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요한 선생님은 수필 대회에 도전했다가 떨어지고, 삼세번이라는 말도 있어서 삼 년이나 도전했는데, 몽땅 떨어졌다고 합니다. 글쓰기에 재능이 없나? 싶다가도 생각을 바꾸어서, 수필과는 안 맞는가 보다 라고 결론내리고, 아예 수필과는 "다른" 분석적인 글들을 써왔고, 어느덧 하나 둘 책들을 내게 되었지요. 단언컨대 저는 문요한 선생님처럼 깔끔하고 정갈한 글들을 잘 보지 못했습니다. 핵심만 간결하게 담아내는 센스가 일품이지요. 내심 부럽기도 하고요. 하하. 제 글은 조금 난삽한 맛이 있어서... -_-;;; 늘 부끄럽습니다.
여하튼, 이번 책은 문요한 선생님의 짧은 이야기들 모음입니다. 대략 100가지 정도의 짧막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틈틈히 읽기에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인상적이고 강력한 통찰도 많았습니다. 가령 엄청난 불안이야말로, 상상력의 원천이었다고 표현하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라든지, 평생 죽음의 공포와 불안에 시달렸던 화가 뭉크 라든지, 또한 정말 유명한 프로이트나 카프카 등이 심각한 불안장애 환자였다 라든지... 왜 하필 서론을 불안으로 출발했는가 하니, 그건 광고 후에... 알려드리겠... 농담이고, 그 점은 본격적인 본론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오늘 많은 이야기 중에서, 깊게 와닿았던 세 가지 정도만을 집중적으로 다룰까 합니다.
저자 : 문요한 / 출판사 : 해냄
출간 : 2013년 04월 30일 / 가격 : 14,000원 / 페이지 : 296쪽
저는 문요한 선생님의 다른 책들에서 조언을 읽은 이후, 종종 자기점검을 실시해 보곤 합니다. 오늘 기뻤던 일은 무엇인가? 지금의 감정은 어떠한가? 나는 왜 이것들을 좋아하는가? 라고 질문을 던져보곤 합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발견이 있었는데, 저는 "불안"을 테마로 하는 영화를 참 좋아했습니다. 10대 때의 인상 깊었던 영화 "패치 아담스" 라는 작품은 정신병원의 한 장면에서 출발하고, 또 20대 때 감명 깊었던 영화 "뷰티풀 마인드"는 아예 정신질환으로 고생하던 교수 이야기 였습니다.
무슨 영화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뷰티풀 마인드라고 했다가, 그런 영화 좋아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는 놀림도 들었습니다. 바꿔 말해서, 저는 "불안"을 즐겨보는 이상한 사람이었던 거지요. (어떤 사람들은 공포 영화를 아주 좋아하듯 말이에요.) 최근에도 정서적으로 문제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연이어 등장하는 "아메리칸 뷰티" 라든지 조금 색다른 영화들이 잔상에 오래도록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이런 불안함이야말로, 창조성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 큰 위안이 되어주었습니다. 몽테 로랑의 말을 빌려오면 "평범한 인간이 이따금 비상한 결의로 성공하는 경우, 그가 훌륭한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불안에서 벗어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다" 라는 거지요.
즉 우리 마음에 청진기를 대보고, 불안감이 느껴지고, 어쩔 줄 몰라할 때가 있을지라도, 그 순간 우리가 벗어나기 위해서 계속해서 노력해 나간다면, 오히려 한 걸음 성장해 나가는 중요한 계기, 전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꾸만 피하거나, 도망치려고만 해서는 곤란합니다. 문요한 선생님은 "끝나지 않은 길"의 한 대목을 가져와 조언합니다. "문제를 대면하는 데 따르는 정당한 고통을 회피할 때, 우리는 그 문제를 통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성장도 회피하는 것이다." 그래서 따끔한 조언도 아끼지 않습니다. 지금 피하면 나중에 더 크게 돌아온다는 겁니다! 치유와 회복의 첫걸음이란 늘 그렇듯, 피했던 삶의 문제들을 다시 마주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지난 주 지인에게 들었던 "다나카 고이치"의 이야기가 책에 딱 실려있었던 것도 신기했습니다. 이런 걸 "우연"이라고 하는데, 저는 그런 우연이 가지는 영감과 통찰을 중요하게 생각하므로, 여기에도 소개해 봅니다. 다나카는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인물인데, 학사 출신에, 놀랍게도 화학이 아닌(!) 전기 공학을 전공했던 사람입니다. 당연히 학계에서도 무명이었던 기술자였지요. 그랬던 그가 노벨상을 타기까지에는 이 한 마디가 중요했습니다. "이상하다, 왜 이럴까?" 라며 끝까지 이유를 찾는 습관을 갖고 있었기에, 그는 놀라운 사건의 주인공이 되었지요.
