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조선 후기 체제의 변화 - 정치 구조와 비변사

시북(허지수) 2013. 7. 31. 16:45

 조선 후기로 넘어 왔는데, 너무 급하게 빨리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천천히 하나씩 들여다 보는게 좋겠구나 싶어요. 우선 조선 전기까지를 "근세"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조선 후기를 "근대 태동기"라고 부르고요. 흔히 서양식으로 나누는 고대 - 중세 - 근대, 딱 세 가지에 비해서, 동양은 몇 과정이 더 있는게 느껴지나요. 어쨌든 근대라는 것부터 개념을 살펴보지요. 근대라고 한다면, 정치는 민주주의, 경제는 자본주의, 사회는 평등사회, 사상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지향합니다. 확실히 구조적으로 한결 좋아진 세상이지요.

 

 어쨌든 조선 후기를 근대 태동기로 부른다는 것은,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이자, 근대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 시기다 라고 보는 겁니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식민사관에서는 조선을 "정체되어 있는 역사다"라고 폄하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정복 행위를 정당화 해버리지요. 그러나 조선 후기 역사를 곰곰히 살펴보면, 자발적인 형태로 자본주의를 향해 진행되어 가는 모습도 있다, 그 근거도 담겨 있다 라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시기를 특별히 잘 봐야 합니다. (물론 덧붙여 여러 학설이 있기 때문에, 근대 태동기와 자본주의 맹아론도 완벽한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측면도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이 정리는 교과서적인 논점을 중점으로 해서 서술된다는 것을 이해해 주세요.)

 

 정치파트부터 살펴볼텐데요. 어쩌면 조금 씁쓸할지도 모릅니다. 경제나, 사회, 문화의 경우 근대 태동기로 나아가려는 모습이 있는데 비해서, 정치 면에서는 의외로 민주적인 방향으로 나가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정치 참여의 폭이 제한되어가는 경향도 발견됩니다. 이런 면이 조선 후기의 한계이기도 하겠고, 정치가 잘못되면 역시 비극적이구나를 느껴볼 수도 있겠고... 하하. 어서 본격적으로 출발해 봅시다.

 

 이번 문서에서 기억할 내용은 "비변사의 파워업과 권력이 쏠린다는 것"을 음미해 본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작은 가볍게 가야지요. 자, 조선 전기를 이끌고 있던 정치적 축은 "의정부 6조 체제" 입니다. 그런데 후기에서는 "비변사 체제"로 바뀝니다. 자세히 살펴봐야 겠지요. 대체 왜 바뀌었을까요? 비변사는 원래 임시기구이자, 국방 담당이었는데 말이에요.

 

 조선 전기와 후기를, 크게 양란 (임진왜란, 병자호란) 을 기점으로 나누었듯이, 전쟁 때문에 비변사의 지위가 크게 강화됩니다. 양란을 겪고, 국방이 아주 중요해지자, 회의도 자주 열어야 하고, 고위 관직의 사람들도 자꾸 늘어갔습니다. 기능과 권한도 점점 세지고요. 비변사지만, 거기에 이제 재상도 들어가고, 5조 판서(장관들)도 들어가고, 훈련도감의 대장도 들어가고, 강화유수도 들어가고 온갖 고위급 사람들이 다 모입니다.

 

 그러다보니, 비변사에서 중요한 일들을 죄다 처리합니다. 군사는 당연하고, 행정에, 외교까지도 결정되어 버립니다. 더욱이 전쟁이 끝나도 비변사의 기능은 약화되지 않았습니다. 왕권은 약해지고, 비변사는 슈퍼파워를 내세우게 됩니다. 비변사는 이제 상설기구가 되었고, 후에 19세기 세도 정치기에 이르면 거의 가문끼리 다 해먹는 참사로 변질됩니다. 즉 정리하면 의정부의 기능까지도, 조선 후기에는 비변사가 다 하더라 입니다.

