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작가님 혹은 선생님의 책을 집어든다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꽤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강상중 교수님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문화센터 강의를 바탕으로 대폭 가필하고 수정을 덧붙인 원고라서, 쉽다고만은 볼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이 점이 매력이기도 하겠고요. 페이지가 좀처럼 넘어가지 않아서, 소박한 두께 앞에서 오래도록 진지하게 들여다 보아야 했습니다. 가령 이런 질문은 얼마든지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우리의 위치가 주력이 되지 못한다면, 잘 나가는 일류가 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사실 제 나름대로는 하나의 정리된 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좋은 재능이 있다면 가장 좋겠지요. 그러나 설령 나에게 눈부신 재능이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좋은 사람을 응원하고, 살릴 수 있습니다." 라고 저는 평소 주장하고 있고요. 하하. 그리고, 강상중 교수님은 더 전투적으로(!) 우리가 영광스러운 후위가 될 수 있다고 접근해 들어갑니다.
앞에서 강하게 주장하며 사람을 이끄는 전위의 사람이 있겠지만, 그다지 변함없는 태도로 묵묵히 서서 자신의 갈 길을 걸어가며, 자신의 뜻을 실천해 나가는 사람들도 있음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만약 제게 리더라는 자리가 뭐냐고 묻는다면, 역시 후위를 이야기하며, 뒤에서 사람들을 밀어주며 응원하고 지금 여기서 주저앉거나 죽어버리면 안 된다고 계속 격려하는 리더가 되고 싶다는 바람입니다. 본격적으로 리뷰 출발해 보겠습니다.
저자 : 강상중 / 이목 옮김 / 출판사 : 돌베개
출간 : 2009년 10월 26일 / 가격 : 12,000원 / 페이지 : 261쪽
이 책은, 가열의 문화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선이 유지되고 있는데요. 예컨대 외부에서 계속 무리하게 힘을 밀어넣어버린다면, 그렇게 팽창하다가는 망하고 만다는 점이 적나라 합니다. 겉으로는 화려하게 솟아나는 것처럼 보여도,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껍데기만 남아 있을 수 있음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내부적 충실함, 왜 하는가 라는 질문, 내면의 동기까지도 선명히 보려는 "직시하는 시선"이 무엇보다 필요하지 않을까요. 물론, 직시하는 것은 고통을 동반하겠지만, 변화를 위해서 꼭 필요한 태도입니다. 우리가 자동기계처럼 매일을 살 수 없으니까요.
막스 베버가 바라봤던 자본주의의 미래, 철의 감옥의 모습은 많은 통찰을 줍니다. "최후의 인간들에게는, 영혼이 없는 전문인, 가슴이 없는 향락인, 이같은 말들이 진리가 되지 않을까? 이 무(無)는 인간성이 이전에 도달해본 적이 없는 단계까지 올라 있다고 자부할 것이다." 오늘날 노동 속에서 삶의 가치나 기쁨을 찾는다는 이야기가 어쩐지 낡아보이거나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질 때가 간혹 있습니다. 더욱이 껍질을 벗겨 날 것으로 들여다보면, 오늘날 많은 이들은 소비 속에서 즐거움이나 의미를 찾는게 아닐까 라고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더 많이 소비하고 싶어서" 열심히 일하는 경우가 자본주의의 미래모습일 수 있겠다 싶습니다. 더욱이 이 경우에는 얼마만큼의 돈을 버는지 상관없이, 계속해서 결핍을 느끼고, 쓰는 행위를 통해서 "만족"을 찾으려 하는게 아닐까요. 직업을 돈을 얻는 도구로서 바라보고, 허무함을 알면서도 계속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현대인의 모습은, 일찍이 존재하지 않았던 인간의 한 모습입니다. 의미 없는 인생,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인생이, 점점 전염되어가고, 게다가 행복을 큰 돈 정도라면 살 수 있다고 세뇌당해 갈 터인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음을 바라본다면, 우리네 평범한 삶도 충분히 좋을 수 있다고 인식할 가능성이 열립니다. 세계적 스포츠스타가 야구 배트 한 번 휘두르며 천만원씩 버는 세상일지라도, 그래서 우리가 혹여 1년 일하며 겨우 2천만원을 번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 위치에서 삶의 보람을 느낄 수도 있음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돈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곳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찾아낼 수 있다는 점, 가장 좋은 것을 가지지 않더라도 결코 이류나 삼류인생이 절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좋겠지요. 말하자면 돈이 유혹하는 이미지를 그대로 되받아치는 용기가, 오히려 삶을 풍요롭게 해줄 수 있다는 역설입니다.
