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지구를 지켜라 (Save The Green Planet, 2003) 리뷰

시북(허지수) 2013. 10. 9. 22:32

 리뷰 쓰기 곤란한 작품을 만났습니다! 지구를 지켜라 입니다! 인상적인 작품이라 그동안 여러 번 봤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코믹하고 유쾌한 면이 보였고, 두 번째 볼 때는 인간들의 못난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올해에 다시 보면서, 마침내 소수자로서 자신만의 길을 간다는 게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겉으로 보면 저는 눈꼽만큼도 성장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지만, (키와 체중은 거의 똑같으니까요! 외모는 조금 늙어갑니다만...) 10년이라는 세월은 그나마 세상을 보는 눈을 조금 열어주었나 봅니다. 저는 요즘의 모습이 훨씬 좋습니다. 나이든다는 것은, 상상만큼 나쁜 면만 있는건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자 어쨌든.

 

 영화 지구를 지켜라는 상당히 이색적인 작품입니다. 외계인이 등장한다는 것에서 SF 장르이긴 해도, 마치 연극처럼 재치 있게 진행되기도 하고, 요즘 사회를 대입해보면, 갑을 관계, 권력 관계를 풍자적으로 비추기도 합니다. 또 다른 통찰로는 인간은 자라나는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느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외에도 저는 "자신의 생각을 밀고간다는 것"에 대해서 고찰해 보려 합니다. 물론 병구처럼 심하게 과격한 인간이 되라는 것은 아니고,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괜찮아" 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주인공 병구가 멀쩡하게 생긴 "강사장"을 외계인으로 지목하고, 납치하면서 이 영화는 시작 됩니다. 병구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완전히 "미친X" 처럼 보이고, 심지어 물파스를 강력한 무기라고 우기면서, 강사장을 괴롭힙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여기서 논리를 들어내고, 감정적으로 접근해보면, 우리는 병구의 입장을 이해하게 됩니다. 감정적으로 이 남자의 입장에 섰을 때, 얼마든지 강사장은 외계인, 악마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 삶의 소중한 것들이 외부적인 힘에 의해서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병구는 청년이 될 때까지, 사랑하는 것들을 잃어가는 경험을 연속적으로 겪게 됩니다.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는 비극적인 표현이 있는데, 병구가 그러했습니다. 점점 단체생활에 대한 적응력도 잃어버리고, 반사회적인 성향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괜히 외딴 곳에 병구네 아지트가 있겠어요. 그의 포지션은 철저한 추방자, 없어도 아무 상관없는 위치로까지 밀려납니다. 저는 이 때, 병구가 자살 대신에 물파스를 들었다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못난 탓이지, 불운한 탓이지 라고 자책만하지 않았고, 이 모든 일에 배후가 있다고 파악합니다. 극중에서 외계인으로 등장하는 "강사장"은 사실상, 나의 삶을 흔드는 거대한 압력으로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접근했을 때, 유달리 마음 아픈 대목이 있었는데, 병구가 강사장에게 다가가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약에 의존해야만 강사장 근처로 갈 수 있었다는 점은, 그만큼 강사장을 굉장히 두려워했다는 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권력 구조 앞에 길들여져 있다보면, 이른바 높은 사람들 앞에 괜히 주눅 들게 됩니다. 인간과 인간이라는,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견디기 불편한 관계가 되고 맙니다. 이것이 인간의 약함이고, 불편한 현실이지만, 저는 상당부분 어쩔 수 없었다는 측은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우리가 진짜로 인격적으로 완성된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병구와 비슷한 강도의 비극적 환경이 계속해서 닥쳐온다면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저는 솔직히 그럴 자신이 없습니다. 병구는 처절하게 외칩니다. "내가 미쳐갈 때 어디있었어! 니들이 더 나빠!"

 

 여기까지 생각을 끌고오면, 사회적 연대가 깨져버린 고립된 개인이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고통, 슬픔은 기묘하게도 한 권의 책을 통해서 바뀌게 됩니다. 외계인과 관련된 책을 만나게 되면서, 병구는 "희망"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그래, 내가 정신차리고 노력해서 지구를 지켜낼꺼야! 라고 확신하게 되었고, 드디어 자기주도적 선택을 밀어붙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중요한 지점에서 결단하는 힘은 외부에서 주어지지 않습니다. 자기 스스로 찾아내야 합니다. 제 아무리 고통스럽고, X같은 현실이라도, 살아갈 길을, 환경을 다르게 해보려는 노력을, 계속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끈질기게 나아간다면, 생각하려고 힘쓴다면, 경이로운 가능성 앞에 서게 될 날을 만날 수 있다고 감히 확신합니다. 다르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읽고, 듣고, 보고, 느끼고, 생각함으로서 삶은 달라지는게 아닐까요.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은채 오늘은 뭐 재밌는게 없나 라고 두리번 거리지 않도록, 저는 스스로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결단이 외부에 있는게 아니라는 점, 이걸 저는 늦게서야 알았습니다.

