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9세기의 상황을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조금은 가슴 아픈 시간이 될 수 있겠고, 또한 마침내 고통 속에서 새로운 길을 향해서 걸어가는, "놀라움을 발견하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흥미진진한(!) 19세기 사회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볼까요. 사실, 이번 문서는 근현대사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차분히 정리해둔다면 근현대사의 배경을 살펴보는데 도움이 됩니다. 이를테면, 흥선대원군의 개혁은 왜 나왔을까? 그런 배경도 이해할 수 있고요. 뭐, 언제나처럼 천천히, 하나씩, 그리고 즐겁게 살펴보도록 합시다.
우선, 19세기의 정치는 암울했습니다. 19세기의 첫 지점 - 1800년에 정조가 죽으며, 정치의 모습이 확 달라졌으니까요. 세도 정치가 등장 합니다. 풍양 조씨, 안동 김씨 등 소수 가문에 의해서 독점적으로 정치가 이루어집니다. 이당시 가장 큰 문제는 "매관매직"이었습니다. 관직을 돈주고 산다는 건데요. 조선 후기로 갈수록 돈의 힘이 커지고 영향력이 커지기도 했고요. 그렇다면, 왜 "관직"을 돈주고 샀을까요? 언제나 이 대목은 참 마음 아프다는 느낌이 듭니다.
매관매직은 - 내가 돈을 투자한 만큼, 그보다 더한 돈을 민중에게 뽑아내기 위해서 관직을 거래하는 거였습니다. "그게 가능해?" 라고 당장 따져묻고 싶겠지만, 시대 상황이 지금 그걸 가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조선 후기의 향촌에선, 이제 "관직"을 차지하면, 견제받지 않고 마구 권력을 휘두를 수 있습니다. 향안도 내맘대로, 향약도 내멋대로, 요즘 말로 향촌의 폭군이 되어, 무한 갑(甲)질을 해도, 막아낼 견제 세력이 없었던 겁니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황당하고 앞이 깜깜한 지경입니다.
예컨대, 관직을 사서 들어온 악덕한 관리는 기층 민중들을 가혹하게 쥐어짜기 시작합니다. 이거 정말 정말 심각한 상황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부패했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을 만큼, 백성들은 지금 "토나오는 현실", "현실은 시궁창" 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경제를 살펴봅시다.
19세기 경제면에서는, 삼정의 문란 이 일어납니다. 아주 중요한 대목이니. 잘 체크해 둡시다. 아, 당연히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생각할수록 당황스럽고 열받을 뿐이지요. 하하. 우선 삼정이 뭐냐하면, 국가의 주된 수입원 - 전정, 군정, 환정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는 겁니다. (뭐 사실 국가 재정은 양란 이후로, 계속 힘든 상황이어서 나라가 양반 자리도 팔았었고, 여러번 대단한 개혁도 있었습니다) 19세기에 들어오면서, 정치가 막장으로 흐르고, 국가가 무능해지며, 사람들이 피눈물 흘리게 됩니다. 자세히 들어가봅시다.
쉽게 접근해보면, 전정(땅에 매기는 세금)은 영정법, 대동법 등의 개혁이 있어서 지주들이 농사의 일부분을 국가에 납부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문란해지면 어떻게 될까요? ① 은결이라고 해서 내 땅을 숨겨 버립니다. 내 땅 없어!!! 그러니까 돈 안 낼꺼야!!! ② 그리고 이미 있는 땅에서 농사를 지으면 세금은 소작하는 농민보고 다 내라고 떠넘겨 버립니다. 4두 니가 내, 12두 니가 내... 농사 하기 싫음 나가서 임노동자 하든가~ 이러니, 농민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꾹꾹 견디며 농사를 지어봐도, 가져가는게 거의 없을 정도가 됩니다. 가뭄이라도 들면, 차라리 도망가서 도적이 되기도 합니다.
군정(역)의 문란은 더 심각했습니다. 역은 본디 16~60세까지의 정남에게 부과되어야 했는데, 여기서 각종 비리백화점이 등장합니다. 누구나 양반이 되어 군역을 면제받고, 역을 감당할 사람이 점점 사라지자, 남아 있던 힘없는 농민에게 지나치리만큼 가혹하게 역을 때려버립니다. 정남에게 1년에 1포씩 받아야 할텐데, 황구첨정이라고 해서, 어린 아이들에게도 포를 내라고 우깁니다. 또 있습니다. 백골징포라고 해서, 심지어 죽은 사람들에게도 포를 내라 고 합니다. 이를테면,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럼에도 그 몫을 내야만 했습니다. 이건 뭐 아수라장, 시궁창, 참으로 갑갑한 노릇이지요.
