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에이 아이 (A.I. Artificial Intelligence, 2001) 리뷰

시북(허지수) 2013. 7. 12. 19:05

 영화 에이 아이는 평이 상당히 갈리는 영화 중 하나 입니다. 대체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호의적인 평가가 많지만, 해외에서는 제법 충격적인 전개로 나아가기 때문에, 예상 밖의 영화였다는 분위기도 있습니다. 인공지능 로봇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를, 상당히 무겁고도 날카롭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따뜻한 휴먼드라마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봐야겠지요. 무엇보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생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충분히 명작 반열에 올려놓아도 좋다고 봅니다.

 

 사람이 로봇과 다른 점은 대체 무엇인가? 또한 로봇은 어떻게 해야 사람과 비슷해 질 수 있는가? 나아가, 나에게 필요하면 사랑하고, 필요 없으면 혹은 저항하면 "그대로 폐기해 버리는 사고방식"은 자칫 위험할 수 있지 않을까? 이처럼 복잡한 질문까지도 던져보기에 좋습니다. 주인공 데이빗은 최신 기술로 만들어진 첨단 아이 로봇입니다. 너무나 사람과 유사하고, 학습 능력까지도 갖추고 있지요. 이제 흥미로운 영화, A.I. 이야기 속으로 본격적으로 떠나볼까요.

 

 

 제법 오랜만에 영화 리뷰를 쓰는터라, 그리고 사실은 감상한지 몇 주 전의 영화다보니, 기억에서 인상적인 부분들 위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을 집중적으로 조명해 보려고 합니다. 영화의 출발은, 사고로 사실상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에게, 최신 인공지능 아이 로봇인 데이빗이 동반자로서 삶을 함께 하며 시작됩니다. 그리고 영화는 시작부터 아주 중요한 대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새 식구가 된 데이빗은 사랑을 받지 못하는데요. 이것은 "한 인간은 결코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결국 인간이란 "존재 자체로 특별하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네요.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사람이라는 존재가 약하기도 약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일 때도 있고, 자본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스템 앞에서 무력하게 시달리곤 한다지만, 결코 이게 전부는 아닙니다. 요즘 제가 책들로부터 계속해서 받고 있는 영감이 있는데, 그건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능력 있고, 강인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라는 점입니다. 나약한 면은 동전의 한 면일 뿐이라는 거지요. 뒤집어 보면, 얼마든지 빛나는 면도 갖고 있다는 점을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대체불가능" 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서, 사람만이 가지는 독특하고 특별한 매력이 참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긴 배경을 깔아놓고 본다면, 데이빗의 새 어머니 모니카 입장에서는 불치병에 걸려서 냉동보관중인 자신의 친아들이, 똑똑한 로봇 데이빗보다 훨씬 사랑스럽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인간이 기계와 다른 지점이 있다면, 아파도, 병들어도, 얼마든지 존재 자체로 사랑받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보면, 의자는 다리가 부서지는 순간 가치를 급속히 잃어버리고 폐기되거나 수리되어야 하는 존재로 급추락하지만, 사람은 설령 다리를 절뚝거린다고 해도 여전히 변함없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지요. 물론 냉혹한 사회 시스템은 하이스펙을 갖추고 거의 로봇 같이 일해야 한다고 유혹한다지만, 요즘 저는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훨씬 더 휴식이 중요하고, 여유가 중요하다고 몇 번이나 생각합니다.

 

 이제 주인공 데이빗의 시선으로 들어가봅니다. 사랑받지 못한 데이빗은 마음 아프게도 끝내 버려지게 되고,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합니다. 영화의 중반부터는 본격적인 데이빗의 모험담으로도 볼 수 있는데요. 숲 속에서 데이빗은 다양한 폐기 상황의 로봇들을 만나고, 이들과 함께 세계의 잔혹한 현실을 마주보게 됩니다. 불필요한 로봇들이 하나씩 분해되어 버리는 냉정한 모습에서 저는 "차별"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더군요. 이를테면, "너와 나는 다르다" 라고 구분하는 것까지는 좋다지만, "우리는 너희와 다르므로, 너희는 마음대로 짓밟아도 된다" 라고 날뛰기 시작하는 순간, 그 오만하고 오싹한 태도가 저는 무척이나 불쾌하게 느껴졌습니다.

