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억이 넘게 들어간 제작비, 봉준호 감독의 신세계. 폐쇄적이기 때문에, 함축적이고 매력적인 세계관. 지옥 같은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 그리고 어쩌면 우리들의 이야기. 주말에 지인과 함께 영화관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휴가 기간이라 그런지, 아니면 화제작이라 그런지, 모처럼 영화관에 꽉꽉 들어찬 사람들과 함께, 시원하고 독한 기차 여행을 하고 온 느낌입니다. 덧붙여 나름대로 독특한 글쓰기가 되고 싶다는 부질없는 욕망(?)으로 인해, 다른 분들의 리뷰는 보지 않았고,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 정도만 찾아 읽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예상하던 바와 마찬가지로, 전반적으로 내용은 무겁고 어두운 편입니다. 가족용 영화라고는 당연히 보기 힘들고, 오히려 인간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에, 개인적으로는 만족도가 상당히 높았습니다. 극의 대사로도 나오지만, 열차 안이 "하나의 세계" 라는 관점으로 생각해 본다면 재밌는 장면들도 많겠고요. 정해놓은 질서를 따를 것인가, 질서는 개뿔 -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까지 달려가 볼 것인가, 이 점을 테마로 해서 우선 시작해 볼까 합니다.
무질서한 모습에 대해서 기득권이 내리는 판결은 아주 적나라하고 간단합니다. "유죄!" 그러니까 닥치고 자리를 지키고 주어진 일이나 열심히 하라는 겁니다. 우리의 은혜스러움에 감탄하고, 우리를 따르라고, 무기를 들고 강요하는 모습이 초반부터 압권적으로 펼쳐집니다.
그러나 얼굴도 까무잡잡하고, 누추하게 보이지만, 그 정신만큼은, 구속 당하기를 거부하는 신인류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입니다. 또 하나의 세계, 설국 열차 안에도 물론 있고요. 눈매가 살아 있는 "커티스"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는 패기 있게 반란을 꿈꾸는 열혈 청년 입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커티스를 선두로 해서, 소수의 용기 있는 자들이 드높여 다른 삶을 꿈꾸고, 관찰을 통해서 적의 약점을 파악하고, 이 뒤쪽칸 인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행동합니다. 겁주는 기득권 앞에서 쫄지 않겠다는 늠름함이 결국 때를 만나서, 본격적 반란이 시작됩니다.
영화에서는 총알도 없으면서 총들고 위협하는 군인들이 등장하는데, 생각해보면 질서를 유지하려는 이들 역시도 그들이 "실력자"라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빌붙어야만 힘을 발휘하는 존재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잘 그려졌듯이 총을 들고 있다고 하더라도, 높은 사람에게 불필요해지면 "곧바로 버려지고 외면받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 열차에서는 극소수만이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표현해도 좋겠네요. 권력을 손에 쥔자 외에는 마음대로 행동하지 못한다는 비극이 무겁게 흐르고 있습니다.
이런 막돼먹은 열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과감한 시도를 선택한 사람들은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충격적이게도 실패로 끝났을 뿐만 아니라, 놀림감이 되어버렸다는 점은 의미있게 다가왔습니다. 이른바 앞선 세대에서 일어난, 7인의 반란은, 이제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 보여주게 되는 사건으로 "쿨하게 처리"되어 버립니다. 체제순응적인 가치관을 끝없이 주입시키는 겁니다. "거봐, 남들과 다르게 행동하거나, 신념을 가진다거나 그래봐야 다 헛방이야, 그래서 뭘 얻었는지 똑똑히 보라고, 냉혹하고 차가운 현실 앞에서 완전히 망했을 뿐이잖아." 그렇게 아이들은 질서와 균형을 찬양합니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균형을 추구하기 위해, 스시도 1년에 가끔씩만 먹는 열차니까요. 하하.
