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책

가능성의 발견 리뷰

시북(허지수) 2013. 10. 4. 19:57

 일주일 정도, 아주 통렬하게 고민에 몰두하였습니다. 삶의 궤도를 바꿔야 겠다고 결단을 내리고, 한계를 확장해 보려고 고민하였습니다. 정말 고맙게도 좋은 행운을 만났습니다. 너무 빠르게 해답을 얻게 되어서, 감격적이고, 놀랍지만, 여하튼 진솔하게 사고의 흐름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행운은 이처럼 알려지지 않은 좋은 책을 만난 것입니다. 감히 추천하자면, 어지간한 짜집기 양산형 책들 수백권 보다 더 값진 한 사람의 인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떻게 살 것인가?" 에 대한, 정말 뜻깊은 힌트를 얻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본문에서 계속 이야기 하겠습니다.

 

 두 번째 행운은, "왜 누군가는 그토록 많은 시간을 공들이는데도 발전하지 않는가?" 라는 의문에 대하여, 지인이 명쾌하게 답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곳을 반복해서 돌고만 있다면, 1만 시간이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그 말은 섬광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는데, 예컨대 바둑은 아무리 경험이 많다 해도, 제대로 사고하려고 노력해야만 실력이 늘 수 있다는 것과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바둑 9단의 조언은 이러합니다. "겨우 3수 뒤까지라도 좋으니 제발 생각을 해보고 놓아라!" 좀 더 간단히 다르게 접근하자면, "쉬운 선택만 하고 거기서만 노력한다면, 인간은 발전하지 않는다" 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했습니다. 선택을 회피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향해 노력을 하자, 이게 전부이다, 였습니다. 인기만화 미생식의 표현을 가져오면, "하수는 두고나서 생각하고, 상수는 두기전에 생각한다" 우리는 선택에 앞서서 남과 다른 길, 나만의 길을 고민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저자 : 야마나카 신야,미도리 신야 공저 / 김소연 옮김 / 출판사 : 해나무

 출간 : 2013년 06월 17일 / 가격 : 12,000원 / 페이지 : 224쪽

 

 

 그런데 좀 더 생각해 보면, 이건 정말 고통스러운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하던 걸 뻔히 놔두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은 "용기"가 요구되니까요. 가능성을 발견했을 때, 이론적으로 충분히 될 거 같은데, 거기로 뛰어들어 갈 수 있느냐? 라는 건, 어쩌면 지독히 힘든 선택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더 늦기 전에 반드시 제대로 시도해 보겠다고 그야말로 미친듯이 생각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야마나카 선생님의 책을 만났습니다. 읽는 도중, 인간의 인생이란, 어쩌면 이렇게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는가 싶어서 하염없이 감격하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길었던 서론을 접고, 본론인 책 이야기로 들어갑니다.

 

 의대를 졸업한 야마카나 선생님은 정형외과의사를 꿈꿨지만, 공교롭게도(?) 수련의 시절 수술에 꽤 서툴렀습니다. 게다가 수술 기회도 많이 얻지 못하게 되자, 무력감에 빠지고 맙니다. 말하자면 벽에 부딪혀 버린 겁니다.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수련의로서 이제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만나게 되는데, 전혀 반가운 현실이 아니었습니다. 현실에서는, 고치지 못하는 병이 많다는 걸 생생하게, 안타깝게 바라보게 됩니다. 결국 20대 후반, 선생님은 바로 의사가 되기 보다는 진로를 일시 변경합니다. 이렇게 면접관에게 고백하면서 말이에요. "저는 약리학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하지만 연구가 하고 싶습니다!" 우리 인생의 첫 번째 터닝포인트, 하고 싶은게 있습니까?

