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근세문화사 1 - 열녀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아닐까?

시북(허지수) 2013. 5. 28. 23:52

 기나긴(?) 조선 전기 이야기도 벌써 문화사까지 넘어왔습니다. 쉬엄쉬엄 정리하는 편인데도, 금방이네요. 문화를 살펴보기 전에 우선 15세기와 16세기의 분위기가 다소 다르다는 점을 배경으로 파악해 두면 좋습니다. 이미 정치 파트에서 한 번 살펴봤었지만, 15세기는 관학파가 주도세력입니다. 특징을 도식화하면, 중앙집권 추구, 사장 (→시와 문학) 중시, 타사상에 관대한 편, 기술 중시 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즉 관학파는 자주적이고, 실용적이며 민족적인 기풍의 문화가 전개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16세기는 4전5기 끝에 사림이 주도세력이 되잖아요. 이들은 향촌자치를 추구하며, 경학 (→유교 경전) 중시, 타사상 배척, 기술 천시 라고 요약됩니다. 따라서 사림파는 사대적인 경향이 강하다는 특징이 있고요.

 

 잠깐 여담이지만, 오늘날 사회도 마찬가지라서, 정권에 따라서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도 상당히 다르게 펼쳐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잘못을 적당히 눈감아 주고, 책임을 떠넘기는 사람들이 지배층이 된다면, 그런 사회는 "빠르게 부패할 위험성"이 점점 높아지는 거지요. 그러므로 공공연하게 지위를 남용하고, 들킨 게 죄라는 이상한 농담이 오가는 사회가 된다면, 우리는 보다 더 나은 사람들로 정권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라는 게 사실은 일상생활과 밀접하고, 가까운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만큼 참여와 투표가 소중한 것입니다. 만약 어떤 특정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모두 나몰라라 라고 정치를 외면한다면, 그들을 위한 혜택은 상대적으로 축소될 위험성도 높습니다. 정치인들은 사실상 계산에 밝은 경우가 많습니다. 정교한 정치 공학에 속지 않으려면, 반드시 제대로 투표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쨌.든. 여담은 그만하고, 어서 문화사 시작하고, 역사서부터 하나씩 살펴봅시다. 이번 문서에서는 15세기의 분위기임을 감안하시고요. 역성 혁명을 통해서 조선이 건국되었기에, 역사서들은 "지금 조선을 위해서 무슨 역할"을 해야 할까요? 눈치 챈 분들도 있겠지만, 바로 정당화 기술이 필요합니다. 역사를 도구화 시키고, 정권을 정당화 시키는 방법은 예로부터 흔히 볼 수 있는 수법 이니까요. 그래서 판을 뒤집어 엎어 국가를 세운 만큼, 앞선 시대인, 고려사를 쭈~욱 정리해야 했습니다. 과연 어떻게 정리할까요? 하하. 네, 아무래도 끝내 고려는 망할 수 밖에 없던 나라였다고 기술합니다. 그래야 조선의 등장이 더욱 빛나 보일테니까요.

 

 15세기에 대표적인 역사서들이 등장하게 되되는데, 고려사가 있습니다. 기전체 형식인데, 입체적으로 기술하면서 방대한 양이 기록되었습니다. 또한 고려국사, 고려사절요 (←편년체) 등도 만들어 집니다. (※덧붙여, 편년체는 시간순으로 기술하는 것을 말합니다)

 

 고려사 뿐만 아니라 통사도 있었습니다. 서거정이 펴낸, 중요한 "동국통감"이 있습니다, 고조선부터 서술을 하고 있다는게 아주 중요합니다. 단군의 이야기를 역사서에 집어 넣는다는 것은 사실 굉장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15세기만 해도 조선이라는 새나라도 세워졌고, 자주적인 분위기를 중요시 했기 때문에, (신화적 요소를 감안하더라도) "우리의 출발이라고 고조선"을 넣으며 나라의 자주적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거지요.

