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있는 진지함이 느껴지는 강상중 교수님의 신간, 도쿄 산책자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마치 일본 한가운데를 함께 거닐면서, 친절하고 해박한 설명을 듣고 있는 듯한 "유쾌한 기분"을 만들어 줍니다. 제5장 원자화하는 개인 부분이 참 인상적이어서, 여기서부터 서론을 시작하면 좋을 듯 합니다. 철학자 코제브의 말을 빌려, 머지 않아 인간이 소멸하고 동물로서 생존을 계속한다 라고 간파한 말은 상당히 극적입니다. 조금 느낌은 다르지만, 벤자민 프랭클린도 "어떤 사람들은 25살에 이미 죽어버리는데 장례식은 75살에 치른다" 라고 정곡을 콕 찌른 적이 있습니다.
현대 사회로 오면서, 기계들이 필요한 욕구들을 하나둘 채워주다보니, 정작 사람은 먹고 자고 일하고의 반복. 그리고 멍하게 TV나 스마트폰에 잠식되어가는, 다만 "생존만을 계속하는 존재"로 추락하고 만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가볍게 보자면, 확실히 편리해졌고,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늘어난 것 같지만, 냉정히 따지고 들어가보면, 실제로 우리가 인터넷을 이용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인간관계의 폭은 줄어든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즉 우리는 이제 "타자" 없이도 만족하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자 : 강상중 / 송태욱 옮김 / 출판사 : 사계절
출간 : 2013년 04월 26일 / 가격 : 13,000원 / 페이지 : 248쪽
그리고 이런 사회에서 "사회적 시민", "인권", "깨어 있는 의식", "참여와 의견"은 어딘지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이야기로 들리기도 합니다. 조용히 유령처럼 침묵하고, 나만 좋으면 된다는 식의 가치관이 확산되고 있고요.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보다는, 적당히 자리를 찾아서 안주하는게 "편리한 사회"가 주는 역설이 아닐까요. 그래서 강상중 교수님은 소설 거울 지옥의 한 대목을 빌려와서 인간에 대한 예리한 시선을 던져줍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자신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끝내 남자는 미치고 맙니다." 결국 자신만 보고 있다면, 인간은 정신줄 놓고 막나갈 수 있음을 너무나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 버스를 타고 가다가 저는 기묘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 중에서, 젊은 사람들은 전부 스마트폰을 들고서 음악을 듣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관찰자인 척 했지만, 실상 스마트폰으로 종종 버스에서 쿠X런을 하기도 했고요. 하하. 그러다보니 버스 정면 상단에 이런 경고 문구가 써있었습니다. "DMB 시청을 할 때에는 이어폰을 착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생각해보면 황당하지만, 실제로 버스에서는 스마트폰을 쓰면서도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나만 편하게" 소리를 그대로 켜놓고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거울 지옥의 주인공은 현대에도 있습니다. 나밖에 보이지 않는 겁니다. 한 가지 더, 이제 사람들끼리 일상적 대화를 나누다가도 별로 할 말이 없어지면, 또 스마트폰을 들여다 봅니다. 이쯤되면 사람이 거의 기계의 노예화가 되고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휴대폰 판매회사와 통신사는 정말 좋겠군요 (웃음)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강상중 교수님은 벗어날 것을 권합니다. "내가 즐길 수 있다면 되지 않나" 라는 개인적 시선에 구멍을 뚫고, 타인의 얼굴을 보고, 타자와 연결되는 회로를 만들고, 리얼한 인간으로 이어지는 회로를 생각해볼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바꿔 말해, 거울 지옥에 갇혀서 산다면, "진짜 인간"이 아닐 수 있음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셈이지요.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사람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강상중 교수님의 시선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 우리는 삶에 있어서 "타인이 들어설 공간을 얼마만큼 가지고 있는가?" 그 한 켠의 여유야 말로 인간성을 지켜줄 보루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불안에 대해서도 강상중 교수님은 "가능성"으로 해석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양한 가능성을 숨기고 있는 "보물"이라는 거지요. 