그런데 우리가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누구를 위한 균형 유지인가?" 라는 점입니다. 또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누군가가 끝없이 희생되고 있음을, 그 누군가는 절대로 약한 사람들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계속해서 생각나는 마음 아픈 대목이 있었는데, 사회가 만성적 실업을 유지함으로서, 임금을 극한까지 억누를 수 있다는 표현이 계속 심장을 찍어눌렀습니다. 거꾸로 표현하자면, 기득권은 취업률 올리는데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거지요. 적나라하게 쓰자면, "죽을테면 죽으라지" 라는 살벌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겉으로는 애써주는 척 위로하지만, 펼쳐지는 잔인한 현실은, 적정인구수를 유지해서, 우리 기득권을 이롭게 하는 것을 가장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 탐욕스럽게도 말이에요.
봉준호 감독은 인터뷰에서 상상력을 발휘하며, 7인의 반란자의 선두를 맡은 여자가, 남궁민수의 아내였고, 그래서 남궁민수는 그 누구보다 "다른 세계"를 꿈꾸고, 관찰해왔다고 표현합니다. 그래서인지, 남궁민수는 극중에서 가장 철저하고, 현실적으로 그려집니다. 작은 변화라도 아주 자세히 관찰하고 있으며, 하나의 마약물질에도 소홀하는 법이 없습니다. 이 희망을 반드시 잘 모아서, 이번에야말로 실현가능한 다른 문을 열어보겠다는 의지가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앞선 사람들의 행동이 실패로 끝났다고 해서, 우리까지 절망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는 이 소박한 메시지가 너무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영화로 돌아와서, 커티스 일행의 새로운 반란은 아주 성공적이었습니다. 총리를 사로 잡았고, 가보지 못했던 곳까지 계속해서 접근해 들어가면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면서 불편한 진실도 하나둘 알게 됩니다. 먹고 있던 음식이 사실은 "쓰레기" 수준이었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결국 애를 낳아주기 때문에 꼬리칸 사람들을 유지시키고 있었다는 것은, 철저하게 기득권이 약한 이들을 "이용가치"로 생각해 왔음을 잘 보여줍니다. 극중에서, 이거나 먹으라면서 메이슨 총리에게 쓰레기덩어리를 건네주는 센스야 말로, 유쾌한 전복의 순간입니다. 막대하다가는 결국 똑같은 꼴을 당할 꺼라는 멋진 교훈이지요.
마침내 맨 앞칸까지 진입한 커티스는 거의 "세계의 신" 앞에 서는 경험을 합니다. 그리고 매력적인 제안을 받게 되지요. 이제 나의 시대는 끝났으니, 당신이 새로운 지도자가 되어서 이 열차를 이끌어 달라는 겁니다. 영원한 엔진이라는 압도적 힘 앞에서, 고민에 휩싸이는 커티스의 갈등도 깊은 인상을 주던 장면입니다. 그리고 커티스는 점점 심경의 변화를 맞이해 나갑니다. 인간이란 이렇게 변해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높은 자리에 앉게 되면, 그 때부터 마치 세상을 다 가진, 혹은 우월한 신이 된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저는 자리 혹은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의견에 꽤나 공감합니다.
고약한 상황에서 커티스의 눈을 열게해 준것은, 소녀 요나가 보여준 진실이었습니다. 가려져 있는 현실을 똑똑히 보라고 온몸으로 사투하는 그 장면은, 무엇보다 빛나는 순간입니다. 체제가 유지되기 위해서, 약한 이들이 얼마나 희생 되고 있는지 우리는 봐야하지 않을까요. 아이들이 영혼을 잃은채, 자동적으로 기계화되어 움직이고 있는 모습은 마치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차갑게 보여주는 인상이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보다는, 자본의 부품화가 되기 위해서 훈련되고 세뇌되어 갑니다. 철학자 강신주 선생님의 의견을 빌려오면, 스스로 돈을 들여서 "보다 높은 스펙"이 되기 위해서 끙끙대는 모습은, 오로지 자본들이 그토록 원하던 세상이기도 합니다.
