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열전

#140 또 한 명의 요한. 명선수 요한 네스켄스.

시북(허지수) 2020. 9. 26. 23:50

 

 요한 네스켄스를 아십니까? 올드 축구팬이라면 요한 크루이프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네덜란드에는 또 한 명의 명선수 요한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린 명미드필더인 요한 네스켄스입니다. 그럼 이야기로 어서 가볼까요.

 

 프로필

 

 이름 : Johan Neeskens (우리나라에서는 요한 네스켄스 혹은 요한 니스켄스 라고 부릅니다)
 생년월일 : 1951년 9월 15일
 신장/체중 : 178cm / 78kg
 포지션 : 미드필더 (중앙)
 국적 : 네덜란드
 국가대표 : 49시합 17득점

 

 또 한 명의 요한 : 요한 네스켄스

 

 최근 네덜란드 특집을 쓰는 듯 합니다. 오베르마스, 베르캄프에 이어 네스켄스까지! 네덜란드 처럼 좋은 선수들이 많이 배출되는 나라도 세계에 손꼽힐만큼 드물 것입니다. 네스켄스 선수는 요한 크루이프와 같이 대표팀에서 활약했기 때문에 또 한 명의 요한이라고 불리었습니다. 워낙 크루이프의 명성이 높다보니 요한 크루이프에 묻혀서(?), 요한 네스켄스는 실력에 비해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정말 뛰어난 미드필더 였습니다.

 

 요한 네스켄스와 비견될 수 있는 21세기 선수로는, 세도르프, 스콜스, 제라드, 램파드 등이 있겠습니다. 뭔가 대충 느낌이 오시는가요. 중앙 미드필더로 경기를 조율하면서 필요할 때 확실한 슛을 한 방씩 날려주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중앙 미드필더 중에 최고의 선수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선수가 요한 네스켄스 선수이기도 합니다.

 

 네스켄스는 1970년 아약스시절부터 눈부신 재능을 보입니다. 아직 10대였습니다.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던 이 신동은 10대 때에 바로 네덜란드 국가대표로 발탁됩니다. 네스켄스는 어린 시절부터 운동에 만능이었다고 합니다. 야구, 테니스, 농구 뭐든 잘했습니다. 축구에서도 그 재능은 유감없이 발휘되어서 어려운 플레이도 쉽게 해내는 선수였습니다.

 

 네스켄스가 속해있던 70년대 초반의 아약스는 무시무시한 팀이었습니다. 요한 크루이프 등과 함께 아약스는 1971년부터 내리 3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합니다. 강호 인터밀란, 유벤투스도 아약스를 넘지 못하고 결승에서 패배의 아픔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덕분에 아약스는 레알마드리드, AC밀란, 리버풀 등과 함께 챔스리그 4회 이상 우승을 자랑하는 명문팀입니다.) 전설적 선수인 요한 크루이프와 또 한 명의 요한, 네스켄스가 뛰는 아약스 팀은 그렇게 챔피언스리그 3연패의 위용을 자랑했습니다.

 

 1973년 요한 크루이프선수가 FC바르셀로나로 이적하게 되는데, 이어서 1974년에 네스켄스 선수도 바르샤로 이적하게 됩니다. 바르샤에서 이 두 사람의 요한 (크루이프, 네스켄스) 은 대단한 인기를 자랑합니다. 네스켄스는 공수에 걸쳐서 탄탄한 플레이로 한층 FC바르셀로나를 강력하게 만듭니다. 투지도 넘쳤고, 팬들도 네스켄스의 열정적인 모습에 매료되었습니다.

 

 1974년 서독월드컵. 네덜란드는 토탈 풋볼을 선보이면서 준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네스켄스 역시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페널티킥 전문이라고 불릴 만큼 PK도 워낙 잘 찼는데 74년 월드컵에서도 PK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PK로만 3골을 넣었습니다. 네스켄스는 결승전까지 무려 5골을 넣었는데, 이는 당시 네덜란드의 최다득점이었습니다. 결승전 서독과의 유명한 경기. 요한 크루이프는 결승전이 시작하자마자 불과 2분도 안 되어 페널티킥을 얻어냅니다.