 

 또한, 조선 후기는 붕당 정치로 흐르면서, 각 붕당들이 자신들의 힘과 권력을 위해, 비변사를 장악하려고 합니다. 비변사를 통하면 정말 많은 것들을 결정할 수 있으니까, 비변사를 장악하는게 아주 중요했고요. 이러한 비변사는 19세기 세도정치 때, 그 기능(힘)이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비변사는 신하들의 회의기구이고, 비변사가 쎄다는 것은 왕권의 힘이 약해짐을 의미합니다. 이러다보니 왕도 휘둘리게 된다 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나중에 근현대로 접어들어, 흥선대원군은 개혁을 통해서 비변사를 우선 깨려고 합니다. 다시 말해 군주가 볼 때 그만큼 막강했고 짜증나는 비변사 였다는 거지요.)

 

 붕당에 대해서도 살펴봅시다. 선조 시기 때부터 슬슬 붕당정치가 시작됩니다. 붕당의 핵심은 본디 "공존"이라는 좋은 취지가 있습니다. 예컨대, 여당이 정권을 잡았다고 해서, 야당을 완전히 말살시키는게 아니라는거지요. 그래서도 곤란하고요. 오늘날로 치면, 여당이 정책을 책임지는 역할이라면, 야당은 정책을 비판하는 역할이잖아요.

 

 그런데 조선 시대 비극적인 양란을 겪고, 또 서로 험한 꼴을 많이 보다보니 붕당이 이상해 집니다. 붕당이 변질되는 거지요. 이제 권력을 잡으면 절대 놓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권력에서 "탈락하면 완전히 끝장"나 버리기도 합니다. 권력을 잡느냐, 권력에서 탈락하느냐에 따라, 경제적 부도 같이 가기 마련이고요. 그러다보니, 거의 투쟁처럼 격화되고, 살벌한 모습이 펼쳐집니다. 정권을 잡게되는 당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다 해먹는 만행도 선보입니다. (붕당의 일당 전제화 라고도 합니다) 저는 한 번 패배하면, 다시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가 되면, 꼭 조선 시대 붕당 처럼 되기 쉽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경쟁사회에서는 독하게 승리만을 탐하는 거지요.

 

 어쨌든 그럼 권력을 얻기 위해서, 어떤 기구를 장악해야 할 것인가? 대표적으로 중요한 기구들이 있습니다. 일단, 앞서 자세히 살펴본 강력한 "비변사" 장악이 있고요. 그리고, 언론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3사"를 장악해야 합니다. 한 가지 더 "전랑" 이라는게 있습니다. 아이구 복잡하네요. 자세히 살펴봅시다. 왜 이들은 이곳을 목표로 했을까요? 왜 이곳은 중요할까요?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좋겠네요.

 

 3사는 공론을 반영하는 곳이자, 언론의 역할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이 곳을 장악해 버리면, 언론 보도가 편파적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가령 자신에게 불리한 이야기는 싹 무시하고 평화롭고 훈훈한 이야기만 내보내고, 공론화 시키는 거지요. 본디 3사 (언론) 는 어떠한 환경에도 휘둘리지 않고, 자기 주장을 해야 되겠지만, 공교롭게도 그렇지 못했습니다. 결국 3사의 기능 자체는 굉장히 강화되는데, 그럼에도 여론을 반영하는게 아니라, 자당의 의견만을 반영해서 말하고 맙니다. 적나라하게 보면, "자기들만의 이익"만을 여론으로 내세웁니다. 이제는 3사가 변질되어 버리니까, 오히려 3사의 이야기는 신뢰가 가지 않는다며, 말빨이 먹히지 않는 모습도 나타납니다. 우습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_-;;; 그런데! 오늘날이라도 혹여 이런 모습이 있는건 아닌지, 경계해보는 태도는 중요합니다.

 

 전랑은 인사권을 쥐고 있는 곳입니다. 이조정랑(문관), 병조정랑(무관)의 인사권을 담당했습니다. (고위관직은 아니라지만, 인사권을 가진 전랑을 차지해 버리면, 문관을 자기네들 사람들로 쫘~악 깔아둘 수 있는거지요) 하나 더, 언론기능의 3사 관리를 선발도 할 수 있어서, 실제로 전랑에서 행사하는 힘이 상당했습니다. 쉽게 말해 전랑을 장악해 버리면, 언론과 인사까지 함께 입맛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거지요.