논란이 있는 마무리에 대해서는, 봉준호 감독이 의도적으로 "여전히 삶은 힘겨운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서 지나치게 희망적인 장면은 넣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어쨌든 남궁민수가 그토록 꿈꾸던 새로운 세상의 문은 드디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 문을 열기 위해서 기존의 세계가 철저하게 부정되고 쓰러져 가야만 했는지는 앞으로 오래도록 고민해 봐야겠습니다만, 적어도 우리가 열어야 할 문이 앞으로만 가는 문이 아니라, 옆으로 가는 문이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꽤 강렬한 영감을 받았습니다. 경쟁사회에서 끝까지 앞으로 갈 것인가, 다른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받아들이고, 그 문을 열어볼 용기를 가질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남궁민수가 "커티스! 넌 문 여는 것에 미쳐있다"고 표현한 대목은, 우리 모두를 위한 외침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일단 더 앞으로 가기"에 미쳐있는 것입니다. 물론, 남궁민수 역시도 새로운 세계를 열기 위해서 미쳐있습니다만. 하하. 어쩌면 "불광불급 - 사람은 미치광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가 아니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직 목표만을 생각했기 때문에, 커티스는 현인 길리엄의 조언을 듣고서도, 계속해서 앞으로 가고, 끝내 윌포드와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생각해보면 7인의 반란자도 "스스로를 과신한" 광인이었고, 남궁민수와 유나도 "목표에 철저히 집착하는" 광인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커티스까지도 스스로 고백하듯이 출발은 미친 청년이었지만, 완전히 다르게 미친 노인 - 희생하는 지도자 길리엄에 의해서 구원받았음을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 내내 "어딘가에 완전히 빠져들어 있는 사람들" 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터넷 문화에 어느정도 익숙한 저는 이런 류의 댓글을 종종 봅니다. "이 나라가 미쳐가고 있는 것 같다, 혹은, 이 나라에서는 어느정도 미치지 않고서는 살기 힘들다." 다른 말로 한다면, 현대사회는 "정상적인 행복"이라는 게 너무 높은 수준에 걸려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포기하고, 반쯤 정신줄 놓고서, 어쩔 수 없이, 아무 꿈도 없이 즐거움만을 좇아서 살고 있다는 슬픈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답이 없거나, 답을 모르거나, 답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도 자주 피드백 받고요.
아마 남궁민수도 처음엔 그랬겠지요. 이 세계는 답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그 고민이 긴 세월을 거쳐서, 마침내 몇 개의 작은 힌트에서 "희망"을 발견해 냅니다. 모두가 무심하게 지나치던 모습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해고 건져내는 그 "저력"이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이제 마무리를 한다면, 우리에게는 새로운 탈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겠지요. 지금의 선택이 당장 무엇인가 획기적인 삶의 변화를 만들어주지는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생각해야 하고, 기존의 질서에 의문을 던질 줄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지금과 다른 세상도 가능하다"는 신념을 가진다는게 얼마나 강력한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들은 볼 수 없었던 진실까지도 볼 수 있었으니까요.
세상을 이미 해탈한듯한 열차의 신 윌포드가 보기에는 사람들의 투쟁도 우습고, 질서를 위해 누군가 부품화 되어가는게 당연할 뿐이겠지만, 결국 영원한 엔진도 허구로 밝혀졌고, 지금의 시스템 역시 영원한 균형이 아님을 충분히 숙고할 필요가 있겠지요. 더 좋은 환경이라는 것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으며, 어제와의 싸움 속에서 발현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번에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어차피 안 돼, 제발 좀 저기 펼쳐져 있는 현실을 보라" 고 아주 폼잡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대한 세계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희생될 수 밖에 없다" 며 아주 합리화를 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욕망의 중심에는 "어차피 나만 아니면 되지" 라는 저열함도 깔려 있기 마련이고요. 우리는 언제까지 손을 잃은 채, 발을 잃은 채, 입과 귀를 닫은 채, 그리고 눈을 감은 채, 살아야만 할까요.
미래가 잘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계속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쉽사리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자신만의 길을 발견하고, 그 문으로 들어가는 용기를 갖춘다면 좋겠습니다. 머리 위에 신발이 있는 게 이상하듯이, 인간의 머리, 그 머리를 밟고 그 위에 인간이 서 있는 것 역시 이상한 것입니다. 이 이상한 구도에 대해서 우리가 맞서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을 때, 새로운 세계는 반드시 열릴 것입니다. 자유를 한없이 노래하며. / 2013. 08.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