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근대 태동기의 문화1 - 대안 학문의 등장과 중요성

시북(허지수) 2013. 9. 14. 17:01

 고백하자면, 끙끙 거리며, 며칠째 이 문서를 붙들고 있습니다. 간단한 도식화만으로는 설명하기 곤란한 대목도 있고요. 이번 문서는 일관성 있게 흐르지 않는다는 점을 먼저 양해 부탁드립니다.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밀어넣지 않았으면 바랐고, 어느정도 여백이 있었으면 했고, 그래서 "잠시 멈춰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싶었고요. 이번 문서는 비주류 이야기들입니다. 실학이나 양명학 처럼 날선 소리를 들어보는 시간이지요. 법과 원칙, 정의를 주장하다가 힘있는 주류에게 된통 당하는 이야기는 조선 후기의 이야기인지, 과연 오늘날의 이야기인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서론은 이쯤하고, 문서 출발해 봅니다.

 

 조선 후기에도 학문의 주류는 어디까지나 "성리학"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조선이 그렇게 변해왔음에도, 끝까지 성리학을 고집하고, 더 나아가 절대화 시키려는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조금 차갑게 본다면,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고 싶지 않아서, 계속 성리학적 질서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강경합니다. 성리학을 비판하지 말라! 괜히 다른 이야기를 꺼내들었다간, "저 사문난적 X자식이다!!! 없애버려야 된다!!!" 라는 맹공격을 당하기도 했고요. 이런 경향을 "성리학의 절대화 또는 성리학의 교조화" 라고 부릅니다.

 

 성리학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접근해 본다면. 성리학은 질서를 중시하고, 신분제를 유지하는데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보면 항상 무엇이 정통인가 를 따지거든요. 중국(명나라)이 정통이고, 남자가 정통이고, 양반이 정통이고, 이런 식으로 서열구조를 정당화 시킵니다. 또한 상당히 관념적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사과 하나를 놓고서도, 본질은 무엇인가, 이렇게 따지고 들어가니까요. (비유하자면 성리학자 왈, 빨간 겉이 본질의 표현인가, 안의 내용물이 본질의 구성인가, 그 속의 씨앗이 본질의 핵심인가, 사과의 본질은 뭔가... 양명학자들이 보면 기가 찰 노릇입니다. 사과? 시끄럽고, 그냥 먹어봐!)

 

 자, 그런데, 조선 후기로 넘어가면서, 성리학은 거대한 "멘붕" 상황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대외적으로 강대한 청나라가 등장한 것입니다. 이건 성리학적 세계에서 정말 당혹스러운 일입니다. 처...청나라? 오랑캐가 세운 나라 주제에!!! 정통성도 이상하고 말이야!!! 진짜 그런 나라에 우리가 사대를 해야 하나??? 이런 묘한 딜레마에 빠지고, 고민이 시작되는 겁니다. 그리고 아무리 고민해봐도 명분상 오랑캐를 따를 수 없었고요.

 

 쉽게 정리한다면, 조선 후기의 성리학은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하니, - 우리가 저 오랑캐 나라를 따를 수 있겠는가, 우리 조선이야 말로 명나라의 뒤를 이어가는 정통이다 라는 "소중화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도 친명! 배금(→안티 청나라)! 하다가, 결국 청나라가 쳐들어오며, 병자호란 때 엄청난 굴욕을 겪기도 했고요. 성리학은 지금 안팎으로 모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밖으로는 명분을 중시하다가 크게 당하고, 안으로는 지배층들이 먼저 도망가버리고 하니까, 이른바 "성리학으로 안 돼" 라는 대안이 등장하는 거지요.

 

 (오늘날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과거 냉전시대, 미국을 우호적으로 보고, 중국을 적국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이미 냉전은 끝났고, 중국은 떠오르고 있고, 대외무역에서 중국의 비중이 40%를 넘어가고 있으니, 중국을 앞으로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이것이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과거에 상대적으로 못 살았던 나라가, 지금은 강대국이 되어가고 있으니, 이제는 중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도 늘어가고 있고요.)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 조선 후기는, 경제면에서도 상품화폐경제가 엄청나게 발달하고 있고, 돈이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신분제까지 흔들리며, 누구나 양반하고 있고요. 자, 과연 성리학으로 이 모습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질서를 따라야 한다? 자급자족 검약해야 한다? 이제는 완전 반대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등장 하고 있습니다. 실학자 박제가의 돌직구 잠깐 들어봅시다. 아휴 얼음 같이 시원합니다. 하하.

