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책

히스토리아 노바 리뷰

시북(허지수) 2013. 10. 20. 15:30

 이번 리뷰는 서론을 생략하고 재밌는 대목 몇 개만 집중 소개해 볼까 합니다. 형식 파괴 리뷰! 55페이지의 주제는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컴퓨터 게임에 중독되어 지구를 찾아오지 않는 외계인" 그리고 이 농담같은 일은 21세기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예컨대 게임강국 일본에서는 집에서 나오지 않는 히키코모리가 무려 100만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친척이 있어서 한 번씩 가게 되는 제법 넓은 도시, 울산광역시 인구가 약 110만~120만명 인데, 그 정도로 많은 사람이 오늘날 히키코모리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수치는 줄어들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고도로 과학기술이 발전한 이후 사람들은 "간접적인 신호"에 큰 관심을 기울이며, 위장과 착각의 기술을 발전시키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뇌 역시도, 머릿 속으로 이미지를 그려서 연습하는 것과 실제로 행동하는 것에, 큰 차이를 보여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올림픽 수영의 전설 팰프스 역시, 이미지 트레이닝을 일상적으로 하면서 많은 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고요. 다시 말하자면, 20세기 발명품들이 주로 구체적인 현실과 관련된 것들, 예컨대 자동차, 비행기, 전등 등이라면, 21세기 발명은 가상현실의 오락산업을 위한 것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자 : 주경철 / 출판사 : 산처럼

 출간 : 2013년 07월 01일 / 가격 : 18,000원 / 페이지 : 360쪽

 

 

 그래서 물리학 보다는 심리학이 더 각광받을 수 있음을 언급하는 대목에 이르자, 아주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주경철 선생님 역시 대학에서 학사경고를 받는 이들 중에는, 게임 중독으로 인한 심각한 폐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언급합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게임강국이 겪어야 하는 커다란 과제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멋진 생의 즐거움 보다는 쉽고 단순한 기계적 오락의 거대한 유혹이 뒤덮는 사회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쯤되면,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의 생각하는 능력이 오히려 과거보다 더 떨어질 수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이렇게 쾌락을 주는 기술에 의존하게 된다면, 외계인도 지구를 찾아올 필요가 없으며, 나아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투표를 한다는 구호에도 무관심으로 진행되지 않을까요. 저는 그 점이 다소 우려되었습니다.

 

 다음 꼭지는 제가 늘 관심있게 주목하는 단어 "창의성"에 관하여 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픽사 본사 건물을 지을 때, 사람들을 서로 마주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커피 한 잔 하러 나오다가 만나고, 화장실 다녀오다가 만나고 하는 "직접적인 만남"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지요. 최신 기술을 선도하는 회사가, 정작 사람들의 만남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직접 만나서 의견을 나누고, 거기서 통찰을 얻고, 또 홀로 열심히 파고 들어가는 문화. 창의성의 구체적인 모습은 참 간단할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꽤 오랜 고민이었던 이른바 강남 좌파 문제에서도 주경철 선생님의 안목에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가령 "민중을 위해 투쟁한 빛나는 역사상의 위인들이 실상 얼마나 부자들이었는지 알면 놀랄 정도!" 라고 언급한 후, 잘 사는 좌파들은 사람들의 비난 뿐만 아니라, 정치가들의 엄청난 비난을 받기 쉬움을 콕 집어 설명해줍니다. 그럼에도 잘 사는 좌파들은 역사의 진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그 역할을 인정하자는 대목에서, 저는 한 발 나아가는 사고의 전환이 일어났습니다. "그래! 잘 살고, 진보 스탠드 취하면, 좋지 아니한가!" 흔히 말하듯이, 가난하게 살면서 가난한 자의 편에 서야만 합당해 보이지만,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건 전혀 아닙니다. 잘 살면서, 혁신과 공익, 개혁을 논할 수 있고, 실제로 지대한 역할을 감당할 수도 있다는게 큰 희망으로 들렸습니다.

 

 주경철 선생님의 유쾌한 당부 "미운 건 미운 거고, 강남 좌파 선생님들께서 우향우 하는 대신 계속 올바른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 우리 사회의 건전성 혹은 최소한 종 다양성 관점에서 좋은 일이다." 사람들이 좋아요! 하지 않고, 어쩌면 밉상으로 보일지라도, 자기 할 말 하는 사람이 된다면, 그게 건전할 수 있다는 게 참 재밌었네요. 솔직히 말해, 저는 순수하기 보다는 속물적사고(!)가 있는터라, 안정된 삶의 기반 속에서 사회 개혁을 밀고 나가는게 참 좋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모순이라 욕먹을지언정, 충분히 추구할 수 있는 선택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름 기뻤습니다.

 

 끝으로 세렌디피티라는 말을 소개합니다. "의도적으로 연구하지 않고도 숨겨진 것을 찾아내는 능력" 혹은 "놀라운 관찰 능력"을 의미합니다. 사전적으로는 "운 좋은 발견"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갖고 싶은 탐나는 능력 아니겠어요. 꿰뚫어보는 그 비결에 대해서 제법 근사한 이야기를 해줍니다. [이 세상 만물은 책이며 그림이니 거울이니] 따라서 정황을 유심히 관찰하면 우리는 궁극적인 것이나 비근한 것(가까운 것)이나 모두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강한 호기심과 예민한 추론 능력이 있으면, 같은 경험 앞에서도 훨씬 많은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제 나름의 결론입니다.

 

 이걸 한 번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호기심 없는 인생은 그래서 비극적입니다. 세상이 "다 거기서 거기" 같아서, 별 다른 것도 없으며, 따라서 무엇을 봐도 발견되는 것이 없습니다. 인생이 점점 무미건조하게 바싹 말라들어가며, 웃음이 사라지고, 우울하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무엇에도 감동하지 않는 인생이 된다면, 그 얼마나 재미 없는 시간들이 될까요. 자연스레 행복도 멀리 도망갈 것입니다. 호기심을 가지자! 라는 소박한 말이 참 인생을 풍요롭게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오늘 초고속 리뷰는 이쯤에서 마칩니다. / 2013. 10.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