너무 속상하고, 가슴이 시꺼멓게 타들어 가는, 이런 현실에 급기야 짐싸서 도망치는 사람도 생겨납니다. 더 놀라운 건 여기서 등장하는 "족징, 인징" 입니다. 만약 누군가 도망가버리면, 그만큼의 부담을 남겨진 친척 혹은 이웃 사람들에게 그대로 매겨버리는 겁니다. 일종의 협박이지요. "도망쳐? 그러면 네 친척과 아는 사람 다 쥐어짜버릴테다!" 이쯤되면 나라판이 누가 도둑놈인지 정말 아찔한 지경입니다. 민심은 계속 악화되어 나갔고요.
환정(환곡)의 문란도 살펴봅시다. 원래 곡식을 빌려준다는 취지였던 환곡은, 어느새 준조세 성격을 가지는 "고리대"로 변질됩니다. 본디 환곡이라함은, 춘대추납의 원칙을 가지고,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돌려받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걸 담당하는 공무원들, 이를테면 수령이나 향리 같은 사람들이 부패하면서, 환곡을 통해서 "돈"을 벌려고 합니다! 가령 봄 무렵에, 무조건 대출 받아! 이만큼 빌려가! 하면서 쌀을 억지로 빌려주고, 가을이 되면 폭리를 거두면서 다시 받아갑니다. 그러니 환곡이 거의 세금처럼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가을마다 농민은 아이구 이번에 또 빚 갚아야 겠구나... 싶은 겁니다.
자, 여기까지 삼정의 문란을 살펴보면, 이런 참담한 일이 계속되며, 기층 민중들의 삶이 끝까지 추락해 나가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역사는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정치가 썩어빠지면,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되는가? 대략 두 세기 전, 그 당시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올바른 정치의 실종이야말로 정말 무서운 일이다 라는 걸 알게 됩니다. 나아가 정치 무관심이라는 것은, 시민들이 정의의 칼을 들고 있음에도, 그걸로 자신을 찌르고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눈앞에 흥미꺼리만 지나치게 좇고 있을 때, 정치가 제멋대로 힘을 남용할 때, 끔찍한 현실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를 배우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되새겨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어쨌든, 이야기로 돌아와 지금 조선 후기 향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매관매직을 통해 "백성들 고혈을 빨아먹는 미친짓"을, 중앙 정부에서 견제하고 막아줘야 하는데 이게 작동이 안 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힘있는 자들이 다들 돈 먹고, 돈에 취해 있다보니, 끝내 피눈물 흘리는 것은 힘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이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듭니다. 19세기의 모습? 민중에게는, 너무 깊고 어두웠던 절망적인 세계가 아닐까 싶고요.
계속해서 19세기의 사회,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신분제가 동요하고 있음을 지난 문서에서 재밌게 살펴봤잖아요. 누구나 양반~이고, 상민과 노비의 숫자는 감소하고 있고요. 특별히 이번 문서에서 강조하고 싶은 대목은, "사회 의식의 성장!" 이것이, 정말 의미 있는 대목입니다. 이를테면, 기층 민중들이 현명해 졌다는 것인데요, 차분하게 천천히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조선 전기에는 성리학적 이상세계가 당연하게 여겨졌습니다. 질서도 나름대로 유지되었고요. 그런데, 양란을 거치면서, (전쟁나면 도망가고 하는) 계속되는 지배층의 모순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요새는 짝퉁 양반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고요.
이런 사회를 겪어 보니, 권위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성리학에 대해서도 마침내 이건 아니야! 하며, "다른 생각"이 등장합니다. 다시 말해, 관념적인 성리학 대신에, 다양한 대안들이 등장 하는데요, 재밌는게 많습니다. "성리학? 시꺼, 그냥 때려쳐! 실천이나 해!" 완전 쿨하지요. 이런 식으로 양명학 이 나옵니다. 또한 고증학의 영향을 받은 "실학이 등장"하고 있고요. (양명학과 실학은 뒤에 문화사 다룰 때 또 살펴볼 수 있을꺼에요!)
종교도 재밌습니다. 혼란한 사회가 되면, 항상 이상한 종교들이 등장합니다. 예를 들면, 세상이 말세다~ 라면서 말이지요. 조선 후기 사회 불안으로 인해, 예언사상이 등장하고, 도참, 비기(이씨가 이제 망한다는 등 비밀스러운 기록), 미륵신앙 같은게 유행했습니다. 말세다, 개벽이 일어난다~ 이런 말들은 워낙 불안한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며 기대곤 했지요. 현실이 너무 암울했으니까요.