 

 놀랍게도 데이빗은 그 와중에서도 동료집단을 생각하면서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섭니다. 운좋게도(?) 너무 사람과 비슷했기 때문에, 데이빗은 멋지게 위기를 돌파해 내기도 하고요. 오히려 너무 사람 같았기 때문에, 데이빗은 이후 결정적인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진짜 사람이 되어서,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면서 살고 싶은 간절한 바람" 을 욕망하게 된 것입니다. 기계에게 욕망이 있다는게, 조금 우습게 생각되겠지만, 저는 다른 측면에서 한 번 들여다 보고 싶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바로 충분히 사랑 받으면서 사는 것 아닐까, 이것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인간은 계속해서 방황하며 어찌할 바 모르는 게 아닐까, 라는 깊은 고민에 휩싸이게 됩니다. 생각해보면,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살고 있는 인간이라면, 굳이 밤늦게까지 알콜이나 여러 탐닉적인 것들에 취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서로에게 애정 표현을 하지 않는, 서투른 관계 속에서 살고 있고, 그러다보니 술이나 TV 등 다양하게 현실을 잊거나 도피하는 쪽으로 위안을 찾고 있는게 아닐까요. 어쩌면 데이빗이야 말로, (로봇이라 그런지 몰라도)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을 추구하면서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기를 한결같이 원합니다. 그 절박함이 이 영화의 묘한 백미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아주 긴 시간이 흘러, 영화는 환상풍의 마무리를 보여주면서 막을 내립니다. 어머니 모니카와 함께 하는 완벽한 하루를 선물처럼 얻으면서 말이에요.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리고 인생에게 필요한 것은, "충만함으로 가득차 있는 하루"를 보내는 것임을 영화는 부드럽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평생을 살아가며, 그런 하루를 맞이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좋았던 인생이라고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영화 에이 아이는 제게 질문을 건네주었습니다. "그저 그렇게 살고 시간을 때우다가 결국 사라지고 마는 인생이라면 너무 슬픈게 아닐까? 주어진 "오늘 하루"를 아주 높은 밀도로 채울 수 있도록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야말로 최소한 자신에 대한, 시간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영화에서 데이빗은 요정을 만나서 인간이 되고 싶어했고,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며, 방황 속에서도 끝까지 초점을 잃지 않는 집중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데이빗은 인간이 되고 싶어했을까요? 어쩌면 데이빗은 "존재하는 그 자체로 사랑받을 수 있는 인간"이 너무 부러웠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에게는 눈이 있고, 귀가 있고, 혀가 있고, 코가 있어서, 자꾸 더 좋은 것을 원하곤 합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해서는 이와 같은 판단 기준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혹은 타인을 불행의 나락 속으로 밀어넣지 말고, 인간은 그 존재 자체로 의미 있다는 "특별함"을 생각해 본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잘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좀 더 다정하게, 좀 더 감사하게 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고요.

 

 리뷰를 마치며 저는 문득, "현실적으로 볼 때, 거의 이루지 못할 것을 바란다면 과연 의미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령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길을 향해서 간절히 다가가는 태도로 살아간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렇게 행동하며 살아갔기 때문에 만나게 되는 무엇인가가 있지 않을까 라는 답변도 함께 생각해 봤습니다. 우리가 순수하고, 진지하게, "바라는 것을 추구해 나가는 적극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그렇게 하루를 치열하게 보낼 수 있기를 힘껏 응원하며 모처럼의 리뷰를 마칩니다. / 2013. 07.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