 

 "꽃에서 자란 벌레는 그 날개나 더듬이조차도 향기가 나지만 똥구덩이에서 자란 벌레는 구물거리며 더러운 것이 많은 법이다. 사물도 본래가 이러하거니와 사람이야 당연히 그러하다. 빛나고 화려한 여건에서 성장한 사람은 먼지 구덕의 누추한 처지에서 헤어나지 못한 자들과는 반드시 다른 점이 있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우리나라 백성의 더듬이와 날개에서 향기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가난하고 검약한 생활이 덕이 아닐 수도 있다 라며, 거침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박제가는 소비를 해야, 경제가 살아난다고 거침없이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세상이 변하자, 다양한 목소리가 있었다 라는 걸 이해해 둔다면 좋겠습니다.

 

 여하튼, 실학에서는, 자주, 민족, 실사구시를 중시합니다. 충분히 근대지향적이고, 합리적인 특징 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리학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또 있었습니다. 양명학 (강화 학파) 이 있었지요. 이들은 "말만 하는 성리학 시끄럽소, 닥치고 실천부터 하자!" 라며, 행동을 강조합니다. 사과의 본질이 뭐니 따지지 말고, 그냥 먹어보자 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양명학자의 돌직구는 간단명료합니다. "오늘날 (성리학) 주자의 학문을 논하는 자는 주자에 빌붙어 주자를 핑계로 개인의 이익만을 도모한다!" 다시 말해, 성리학? 그거 명분만 갖다 붙여놓고 지들 이익만 추구하는거야! 라고 딱 잘라 이야기 합니다. 이러다보니 양명학을 주장했다간 욕도 무지 먹습니다. (강화도로 옮겨 계속 연구를 해나갔다고 해서, 강화 학파가 되었지요.) 정리하자면 양명학은, 지행합일 -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같아야 한다며, 성리학을 거세게 비판했고, 사문난적으로 몰려서 고생하게 되었다 입니다. 또한, 지난 문서에서 잠시 봤었던, 서학과 동학도 등장하는데 - 평등사상을 추구한다는 특징 이 있고요.

 

 자, 여기서! 정말 결정적 문제는 뭐냐하면, 대안 세력이 "비주류" 라는 겁니다. 그러면 주류세력은 누구인가요? 처음에 언급했었던, 성리학의 절대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주류입니다. 송시열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고요. 그래서 주류는 대안 학문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합니다. 가령 비판적 남인 세력을 "사문난적"으로 규정하며 맹폭격을 퍼부어버립니다. 어쩌면, 요즘과 비슷한 측면도 있습니다. 내 생각과 다르게 주장하면 그냥 "빨갱이"을 갖다 붙이는 모양이... 아휴. (이렇게 하나의 틀만을 강요해서는, 오늘날을 민주주의 사회라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입니다.)

 

 조선 후기의 주류 세력들은 툭툭 내뱉으며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너 이적 행위하지 않았니?", "감히 주자를 비난해?", "성리학을 흔드는 사문난적 같은 X자식이다!!", "빨ㄱ..." 뭐 그런 식이지요.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갖고 있는 자신들만의 학문적 기반을 절대화, 신성화 해나가는 모습은, 우리가 오늘날까지 선명하게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대안 학문들이 비주류다보니, 힘을 못 쓰고 있습니다. 변화를 이끌거나 멋지게 활약하면 좋으련만, 등장 했다가 힘이 없다보니, 오히려 역적으로 몰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평등을 주장한 동학의 지도자는 처형당하고 말이지요. 이제 결론, 조선 후기 대안 학문이 등장하고, 다른 이야기들이 있었고, 아직은 주류 성리학이 힘을 휘두르고 있었다, 성리학을 절대시 하려고 했었다, 이 점을 체크해두면 되겠습니다.

 

 (성리학의 강경한 입장의 뒷배경 이해 :: 사례로는, 서인-노론의 송시열 같은 강경한 인물이 있는데, 이들은 "해석에서 한글자도 벗어나서는 안 된다." 며, 다른 해석을 내놓았던 학자들(윤휴 등)을 역적 취급해 버립니다. 음, 송시열은 극단적 평가를 받는 인물인데요. 한편에서는 "송자" 라는 거의 성인취급을 받기도 하고요. 한편에서는 송시열이야말로 집에서 기르던 "개이름"이 되기도 했고요. 어쩌면, 송시열의 경우 학문체계에 관한 자신감으로 무장해, 타 세력을 무차별 공격했던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평가가 정말 나뉘는 인물이다 정도로 여백을 남겨놓겠습니다.

 

 덧붙여, 정조가 송시열을 정말 존경했었거든요. 그 정도로 학문의 깊이와 원칙 및 자부심이 흐르는 인물이었음을 함께 고려해야 하겠고요. 송시열은 얼마든지 성리학으로도 조선의 부패와 잘못된 모습들을 바로잡아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조도 유명한 개혁군주 잖아요.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조선의 몰락은 붕당이나, 성리학 때문만이 아니라, 가문이 독점하는 세도정치의 흐름 및 부패와의 싸움에서 끝내 밀린 것, (돈으로 매수되며) 견제 세력을 잃어버린 것 등이 아닐까 로 고민해 볼 수 있습니다. 청렴한 나라가 상대적으로 잘 사는 비율이 높은 건 시사하는 바가 크고요.)

