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게 역사를 생각하고 접근하려면, 잘 만든 영상물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있습니다. 짧은 역사채널e 에서부터, 클래식한 역사스폐셜 등, 다양한 역사이야기를 영상으로 접하다 보면, 놀랍게도 가끔씩(!) 흥미롭고 재밌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무슨 일을 할 때, 가끔씩이나마 흥미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참 좋구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책을 좋아하는 것도 역시 종종 번뜩이는 통찰을 선물해 주기 때문이고요. 올해 출간된 역사e는 그런 의미에서, 쉽게 읽을 수 있으며, 생각을 요구하고 있고, 중요한 게 무엇인지 깨우치는 힘이 있습니다. 국사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강력추천할 수 있는 역사e 이야기로 오늘은 경쾌하게 출발합니다.
오래전 공부방 시절부터 알고 지내온, 참 열심히 사는 녀석이, 선택하기 곤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가난하게 살면서 의미 있는 일을 할 것인가 아니면 풍족하게 살면서 안일하게 지낼 것인가, 극단적인 경우로 선택을 해야한다면 후자를 고를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날 중요한 것은 경제적 안정이 아닐까 해요." 나름대로 충분히 합리적이며,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에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다만 저는 거기서 반발짝을 더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습니다. 풍족하게 살게 된다면, 얼마든지 의미 있는 결단을 더 멋지게 할 수 있다고 말이에요! 자, 이게 무슨 말인가 하니 (아래에서 계속)
저자 : EBS 역사채널ⓔ, 국사편찬위원회 공저 / 출판사 : 북하우스
출간 : 2013년 02월 28일 / 가격 : 14,800원 / 페이지 : 360쪽
일제시대를 겪어야 했던 이회영 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1910년 조선은 망하며, 총독부는 묘한 주장을 펼칩니다. "독립운동? 야야, 그건 상놈들이나 하는 짓이야!"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일제가 준 귀족 작위와 돈에 환호하게 됩니다. 시간이 흐르며,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민족의 영웅만큼이나, 그렇게나 친일파가 많게 되는 까닭입니다. 친일을 선택하는게 당시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고, 독립운동을 하는건 위험만 감수해야 하고, 명예는 보장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역사라는게 중요합니다. 행동하는데 있어서 기준점, 거울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이회영은 나라가 망해가는 순간 형제들에게 호소합니다. "대의가 있는 곳에 죽을지언정, 왜적 치하에서 노예가 되어 생명을 구차히 도모한다면 어찌 짐승과 다르겠는가?" 조선의 손꼽히던 갑부였던 이회영 집안은, 그렇게 의미 있는 결단을 해버립니다.
현재 시세로 대략 600억, 땅값으로 보면 2조에 가까운 자산을 팔아치운채, 이회영 집안은 독립운동에 뛰어들었고, 그의 삶은 가난의 연속을 맞이합니다. 끊임없이 독립운동자금을 대느라, 나중에는 중국의 빈민가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결단을 내리고, 만주로 떠났던 이회영 집안의 여섯 형제 중에서, 다시 고국 땅을 밟은 이는 다섯째 이시형 한 명 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을 바꿔, 이것을 고민하기로 했습니다. "경제적 안정을 얻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렇다면 그 이후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며 살 것인가?" 즉시 답이 내려지지 않더라도, 꼭 한 번 부딪혀 볼만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회영은 어떻게 살 것인가 라고 30대에 질문을 던졌고, 60대 그가 죽음 앞에 서는 날이 될 때까지 인생으로써 답을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서 누구나 자기가 바라는 목적이 있네. 그 목적을 달성한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이 없을 것이네.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 자리에서 죽는다 하더라도 이 또한 행복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회영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이회영의 신념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독립한국은 만인이 자유와 평등을 누릴 수 있고, 공평하게 행복을 누리며,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균등하게 부여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지배 없는 세상, 억압과 수탈이 없는 세상이 우리 독립한국에 실현되어야 한다." 이회영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헌신하다가, 조국 독립의 날을 보지 못하고 1932년 옥중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그 죽음 또한 행복이 아니겠는가" 라고 겸허하게 살아가는 자세야 말로, 깊은 울림을 줍니다.