 

 7만5천의 관중이 숨죽였습니다. 크루이프는 PK를 역시 네스켄스에게 맡깁니다. 네스켄스는 주저없이 가운데로 과감하게 슈팅을 날렸고 네덜란드의 선제골이 터집니다. 네스켄스의 선제골로 네덜란드는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눈앞에 두었습니다. 하지만 서독의 강력한 파상공세에 끝내 2골을 허용하면서 1-2 역전패. 준우승에 머물게 됩니다. 요한 크루이프는 네덜란드가 준우승임에도 대회최우수선수에 선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 한 명의 명선수이자 오늘의 주인공인 요한 네스켄스도 함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1978년에는 요한 크루이프가 없는 네덜란드 대표팀을 이끌고 아르헨티나 월드컵에 참가합니다. 현지에서는 74년월드컵 MVP이자 네덜란드의 에이스 요한 크루이프 없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네덜란드를 공격력이 떨어진다며 저평가 합니다. 또 한 명의 요한, 네스켄스가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나 봅니다.

 

 비록 크루이프는 없었다지만, 네덜란드는 충분히 강했고 네스켄스는 이 강팀을 잘 이끌어 갑니다. 조별리그에서 부상을 당하기도 하지만, 네스켄스는 끝까지 투혼을 발휘하며 출장을 강행합니다. 그리고 네덜란드는 브라질도 2-0 으로 완파하는 등 74년월드컵에 이어서 1978년월드컵에도 결승전까지 진출하게 됩니다.

 

 78월드컵 결승전 상대는 아르헨티나. 치열한 승부였으며, 전후반이 마친 시점까지도 승부는 가려지지 않았습니다. 경기중에 이빨이 2개나 부러지는 부상까지 당하는 네스켄스. 몸은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좋지 않았고 피가 흘렀지만, 네스켄스는 끝까지 투혼을 발휘하면서 경기를 뜁니다. 연장전 끝에 결국 1-3 패배. 개최국이었던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사상 첫 우승이자, 네덜란드의 불굴의 투혼이 아쉽게도 또 한 번 쓴 잔을 맛 본 날이었습니다. 네스켄스는 아름다운 패배자, 끝까지 투혼을 발휘했던 명선수로 많은 갈채를 받았습니다. 네덜란드 국가대표통산 49시합에 출장해서 17득점의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1979년 요한 네스켄스는 또 하나의 결단을 선택합니다. 축구에 관해서는 당시만 해도 불모의 땅에 가깝던 미국행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뉴욕 코스모스팀에 입단합니다. 펠레가 뛰기도 했던 팀입니다. 한편 1980년에 베켄바워도 뉴욕 코스모스로 오게 되었습니다. 1980년에는 이 두 명의 명선수가 함께 플레이 하면서 리그 우승을 따내기도 합니다. 뉴욕 코스모스는 1982년에도 우승했습니다. 하지만 1985년 북미 축구 리그가 사실상 해체되면서 지금은 찾아볼 수 없게 된 팀입니다. 여하튼 축구 레전드 선수들의 축구 보급을 위해서 이렇게 마지막까지 열심히 뛰는 모습은 칭찬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해 봅니다. (미국에서는 이후 94년 월드컵이 열리고 나서야 1996년에 메이저리그사커(MLS) 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리그가 다시 열리게 되었습니다.)

 

 1991년 선수생활 은퇴 후에는, 주로 코치를 많이 맡았습니다. 히딩크 감독과 함께 일하기도 했습니다. 네덜란드 국가대표 코치, 호주 국가대표 코치를 거쳐서, FC바르셀로나에서 코치를 맡기도 했고요. 한 때 네덜란드 1부리그 NEC팀의 감독을 맡기도 했습니다만,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요한 네스켄스. 그는 크루이프 같은 천재선수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뛰어난 체력과 순발력, 그리고 투지가 있었고, 경기를 조율하면서 때로는 과감하고 강력한 공격을 선보였던 훌륭한 명선수였습니다. 축구계에 조연상이 있다면, 필히 그 상은 네스켄스에게 돌아가야 마땅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빛나는 팀과 빛나는 선수를 만들었던 요한 네스켄스. 네덜란드 팬이라면 그의 이름도 함께 기억해주시길 바라봅니다. 이상으로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08. 03. 28. 초안작성.

 2020. 09. 26. 가독성 보완 및 동영상 업데이트 - 축구팬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