빅토르 프랭클의 표현들은 가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해줍니다. "고뇌하는 인간의 가치 서열은 도구를 쓰는 인간의 그것보다 앞선다. 고뇌하는 인간이란, 더 깊은 의미를 충족하고 더 높은 가치를 실현할 가능성의 존재임을 끊임없이 자각해야 한다." 즉, 인간의 실존을 지탱하는 것은, 권력에 대한 의지가 아니라, 의미를 향한 의지라는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진정 행복한 인간이란 권력이나 힘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 이 일이 주는 의미를 분명하게 인식하는 사람입니다. 여기까지 생각들을 끈질기게 가지고 내려온다면, 무(無)가 지배하는 첨단 자본주의의 허망함 앞에서도, 의미를 추구하고 발견할 수 있는 인간에 대하여, 새로운 가능성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상중 교수님은 오늘날 직접 농작물을 기르는 사람들이 생기고, 수확한 것을 그 지역에서 소비하는, "지역 생산 지역 소비" 시스템이 확대되어 갈 수 있다고 언급합니다. 저는 이와 관련한 다큐를 본 적이 있는데, 값이 싼 제품 대신에, 믿을 수 있는 ㅇㅇ지역에서 생산하고 판매한다는 시스템이 참 놀랄 만큼 인상적이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그렇게나 중요한데, 왜 가격으로만 가치를 매기려고 하는가? 라는 문제제기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돈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며, 효율과 숫자로만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맛있는 걸 싸게 먹는게 최적이라는 얼핏 당연해 보이는 말에도, 정말 그럴까? 라고 의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 그렇게 다양한 시선이 오늘날 주목받고 있습니다. 미국식의 소박한 가정파티를 예로 생각한다면, 함께 먹을 만한 걸, 각자 집에서 싸들고 와서 놀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공동체를 통해, 소비 대신에 관계를 지향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각자가 공부하고 생각한 것들을 정기적으로 교류하는 게, 끝없는 책과 강의소비 보다 더 매력적인 통찰을 줄 수도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어쩌면 큰 벌레를 살리기 위해서, 조그만 벌레들을 죽여오는 행위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 밟히는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 경쟁 속에서 치열하게 생존을 추구하고 있는지도 모르고요.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작아보이는 개개인의 인생은 저마다 "영혼"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은 끊임없이 그냥 영혼을 팔고, 닥치고 시키는 대로 살며, 영혼 없는 직업인으로 살라고 유혹할 것입니다. 대신 교환가치인 화폐를 한껏 움켜쥐게 해주고, 소비하면서 즐기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게 자본은 계속해서 부를 축적해 나가야 할테니까요.
그렇기에, 강상중 교수님의 견해를 빌려, 결론을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미래는 교환가치가 아니라 사용가치가 훨씬 크게 다가올 것입니다." 쉽게 풀어쓴다면, 돈을 쌓아놓고 만족감을 추구하는 태도는 무의 세계임을 간파하는 사람들이 늘어갈 것이며, 직접 경험하고 사용하고 누리는 행위가 주목받고, 무엇보다 시간의 가치가 더 소중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돈을 얼마나 버느냐 보다는, 내가 밥을 먹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 행위가 주목받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쿠타카와 류노스케는 "인생은 한 갑 성냥을 닮아서, 소중하게 다루는 건 어리석고, 소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위험하다." 라는 얄궂은 표현을 했습니다. 애지중지하며 망설이는 건 집어치우고 과감하게 시도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영혼을 팔아치우며 의미없는 세계로 탐닉해 들어가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처음에 언급했던 것처럼, 왜 하는가 라는 질문이 중요합니다. 거기에 답할 수 있을 때는, 치열하게 파고들어가야 하며, 왜 하는지도 모를 의미 없는 일들은 시간을 좀먹게 만들 수 있으므로, 집어치울 결단이 필요합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말하자면 죽음을 향해 하루하루 자신의 시간을 잘라나간다는 뜻이다. 죽음을 향해 간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숙이라는 형태로 천천히 받아들여가는 것이다. (강상중)" 젊은 날에는 항상 시간이 무한이 있는 것처럼 지금을 낭비하기도 합니다. 또한 그렇게 보내는 패기도 꽤 좋다고 저는 생각하고요. 그러나, 어차피 우리는 죽음을 향해 간다는 것을 인지해야 하며, 그래서 오늘을 소중하게 보내야 함을 분명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결단과 왜 라는 질문들이, 우리의 미래를 더 따뜻하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감히 결론내려 봅니다. 소중하게 다루되, 제대로 사용해 나가는, 우리의 멋진 삶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 2013. 09.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