 

 이제 보너스(?)로 계보의 이해를 정리해 봅니다. 문서가 좀 길어지겠네요 -_-; 하하. 15세기 훈구파의 압박을 마침내 이겨내고, 16세기 집권한 사림은 구세력을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를 놓고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게 됩니다. 거기서 또 시간이 흘러, 광해군을 엎어버리고, 인조반정으로 정권을 서인이 장악한 이후로, 정권은 주로 서인→후에 노론으로 이어지게 되지요. 이들이 오늘 문서의 주류들이었습니다. 보수적이고, 강경하고, 자부심 넘치는 인물들도 있었고요.

 

 한편, 비주류였던 동인→남인계열은 이후 중농학파 (정약용) 나 서학으로도 연결되는데요. 비주류가 되다보니, 아무래도 다른 사상에도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 이 있습니다. 또한 숙종 때 서인에서 갈라져나온 온건파 소론의 경우 양명학에 연결되고 있습니다. 성리학을 다양하게 해석해 보려고 했고, 나중에 박은식, 정인보 등이 국학 연구에 매진하는 모습으로 이어집니다.

 

 끝으로, 18세기에 있었던 "인물성동이논쟁(호락논쟁)"을 잠깐 살펴봅시다. 호론(충청)과 낙론(서울)이 나뉘어서 논쟁을 펼친 것인데요. [호론은 인성과 물성은 다르다] 라고 보았습니다. 반면 [낙론은 인성과 물성이 같다] 라는 겁니다. 아이구,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하니 -_-;;;

 

 조선 후기 지식인 사회에서 청나라의 등장은 정말 "멘붕"상황이었습니다. 사대는 하고 있는데, 오랑캐고, 아휴, 우리는 소중화인데. 뭐 그런 식으로 말이지요. 이런 배경에서, 인이 곧 조선! 물은 곧 오랑캐! 이렇게 이해해보면 됩니다. 따라서 호론 왈, 조선과 오랑캐는 같을 수 없다!! 자, 그럼 이런 사고가 왜 중요했는가 생각해 봐야겠지요. 호론은 결국 오랑캐나 외세에 맞서자, 우리는 다르다! 라면서 위정척사파로 연결됩니다. 한편, 낙론은 조선이나 오랑캐나 다 같다 라는 생각을 했고요. 그리하여, 낙론은 외국에서 얼마든지 배우자는 겁니다! 북학파 - 개화파로 연결되고 있고요. 오늘 문서는 대략 여기까지 입니다. 휴.

 

 후기 문화사 첫 문서부터 난공불락의 큰 성 앞에 서 있는 막막한 기분이었네요. 편협한 이해가 되지 않아야 할텐데... 라는 고민을 많이 해서, 어질어질 합니다. 하하. 나름의 결론을 정리해봅니다. ① 주류세력은 참 끈질기게 성리학을 붙들고 있구나, 힘으로 밀어붙이며 비판세력을 적으로 규정해 맹공격하기도 하구나!!! ② 성리학의 절대화 경향은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구나! ③ 억눌러 버리기 위해, 사상자유의 탄압으로도 나오는구나! 이걸 생각해 볼 수 있겠네요. 몇 번 반복하는 거 같은데, 여하튼, 성리학의 절대화는 폐단도 있구나! 라는 점, 또한 세상이 변해도, 여전히 강경한 주장을 붙들고 있구나. 정도를 파악해 두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여담, 개인적 영감을 덧붙입니다 -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므로, 어떤 태도가 절대적으로 맞다 라고 단언하긴 어렵습니다. 남송이나 조선이나 지금 말기에 부패가 심각한 문제라는 송시열의 해석도 충분히 근거가 있고, 양명학자들 처럼 주류세력? 너희들 주자에 기대서 이익이나 탐하고 있다는 말이 맞을 수도 있고, 박제가의 주장처럼 근검절약 집어치우고, 유통시키고 교류하게 하는 게 맞을 수 있습니다.

 

 저는 중요한 고찰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다양한 의견]이 있어야 합니다. 비판이 금기되고, 10명이 앵무새처럼 똑같은 의견을 내는 걸, 우리는 "입을 맞춘 사회" 라고 부릅니다. 그런 비판금지의 사회가 건강하고 당당함에 가까울지, 아니면 부패하고 비겁함에 더 가까울지, 분명한 거 아니겠어요. 다양한 목소리를 저마다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목소리 중 가장 호소력 있고, 정직한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와닿게 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결국 손바닥으로 하늘이 가려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직하고 당당한 사람이 하나 둘 분명히 서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희망이 얼마든지 될 수 있습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