한편 조선 후기에는 서학(천주교)이 전해집니다. 서학의 특징은 평등사상을 강조했기에,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학문으로서 서학이 들어왔고요. 시간이 흐르면서 서학은 종교로 받아들여지고, 특히 권력에서 퇴출된 남인들이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서학에 반대한다는 개념으로 등장한 "동학"도 있습니다. 최제우가 창시 했는데, 슬프게도 최제우는 혹세무민 했다는 죄를 덮어쓰고 죽임을 당합니다. 뒤를 이어 최시형이 동학을 이어가며, 동경대전, 용담유사 같은 저서를 남깁니다. 동학은 인내천 사상을 강조합니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 시천주도 있었고요.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 이처럼, 조선 왕조를 부정하고, 백성이 편안히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가, 민중의 많은 지지를 받고, 그 후, 백성 현혹죄로 처형 되버리는 대목은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이런 모습들을 기층 민중은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층 민중들은 어리석게 계속 괴롭힘만을 당하지 않게 되고요! 19세기의 매력은 어쩌면 이제부터 입니다!
[서학과 동학의 공통점은 평등사상]이라는 점. 모두가 평등하다! 이런 생각들이 좌~악 퍼져나갑니다. 그러므로 이제 19세기 조선에서는 성리학적인 접근으로는 뭐하나 분명히 설명되는 게 없습니다. 세도 정치에다가 삼정의 문란으로 백성들이 이렇게 괴롭게 살아가고 있는데, 명분을 중시하고, 질서를 따르라? 이제 백성들이 볼 때, 그게 말이 돼? 이 사기꾼들아! 라고 외치며, 다른 생각의 방향을 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못 살고 있는 원인이 뭐냐? 양반 지배층들의 무능 때문이다! 라는 생각이 확산되어 나가자,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자, 드디어 19세기 민란의 발발입니다! 민란의 시대! 항거의 모습들이 펼쳐집니다!
19세기 초 홍경래의 난이 평안도 지역에서 대규모로 일어납니다. 오래도록 차별을 많이 받던 지역이었고, 몰락한 양반들이 중심이 되어서 전개가 되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많은 피지배층들이 함께 했고, 위세도 대단했지만, 끝내 정부군에 진압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건 시작에 불과했지요.
19세기 중반 임술농민봉기가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민란이 확대되가며, 제대로 들고 일어난 농민 봉기 인데요, 경남 진주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나갑니다. 농민들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측면에서 정말 놀라운 의식의 성장 혹은 변화라 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19세기 후반에는 동학농민운동이 펼쳐지고요. 동학농민운동은 민란의 종합판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반봉건, 반외세를 외치며 펼쳐지고 있고요. 동학농민운동은 또 근,현대 대목에서 재차 살펴볼 수 있겠고요.
자,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민란을 일으켰을까요? 간단합니다. 이런 썩어빠진 세상에서는 못 살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제껏 양반과 지배층이 주역으로 세상을 이끌어 왔다면, 이제는 얼마든지 피지배층이 들고 일어날 수 있음을 절절하게 느껴볼 수 있고요.
여기까지 19세기 사회풍경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이 무너져가는 조선 사회를 바꿔야겠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는 인식을 하게 되면 - 여러 실학자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한편에서는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또 나아가서 사회 전반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개화파도 나오고 합니다. 이렇게 근 현대로 연결되어 나가는 거지요. 생각외로 참 길었네요. 조금 격문인 듯 해서 혹여 읽기 불편한건 아닌지 반성도 해봅니다. 하하. 오늘 문서는 그럼 여기에서 마칩니다. 다음 문서 부터는, 조선 후기 문화사를 살펴보겠습니다.
오늘의 영감 - 조금은 어려운 이야기를 짧막하게 필사해서 써보며 마치고자 합니다. 역사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진보에 대한 믿음은 어떤 자동적인 불가피한 진행에 대한 믿음이 아니다. 그것이 아니라 인간 능력의 계속적 발전에 대한 믿음이다." / "인간 세상의 진보는 현존하는 제도를 조금씩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이성의 이름으로 그 제도와 그것을 떠받치는 공공연한 또는 은폐된 가설에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한 인간의 대담한 결의를 통해 이루어졌다."
저는 세상이 저절로 좋아지지는 않는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계속 열정을 가지고 노력해야 합니다. 저는 예능프로그램을 즐겨 보지는 않지만, 그래도 "무한도전"이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노래 말하는대로의 가사 후반부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될 수 있다고 될 수 있다고 / 그대 믿는다면 / 맘 먹은대로 (내가 맘 먹은대로) / 생각한대로 (그대 생각한대로) / 도전은 무한히 / 인생은 영원히"
영원히 도전할 수 있는 삶, 무한히 도전해 보는 삶, 질문을 던져보는 태도, 의문을 가져보는 태도, 그래서 함부로 남용되는 권력을 얼마든지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로움, 그렇게 시민 한 사람이 당당히 서 있다면, 거기서부터 세상은 좀 더 희망적인 공간으로 변화되어 나가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도 힘내시길 응원하며.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