차트에서는 당당히 1위를 기록한 적도 있을 정도니 정말 인기가수죠? 루드 굴리트도 괴짜라면 괴짜입니다. 한편 루드 굴리트는 수리남 출신 (수리남은 남아메리카에 있습니다) 아버지와 네덜란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기도 한데, 흑인차별에 대해서 줄곧 반대하고 있습니다. 은퇴 후에는 트레이드 마크였던 머리를 단발로 깔끔하게 잘랐습니다.

 1979년 프로선수로 데뷔해 어린 시절부터 높은 테크닉을 보여주면서 실력을 인정받습니다. 1981년에 20살도 채 안 되어서 국가대표로 발탁됩니다. 1982년에는 페예노르트로 이적해서 요한 크루이프와 함께 네덜란드 리그 우승도 차지합니다. 그후 PSV로 이적하는데, 여기서도 우승을 이끄는데다가 리그최우수선수상에 빛나는 맹활약을 펼칩니다. 그리고 드디어 1987년 이탈리아의 AC밀란으로 이적하게 됩니다. 중요한 게 있습니다. 당시 사상 최고의 이적료를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루드 굴리트는 유망주이면서도 실력이 출중한 스타였습니다.

 AC밀란으로 이적해서는 환상의 트리오를 구성하게 됩니다. 바로 네덜란드트리오라고 불리기도 하는 오렌지삼총사의 시작이었습니다. 1988년부터 1993년까지 반 바스텐, 루드 굴리트, 레이카르트는 AC밀란에서 뛰면서 수 많은 트로피를 획득합니다. 도무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강호 유벤투스의 시대를 제치고, AC밀란의 새로운 전성시대를 열어갑니다. 리그 우승, 챔피언스 리그 우승... 등등등. 얼마나 강했길래 이렇게 호들갑이냐 하면, 88년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에서 레알마드리드에게 통합 스코어 6-1로 압승. 결승전에서 슈테우아 부쿠레슈티를 4-0 으로 가볍게 완파하면서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립니다. 루드 굴리트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2골을 작렬시켰습니다. 유로88에서도 오렌지삼총사를 앞세워 네덜란드는 우승을 차지합니다. 루드 굴리트는 유로88에서 주장완장을 차고 출장했으며, 결승전에서 귀중한 선제골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AC밀란은 1989년에도 벤피카를 누르고 챔피언스리그 2연패! 1991년에는 22승 12무로 당당히 무패우승에 빛납니다. 클럽 사상 최강의 팀이라고 평가받을 정도로 AC밀란의 빛나는 시대를 만들었습니다. 그 중심에 이 오렌지삼총사가 있었습니다.

 루드 굴리트는 당시 세계최고의 이적료가 전혀 아깝지 않았던 명선수였습니다. 루드 굴리트는 유럽을 군림하는 맹활약에 힘입어 유럽최우수선수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한편 여기서 드는 의문, 이렇게 강팀이었던 네덜란드는 왜 월드컵에서 힘을 못 썼을까. 비운의 강팀이기도 한 네덜란드는 90년 월드컵에서도 비운을 맞이하게 됩니다. 88년 유로우승국이었던 네덜란드는 당연히 1순위 우승후보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네덜란드 분위기는 감독 교체, 굴리트의 부상 등 여러가지로 별로 좋은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네덜란드는 3무승부로 간신히 16강에 힘겹게 진출합니다. 그리고 16강에서 90년 월드컵 우승팀이자, 강호 킬러이기도 한 서독을 만나게 됩니다. 팽팽한 승부였지만, 수비의 중심축인 레이카르트가 퇴장당하고 맙니다. 경기는 끝내 1-2로 네덜란드의 패배로 끝나고 맙니다.

 워낙 자유분방한 선수였던 루드 굴리트는 규율에 지배받지 않는 스타일이었기에, 감독과 불화를 겪기도 했습니다. 카펠로 감독이 AC밀란에 부임한 이후로는, 벤치 신세를 지기도 하는 등 어려움을 겪어서 잠시 임대이적으로 삼프도리아에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94년 월드컵에도 부름을 받았지만, 소망하던 요한 크루이프 감독이 아니었고, 유명한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었습니다. 딕 아드보카트와 사이가 안 좋게 되어서 결국 루드 굴리트는 국가대표를 때려칩니다. 그리고 1995년 무대를 옮기게 됩니다. 바로 프리미어리그의 첼시였습니다.

