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저는 맞지 않는 캐릭터를 입어보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습니다. 직설적으로 곧바로 말하거나, 날카로운 지적질을 쏘아붙이거나, 그렇게 악역을 한 번 해보려고 했습니다. 결과는 생각보다 더 처참하게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저는 한 가지 교훈을 얻었습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잘 어울리는 캐릭터(개성)를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훨씬 박력있고 대범한 모습이기를 동경했지만, 어느새 조금은 철이 들었는지(?), 섬세하고 소박한 스스로의 모습을 좀 더 좋아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고통을 각오하고, 악역을 자처하는 과감한 철학자가 있습니다. 강신주 선생님입니다. 무려 철학 박사이며(!), 거침없는 발언을 해대며, 사람들을 울리고,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는 힘. 그 고통과 박살나는 현장 속으로 들어가봤습니다. 전혀 돌려 말하지 않는 인상적 내용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너에게 얼마나 헌신적이었는데 네가 날 떠나니? 라고 하지 마세요. 여러분들이 좋아서 한 거예요." 이런 묵직한 표현들은, 우리의 껍데기를 벗기게 해줍니다. 근사한 사람이라는 속임수에서 깨어나게 해줍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잘해주었을 때, 그것은 단지 내가 좋아서 했던 일이지, 다른 사람의 행동을 지배하려고 해서는 곤란하다는 의미입니다. 타인이 나의 바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선택을 존중할 때, 우리는 남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자 : 강신주 / 출판사 : 동녘
출간 : 2013년 07월 31일 / 가격 : 13,500원 / 페이지 : 264쪽
물론 타인이 나의 희망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때, 우리는 낯설어지고, 때로는 상처받고, 불행해 질 위험성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강 선생님은, "불행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타자와의 사랑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은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 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대목이 조금 강렬했던 것은, 오늘날 현대인들이 불행가능성을 회피하기 위해서,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같은 "대체된 것들"에서 만족감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애인보다 덜 지루하고, 원하면 언제든지 만지작 거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대체물을 통한 욕망의 충족을 내면화 하다보면, 의외로 근원적으로 충족되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음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열받는다고 밤새도록 가상 총싸움을 한다고 해서, 삶이 행복해 질까요? 우리는 대체물을 좋아할 수 있지만, 대체물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그 서늘함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행복한 사랑이란, 상대방에게 헌신을 하고, 그 헌신이 또 나에게 돌아오는 것, 그렇게 서로를 극진히 아껴가면서 살아갈 때, 우리는 세상 그 무엇도 부럽지 않은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열립니다.
두 번째는 몸의 이야기. 저 역시 플루트 연주하는 한 제자 이야기에 큰 영감을 받았습니다. 핵심 이야기는 한 줄 정도로 간단합니다. "악기는 손을 타기 때문에 사랑스럽게 쓰다듬어 주고 만져 주지 않으면 마치 남남인 것처럼 초기화되어 버린다" 계속 손을 대야하는 것, 그렇게 정성을 기울이는 대상이 있을 때, 삶은 훨씬 즐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우리의 몸이 악기라고 가정할 때, 우리는 무엇을 만나야 아름답게 소리를 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입니다.
이상한 사람을 만나면, 우리의 존재 자체가 격하 혹은 비하 되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이것이 나의 진실일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멋진 사람을 만나면, 우리의 존재가 놀랍도록 경이로운 소리를 낼 수 있으니까요. 어떤 것이 진짜 나일까요? 그래서 저는 일깨워주는 사람이 정말 좋습니다.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시간이 좋습니다. 자신이 가진 최대치의 가능성을 믿어보고, 한 번 맞서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할 수 없는 나, 별 것 없는 나에 대한 초점을 집어치우고, 할 수 있는 것 한 가지라도 지금 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고맙게도(?) 강 선생님은 인간에 대하여 높은 기대치를 걸지 않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를 합니다. "죽을 때까지 여러분들에게서 어떤 음이 나게 될지 다 확인 못할 거예요. 시간은 너무 짧아요. 한두 곡만 내도 훌륭한 삶을 사는 거예요." 이 대목이 저는 참 좋았으나, 후반부 곧바로 확인사살(!)이 들어옵니다. "그런데 누가 이걸 쉽게 얻을 수 있을까요? 행복은, 드물고 아주 희귀해요. 용기 있는 사람만이, 기꺼이 상처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행복을 얻을 꺼예요."
이번 리뷰에서 모호한 관념적인 이야기를 과감히 접어버린다면, 그저 "삶이 즐거우려면, 상처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라고 정리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아무것도 시도 안 하다가 점점 녹슬어서 폐물 처리 될 바에야, 긁히고 아프더라도,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한 번 부딪혀 보는게 더 즐겁지 않을까요. 저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일단 시도해 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두 곡이라도 낼 수 있는 신나는 삶에 가장 필요한 것은, 뛰어들려는 각오, 상처 받을 준비를 하고, 한 번 도전해보자 라는 그 힘찬 의지 입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그렇게 시도해서 괜찮은 소리가 났던 적이 드물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머물러 있어야 할까요? 저는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야 말로, 더 즐겁게 살아가고, 더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원히 완성되는" 이라는 아름다운 환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불멸의 명곡을 바라지 않는다면, 오늘 시도할 수 있는 영역은 얼마든지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상이 저 멀리 보인다고 해서, 오늘 걷지 않는다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할 것입니다.
마지막 주제, 고독에 관하여 강 선생님은 "세계를 풍경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세계에 빠져들고 몰입하는 걸 찾아야 한다"고 권합니다. 물론 좋은 사람에 빠져든다면 정말 좋겠지요. 그게 아니더라도, 좋은 영화나 소설, 음악도 괜찮습니다. 예를 들어, 창 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다고 합시다. 이 때, 창문을 닫고 쳐다 본다면, 전형적인 풍경을 보는 것입니다. 비는 비일 뿐이고, 나는 나일 뿐이지요. 그런데 직접 나가서 비를 마주해야 한다면, 비를 맞던지, 우산을 펴든지, 여하튼 비에 대하여 온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풍경이 아니라, 제대로 느껴보는 것이지요. 당연히 괜히 나왔네, 하고 후회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그렇다고, 풍경만 볼껀가요?
이 이야기를 필사해보며 리뷰를 마칩니다. 평소와 다르게 좀 세게 나간 리뷰라서, 필체가 다소 맞지 않음을 느낍니다. 그래도 걱정하지 않으렵니다. 저는 꼭 이 이야기를 기억하고 나누고 싶었으니까요. (207p) "이게 잘못된 선택일 수 있어.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여러분은 결정을 못 해요, 평생. 그러니까 결정을 하고, 거기서 실패도 하고, 거기서 다시 배우는 겁니다. 지금 것을 포기하겠다는 건, 안 하겠다는 말이에요. 결정을 하세요."
우리네 현대인들의 곤란함은, 자기가 만들어 놓은 성 속에 갇히기를 즐겨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나의 목표, 나의 바람, 나의 이상을 최대한 예쁘게 단장해놓고, 멀리 떨어져서 풍경처럼 바라봅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시간은 금방 지나가 버립니다. 환상적 풍경은 그만 바라보고, 오늘 한 걸음 내딛는 용기를 간절히 응원합니다. 상처받아도 괜찮아요. 욕망해도 괜찮아요. 다만 언제까지 비겁하게 포기하며 안 하고 살아갈 것입니까. / 2013. 10. 리뷰어 시북.