 

 자, 그렇다면 전랑이 장악되면 어떻게 될까요? 자세히 실례를 들여다 볼까요. 그야말로 심각합니다. 3사 관리는 이른바 "청요직"이라 해서 굉장히 푸르고 깨끗한 자리로 부르고 높여주는 직위였는데, 아까 본것처럼 전랑은 이들 관리를 뽑는 "통청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또한 "자대권"이라고 해서, 후임정랑(관리)을 스스로 지명할 수도 있었습니다. 심하게 말해, 전랑 장악 한 번 해버리면, 놀랍게도, 후임까지도 세습하고 자기들끼리 인사를 다 해먹을 수 있었던 거지요. 전랑에서 통청권, 자대권을 악용하는 모습이 조선 후기의 큰 폐혜 중 하나라는 거 파악해 둡시다. (※이런 막나가는 관행은 당연히 영조, 정조 시기에 개혁의 칼을 맞게 됩니다!)

 

 이러다보니까, 결국, 권력이 한 곳으로 몰리게 되는데요. 생각해보면, 조선이라는 나라가 이제껏 나름대로 복잡하게 견제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노력해 왔잖아요. 그런데, 이제 한 쪽으로 쏠리며 몰빵되어버리니까, 권력 차지에 "올인"하는 모습이 되고 맙니다. 나중에는 권력을 차지하면, (지키기 위해, 또는 뒤엎고 차지하기 위해) 각 붕당이 거의 목숨 걸고 "정치 투쟁"을 펼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정권을 바꾸는 것을 거의 사명으로 하는, 환국정쟁으로 몰락하기도 합니다. 자, 정치가 이렇게 펼쳐진다면, 과연 백성은 지금 어디에 있는걸까요? 이들이 볼 때, 사람들의 삶은 과연 안중에 있는걸까요?

 

 여기서 잠깐 생각해 봅시다. 정치가 "우리 세력이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을 중시 여겨야 할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정치란 무엇인가요? 강상중 교수님의 견해를 빌려오자면, 어떤 사회에서의 "가치의 권위적 배분"을 정치가 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가치 있는 것을 누가 어떻게 갖는가, 어떻게 배분하는가, 그 규칙을 정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지요.

 

 또한, 정당이란 영어로 "party" 즉 부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정당은 아무래도 "전체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 입니다. 따라서 특정 당이 독식하면, "부분의 이해만을 반영하는 위험이 크다"는 것을 항상 염두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왜곡이 계속된다면, 바꿔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정권을 우리가 직접 결정하는 민주주의란 아주 소중하다는 것. 꼭 생각해 본다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영감은 조금 세게 나가보겠습니다. "누가 하든 어차피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 놈이 그 놈이다, 다 똑같다" 등의 혐오감, 또는 무력감이나 좌절감이 흐르게 되면 곤란합니다. 저는 혹여 젊은 세대가, 정치적 무관심이 가득한게 아닐까 우려하기도 합니다. 탈권위는 긍정적인 변화지만, 탈정치는 국민에게 해롭습니다.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결코 "점"이나 고가의 "보석"이 아니라 바로 "정치" 라는 것을 꼭 생각해 보세요.

 

 행복한 삶을 원하고, 삶의 변화를 원한다면, 투표부터 하고, 정치부터 바꿔보기 위해서 내가 한 걸음 내딛는게 그토록 막강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목소리를 낼 줄 알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야, 그래서는 안 되잖아, 그거 반칙이잖아" 라고 자신의 의견을 가질 줄 알아야 합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피곤하게도, 역사를 왜 생각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지배세력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비슷한 방법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고, 흐름을 주도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공고히 지켜나가는데 능숙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정신적 노예로 종속되지 않기 위해서는, 또는 백여년 전처럼 2등 백성으로 추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계속 정신을 맑게 유지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안전장치도 없이 위태롭게 외줄타기를 하면서, 저사람 보다 빨리 가야 한다며 힘겹게 살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사투만이 삶의 모습은 아니라는 것을, 또한 정치를 통해서 얼마든지 안전망을 만들 수 있음을 꼭 이야기 하고 싶네요. 다음 화에서 만나요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