 

 야마나카 선생님은 그렇게 시작한 약제 연구를 통해, 마침내 연구에 적성이 더 맞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비록 수술은 잘 못했었다지만, 연구를 통해서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흥분감을 체험하였고, 본격적인 연구자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궤도수정을 했기 때문에, 어쩌면 남들보다 제법 늦었고, 게다가 장밋빛 미래가 보장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있었는데, "그래, 이 길이다." 라는 확신을 얻게 된 것이지요. 그렇다면 삶은 훨씬 선명해졌습니다. 어떻게든 해보고 싶은 연구를 "시도할 수 있는 환경"으로 들어가야 했는데요. 두 번째 터닝포인트,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게 너무나 중요합니다!

 

 연구원을 구하는 구인광고에 30~40통 닥치는대로 다 응모했는데, 좋은 소식은 들려오지 않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어렵사리 미국의 글래드스턴 연구소에 채용되었는데, 그리하여 30대가 넘어 미국 유학길에 오릅니다. 자 그러면, 야마나카 선생님이 대학원 시절과 미국 연구소에서 배웠던 인상적 내용 두 가지를 잠깐 소개할까 합니다. 제게 정말 귀중한 영감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핵심은 너무 간단하므로 머리로 파악하기 보다는, 몸으로 완전히 체득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던 이야기들입니다.

 

 1. "남들이 해놓았던 길을 좇아서 실험을 하지 마라. 발전적인 결과물이 나올리가 없다." 즉 했던 부분만 계속해서 들여다보고 있다면, 그래서야 성장할 수 없습니다. 훨씬 더 과감하고 다르게 생각하며 파고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이 남들 흉내내기에만 매달리고 있는건 아닌지, 엄격하게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혹은 우리의 인생이 과거의 안일함과 추억에 젖어서, 특정한 틀 속에 갇힌채로 사고체계가 속박당하고 있는건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지나간 과거를 절대로 반복하지 말아야 겠다"는 뼈아픈 통찰이 들었습니다.

 

 2. "연구자로서 VW만 실행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도 그렇고요. VW는 마법의 단어입니다." 헐 VW라니, 무슨 엄청난 비법일까? 라고 상상했다면, 제법 당황스러울텐데요. V는 비전이며, W는 워크하드(열심) 입니다. 조금 다르게 쓴다면, 장기적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몰두한다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둘 중 하나가 없으면 마법은 일어나지 않을테고요. 그러므로, 우리는 목적을 한순간도 잃지 말아야 하며, 초점을 명확하게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걸 기준으로 놓고서 제대로 살아갈 때, 우리는 성취의 단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좀 더 솔직하게 고백한다면, 저는 V도 불명확했고, W는 살아오면서 거의 해본적이 없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평범한 범인(凡人)으로서 만족하려고 했었습니다. 가끔씩은, 스스로의 가능성과 재능을 조금은 볼 수 있게 되었지만, 온전히 쏟아붇는 일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그리하여, 초점은 다시금 흐려지고, 이만하면 되겠지, 라는 어제와 같은 편한 마음이 자리잡을 때가 늘어갑니다. 직설적으로 말해, 정해진 궤도를 돌면서 적당히 만족해보자며 타협하고, 정신승리에 기대기 시작하는 겁니다. 현실의 치열함 대신 안일한 판타지를 보고 있는 거지요. 이래서야 성취는 불가능한 꿈이 되고맙니다.

 

 성취에 이를 수 있었던 사람들은 다르게 접근합니다. 두세 배의 시간을 더 들여보겠다고 다짐하거나 (필즈상 수상자 히로나카), 다른 연구자들의 세 배 정도는 더 열심히 (노벨 생리의학상 야마나카) 일을 합니다. 인생이 가능성과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는데도, 그저 무심하게 건조한 일상만을 반복하기에는 아무리 백번 양보한다고 해도, 그 삶이 너무 아까운 것 같습니다. 적어도 지금의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일종의 메타노이아, 생각이 돌아서는 거지요. 다시 말하지만,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는 참 커다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해오던 관습에 기댈 것인가, 똑바로 현실을 바라볼 것인가.