그러므로 설령 나는 자신감이 없다 라는 무기력함이 든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가능성이 있는 존재"라는 사실만은 잊지 않아야 합니다. 남들보다 강하거나 우월하지 않더라도, 그렇기 때문에 매일 불안함이 밀려 올지라도, 인간은 가능성의 존재입니다. 그리고 가능성은 "기존의 나"를 의심해보고, 흔들어 볼 때, 새로운 시선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강상중 교수님은 그토록 "타자와 교류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겁니다. 사람과 만남으로서, 우리는 새로운 정체성이나 가능성을 깨닫게 되니까요.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포착하자는 시선도 흥미로웠습니다. 예컨대 요즘은 전철의 손잡이가 불결하다고 느끼는 결벽적인 사람이 늘어 갑니다. 또한 성형수술로 완전한 얼굴을 가지려고 하는 사람들의 심리도, 다르게 본다면 현실적인 것을 부정하거나 피하려고 하는 일종의 나르시시즘일 수 있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아닌 것은 부정하겠다는 겁니다. 즉 뒤섞이려고 하기 보다는, 순수하고 고결한 모습만을 탐하는 겁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신성한 부분과 더러운 부분이 함께 있다고 강상중 교수님은 일갈합니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빛나는 것처럼, 추가 있기에 미도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아름다움"에 관해서, 단순히 순수하고 불순물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다양성을 생각해보자고 말합니다. 목표를 추구하고, 한결같이 성공만을 이룬 인생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몇 번이나 좌절을 경험하고서도, 여전히 다시 일어서려는 그 태도가 더 아름다울 수 있음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축구로 비유하자면, 동점 상황에서 시원스럽게 들어가는 결승골만이 아름다운게 아니라, 0-2로 전반전을 내내 허덕이다가, 마침내 후반전에 추격하는 단 한 골이 펼쳐질 때, 그 장면도 얼마든지 아름답고 멋진 전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굳이 "화려한 성공", "빛나는 모습" 만이 전부이자, 멋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이면에서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자신의 모습, 나는 왜 이럴까 라고 힘겨워하는 모습도, 자신의 한 부분임을 받아들이고, 거기서부터 변화의 출발점을 찾아본다면, 이것도 굉장한 아름다움이 아닐까요.
오히려 저는 무기력한 자기만족에 안주하면서 덧없이 하루를 무의미하게 흘려보낼 바에, 차라리 철저하게 고민하고 다시 한 번 자신을 들여다보는 용기를 가지는게, 커다란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상중 교수님은 이런 일들을 "회의의 도가니 안에서 여러 가지를 파괴해 나가는 힘든 작업"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나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의 파괴, 내가 쌓아 올린 외벽의 파괴, 그리고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을 마주해 나가는 것, 그렇게 살아간다면 우리는 인생을 두 번, 세 번, 살아갈 수 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생존만을 추구한다면, 즐거움만을 탐한다면, 만들어진 기준에만 열광한다면, 인간이기 보다는 동물에 가깝지 않을까요. 강 교수님이 "요즘 시대에 가장 수지가 안 맞는 것은 보통 사람"이라고 표현한 대목이 저는 매섭고도 슬펐습니다. "하루하루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어느 날 출근했더니 회사가 없어지고 마는 불합리한 일이 일어나는 세상" 현실은 그런 마계와도 같은 세계가 아닐까 라고 바라보는 겁니다. 과거 IMF의 추억이 있던 저는 꽤나 공감하는 대목입니다. 역설적으로, 이제 자신의 가계만을 생각하고, 동물처럼 살아간다고 해도, 생존이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시기일 수록,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야 하고, 더 나은 시스템을 고민해야 하며, 반칙과 악용에 관해서 반드시 책임을 지는 문화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 결국 "나랑 무슨 상관이야" 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을 수록, 그 사회는 엉망이 되어가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 할 말을 하는" 사람이 많을 수록, 그 사회는 서서히 맑아져 갑니다. 우리가 거울 지옥에 빠져서, 나만 바라보고 있는건 아닌지, 그렇게 괴물로 변해가고 있는건 아닌지, 경계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의 리뷰는 여기까지 입니다. / 2013. 07.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