 

 또한 뛰어난 기록 유산에는 실록도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은 누구나 들어봤을 법 합니다. 실제로도 유명한 조선왕조실록은 "유네스코 세계 기록문화 유산" 이기도 합니다. 재밌는(?) 일화가 있는데, 역사서는 일종의 문서 창고라고 볼 수 있는 "사고"에 따로 보관합니다. 당시에는 춘추관, 전주사고, 성주사고, 충주사고 이렇게 나눠서 보관해 놓았고요. 왜냐하면, 유실의 위험을 최소화 시켜야 했으니까요.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고려 시대에도 실록이 존재했었지만, 지금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조선에 대해서는 아는게 비교적 많지만, 고려에 대해서는 더욱 많은 연구와 정보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조선왕조실록에도 크나큰 위기가 찾아옵니다. 바로 임진왜란이었지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실록들은 전쟁의 불길 속에 하나둘 사라져 버리는데, 그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이 있었으니, 정말 다행히도 이순신 장군에 의해서 보호가 되었던 전라도 지역은 멀쩡했습니다. 그리하여 전주사고가 보존됩니다. 이렇게 본다면, 전쟁에서의 승리도 물론 아주 중요했지만, 이순신 장군 덕분에 "문화 유산의 보호"까지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 감동적입니다. 조선 왕조는 유행가 제목처럼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라고 이순신에게 고마워 해야 합니다.

 

 한편, 이처럼 기록에 살고, 기록에 죽는, "철저한 기록문화"를 조선 시대 사람들은 갖고 있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빠르게 발전하고 속도가 중요하게 되면서 기록에 소홀해진게 아닐까 싶습니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면, 조선 시대에는 의궤에, 행사 때 걸레가 몇 장이 있었는지까지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어쩌면 철저한 기록정신은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보고, 배워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지금 시대의 흔적들도 어쩌면 먼 훗날 유산으로 남을테니까요. 저는 문서 정리와 분류, 흔적 남기기에 집착하는 편인데, 혹시 옛날 기록하던 사람들의 피가 유전되어서...? (농담입니다.)

 

 그리고 지리서를 살펴봅시다. 이름 한 번 긴~ "혼일강리역대국도 지도" 가 있습니다. 교과서를 종종 살펴보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 번은 보게 되는 지도인데요. 엄청난 크기의 과장된 중국과, 그 옆에 조금은 작지만 그래도 만만치 않게 거대한 조선이 그려져 있는 세계지도 입니다. 원래는 중국에서 건너온 지도로서 중화사상이 담겨 있던 지도였는데, 여기에다가 조선사람이 패기 넘치게 조선과 일본을 그려넣었지요. 당연히 조선은 큼직하게, 일본은 뭐 대충... 일종의 자부심이랄까요, 우리도 만만치 않은 강국이거든? 이라는 기개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아, 이 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 헉헉 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지도에는 팔도도, 동국지도가 있었고요. 신천팔도지리지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게 뭐냐하면, 왜 이 당시에 이렇게 열심히 지도와 지리지를 만들었을까요? 사실은 뒷배경이 있습니다. 이제 나라를 건국하고 했으니, 역사서도 정리하고, 지리지도 편찬하면서, 중앙집권을 강력하게 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지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기 위해서, 정보와 감시라는 측면이 있었음을 염두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군, 현, 각종 세부정보까지도 파악하려고 했던거지요. 면리제, 오가작통제의 실제 작동 방식은 "감시"라는 것을 지난 문서들에서 자세히 봤었잖아요.

 

 헉, 이번 문서도 왜 이렇게 길어졌지...;;; 마지막으로, 윤리/의례서/법전 을 생각해봅시다. 법전은 조선경국전과 경제문감을 거쳐서, 성종 때 경국대전이 드디어 완성 되었다는 것이 중요하고요. 의례(행사)에 관해서는 대표적인 국가적 행사들에 관한 절차와 방법을 담아놓은 "국조오례의"가 있습니다. 하나하나 조선 체제가 각종 문서로도 뒷받침 되어가는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역사서에, 지리서에, 법전에, 의전에, 윤리지침까지...)

 