 잉글랜드로 오게된 루드 굴리트. 그리고 1995-96시즌 중간에 첼시감독이 해임되면서, 그 후임으로 선수로 뛰고 있던 루드 굴리트가 감독으로 선정됩니다. 지성파였고, 훌륭한 인격자였던 굴리트의 감독 승격은 뭔가 이상할 게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이듬해 1996-97시즌, 루드 굴리트 감독은 자금을 쏟아부어서 좋은 선수들을 영입했고, 잉글랜드 FA컵 우승을 달성합니다. 첼시로서는 무려 27년만의 FA컵 우승이었고, 외국인감독으로서는 사상 첫 FA컵 우승이었지요. 첼시도 전체적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 시즌에 재정난을 가져왔다는 이유를 들어서 해임되고 맙니다. 이 무렵에 이와 같은 대대적인 첼시의 보강으로 인해서 다수의 이탈리아 선수들이 EPL에서 뛰게 되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여하튼 루드 굴리트는 해임되었고, 재정난에 허덕이던 첼시는 훗날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구단 인수로 이어지게 됩니다.

 어쨌든 루드 굴리트는 이제 감독으로도 실력을 어느정도 인정받기 시작합니다. 재정적으로도 괜찮았고, 좋은 감독을 필요로 했던 뉴캐슬이 루드 굴리트를 모셔옵니다. 루드 굴리트는 "섹시 축구"라는 독특한 철학을 강조하면서, 재밌는 축구를 슬로건에 겁니다. 이 인상적인 젊은 감독은 기대를 모았지만 뉴캐슬의 성적은 13위에 그치고 1년만에 루드 굴리트 감독은 물러나게 됩니다. 이 때 선수로 뛰었던 뉴캐슬의 에이스 시어러 선수는 "굴리트 감독의 섹시 축구는 내게는 별로 개운하지 않았다" 라고 후에 잡지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는데, 당시 뉴캐슬 선수들에게는 별로 어필이 되지 못했는가 봅니다. (웃음) 음... 실제로도 감독으로서의 평가는 선수 때만큼은 화려하지 않은 편입니다. 워낙 선수시절에는 당대 특급 스타였으니까요.

 루드 굴리트는 그 후, 많은 유명선수들이 그러한 길을 가듯이 해설자로 줄곧 활동해 왔습니다. 그리고 2004-05시즌에 페예노르트를 맡아서 다시 한 번 감독의 길을 가고자 합니다. 리그 4위의 성적을 기록하지만, 루드 굴리트는 1년만에 사임합니다. 그러다가 약간의 시간이 더 흘러 2007년 말에 LA갤럭시를 맡게 된 것입니다. FC서울과 친선경기를 하기 위해서 한국에 얼마전에 다녀가기도 했습니다. 베컴이 열렬한 환영을 받았지만, 루드 굴리트를 기억하는 분들은 굴리트의 모습도 꽤나 인상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성기 선수시절에는 네덜란드에서도, AC밀란에서도 주로 등번호 10번을 달고 뛰었던 보석같은 에이스였던 루드 굴리트 선수. 뛰어난 헤딩, 강력한 슈팅, 압도적인 스피드, 훌륭한 패스센스, 못하는 포지션이 없었던 올라운더였습니다. 그리고 5개국어를 구사하는 지성파이며, 인격도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한편으로 남아프리카의 흑인 지도자인 (필자가 존경하는) 넬슨 만델라 前대통령과도 친해서 시상식 때 함께 모습을 비추기도 했었지요. 혹자는 루드 굴리트를 두고, 역대 좋은 선수들의 장점만을 모아놓은 만능 테크니션이라고 극찬하기까지 했습니다. 신선하고 독창적이며 아름다운 굴리트의 축구, 네덜란드의 빛나는 꽃이라고 평가받던 루드 굴리트 선수. 축구가 점점 정형화 되어가는 요즘 같은 때에, 문득 루드 굴리트의 자유분방한 모습이 그립습니다. 감독으로도 섹시 축구가 대성할 수 있기를 감히 바라봅니다. 필자는 어쩔 수 없이 오렌지삼총사의 팬이니까요. LA갤럭시에서 부디 부활하여서, 감독으로서도 아름다운 날개짓을 다시 한 번 펼치기를 기원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by 시북 2008.03.16 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