 

 참, 그리고 영화는 결말에서 인상적인(!) 과감한 반전을 보여줍니다. 다각도로 해석할 소지가 많겠지만, "지구를 지켜라"는 결국 소수자의 마지막 희망까지 짓밟아 버리는 사회를 만들면, 폭발하고 망할 수 밖에 없다는 상당히 "오래된 진실"을 이야기 하는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저는 소수의 이야기가 항상 옳거나 정의롭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최대한 들어보려고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내 가치관과 다른 소수집단의 이야기라며 곧바로 외면해 버린다면, 나아가 아예 매도해 버린다면, 우리는 사회가 요구하는 표준적 틀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 틀조차도 사실은 외부 환경이 정해놓은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질문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계속 들었습니다.

 

 제가 느꼈던 질문들은 대략 이러한 것들입니다. 다수의 판단이 맞아보이는 순간에서도, 나 혼자 반대 의견을 낼 수 있는가? 어떤 가능성을 발견했을 때, 과감하고 철저하게 밀어붙일 수 있는가? 영화에서는 병구 외에도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형사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까지 보고, 작은 힌트만 보고도 대범한 추리를 할 줄 압니다. 역시 10년도 더 된 작품이지만,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반짝이는 표현을 빌려오자면, "가장 재능 있는 아이가, 소수 의견을 말할 것이다!"

 

 최근 저는 인간은 "가능성 덩어리"라는 말이, 뇌과학적으로도 참 맞는 말이구나 싶어서 굉장히 감동한 적이 있습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얼마만큼 노력을 투입하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정말로 더 깊게 볼 수 있게 됩니다. 때로는 시대의 한계를 넘어가는 상상력이 현실이 되기도 합니다. 가령, 예전에는 모든 사람을 교육시킨다는 게 이상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모든이가 교육 받을 권리가 있다는 건 헌법 31조에까지 명시되어 있습니다. 과거에 했던 발칙한 생각이, 오늘날 누구나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현실로 실현되기도 한다는 점이 참으로 신기합니다.

 

 이제 병구의 힘을 빌려, 유쾌하게 마무리 해야겠네요.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과감한 상상력이 필요한 게 아닐까요? 틀에서 벗어나는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발상전환으로 흔히 회자되는 콜롬버스의 달걀 이야기가 있습니다. 달걀을 세우기 위해서, 아랫부분을 탁 깨서 콜롬버스가 세워버렸다 라며 찬사되는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이 달콤한 이야기에 신영복 선생님은 의문을 던집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왜 달걀을 깨지 않았는가? 생명에 대해서 폭력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게 아닐까?" 라며 다르게 접근해 들어갑니다.

 

 초점을 콜롬버스가 아닌 다른 곳에 맞춰보려는 시도, 이게 중요한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재밌게도 영화에서 비슷한 장면이 있습니다. 강사장을 납치한 범인이 누굴까 고민하던 형사는 동전을 굴려보다가 새로운 초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인생이 이런 게 아닐까 종종 생각합니다. 인생의 가능성이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행복을 위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사실상 오늘 할 수 있는게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지정하는 초점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쳐다봐야 하는 것은, 내가 바라는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밀어붙여보는 용기를 주시해야 합니다.

 

 저는 한 사람, 한 사람, 개개인이야말로, 저마다 개성을 지닌 우주라고 생각합니다. 그 우주를 지켜야 하며, 그 지구를 지켜야 합니다.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발견해 나가는 그 순간 순간이, 우리 삶의 초점을 제대로 맞춰가는 게 아닐까요. 한 번 뿐인 삶이며, 매일 죽음을 향해서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삶이기에, 우리가 생을, 시간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며 행복으로 채워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남의 말을 따라서 쉽게 결정해 버리는 순간부터, 비극은 출발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소중히" 이것 하나 만큼이라도 간직할 수 있기를 저는 희망합니다. 여기까지 오는데도 참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남은 삶을 더욱 사랑하고 싶을 뿐입니다. 지구는, 가능성은,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2013. 10.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