흥미롭게도 역사e는 백성의 역할을 이야기 합니다. p309에서는, "문제의 해결은 늘 현실을 바로 보는 데에 있다. 위정자들이 바로 보지 못할 때 가장 큰 피해자는 백성이고, 그 권력에게 지혜롭게 경고를 하는 것도 백성이다" 오늘날 민주주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지혜로운 국민은 중요하며, 현실을 똑바로 볼 혜안을 길러야 합니다.
역사e 에 나오는 곱씹어볼만한 재밌는 이야기인데,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연평균 165만건씩 통치기록을 남겼는데, 이명박 대통령 때는 1/8로 줄어들어서 연평균 20만건씩 남겼다고 합니다. 쉬쉬하며 기록을 숨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과연 멋진 일을 많이 할까요? 아니면 낱낱이 밝혀가면서 기록을 남기는 게 더 당당할까요?
곽 모 기자님은 이렇게 일갈한 적이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기록물에 대해서도 충분히 파악하고 있을 겁니다. 혹시 그 중에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과 관련한 기록, 민간인 사찰과 관련한 기록, 쇠고기 수입개방 대가로 부시 미국 대통령의 별장에서 했던 회담과 관련된 것 중 어떤 기록이 남아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아마 남아 있는 건 하나도 없을 겁니다. 그보다 멀리 가볼까요. 쿠데타 후 박정희 장군이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나 러스크 국무장관과 만났을 때 나눈 대화록은 도대체 있기나 합니까" 정작, 그렇게 기록을 열심히 남겼었던, 노무현 시절이 여전히 정쟁에 계속해서 이용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씁쓸하기도 하고, 국가실력이 뚝뚝 떨어져가는 현실 앞에서, 정말로 지금이 이렇게 한가한 때인가 싶기도 하고...
저는 그래도 실망만은 하지 않습니다. 우리 시대에도 이회영 같은 인물이 있을 것이며, 공공적인 것의 힘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며, 역사 앞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려는 인물이 있을 것입니다. 이번 리뷰에서는 어느 때보다, 다소 권력비판적으로 쓰게 되었는데, 집권세력이 점점 선을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려고, 각종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봐야, 손바닥으로 하늘이 다 덮어지는게 분명 아닐텐데, 대체 언제까지 국민들을 바보취급 할껀지.
리뷰를 이제 정리하며, 역사는 생각해보면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광해군이 당시 기득권이던 지주세력에게 대동법을 시행하며 세금을 부과하자, 거세게 반발하며 결국 전면시행까지 백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오늘날도 어느 정권에서 부자감세를 적극적으로 밀어붙이자, 결국 모두가 그 후폭풍과 부담감을 떠안아야 하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 비극의 무게를 남탓으로 돌리기 위해서, 교묘한 비난수법은 당분간 또 계속 되겠지요.
이회영이 꿈꾸던 나라, 만인이 자유와 평등, 행복, 기회균등을 누리는 나라는 아직 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질적으로 독립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단한 나라가 되었지만, 정신적으로는 갈 길이 멀지 않나 싶습니다. 정치공작의 나라가 아니라, 당당하고 올바른 나라로서 역사에 기록된다면 좋겠습니다. 자본의 나라, 지주의 나라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길을 모색하는 건강함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담으로, 잠깐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유시민 선생님은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질문 앞에서, "내가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살자.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얽매이지 말자. 내 스스로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꼭 그만큼만 내 죽음도 의미를 가질 것이다." 라고 담담하게 써내려 갔습니다. 저는 그래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게 대체 무엇인가?" 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난하지만 꽤 행복한 편이고, 하고 싶은 것들을 많이 해보며 살아왔습니다. 요즘은 어쨌든 더 잘 해보고 싶어서 노력하고 있고요.
스스로 밥벌이를 거뜬히 하며, 타인에게 무엇인가를 나눠주고 전달해 주는 삶, 어울려서 이야기 하고 노는 삶,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겨우(?) 이 정도인데, 요즘 같은 시대에는 어쩐지 제법 큰 욕심 같기도 하네요. 하하. 계속 정진해야 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꿈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매일 감사하고 행복해야 하는건지도 모르겠다는 겸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 2013. 10.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