 윤리서인데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 보고, 기억해 둘 것이 있으니 "삼강행실도" 입니다. 충신, 열녀 이런 성리학적 윤리들을 글과 그림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세종 때 편찬되었고요. 조금 냉정하게 바라보자면, 여성이 정절을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거나, 수발을 들기 위해서 헌신적으로 살아가는 사례들이 실려 있습니다. 이른바 "강요된 정절"이었지요. 조선에서는 이렇게 효를 환영하고, 열녀비도 세워주고 했었으며, 그 당시에 이렇게 절개 있고, 효심 있는, 드문 사람들을 기록으로 까지 남겨가면서 자랑하고 칭찬했었지만, 이걸 지금 시점에서 감히 평가하자면, 지나치게 잔인하며 또한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한 번 생각해봅시다. 한 번 뿐인 나의 목숨을 남편을 위해서 내던져 버린다는 것은 과연 낭만적이고 멋있다고 할 수 있는걸까요? 과연 사람의 목숨이 그 정도로 가벼운 걸까요? 실제로 이렇게 죽음을 자처한 여성들도 분명히 존재했었습니다. 중요한 건 뭐냐하면, 남성이 여성을 위해서 목숨을 바쳤다는 이야기는 거의 없고요, 반대로 여성이 남성을 위해서 목숨을 바쳤다는 사례들만 줄줄이 나열되어 있다는 거지요. 한마디로 삼강행실도는 "복종하는 문화를 선전하는 도구"로 활용 되었다는 겁니다. 여성의 인권은 존재하지 않았고, 심하게 말해 여자로 태어났으니 이렇게 하라, 그런 상황에서는 차라리 죽어라. 라고 차갑게 권장(혹은 세뇌)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사회를 꿰뚫어본 천재 여류 시인 허난설헌은 정곡을 찌르는 표현을 보여줍니다. "어른이 되었을 때 가난한 집 아씨는 열심히 옷을 만들어도 그 옷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 이 짧은 이야기에서의 눈여겨볼 대목은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리학적인 세계관에서 전통은 남자이자, 양반이어야 했습니다. 가난한 여자는 단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관심 밖의 대상으로 추락하고 만 겁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른바 "열녀 신화"는 만들어진 것이라고 봐야겠지요. 지난 날 고려 시대의 여성 지위를 생각해보면 더욱 그러하고요.

 

 물론 어디까지나 지금 시대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시각입니다. 허난설헌 같은 총기 넘치는 사람들은 체제의 모순을 폭로할 수 있었지만, 더욱 슬픈 것은 이름 모를 많은 여성들이 어느 순간 복종 문화가 스며들어, 실제로 목숨을 잃었다는게 중요합니다. 저는 지금도 우리가 (다른 형태로) 이런 억압적인 사회분위기가 있는게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꿰뚫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은 생각보다 조종당하기 쉽습니다. 매일 출석하면 혜택준다는 이야기에 혹하는 사람은 과연 저뿐인가요. 하하. 좀 더 진지하게 접근한다면, 조용히 있으면 절반이라도 간다 식의 전통에 의문을 던져보는건 어떨까요. 부정과 비리는 다수의 암묵적인 침묵과 용인 속에서 진행되기 쉽습니다. 자살이라는 이름의, 사회적 살인이 만연하고 있는 세상이고, 비록 정의가 안드로메다로 실종된 것 같은 세상일지라도, 힘든 순간에 반드시 표현하고 SOS를 외치라고 말해줘야 합니다. 다른 삶은 지금부터라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조용히 견뎌라? 이제껏 다 이런식으로 해온 관행이었는데 왜 그러느냐? 우리는 바로 "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오늘날에도 삼강행실도를 칭찬하고, 여성에게 복종을 강요한다면, 그런 역사적 비유는 분명하게 "인권적 측면에서 옳지 않음"을 고민하고 생각해 봐야 합니다. 왜 삼강행실도에는 글로도 모자라서, 심지어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렸을까요. 자기도 모르게 세뇌당할 수 있다는 점을 꼭 명심합시다. 나의 생각과 사상이라는 거, 혹은 이데올로기 라는게 과연 "진짜 나의 생각인걸까?" 라고 한 번쯤은 과감하게 질문하고 사색해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오늘의 영감 - 저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선택하고, 자유롭게 행동할 때, 인간은 건강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렇기에 오늘날 경제적 자유, 생활의 자유를 얻지 못한 사람들이 자살이라는 최악의 코너로 몰리고 있다는 점이 자꾸 안타까워집니다.

 

 비난받을지도 모르지만, "여자는 이래야만 한다" 라는 관념에 도전해 봅시다. "돈만 있으면 더 행복해 질텐데" 같은 망상에도 도전해 봅시다. 심리학적 연구결과에 따르면 그래서 갑자기 많은 돈이 생긴 사람들은, (남주기 싫은, 심하게는 가족까지도 보기 싫어지는) 자신의 추악한 본성을 바라보면서 어쩔 줄 몰라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도 있습니다. 고정된 관념에 의문을 던질 줄 아는 사람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저도 잘 못하는 것을 감히 당부하다니, 너무 제가 심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하하. 뭐, 저는 재능 있는 청춘들을 믿고 응원할 뿐입니다.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작고 소박한 친절이라 생각하고요. 그럼 다음 문서에서 문화사 이야기는 계속~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