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근대 태동기의 문화3 - 국학 연구의 확대

시북(허지수) 2013. 9. 23. 16:31

 국학은,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라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요? 그 배경에는, 소중화의식이라는 시선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명나라의 대를 이은 정통이라는 자부심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기에, 정통이라면 무엇인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겁니다. 우리가 가진 게 무엇일까?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오늘 문서에서는 짧막하게, 국학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전혀 어렵지 않고, 재밌습니다! (우기는 중)

 

 먼저 역사서 부터 살펴볼까요. 안정복이 지은 동사강목이 있습니다. 고조선부터 ~ 고려까지 이어오는 흐름 속에서 무엇인지 정통인지 따졌던 역사서 였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책에서는 도덕적으로 정당성을 결여한 국가는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상이 있습니다. 발해를 우리 역사로 보기도 했고요. 그리고, 한치윤이 지은 해동역사가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외국의 문헌들을 인용하는 특징이 있고요. 이긍익이 지은 연려실기술 에서는 조선의 정치사, 문화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편, 고구려사를 다룬 "이종휘의 동사"가 있고요. 발해사를 다룬 "유득공의 발해고"가 있습니다. 동사나 발해고는 특히 중요한데, 우리 역사의 시야를 만주지역까지 확대시켰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한반도 역사가 이제까지 갖혀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면, 이런 책들을 통해, 발해가 우리 영토였음을 드러냅니다. 한결 자주적이고 주체적이지요. 이를테면 오늘날 저 만주 지역을 지배하는 게 오랑캐 청나라 이므로, 그들 앞에 우리가 꿀릴 이유가 없다고 본 셈입니다. 그러므로 자국 역사의 위대함을 보여주기 위한 모습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끝으로 추사 김정희는 금석과안록을 통해서, 북한산순수비가 신라 진흥왕의 순수비임을 밝혀내기도 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우리의 역사에 관한 관심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우리땅에 관한 연구 [지리지]도 등장하는데요. 지리서와 지도 편찬이 아주 활발해집니다. 잘 알려져 있는 대동여지도도 이 무렵 등장하고 있고요. 여하튼, 천천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역사 지리지로는 동국지리지, 아방강역고(정약용)이 있습니다. 여담으로, 정약용은 다방면에 걸쳐서 수 많은 책을 남긴 걸로도 유명하지요. 한 사람이 저렇게 많은 분야를 파고들 수 있다니, 참 감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인문 지리지는 택리지(이중환)가 있습니다. 덧붙여 택리지는, 실학자 이중환이 전국팔도를 30년간 다니면서 직접 보고 기록하며, 살기 좋은 조건에 대해서 논했던 책이지요. 사람들이 생활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책을 썼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라 하겠습니다.

 

 지도에는 동국지도(축적활용), 대동여지도(김정호)가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이 있으니, 잠깐 생각해 봅시다. 왜 하필 조선 후기에 지도나 지리지가 대거 나타났을까요? 조선 후기로 오면 무엇보다 경제나 산업, 문화가 발달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상행위를 하려면, 아무래도 여러 지역을 다녀야 했고요. 농민들도 분화되는 등 이제 토지에만 묶여있지는 않았고요.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가야할 길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단 말이에요. 또한 그 지역의 특징도 더 알고 싶었고요. (예를 들어 택리지에선 충청도는 살펴보니 사대부가 많이 사는 지역이라고 언급합니다) 이런 시대 환경적 요구가 깔려 있기 때문에, 지리지가 여러모로 선보이게 되는 겁니다. 이 대목이 특히 중요한 까닭은, 조선 전기의 지리지 편찬은 중앙집권 강화의 성격이 있는데, 그에 비해서 조선 후기의 지리지 편찬은 경제 발달로 인해서 그 배경 속에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을 꼭 체크해 두면 좋겠습니다.

 

 자, 마지막으로 백과사전류를 살펴봅시다. 개인이 펴낸 거로는, 최초의 백과사전 - 지봉유설(이수광)이 있습니다. 실학의 선구자로도 평가받는 이수광은 17세기에 벌써 문화백과사전을 펴내며, 다양한 정보를 담아냈습니다. 이후에 등장하는 성호사설(이익)이나, 청장관전서(이덕무)도 비슷한 성격의 백과사전이고요. 쉽게 말해, 개인이 책을 읽고 메모를 하고, 경험을 하고 탐구도 하며, 그 생각들을 책으로 내는 것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시북의 최샘 메모판 한국사 같은 식이랄까요. 죄송합니다. 이건 정말 웃자고 하는 농담입니다 >.<)

 

 이외에도, 농촌계의 백과사전인 서유구의 임원경제지가 있고,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있습니다. 이규경은 외국지식을 적극적으로 참고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음, 여기까지 이 당시 이렇게 다양한 백과사전류를 내는 흐름이 있었음을 기억해두면 됩니다. 일일이, 다 외우려면 머리 아플테니까요. 하하.

 

 그리고 개인 뿐만 아니라, 국가에서도 "동국문헌비고" 라고 해서, 영조와 정조를 시기를 거치며 만들어진 국가사업판 백과사전도 있었고요. 그야말로 조선 후기는, 성리학 뿐만 아니라, 이제 다양한 생각이 등장하고, 또 많은 책들이 등장하고 있구나 라는 흐름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조선 후기는 변화 중! 다음 문서에서는 다양한 문화 풍경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의 영감 - 오늘날은 인터넷의 발달으로 원하는 정보에 한결 쉽게 접근할 수 있었지만, 조선 시대에는 정보 접근이 쉽지 않았기에, 백과사전류는 굉장히 의미 있는 행위로 받아들여집니다. 사람들의 삶을 개선해 보려고 했고, 그들에게 정보나 도움을 주려고 했던 여러 실학자들의 실천하는 모습은 오히려 시대를 넘어서, 배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했고요.

 

 수년 전, 어느 날로 기억합니다. 작은 공부방 프로젝트를 시작할 무렵, 현직 교사였던 정모 선생님은 오늘날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점점 걷어차이고 있어서, 가난한 이들이 공부에서 소외되어버릴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누구나 공부에 쉽고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고민하였으며,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습니다. 그 때의 그 장면은 아마 제 평생 간직될 기묘한 순간이었지요.

 

 왜냐하면, 여전히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작은 노력을 더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마음 깊이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개선이 불가능해 보이는 구조 앞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시선에, 저는 많이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은 공무원이 되실터이고, 어떤 분들은 대학생이 되실터이고, 어떤 분들은 부모님이 되실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게 된다면, 비록 작아 보이는 일이라 할지라도, 한 번 용기내어 시도해 본다면 좋겠습니다. 밝은 환경은, 오늘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한다면,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