 

 혹자는 반문할 테지요. 그렇게나 열심히 달려들었는데도, 금방 이루어 지는 건 없고, 주변에서 이해대신에 다른 걸 해보라며 충고나 듣는다면 비참하지 않겠느냐고 말이지요. 야마나카 선생님도 미국에서 귀국 후, 30대 중반에 마침내 비참한 현실을 만납니다. "어느 날 연구용 쥐 사육장 창 밖으로 딸아이가 학교에서 오는 모습이 보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쥐와 함께 지내며 세포연구를 고되게 하고 있지만, 전망은 불투명해서 보이지 않고, 급기야 거의 의욕 상실까지 추락합니다. 스스로도 참 냉정하게 표현하셨는데, 그대로 표현을 가져온다면 "여기서 연구를 그만두면 의사의 세계에서 도망친 후, 두 번째 좌절이 된다. 그런 모습은 너무 한심할 것 같았다." 그렇게 버텨가지만, 계속 의지는 추락해 나갑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정말 놀랍게도 인생은 경이로움으로 가득차 있나 봅니다.

 

 더 나은 연구환경을 위해서, 마지막까지도 조교수 자리를 구하기 위해서 발버둥 치다가, 야마나카 선생님은 신기하게도(!) 연구 포기 직전 상황에서 채용이 됩니다. 때려치기 직전에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말 그대로 생각하던 비전이 정말로 실행되고, 마침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까지의 성공적인 십여년이 체계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책의 후반, iPS 세포이야기도 물론 아주 흥미로웠지만, 어디까지나 저는 이 곳 중반부까지의 이야기가 너무 강렬해서, 읽는 도중 몇 번이나 눈물을 훔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노벨상 같은 기적적 성취를 이룬다는 게, 결코 멋지고 아름답고 근사한 드라마가 전혀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일이 계획대로 전혀 풀리지 않는 상황이 있고, 너무 지쳐서 포기하려고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 끝에 놀라운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는 게 너무나도, 뭐랄까 "경이로웠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VW 는 진실이었으며, 야마나카 신야 교수님은 존경받는 세계적인 연구자가 되었습니다.

 

 마무리 대목에 있는, 인터뷰에선 "연구의 일관성이 중요하다는 의견" 앞에서도, 설령 누가 그런다고 할지라도, 본인이 재미있으면 그저 자유롭게 하면 된다 라고 일화를 소개합니다. 여기까지 충분히 읽어가며 책을 덮는 순간, 저는 마음이 한결 튼튼해짐을 느꼈습니다. 책 마지막 페이지는 야마나카 선생님의 당부 발언이 담겨있습니다. "연구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신속하게, 일반인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알려 사회 안에서 논의되도록 하는 것이다. 기술의 진보는 정말 빠르다. 기술만 앞서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

 

 저는 당연히 과학 연구자가 아니며, 일반인이자 자칭 무명블로거에 불과합니다. 굳이 분류한다면, 지금까지와 인생을 다르게 살아보고자 기로에 서 있는, 하찮은 30대 정도가 딱 어울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대목만큼은 반드시 필사하며 마음에 새겨넣고자 합니다.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면 언젠가는 실현된다. 많은 사람이 그건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도 반드시 가능해진다. 나는 단순하게 그렇게 생각한다."

 

 리뷰를 마치며, 젊은 청년 안중근이 대원들을 격려할 때면, 강조했던 말을 되뇌어 봅니다. "우리들이 단 한 번으로 성공하지 못할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러므로 첫 번에 성공하지 못하면 두 번, 세 번, 열 번에 이르고, 백 번을 꺾여도 굴함이 없이, 올해 안 되면 또 내년에 해보고 그것이 십 년, 백 년까지 가도 좋다." 어떻게 살 것인가, 그렇게나 뜻하는 바 없이 살아왔던 인생을 저는 통렬하게 반성합니다. / 2013. 10.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