생각해보면 작은 차이입니다. "이상하지만 뭐..." 라고 넘어가기는 쉬운 선택입니다. 그런데 그 이상한 점을 계속 파고들어서 분명하게 알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보다는 몇 배나 힘들고 지루한 선택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할 수 있느냐? 그런 각오가 있느냐? 결국 태도가 중요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또 생각나는 인물이 있네요, 히로나카 헤이스케라는 사람입니다. 학문의 즐거움 이라는 책을 썼는데, 어쨌든 그 역시도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을 수상했던 재능있는 학자 입니다. 그는 평소 남들보다는 3배 정도 노력을 들일 각오를 하고, 공부를 한다고 합니다. 남보다 더 많은 재능을 가지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노력만큼이라도 더 하자는 겁니다. 이러한 겸손함과 집념, 태도야 말로, 어쩌면 탁월함의 원천인지도 모릅니다.
끝으로, 등로주의의 위대성에 대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을 흔히 "등정주의" 라고 합니다. 속도와 성공을 중시하고, 기록 경신과 최고의 순간을 경험하기를 즐겨하지요.] 그에 비해서 등로주의는 얼핏 이상해 보이기도 하고, 별로 폼도 나지 않습니다. 등로주의는 능선을 따라가는 정해진 길을 거부하고, 절벽을 오르는 등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는 모험적인 등반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결과 보다는 "과정" 그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헤메기도 하고, 방황하기도 하고, 실패도 겪지만 그 모두를 중요하게 여기지요. 새로운 루트가 당연히 쉽게 열릴리도 없고요. 그럼에도 이들은 침착하고, 여유가 있습니다. 목표가 정상에 오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등산가 머메리의 표현대로, "인류가 도달하지 않은 곳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 (중략) 참된 등산가는 새로운 등반을 시도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는 성공에서나 실패에서나 투쟁의 재미와 즐거움에 희열을 느낀다."
성공만을 높여주는 사회 속에서, 등로주의를 이야기 하는 것은 자칫 바보스럽고, 또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상하리만큼, "자신만의 길을 계속해서 걸어가는 사람,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갖고 있으면서도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 을 발견할 때마다 참을 수 없이 기쁩니다. 세상을 다르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고, 또 이들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우리를 놀라게 하고, 우리에게 영감을 줍니다.
강상중 교수님은 저서에서, 앞으로의 사회에서도 브랜드가 우리를 보증해주는 일종의 "부적"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람이란, 자존감이 한없이 떨어지더라도 일단 로고를 붙이고 있으면 안도감을 느끼는 존재라고 간파한 겁니다. 불편하고 자극적인 광고문구처럼, 무엇을 들고 다니냐, 무엇을 입고 다니냐, 무엇을 타고 다니냐, 심지어 어디에서 사느냐 라고 사람을 평가하거나 혹은 너와 나는 급이 같다는 동질화 를 느낀다는 의미 입니다. 바꿔 말해 사람은 그만큼 승자가 되고 싶어하는 욕망이 아주 큰 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등로주의 같은 정신이 앞으로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브랜드 처럼 만들어진 권위에 기대어서 안도감을 느끼기 보다는, "내가 정말로 있어야 할 곳에 있는지, 내가 정말로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 그 질문에 제대로 답변할 수 있는 충실한 하루를 보낼 때, 우리가 진정으로 안도감을 느껴야 하는게 아닐까요? 여기까지 조금 매섭게 생각을 몰아붙여놓자, 저는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다 좋은데, 삶의 기준이 너무 높은게 아닐까? 아니 평범한 사람, 범인의 경지로서, 어떻게 남들보다 세 배 더 공부하고, 부적 없이도 살고,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갈 수 있단 말인가요? 허무한 날들도 기필코 있을텐데 말이지요.
문요한 선생님의 구체적 표현이, 참으로 명확해서 좋았습니다. 수필보다 진짜 분석스타일이 맞으신가 봐요. 하하. 1. 원하는 목적지로 향하는 길에서 "가끔씩" 삶이 즐겁거나 행복하다고 느끼는가? 2. 나의 활동 속에서 "가끔씩은" 자신이 온전히 발휘되는 느낌을 받는가? 어때요. 이 두 가지의 질문 중에 하나라도 "예!"가 나온다면, 잘 가고 있는 것이라고 힘껏 다독여 줍니다. 만약 둘 다 아니오라면, 다른 선택지를 고려해 봐야겠고요. 결국 모든 순간이 즐겁기만을 바라는 것이야 말로 "오만한 태도"입니다. 우리는 그런 망상을 던져버리고, 가끔씩 찾아오는 행복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겸허한 태도"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책을 덮으며 저는 반성부터 또 합니다. 하하. 아무쪼록 온전히 스스로를 발휘하는 활기차고 건강한 삶을 꾸려나갈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 2013. 07.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